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봄의조각

  • 작성자 시진
  • 작성일 2009-11-28
  • 조회수 300

 

봄의 조각



바람이 절의 종에 매달리며 어깨를 감싸자 종은 서글프게 운다. 나는 그 종을 바라본다. 아니다. 나대신 울어주는 그 종속에서 너를 바라본다. 너의 눈은 어땠는지, 너의 웃음은, 그 보드라운 입가가 어떻게 올라갔고 눈은 어떻게 둥글어 졌는지 떠올려본다. 하지만 전혀 떠오르지 않고 마치 몇 년은 못 본 듯 희미하게 윤곽만 나타난다. 하지만 너의 울음, 일그러진 모습,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과 꾹 감은 눈은 선명하게 박혀있어서 마치 그림으로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널 잊을 수 있겠지.'

아무도 없는 텅 빈 절에 큰 대 자로 드러누웠다. 내 눈이 종을 보지 못하게 종을 가리고 울고 있던 네가 이제는 가지런히 정리된 나무들이 모여 있는 절의 천장에서 나에게로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다.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다 결국 천장에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눈을 감아 검은 세상만이 보여도 너는 여전히 울고 있다. 나는 아까의 생각을 바꾸며 고개를 저었다.

'널 영원히 못 잊은 채 살아가겠지.'

두 눈이 아무것도 담지 못하게 되면 네 환영도 사라질까.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멍청한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늘 들고 다니는 검은 빼낸다. 시퍼렇게 날이 선 놈이 벌써 목표물을 알아챈 양 나의 눈을 차갑게 노려본다. 나는 네가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 댕기를 두어 번 쓰다듬고 내 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는 긴 칼을 눈높이 까지 들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차가운 촉감이 서서히 내 눈을 압박시키고 있었다.

"나무아비타불……."
어디선가 갑자기 목탁소리가 들렸다. 나는 꿈에서 깨버린 듯 깜짝 놀라며 칼을 칼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온몸은 순식간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



너를 처음 만난 건 갑자년이었다. 그 날은 겨울 중에서도 유난히 추운, 동지였었다. 아버지의 꾸중과, 심하면 어머니조차 매를 들것임을 알고서도 나는 그 추운 겨울에 돌쇠한명만 이끌고 물이 꽁꽁 얼어버려 있을 논으로 향했다. 내 예상대로 논은 물 한 방울조차 없을 정도로 꽁꽁 얼어있었고, 그곳에는 많은 아이들이 먼저와 놀고 있었으며, 이대로라면 차가 식을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나또한 그 많은 아이들 중 한명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논 바로 옆 은행나무에 쭈그려 앉아 입김으로 손을 녹이는 너는 절대로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평소라면 거지나 노비라 생각하며 관심조차 없을 내가 그때는 무슨 이유인지 네게 다가갔었다. 어쩌면 하늘의 뜻이었을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때부터 나는 너를 흠모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냐."
네? 아, 저……. 너는 나의 질문에 얼굴만 붉힐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구나. 그래서 나는 혹시, 아주 혹시라도 네가 평범한 농민의 딸이거나 몰락하는 양반가의 아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농부의 딸 치곤 입은 옷이 고풍스러웠고 양반가의 딸 치고는 온몸에 멍이 나있었기에 나는 내 생각이 틀림을 알 수 있었다. 혹 내가 잠시 동안 한 생각이 틀렸다는 걸 몰랐다 하더라도 다음의 너의 말로 쉽게 깨달을 수 있었을 테다. 그러노라고 말하는 네게는 약간의 망설임과 두려움, 호기심마저 섞여있었다. 아버지 몰래 가본 기생집에서도 내 마음을 가져가는 여인은 못 봤건만 너의 조심스러우면서도 활기참을 버리지 못하는 목소리는 두, 세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한순간 내 마음을 훔쳐갔다.

"어느 집에 종속되어 있느냐?"

"감나무 옆 최진사 댁입니다."
"그런데 너의 주인은 무얼 하느라 너를 예 놔두는 게냐."
"저 논두렁에 계십니다. 저더러는 큰 어른이 오시는지 감시를 하라 하셔서……."
나는 논에 들어가지도 않고 네게 여러 질문을 했고, 너는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에는 굉장히 정성들여 답변을 해주었다. 후에 너는 두고두고 그 일을 도련님과, 그것도 처음 만나는 분과 대화하는 것은 내가 처음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새 봄에 개나리꽃을 보듯 괜한 웃음에 행복해지곤 했지. 조금 시간이 지나 내 코도 너의 코처럼 벌게졌을 때 너는 너의 주인이 간다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저 멀리 걸어가는 너는 어느새 붓으로 잘못 그은 선처럼 멀어졌고, 나는 네가 환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다음 날 내가 서당에 있었을 때 아버지가 나의 혼담을 넣을 생각으로 최진사댁에 간다는 야기를 돌쇠를 통해 듣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나는 아직 혼기가 차지 않았다고, 화를 낼 작정으로 훈장님의 허락을 받고 집으로 가다 최진사댁으로 가고 있는 아버지를 우물가에서 만나게 되었다.

"너는 어찌 이 시각에 이곳에 있느냐."
"아버지가 제 혼담을 넣으러 간다기에 말리려고 훈장님께 말씀드리고 나왔습니다."
"넌 장손이지 않느냐. 빨리 혼인하여 대를 이어야지."
이렇게 말하는 아버지가 노하신 듯 보이지는 않아 나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내 뜻을 말하였다.

"허나 아버지. 저는 아직 혼기도 다 차지 아니하였고……"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좋다. 일단 최진사와 한 약속이 있으니 너와 같이 가보자꾸나. 정 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 뜻대로 해도 상관없다."
나는 평소와는 다른 아버지의 놀라면서도 감격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간 최진사 댁의 대문에는 네가 서있었다. 너의 주인이 몰래 빠져나간 것이 들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인지 너는 그 추운 날 신발마저 신지 못한 채 내쫓겨져 있었다. 손과 발에서는 피가 나고 얼굴은 너의 눈물로 얼룩져 아버지가 혀를 차고 돌쇠마저도 최진사 댁을 나직하게 욕을 하며 돌아섰었다. 나는 네게 내 신을 벗어 신겨주고 싶었지만 무엇 때문인지 나를 주시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 때문일까, 나는 그날 지독한 가위에 눌려버렸고, 그 날 이후 난 최진사댁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혹 네가 그곳에서, 그날과 같은 꼴로 서있는걸 보면 내 스스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변에 눈이 있든 말든 너에게 신을 벗어주고 두루마기를 덮어줄 것 같아, 내가 욕당하는 것은 무섭지 않지만 그것으로 인해 네가 제멋대로 날 건드렸다는 말이 들릴 것 같아 널 보고 싶어도 꾹 참고 말았다. 다만, 혹시나 네 주인과 네가 또다시 논두렁에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의 반나절을 논두렁에 앉아서 기다린 적은 밥 한 공기 속에 있는 밥알보다 더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기다려도 너와 네 주인은 논두렁에 발조차 내밀지 않았다.

하늘도 무심하게 내가 상사병에 걸리도록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지 너를 영원히 못 볼 것 같은 이시간도 결국은 끝나고 말았다. 더 이상 볼 수 없을 꺼라 생각했던 너를 다시 만난 곳은 놀랍게도 최진사댁의 대문이나 논두렁이 아니라 서당이었다. 네 주인을 대신하게 온 것인지 손등에 난 멍을 애써 가린 네게 훈장님이 의례적으로 이름을 물었다.

"청양이옵니다."
그때서야 난 네 주인이 아버지가 나와 혼인키로 하셨던 낭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 궁금하지 않았던 너의 이름이 너의 한마디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없을지도 몰랐다. 특별히 아끼지 않는 이상 일개 종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것도 종을 벌레보다도 업신여긴다는 최진사댁에서는 단 한명도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날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최진사댁 근처에 가지 않았고 너 역시 두 번 다시 논두렁에 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날 내가 네게 말했다. 아마 서당에서 너를 처음 보았을 때 이야기를 하다가 그날 떠오른 것이 갑자기 기억났기 때문이리라. 논두렁에서 너를 만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냇물이 졸졸졸 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직도 네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구나."
"없습니다."
조금 뜸을 들이다 네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너의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언제나 '너, 너' 하고 부르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아니하였을 뿐더러 그것 하나만으로 너와 나의 거리가 더 멀어져보였기 때문이다. 설레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너를 보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네 평생이름이 될 말을 내뱉어 버리고 말았다. '춘단(春段)' 봄의 조각이란 뜻이었다. 너는 그 이름이 이상하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도련님이 제게 선물을 주었으니 저도 도련님께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아니, 필요 없다."
"아닙니다. 꼭 드리고 싶습니다."
평소에는 거절을 하면 알았노라고 말하며 그만두는 너였지만 그날만은 끝까지 선물을 주겠다고 말하며 너의 몸을 이리저리 뒤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네게 나오는 게 있을 리 만무하였다. 너는 잔뜩 풀이 죽어 신을 내놓았다가 내가 안 된다고 하면 도로 신고, 또 다른 것을 내놓기를 번복하였다. 내가 괜찮다고, 필요 없다고 마지막으로 말하려는 순간에 너는 한 가지 생각난 게 있는 듯 한순간 밝아지며 너의 댕기머리에 달린 댕기를 잡아 끄었다.

"도련님께 이것은 필요하지 아니하겠습니다마는, 이것이 저의 유일한 물건입니다. 받아주시겠습니까."
받으라고 하면 받지 못할 물건도 아니었는데 너는 내가 싫다고 차갑게 뿌리칠까봐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흔쾌히 받아들어 내 손목에 묶었다. 너는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였지.

"혹, 제가 도련님과 만나지 못한다 하여도 도련님은 이걸 보면서 저를 떠올리셔야 합니다. 절대로 소녀를 잊지 마셔야 합니다. 알겠지요?"

무엇이 두려웠는지 너는 몇 번이고 네게 확인을 받아두었고, 나는 네가 원하는 만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와 '청양 아기씨'는 냇물에서 노닌다는 사실에서 나타난, 서로가 서로를 흠모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그 소문은 금방 아버지의 귀에 다다랐다.

"그럼 혼인을 할 수 있겠구나."
아버지는 굉장히 즐거워하시며 말하셨다. 나는 절대로 싫다고 거부하였으나, 저번의 그 온화하시던 아버지는 어디 가셨는지 이번에는 매우 엄하게 나를 꾸짖으셨다.

"남아중천 일언금(男兒一言 重千金)이라고 하였는데 너는 어찌 한입으로 두말을 하려드느냐. 네가 분명 마음에 들면 혼인을 한다하지 아니하였느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가슴한구석에 돌을 쌓은 듯,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었다. 그 후 '청양 아기씨'와 나의 혼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만 절대 진행될 수 없는 것은 내 마음이 향하고 있는 자였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에게 저항하면, 싫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거스르지 못한 게 아니라 거스르는 법을 몰랐다고 말한다면 넌 내 말을 믿어줄까.

널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될 마지막 날 밤, 우리 둘의 사이를 알고 있던 유일한 자인 돌쇠가 네가 왔음을 알려주었다. 나는 혹, 네가 같이 도망가자고 할까봐, 그럼 무어라 말해야 할지 내심 혼란스러워 하며 너를 맞이하러 대문 밖으로 나갔다.

"춘단아."
"도련님. 안녕히 계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냐!"
"다만, 못나게 태어난 소녀의 단 한마디, 이 말을 믿어 주시겠습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네가 하는 말이,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얼마나 무거운 말이었는지 그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천년, 아니 만년이 지나도 저는 도련님만을 사모할 것입니다. 이 추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온기가 도련님의 온기라서 행복했습니다."

"춘단아!"
"이제 가십시오. 저도 갈 것입니다."
너는 웃고 있었다. 너의 눈을 초승달처럼 둥글게 휘었고 입가는 가지런히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너의 얼굴, 눈에서 나타나 볼을 타고 턱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네가 완벽히 웃고 있지 아니함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너의 눈은 초승달처럼 둥글게 휘었고 입가는 가지런히 위로 올라가 있었지만 너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왜 나는 그때 너를 지켜주지 못했을까. 네게 도망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울지 말라는 말 한마디 해본 적 없었을까. 하다못해 어깨를 감싸 안고 귓가에 단 한마디,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주지 못하였을까. 그 말을 하였다면 어쩌면 넌…….


너를 바다에 뿌리고 너의 선물인 댕기에 조금 싸서 나는 산으로 갔다. 산의 냇물에서 비춰본 내 얼굴은 너의 마지막 얼굴처럼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네가 없는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네가 아닌 '청양'과의 혼사가 진행되는 것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내가 너를 최진사댁과 혼사를 맺게 하기 위해 얼마나 큰 공을 들였는지 아느냐!"

어제, 산으로 간다는 말에 큰 호통을 친 아버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아직까지 울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회초리로, 작은 나뭇가지로, 그러다가 몽둥이로 나를 때렸지만 나는 절대로 뜻을 바꾸지 않았다. 오늘 새벽에서야 아버지는 내 마음대로 하라고, 땀을 흘리면서도 나를 노려보며 말씀하셨다.

나는 승려가 되련다. 그 누구의 어깨도 감싸지 않고 오로지 너의 댕기만을 가지고 승려가 되련다. 저 멀리서 또다시 종소리가 들려온다. 종을 감싸는 바람은 내게 봄의 꽃향기를 가져다주었다.

시진
시진

추천 콘텐츠

새우

새우 유명한 햄버거 가게 밖 햄버거 가게의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있는데, 그 사이로 엄마가 새우버거 두 개를 계산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엄마, 새우버거 판매점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파란색 마티즈 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차 안 앞좌석에는 지수(고1, 女, 포니테일머리에 단정한 교복차림)가 앉아 있고 지수의 바로 뒷좌석에는 대수(고3, 男, 머리카락이 귀를 덮고 있고 교복바지에 회색 티셔츠)가 앉아있다. 대수의 옆에는 지수의 학원 가방이 놓여 있다. 엄마가 뒷좌석 문을 열더니 지수의 학원 가방 옆에 새우버거 두 개가 담긴 봉지를 내려놓는다. 엄마가 문을 닫자마자 대수가 새우버거를 하나 꺼낸다. 대수  둘 다 새우버거네. 난 치킨버거가 더 좋은데. 엄마 (지수를 바라보며)너도 하나 먹지 그래 지수 난 나중에 학원에서 먹을게. 오빠, 내 가방에 좀 넣어줘. 대수 E) (새우버거를 입안에 물고 있어서 불명확한 발음으로) 큰 주머니 쪽에 놔둔다. 엄마 (차를 출발 시키고 거울로 대수를 바라보더니) 그런데 너, 오늘은 수학학원 안가? 대수 에이, 오늘 토요일이잖아. 엄마 그래도 고3인데 학원에서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 되는 거 아냐? (뜸) 그리고 너, 지난주 토요일에는 피아노 학원 갔잖아. 왜 오늘은 안가? 대수 아 진짜. 그건 보충이라니까. 지난주에도 말했는데. 엄마 혹시 또 거짓말 하는 거면……. 대수 (찔려서 큰소리로) 엄만 아들이 무슨 사기꾼인줄 알아? 그렇게 못 믿어? 아이씨……. 엄마 믿게 좀 만들어 봐라. 그럼 오늘 뭐할 거야? 대수 하늘독서실 갈거야. (새우버거 한 입 베어 먹고 조그만 목소리로) 거기서 친구 만나기로 했어 엄마, 대수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하고 흐뭇하게 웃는다. 반면, 대수의 말을 끝까지 들은 지수는 엄마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도로 엄마가 지수의 학원으로 가던 차를 U턴 시킨다. 차 안 지수와 대수가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엄마가 왜 저러냐는 표정들이다. 엄마 독서실 갈거면 태워다 줄게. 대수 에이 됐어. 여기에 세워줘. 지수 학원도 가야 되고. 엄마 지수 학원 아직 시간 덜 됐어. 그리고 하늘 독서실 여기서 꽤 멀잖아. 대수 바로 앞이야. 운동할 겸 걸어갈테니까 그냥 세워줘. 엄마 괜찮다니……, (대수를 노려보며) 혹시 독서실 간다고 하고 딴 데 가려고 한 거 아냐? 대수 (짜증)아니거든요? 엄마 근데 왜 태워다 준다는데 거절하는 거야? 너답지 않게. 대수 그건……(자기가 불리한 걸 깨닫고는) 아씨, 그럼 태워다 주든가. 차 안 분위기가 싸하다. 지수는 엄마와 대수를 번갈아 가며 눈치만 보고 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대수, 곤란한 표정으로 창문만 바라보고 있다. 하늘 독서실 건물 앞 멀리서 파란색 마티즈가 보이더니 점점 다가와 독서실 건물 앞에 주차한다. 대수, 차 문 열고

  • 시진
  • 2011-10-09
고기

  "오래 씹을수록 고소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짙은 육즙을 한 번이라도 맛보면 왜 사람들이 그렇게 고기에 환호하는지 짐작할 텐데……." 그의 말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그가 떠난 이후 몇 번 혼자 고기를 먹었지만 예전과 별 반 다를 게 없었다. 음식의 맛은 그를 만나기 전에도 느낄 수 없었지만 그와 같이 고기를 먹었더라면 벌써 고기의 맛을 느꼈을 거란 확신이 든다. 고기를 한 점 집어 올렸다. 부분부분 내 마음처럼 타버린 고기를 노려보다가 입안에 넣고 마구 씹었다. 침이 필요만큼 흘러나오지 않아 입안이 텁텁했으나 이 이상으로 분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입을 움직여 고기를 잘게 만들지 않고, 마치 고기 맛을 음미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나 그 순간 내가 무엇을 음미했었다면 그건 고기가 아니라 그일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본의 아닌 채식 주의자였다. 살육에 반감을 가졌다거나 해서 채식주의자가 된 건 아니고 질기기만 한 고기를 영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야채는 아삭거리기라도 하지, 이에 끼기만 하고 고무줄보다 더 질긴 고기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반면에, 그는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종종 채식주의자는 인생의 즐거움 중 30%를 포기하는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일까, 내가 채식 주의자에 미각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꼭 내 미각을 찾아주겠노라고, 고기 맛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애당초 찾아올 미각도 없는 데 말이다. 그가 처음 쓴 방법은 병원의 치료였다. 내가 뭘 몰라서 그러는 데 요즘은 과학이 발달해서 그깟 미각상실쯤은 하루 만에 고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관찰을 받고 의사와 상담까지 받은 뒤 나왔을 때 그의 표정은 꽤 볼만했다. 봤죠? 내가 뭘 모르는데? 비아냥거림이 목까지 차올라 목젖을 간질였지만 나는 그 말을 삼켜버렸다. 잔뜩 풀이 죽은 체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평생 단 하나의 맛도 느끼지 모한 나를 동정했다기보다 정말로 내게 고기의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한 행동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진심으로 나를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 비아냥거릴 만큼 성격이 고약하지 않았다. 그는, 제법 끈기 있는 사람이었다.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의사고 없는 미각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했건만 그는 언제나 불가능은 없다며 내게 이것저것 시도를 했다. 게 중에는 혀에 침놓기, 일주일동안 굶기, 식신에게 홀리기 등 어처구니없는 것도 있었지만 대게는 맛을 설명해주는 식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설탕이 달다고 말해도 단게 뭔지 모르는 사람은 이해를 못하는 것처럼 그의 설명도 고기 맛을 느껴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물론 아주 소용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그가 흘러가듯 말한 설명은 내게 고기의 맛을 느끼고 말겠다는 의지를 심어주기 충분했다. "오래 씹을수록 고소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짙은 육즙을 한 번이라도 맛보면 왜 사람들이 그렇게 고기에 환호하는지 짐작할 텐데……

  • 시진
  • 2010-05-21
형광등

    교무실 안의 수명이 다해 껌벅껌벅 거리는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아직 6시 인데도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지속적이지는 않더라도 방을 비추어 주는 형광등에게 작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정적만이 감돌던 방에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문의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일어나 그 하이힐을 신은 사람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우섭이의 어머니입니다.""안녕하세요. 우섭이의 담임선생인 최우인이라고 합니다.""저, 그런데 오늘 저를 부르신 이유가……?" 우섭이의 어머니가 등을 꼿꼿히 펴고 살짝 딱딱하 말투로 물엇다. 어머니의 시선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 큰일은 아니구요. 우섭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서요.""문제요?"어머니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콧잔등을 잔뜩 찡그리며 되물었다. 나는 지난 번 수업 때 있었더 일을 떠올렸다. 원래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이란게, 그것도 목요일 마지막교시인 7교시에 있다면 시험에도 안나오겠다, 놀자판인게 당연하지만 다행히 우리반은 담임인 내가 창의적 재량활동을 맡아서 인지 엎드려 있더나 떠드는 아이들이 극소수에 불과했다. 다만, 그렇게 떠드는 아이들 중에 우섭이도 끼여있었을 뿐이다. 나는 엎드려 있는 아이들에게 벌을 주는 대신 질문을 했고, 아이들이 그에 대답을 하면 앉게 해주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게 뭐니?"이 질문에 대답은 가지각색이었다. 시험, 학교, 거미, 모기등 누구나 공감할수 있는 것들이 특히 많았지만 우섭이만은 좀 색다르게 '형광등이요' 하는 시큰둥한 목소리가 전부였다. 그 의외의 대답에 나는 '왜?' 하고 반격하듯이 물었다. "형광등 때문에 밤에 자지도 못하고 공부해야 되잖아요."우섭이는 '형광등 만든 새끼 죽여버릴꺼야.' 하고 덧붙이듯짧게 말했다. 평소라면 왜 욕을 하냐고 윽박지를테지만 한 가지, 나를 궁금케하는 의문에 그 날만은 그 말을 하지 않은 채 넘어갔다. "밤에 자고 낮에 공부하면 되잖아?""낮에는 학교가고, 학교 끝나면 학원이 세개나 줄줄이 있는데요?"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 나를 한심스레 바라본 우섭이의 모습에 가슴에 돌이 떨어지기라도 한 듯 먹먹했다. 잠시 그때를 생각하다 다시 우섭이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우섭이 어머니는 자시의 아들이 잘못할 수 있는 행동을 고르는듯 손가락을 세며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계셨다. "큰 무네는 아니고, 1학기 초만해도 밝고 활발했던 녀석이 가면갈수록 반항이 심해져서 무슨일이 있나 싶어서요.""어머, 그래요? 어쩐지 저번 중간고사 점수가 옆집의 영화보다 낮게 나왔더라니……. 옛날에는 영화보다 훨씬잘했는데." 어머니의 말에 나는 저번 중간고사에서 우리 반 1등이 누구였는지를 떠올리고 혹시 내가 착각한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함박 웃음을 지으며 '1등했어요!' 하고 자랑스레 말했던 우섭이의 모습은 착각이 아니었다. "하여튼&

  • 시진
  • 2009-10-05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