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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예쁜 여자 저래 뵈도 아줌마예요.

  • 작성자 트리플에이
  • 작성일 2009-01-09
  • 조회수 571

  어둑어둑한 하늘과 달리 이곳의 조명은 너무나도 부드럽고 따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나만의 카페. 문을 열면 익숙한 커피 냄새가 날 기분 좋게 해 준다. 대학 졸업 후 매일 아침마다 이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며 손님들을 관찰하는 게 내 습관이다. 아침마다 부드러운 카페라떼를 마시면서 나만큼 이곳에 자주 오는 손님들을 관찰하면 뜻밖의 글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손님이 그렇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이 카페는 작은 도시 아파트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 조금 작은 규모의 카페 내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꽃향기와 커피향이 어우러진 독특한 향기는 이 카페를 더욱 특별해 보이도록 만든다.

 

“카페라떼 나왔습니다.”

 

  직원 한 명이 향기로운 카페라떼를 내 앞에 내려놓는다. 부드러운 카페라떼를 마시며 왠지 비가 올 듯한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 딸랑 딸랑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카페로 들어온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얼굴에 정장 차림을 하고 있다. 반듯해 보이는 인상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니 이 카페 단골손님은 아닌 것 같다. 저 남자는 이 카페에 무슨 일로 왔을까 또 나만의 상상을 펼치며 힐끗힐끗 그 남자를 쳐다본다. 꽃이 다 지고 잎만 남은 화분 옆 테이블에 남자가 앉는다. 직원이 주문받으러 오자 아직 안 온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말한다. 남자는 기대감, 희망, 설렘, 초조함 등이 골고루 섞인 애매모호한 표정을 하고서 자꾸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점점 더 그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가고 있을 때 다시 딸랑 딸랑 소리가 나면서 참 예쁘게 생긴 여자 하나가 카페로 들어온다. 적당한 키에 마른 몸을 하고 있다. 하얀 얼굴과 커다란 눈, 그리고 앙증맞은 버선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근데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검은 단발머리에 새카만 눈동자........... 카페 단골손님은 아닌데.............. 아니, 이게 누구야? 저절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커피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 익숙한 여자가 처음 보는 남자 앞에 앉는다. 분명히 아는 여자인데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누구더라.........

 

“커피는 뭘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카페 모카요.”

 

익숙한 여자가 말한다.

 

“같은 걸로 주세요.”

 

처음 보는 남자가 말한다.

  직원이 테이블에서 떠나자 두 남녀는 서로 쳐다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영훈이라고 합니다. 네 네 반갑습니다. 윤진아라고 해요. 등등의 말이 오간다. 그래, 진아구나. 그제서야 익숙한 여자의 이름을 떠올린다. 이름이 떠오르자 어디서 봤는지, 언제 봤는지 등등의 기억들이 겹쳐 커다란 틀을 완성한다. 오랜만이구나, 진아야.......... 어느새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진아는 여전히 인형처럼 예뻤다. 그때처럼 검은 단발머리에 새카만 눈동자, 그리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입학식 날도 비가 왔었다. 나와 진아가 입학한 선양여고는 고향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애들만 모인 학교로, 예쁜 여자애들은 별로 없는 고등학교였다. 그랬기에 유달리 예뻤던 진아는 그저 그런 얼굴의 입학생들 틈에서 더욱 빛이 났다. 검은 단발머리와 새카만 눈동자에 비해 너무 하얗고 예뻤던 피부. 중학교 때부터 진아를 흠모했었던 남자애들은 많았지만 그냥 괜찮게 생겼다 싶은 남자애들도 진아에게 장미꽃 꽃잎 한 장 조차 내밀지 못 했다. 진아는 궁전 속 찬란하게 빛나는 왕좌에 앉아 도도한 눈빛으로 추종자들을 내려다보는 여왕이었다.

  그렇게 찬란했던 진아에 비해 별로 예쁜 편이 아니었던 나는 진아와 친하게 지낼 이유가 중학교 동창이라는 것 말고는 없었다. 우연히 내가 졸업한 중학교 동창 여섯 명이 한 반에 배정되어서 그 애들끼리 같이 놀았었는데 나도 진아도 그 중에 끼어 있었었다. 그뿐이었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와 진아는 중학교 동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냥 끼리끼리 어울려 하하호호 웃다가도 단둘이 남으면 어색한, 그저 그런 사이였다. 하지만 2학년이 되어 중학교 동창들이 다 흩어지고 나와 진아만 같은 반이 되면서 우린 자연스럽게 단짝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라고 해 봐야 성적 비교의 대상이거나 가만히 놔두면 간질거리는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이도록 해주는 대상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단짝은 단짝이었기에 서로 비밀도 공유하고 다른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일들을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바로 그때쯤이었다. 여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린 용감한 기사가 등장한 게.

  웬만한 남자애들은 남자 취급도 안 했던 진아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건 충격적인 뉴스였다. 유명 연예인 스캔들 기사처럼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퍼졌다. 남자친구가 완전 날라리라며? 진아 키보다도 큰 곰인형을 줬대. 남자친구 얼굴이 전진 뺨친다며? 등등의 근거 없는 소문. 167cm가 넘는 곰인형을 선물한 전진 뺨치는 얼굴의 진아 남자친구는 선양여고 여자애들의 수다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화젯거리였다. 진아의 연애는 선양여고 여자애들에게 잠시나마 수학공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종의 활력소이자 탈출구였고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한 번은 진아의 연애에 대해 여자애들이 어제 본 드라마 얘기하듯 떠드는 걸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어제 내가 오랫만에 시내에 나갔는데, 거기서 진아랑 진아 남친을 봤어! 이름이 김수하라며? 선산고 다니는 애.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하얀 게 무지 잘생겼더라! 근데 걔 완전 날라리라잖아. 어제도 진아랑 오토바이 타고 다니더라고. 싸움도 무지 잘 한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노래방 앞에 오토바이 세우고 둘이 같이 들어가는 걸 내가 봤다니까? 둘이 같이 있으니까 진짜 빛이 나더라. 근데 진아 걔 좀 걱정되기도 해. 김수하라는 애 별로 소문 안 좋잖아.”

 

  정말? 정말? 하며 즐거워하던 여자애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진아 단짝인 나를 의식했던 모양인지 서로 눈치만 보더니 금방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진아가 연애를 시작한 지 세 달쯤 되던 때 진아는 내게 남자친구와 찰싹 달라붙어 찍은 스티커사진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사진 속 두 연인은 정말 잘 어울렸다. 선남선녀 천생연분이었다. 한 가지만 빼고. 그 한 가지 결점은 두 연인의 수준차이였다. 김수하가 다니는 신산고는 개나 소나 다 가는 바닥 중에서도 바닥인 학교였고 당연히 김수하의 수준도 바닥이었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등의 학생 신분에 어긋나는 행동은 장난처럼 했고 폭력서클에 가입되어 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반면에 진아는 공부도 잘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서 선생님들도 칭찬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렇게 상반되는 수준의 사람 둘이 만나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둘의 관계가 지속될수록 진아의 수준도 김수하를 따라 바닥으로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았고 그러면서 진아는 수하 뒤에서 오토바이도 타고 수업 땡땡이 치고 데이트 하러 가는 이상한 애로 변했다. 결국 담임선생님은 진아의 부모님을 학교로 불러 상담을 시도했다. 그제서야 진아 부모님들이 진아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진아 부모님들은 진아에게 당장 헤어지라고 명령했고 아예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그게 더 역효과를 낳았다. 진아는 가출했다. 혼자 집을 나간 게 아닐 거란 예상은 누구나 하고 있었다. 진아가 사라지면서 김수하도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네 달 쯤 후에 진아가 돌아왔다. 예전의 예쁜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몸매는 어딘가 좀 이상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진아의 불룩 나온 배에 대해 떠드는 여자애들 입단속을 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진아는 학교를 자퇴했고 고향을 떠나 자취를 감추었다. 창피스러웠던 모양이다. 세월이 점점 흐르고 수능 준비에 바빠지면서 다들 진아에 대해 잊어갔다. 세월 가는 게 무언가를 잊는 데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갑자기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죄송하지만 이만 가보겠습니다........ 남자는 아까의 표정과 상반된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서 바쁘게 카페를 나갔다. 거리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진아를 보니 진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없이 커피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진아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진아 앞자리에 앉자 진아가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본다. 한참 쳐다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민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그 믿을 수 없다는 표정엔 약간의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이 섞여 있다.

 

“오랜만이네. 9년 만이니까.”

 

  내가 먼저 어색한 침묵을 깼다.

 

“그..........그러게............ 그동안 잘 지냈어?”

 

  진아는 굉장히 당혹스러워했다. 9년 전 사건에 대해 창피스러움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나야 잘 지냈지. 너는?”

“나.........나도 뭐................”

 

  잘 지내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하긴 어떻게 잘 지냈겠는가.

 

“이런 말 물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까 그 남자는 왜 나간 거야?”

 

  진아가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몇 번 고개를 가로젓던 진아가 한숨을 푹 내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조금 전의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모두 다 사라진 얼굴이다. 차라리 나한테 다 털어놓기로 결심한 것 같다.

 

“솔직하게 말했어. 속이고 만나는 거 싫어서. 나 여덟 살짜리 애 있고 애가 아빠 없이 크는 게 싫어서 여기 나온 거다. 그랬더니 바로 가버리더라고.”

“미쳤니? 초면에 무슨 그런 말을 해. 그런 건 차차 만나면서 알아가도 되는 거잖아. 얼마나 상처받고 나갔겠어. 아까 보니까 엄청 기대에 찬 표정으로 널 기다리던데.........”

“계속 만나다가 상처받는 것보단 낫잖아.”

 

  진아가 마지막 남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한숨을 푹 쉰다.

 

“니 남자친구는? 걔는 어쩌고? 애는 어쩌다 갖게 된 거야? 니들 같이 잤니?”

 

  진아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내가 너무 직접적으로 물어봤나 보다. 좀 돌려서 말할 걸.

 

“내가 가출했을 때 걔랑 같이 나갔었거든. 부산까지 갔어. 바다나 보려고. 근데 거기 나랑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살고 있더라고. 언니한테 거짓말을 했지. 친척오빠라고, 사정이 있어서 그런데 신세 좀 지자고. 언니는 일하느라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안 들어오는 날이 더 많았고, 우린 계속 빈 집에 단둘이 있었던 거야.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아침밥을 먹는데 밥이 안 먹히고 계속 헛구역질만 나오더라고. 빨간 두 줄 선명하게 나온 거 보고 가슴이 철렁하더라. 생리를 안 하길래 어느 정도 불안감은 갖고 있었지만 원래부터 불규칙하던 거라 설마설마 했지. 계속 헛구역질만 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으니까 언니가 눈치를 챘어. 니들 무슨 사이냐고, 빨리 이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소리 지르는데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 인터넷에 알아보니까 돈 좀 많이 모으고 어떻게 잘 알아보면 불법이라도 수술은 된다고 하더라고. 돈 구할 때까지만 집에 있게 해 달라고 언니한테 사정사정해서 수하랑 같이 계속 돈 구하러 다녔지만 돈을 어디서 구해, 가출한 처지에. 그래도 계속 스스로를 위로했어. 수하가 있으니까. 수하가 옆에서 같이 책임져주겠지, 어떻게 되겠지. 수하가 옆에 있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바보 같은 생각이었지. 수하는 나보다 더 무서웠었나봐. 내가 옆에 있어도 겁이 날 만큼 무서웠었나 봐.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것도 몰라. 수하랑은 연락도 안 되고, 돈은 한 푼도 없고, 언니는 나가라고 등 떠밀고............. 결국 맞아죽을 각오 하고 집에 돌아갔지. 엄마는 펑펑 울면서 어떻게 해서든 수술 해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아빠가 반대했어. 니가 벌린 일은 니가 책임져라 하는데 하늘이 무너지고 눈앞이 아득해지더라. 왜 나만 책임을 져야 해요? 라고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어. 수하는 도망가고 없었으니까. 결국 낳아 버렸지 뭐. 낳고 보니 수하를 꼭 빼닮았더라. 요즘 내가 그 어린애한테 뭐 가르치는 줄 아니? 여자애들한테 눈독들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잖아. 나도 참 한심하지. 그냥 그렇게 한순간에 인생이 이렇게 되어 버렸어. 무슨 일 하냐고? 야, 이 나이에 여덟 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누가 일 시켜 주겠냐? 그냥 이 가게에서 알바하다 잘리면 저 가게에서 알바하고 그러면서 살고 있어. 아빠는 사고 터진 날부터 날 딸 취급도 안 하지, 엄마는 애 보는 거 말고는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지, 미칠 노릇이야. 근데 너 돈 가진 것 좀 있니? 있으면 좀 빌려줘라. 지금 아들 입학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것저것 사고 급식비 내고 하느라 힘들어 죽겠어. 좀만 빌려주면 내가 금방 갚을게, 응? 아............. 정말 나 너무 비참하다. 9년 만에 만난 단짝친구한테 고작 한다는 말이 돈 꿔 달라는 말밖에 없고............ 신세한탄이나 하고............. 어머, 지금 수호 학교 끝났을 시간인데. 나 얼른 가봐야겠다. 연락처 좀 줘. 나중에 다시 만나서 더 얘기하자. 아냐, 됐어. 돈은 안 받을게. 나 이만 간다!”

 

 스물일곱의 아줌마가 바쁘게 카페 문을 박차고 나간다. 저 가엾은 아줌마가 남기고 간 빈 커피잔에 알 수 없는 액체가 넘칠 듯 가득 채워져 있다. 한 모금 마셔 보니 짜고 쓰다. 그 커피잔에 담긴 짜고 쓴 액체가 내 눈에서도 떨어지고 있었다. 진아는 그동안 이 액체를 얼마나 많이 쏟았을까? 어떻게 그 예쁜 얼굴로 아줌마가 될 수 있어.............. 진아야........ 어쩌다 그렇게 됐니............ 어쩌다가...............

트리플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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