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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유운
  • 작성일 2011-01-14
  • 조회수 531

 

1.

‘최근 2011 수능을 치룬 수험생들의 수능 성적 비관 자살이 증가하고 있어 가정과 학교의 충분한 배려가.......’

뉴스를 통해 전달되는 전혀 좋지 않은 소식에 문형은 멍하니 보고 있던 텔레비전을 껐다. 수험생의 자살 소식 보도임에도 불구하고 무미건조한 말투로 소식을 전달하는 앵커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문형이 더 미안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문형 역시 이번 수능을 치룬 수험생으로써, 또한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 재수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보도를 접하고서 단순히 애도만을 느낄 수는 없었다. 창밖에선 겹겹이 서있는 아파트 사이로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하는 저녁식사, 떳떳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밥을 꾸역꾸역 삼키는 문형에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그 점수로 어디 갈 수 있는 대학은 있더냐?”

 

명백히 문형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물어보는 아버지에게 문형은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그 대학이 SKY 그 대학들만 아니라면 갈 수 있는 대학이야 많죠.’ 라고 대꾸하려고 했지만 가정에서 기대하던 성적을 얻어내지 못한 수험생으로서 그런 하극상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문형은 묵묵히 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SKY 그 밑의 대학교는 절대 집에서 등록금이고 뭐고 못 내준다.”

 

고개를 푹 숙인 문형의 뒤통수에 아버지의 말이 묵직한 철퇴가 되어 떨어졌다. 문형은 더 이상 밥을 삼킬 수가 없었다. 문형이 방에 들어와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은 지 몇 시간이 지났다. 가족 중 아무도 문형이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2.

“선배님들! 수능 대박나세요!”

“오빠! 이 차 드시고 가세요!”

“따르릉 따르릉 전화 왔어요. 우리선배 수능대박 전화 왔어요.”

 

문형이 수능을 치러 가던 날의 학교는 3학년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1, 2학년 후배들과 부모님들로 북적거렸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문형은 오늘 수능을 치른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었지만 당장 이렇게 수능 응원인파를 맞이하고 있자니 새삼 자신이 수능을 치른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것들을 단 한 번에 결정해 버리는 수능이 당장 코앞으로 다가오자 문형의 가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답답해져 왔다.

 

제 1교시 언어영역, 심각하게 정체된 공기가 문형의 숨을 막아왔다.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을지도 모를 시험을 앞에 두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험 감독관마저 긴장한 얼굴로 시험지와 OMR카드를 나누어 주었고 드디어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문형이 처음 시험지를 대면했을 때 느낀 첫 감정은 당혹이었다. 절대 평소 만만히 여기고 있던 언어가 아니었다. 도무지 지문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가 않았다. 문형은 이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 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덜컥 두려움이 몰려왔다. 문형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 시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두려움과 당혹 속에서 1교시가 끝이 났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 시험장 여기저기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심지어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는 이이들도 있었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모두가 언어영역을 망친 듯해서 문형은 약간 안심이 되었다.

 

2교시 수리영역, 언어영역의 충격으로 인해 시험장의 분위기는 전보다 더욱 가라앉아 있었다. 더군다나 애초부터 수리영역을 포기한 수험생들이 끼여 있어 침묵과 약간의 어수선함이 공존하는 굉장히 기묘한 분위기였다. 문형은 시험지를 받고 첫 장, 둘째 장까지는 무난하게 풀어나갔다. 하지만 세 번째 장, 점점 헷갈리는 문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문형의 머릿속 깊숙이 처박아두었던 언어에 대한 불안감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계산에서 실수가 잦아졌고 그럴수록 문형은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최악의 악순환이었다. 점차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본능적으로 펜을 굴리는 것일 뿐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2교시 역시 끝이 났다. 몇 문제는 거의 찍다시피 하며 풀어나간 것 같았다. 문형의 손이 덜덜 떨렸다.

 

1, 2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 집 앞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을 꾸역꾸역 집어넣자니 문형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아들이 수능을 보는 날의 점심식사마저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게 만드는 집안, 아들에게 치중되는 굉장히 큰 부담 그리고 결국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게 될 아들, 어느 신파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아직 외국어영역과 사회탐구영역이 남아 있었지만 문형은 도무지 그 두 영역을 잘 볼 자신이 들지 않았다. 언어영역과 수리영역의 충격이 두고두고 자신을 괴롭힐 것만 같았다. 결국 문형은 눈물을 흘렸다. 그때였다.

 

“에라이! 이왕 수능 이렇게 된 거 축구나 하실 분!”

 

문형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떤 미친놈이 수능 시험장에서 축구를 하자고 한단 말인가? 그런데 정말 누군가가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보였다. 왠지 그 모습이 너무나도 매력 있어 보여 문형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라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막상 문형이 운동장으로 나가보니 상상외로 축구를 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많았다. 누군가가 수리 가형과 나형으로 팀을 나누자고 제안했고 가위 바위 보에서 진 수리 나형 대표 때문에 수리 나형에 응시했던 문형은 반팔 티만을 입고 경기를 뛰어야 했다. 하지만 격렬한 경기덕분에 문형은 추위를 느낄 새가 없었고 더불어 수능을 망쳤다는 충격마저 잊을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모두가 헐레벌떡 수험장으로 뛰어갈 때 문형은 맨 처음 축구를 제안했던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축구하자고 한 거에요?”

“아 그거요? 그냥 예전에 인터넷에서 누가 수능 점심시간에 축구한 후기를 올렸더라고요. 그게 재밌어보여서 꼭 해보려고 했었거든요!”

 

문형은 이런 실없는 새끼,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초면인 사이에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가 의도했건 안했건 덕분에 부담감을 상당히 떨쳐버릴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 이러다 외국어영역 놓치겠는데요?”

 

그 잠깐 사이에 그는 이미 시험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고 문형은 혼자만 덩그러니 운동장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같이 좀 가요!”

 

축구시합 덕분인지 다른 무엇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문형은 외국어 영역과 사회탐구 영역은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시험을 치루고 시험장 밖으로 나온 순간 밀려오는 가슴 답답함에 문형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수능을 망쳤다는 것을 말이다.

 

3.

눈을 떠보니 어느 샌가 문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수능 날의 꿈을 꾼 모양이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새벽 4시밖에 되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다지 다시 잠자리에 들고 싶지도 않았기에 문형은 집 근처의 산을 오를 생각을 했다. 집 밖으로 나오니 차디찬 새벽 공기에 숨을 내쉴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새벽 날씨를 만만히 보고 약간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온 것이 후회되었지만 문형은 그냥 이 차림 그대로 산에 오르기로 했다. 그리 높지 않은 동네 뒷산이었기에 정상까지는 금방이었다. 일출을 보고 싶었지만 아직 시간이 5시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형은 아쉬움을 남기고 산을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 순간 누군가가 문형이 올라왔던 등산로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자신 말고 이 시간에 산을 올라오는 이가 있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에 문형은 산을 내려가는 것을 미루기로 했다. 마침내 그가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왔고 문형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바로 수능 시험날 점심시간에 축구를 제안했던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이 우연에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문형은 그가 지금 이곳에 올라왔다는 사실이 그다지 의외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왠지 그라면 이런 시간에 등산을 하더라도 별로 특이한 일과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문형은 그가 자신을 알아보건 말건 먼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아! 안녕하세요?”

 

“누구……. 아 수능날에 그분? 네 안녕하세요?”

 

의외로 그는 문형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가 워낙 특이한 사람이었기에 기억했을 뿐이지 그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문형은 약간의 놀라움을 느꼈다.

 

“아, 저를 기억하시네요?”

“그쪽이 절 기억하시는데 제가 기억을 못할 이유는 없죠. 하하하.”

 

그의 말이 참으로 일리 있었기 때문에 문형은 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시간엔 웬일로 여기 올라오셨어요? 제가 매일 이 시간에 산에 오르는데 오늘 처음 뵙네요?”

 

문형의 예상대로 그는 매일 이 시간에 산을 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짐에 따라 문형은 자신이 그를 조금이나마 파악한 것 같다는 생각에 왠지 뿌듯해졌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랑 같은 열아홉?”

“아뇨 전 재수생이라 스무 살이에요.”

 

그렇다면 이 사람은 재수생임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에 축구를 제안했다는 말인가? 상당히 나사가 풀린 인간이었지만 문형은 그의 그런 면마저 매력이 있어 보였다.

 

“아……. 저보다 형이시네요. 말 놓으세요 형. 제 이름이 박문형이니까 박문형이라고 불러주세요.”

“아, 그럴까? 그래 난 이영호. 영호 형이라고 불러. 너도 그냥 말 놓고.”

 

영호는 조금도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금방 문형에게 말을 놓았다. 영호와 문형은 산 정상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형은 포기할 뻔 했던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점점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자니 문형은 문득 이제 집에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형이 집에 가자고 말하기 위해 영호를 바라보니 영호는 이미 산을 내려갈 준비를 끝마치고는 문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을 내려가는 내내 영호와 문형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은 조금의 지루함도 없이 산을 내려갈 수 있었다. 영호와 헤어지고 홀로 집으로 가는 길에 문형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들이 보았던 수능에 대해서는 조금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문형이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여니 마침 아버지와 어머니가 출근할 준비를 끝마치시고 현관 앞에 서 계셨다. 아들이 새벽까지 어딘가를 갔다가 왔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는 부모님. 문형은 즐거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것을 느꼈다. 형식적으로 부모님을 배웅하고 돌아온 문형의 방에선 썰렁한 냉기만이 느껴졌다.

 

4.

영호와 동네 뒷산에서 만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문형에게 영호에게서 술이나 마시자는 연락이 왔다. 고작 두 번 만난 사이에 그것도 미성년자에게 술을 마시자는 것이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생각은 영호에게는 없는 것이 분명했다. 영호와 만나기로 한 술집은 아직 만 18세인 문형이었지만 고3들은 봐주는 특이한 주인 덕분에 몇 번 친구들과 와 본적이 있는 술집이었다. 이미 영호는 술과 안주를 시켜놓고 문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형이 오기 전에 이미 술을 조금 마신 듯 영호의 얼굴은 약간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야아~ 우리 문형이 왔냐?”

“어 형, 벌써 마신거야?”

“어 그래 혼자 마시려다가 심심해서 너 불렀다.”

 

술이 조금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영호의 혀는 벌써 상당히 꼬여있었다.

 

“문형아, 너 대학은 어떻게 했냐? 어디 찔렀어?”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영호였다. 영호는 문형 스스로가 암묵적인 금기로 여겼던 대학이야기를 대화의 화두로 꺼냈다. 갑작스런 영호의 물음에 문형은 숨이 턱하니 막혀왔다. 영호가 대학이야기를 하는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응? 그건 왜?”

“아니 그냥 형 삼수하려고. 너는 어떤가 해서.”

영호형이 삼수라니, 문형은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재수를 해야 할 입장이 아닌가? 그런 입장에서 같이 수험공부를 할 동반자가 있다는 사실은 문형에게 적잖은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아……. 나도 사실 재수하려고.”

 

문형은 편한 마음으로 재수를 입에 담을 수가 있었다. 그래도 자신은 삼수는 아니지 않은가? 재수 결심을 말하는 상대가 삼수생이라는 사실은 한결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들은 영호는 크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뭐? 재수? 어휴 재수 그거 할 게 못되는데.”

 

‘삼수생이 할 말은 아니잖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문형은 그저 웃음으로 때웠다. 그리고 문형은 묻고 싶었던 것을 영호에게 물었다.

 

“형은 왜 삼수하려고 하는데?”

 

문형의 물음에 영호는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냥……. 뭐 집에서 SKY아니면 가지 말라하네? 웃기는 일이야.”

 

그놈의 SKY. 문형은 피식 웃음 지었다. 영호형 에게도 SKY의 굴레가 씌워져 있었단 말인가. 보아하니 영호형 역시 자신과 비슷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는 모양이었다. 동질감이 느껴졌다.

 

“우리 등산이나 갈래?”

 

한 병, 두병 계속해서 병을 비워가던 중에 영호가 뜬금없는 제안을 해왔다. 등산이라, 문형은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리고 술김에 그러마 하고 승낙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문형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이었다.

 

5.

눈을 떠보니 낯선 벽지가 보였다. 문형은 깨져올 듯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아무래도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자신을 영호가 이곳까지 끌고 온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니 이미 시간은 오후 12시에 가까웠다. 문형을 찾는 문자나 부재중 전화는 한통도 없었다. 멍하니 벽에 기대 있은 지 얼마나 됐을까 어울리지 않게 앞치마를 두른 영호가 방문을 열고 문형을 불렀다.

 

“야 밥 먹어!”

“풉!”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영호의 모습에 문형은 웃음을 터뜨렸다. 물이라도 마시고 있었다면 필시 뿜었을 것이다. 거실로 나온 문형은 떡하니 벌어지려는 입을 다물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영호의 방에서부터 짐작했어야 하는 일인데 정말이지 굉장히 으리으리한 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문형은 영호가 안쓰러워졌다. 이런 집에서 사는 부모라면 영호에게 거는 기대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것은 자신을 보기만 해도 충분히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놀랬냐? 빨리 속이나 풀자.”

 

식탁위에는 해장을 위한 북엇국과 각종 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이게 다 영호가 준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문형은 새삼 영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게 남자 둘이서 어색한 식사를 하던 도중 영호가 어제의 등산이야기를 꺼내었다.

 

“맞다. 등산은 어디로 갈래?”

 

순간 문형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술김에 승낙하긴 했지만 사실 문형은 등산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하지만 영호는 전혀 그렇지 않아보였다. 오히려 등산에 강한 의욕을 가진 듯 했다.

 

“진짜 가려고?”

 

문형은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며 말했지만 영호는 아랑곳 않고 하나하나 산을 꼽아보고 있었다.

 

“그래, 설악산이 좋겠다!”

“뭐? 설악산?”

 

동네 뒷산도 아니고 설악산이라니, 문형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 겨울의 설악산은 위험할 게 뻔하다. 아니 백퍼센트 위험하다. 어느 겨울 산이 위험하지 않단 말인가?

 

“아, 형. 설악산은 위험할 것 같은데…….”

 

하지만 영호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문형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정 그렇게 가기 싫으면 나랑도 끝이야 인마.”

 

농담조로 하는 말이라서 더 진심 같았기 때문에 문형은 그 협박 아닌 협박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저녁에 출발하자. 7시 터미널 콜?”

 

오늘 저녁에 출발하자는 영호의 추진력은 문형을 질리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자 영호는 얼른 등산 준비를 하라며 문형을 내쫒다싶이 하며 집 밖으로 내보냈다. 그 덕분에 문형은 완전 거지꼴로 길거리에 나앉아 행인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6.

약속한 시간이 되어 버스터미널로 나온 문형은 영호의 차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옷을 잔뜩 껴입은 것에 비해 영호는 척 보기에도 겨울 산을 오르기엔 부족한 차림이었다. 마치 얼어 죽지 못해 안달이 난 인간의 차림새였다. 문형이 물었다.

 

“형, 그거 춥지 않아? 얼어 죽을 것 같은데?”

 

하지만 영호는 문형의 물음에 대한 대답대신 씩 웃으며 버스표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버스시간 됐다. 가자.”

 

문형 일행이 버스를 타고 속초에 도착하니 시간은 이미 11시가 넘어있었다. 내일 있을 설악산 국립공원을 위해 하룻밤 묵을 곳으로 찜질방을 택했는데 여느 찜질방이 그렇듯 그들은 별다른 제재 없이 찜질방에서 묵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삭아보여서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다음날 설악산 국립공원행 버스를 타고 설악산에 도착한 문형은 눈앞에 까마득히 솟아있는, 그것도 눈으로 덮여있는 설악산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저걸 올라가야한다는 말이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설악산을 가리키는 문형을 보며 영호는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정상, 그러니까 대청봉까지는 올라가야지.”

 

그래도 내심 소청봉까지만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문형은 영호의 대답에 얼굴이 마구 짜낸 걸레마냥 구겨졌다. 반달곰 동상 뒤의 설악산이 앞으로 다가올 수난을 예고하는 듯 했다.

 

7.

문형의 예감은 정확했다. 눈으로 뒤덮인 설악산은 두 사람을 결코 반갑게 맞이해주지 않았다. 산의 초입에서는 그냥 등산화로도 그럭저럭 올라갈 만 했지만 해발고도 500m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일 즈음에는 아이젠을 신지 않으면 더 이상 산을 올라갈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문형은 이러다가 설악산에서 얼어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올라갔을까, 점점 다리에는 힘이 빠지고 몸은 얼어 움직이는 게 고통이 되자 문형은 이제 죽는다는 것이 의문이 아니라 확신이 되어갔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자신보다 훨씬 허술한 차림새를 하고도 자신보다 앞서가는 영호를 본 문형은 과연 무엇이 영호를 저렇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호가 설악산을 오르게 하는 것은 목표의식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집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의문도 잠시 또다시 눈길에 미끄러질 뻔한 문형은 산을 오르는 것에만 집중해야했다.

다른 것에는 정신을 팔 새도 없이 다리를 움직이는 것에만 집중하던 문형이 멈춰선 것은 이제껏 대피소에서 잠시 쉴 때를 제외하면 묵묵히 산을 올라가던 영호가 멈췄기 때문이었다.

 

“뭐야 형. 형도 인간이었네 대피소가 아닌 데서도 다 쉬고. 난 또 형이 차두리같은 사이보그 인줄 알았지.”

 

문형은 영호에게 다가가 실없는 농담을 던져보았지만 영호는 굳은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형? 왜 그래?”

 

문형이 영호를 툭 치며 다시 말을 걸자 그제야 영호는 입을 열었다.

 

“문형아 너 여기가 어디인줄 아냐?”

 

이제까지 헉헉거리며 올라오는 데에만 집중한 문형이 알 턱이 없었기 때문에 문형은 잠자코 있었다. 딱히 영호도 대답을 바라고 한 듯 한 말은 아니었는지 다시 말을 했다.

 

“여기가 바로 죽음의 계곡이야.”

 

순간 문형은 이미 얼어있는 몸에 또다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영호가 무슨 의미로 이곳에서 멈춰선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굴러 떨어지면 한참을 구르다가 천당폭포쯤에서 멈추겠지. 그럼 시체는 봄에나 발견되려나?”

 

문형은 오싹해졌다. 얼어 죽기 딱 좋은 차림새를 하고 설악산을 오른 영호 그리고 그가 죽음의 계곡에서 멈춰 섰다. 문형의 머릿속에서 한편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당황스러웠다. 용기를 내어 죽음의 계곡 아래를 바라보니 까마득한 높이에 현기증이 났다. 죽음이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형 설마…….”

 

문형이 추위에 굳어 잘 움직이지도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이며 말을 하자 그제야 영호가 피식 웃으며 말을 했다.

 

“설마는 무슨 설마야 인마. 설마 내가 여기서 뛰어내리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냐?”

 

영호는 문형의 자살 설을 부정했지만 문형은 영호의 굳은 표정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덕분에 문형은 남은 산길을 오르는 동안 영호를 감시하랴 산을 오르랴 하며 영호의 자살보다 자신의 과로사가 더 먼저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야 했다.

앞으로 대청봉까지 해발고도 50m 바로 앞에 중청대피소가 있었지만 문형도 영호도 이번에는 쉬어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영호가 말을 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쳐도 문형이 제안을 하지 않은 것은 왠지 이번에 쉬었다가는 정말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제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며, 와이어에 전신을 맡기며 산을 오른 문형은 드디어 대청봉 정상에 올랐다.

비석에 쓰인 ‘대청봉’ 이라는 글씨를 보는 순간 문형은 눈물이 핑 돌았다. 드디어 목적지까지 올라온 것이다. 대청봉 비석에 몸을 기대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자신이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저 멀리 겹겹이 서있는 산들을 보고 있자니 벅찬 감격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올랐다. 문형은 그런 와중에도 윤리과목에서 배운 맹자의 호연지기가 떠오르자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수험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조의 웃음을 지으며 툴툴거리던 문형이 고개를 들어 영호를 보니 영호 역시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과연 영호 형은 무슨 생각으로 이곳까지 올라오자고 한 것일까.’

물론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한 말이었다.

 

“이제 그만 내려갈까?”

 

정상에서 그리 오래 있지도 않았지만 벌써 냉동인간이 되어가던 문형은 그만 내려가자는 영호의 말이 구세주의 말로 들릴 지경이었다. 정상에서 내려와 중청대피소로 내려온 두 사람은 이부자리를 깔고 눕자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뜬 문형은 이미 먼저 일어나 하산준비를 하는 영호를 보며 기가 질렸다. 정말 영호가 사이보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오늘은 조금 덜 고생하겠지?”

“미안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하산이 더 위험하다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문형은 영호의 말에 내면의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듯 했다. 밖은 이미 안개가 잔뜩 껴있어 지옥문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우리 살아서 내려갈 수 있을까?”

“신이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수능을 내려줄 거라면 가능하겠지.”

 

문형은 ‘정말 시답잖은 농담이다.’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나올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로 참아내었다. 정말이지 죽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문형과 영호에게는 정말 다행이게도 대피소의 관리인이 두 사람을 다음 대피소까지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그의 호의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문형은 설마 다음대피소에서도 그곳의 관리인분께 그 다음 대피소에까지 안내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해발 1200m정도까지쯤 내려오자 두 사람끼리도 충분히 내려갈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문형과 영호는 산 아래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정말 문형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아스팔트를 밟고 있었다.’ 라는 말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마침내 밟은 아스팔트, 문형이 아스팔트에 입이라도 맞출 듯 한 기세였기 때문에 영호는 문형을 말리기 위해 진땀을 꽤나 쏟아야했다.

 

8.

“사실 정말 죽을 생각으로 간 거였어.”

“아아, 응 그럴 거 같더라고. 그런데 왜 안 죽었어?”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영호가 터미널에 도착해서야 입을 열었다. 물론 영호가 입을 다물고 있었는지 어쨌는지 서울로 오는 내내 잠에 곯아떨어져 있던 문형이 알 턱이 없었지만 말이다. 죽으려 했었다는 영호의 말에도 문형은 태연히 대답했다. 이미 영호에게 적응 되었다기 보다는 결국 영호는 죽지 않았으니 문형은 태연할 수 있었다.

 

“내가 너랑 같이 산에 올라갔다가 죽으면 네가 뭐가되겠냐? 그래서 안 죽었다 인마.”

“그러면 내가 형 생명의 은인이네? 어떻게 갚을 거야?”

“글쎄, 견마지로의 충성이라도 바칠까?”

 

이렇게 한결 편해진 표정의 영호와 문형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9.

설악산 등반 후 문형은 영호와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 수능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영호는 그 와중에도 디데이 200일, 100일, 50일 기념주다 하며 문형에게 술을 먹이더니 수능 D-38이 되는 날에는 ‘삼팔광땡주’라는 듣도 보도 못한 기념주를 먹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수능 예비소집일이 되었다.

 

“엥?”

“잉? 네가 왜 여기 있냐?”

“나 시험실이 여긴데…….”

 

문형은 정말이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배치된 시험장이 영호와 같은 시험장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교실마저 같았다. 아무리 엽기적인 인간인 영호라지만 수능 바로 전날 술을 먹이는 만행을 저지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의 수능 대박을 빌어주고는 헤어졌다.

 

마침내 수능, 시험장에 도착한 문형은 그 전날 확인한 영호의 자리가 아직까지도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영호니까 아직까지 그가 오지 않은 것도 그러려니 했던 문형은 입실금지시간이 다 되어도 영호가 오지 않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연락을 해 보려고 해도 마음을 비운다는 뜻에서 핸드폰을 집에 놔두고 왔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입실금지를 알리는 종이 울렸고 문형은 더 이상 영호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를 수능이 마침내 끝나고 문형은 시험을 치루는 동안 자신은 영호의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분명 수능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왠지 자신이 비인간적인 생물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 가장먼저 핸드폰을 확인한 문형은 영호에게서 멀티메일이 한통 와 있는 것을 확인했다.

 

「형 수능 안친다. 어디론가 떠나려고ㅋ. 당분간은 여행이나 다닐까 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거였거든. 소위 말하는 꿈이라는 거다. 에헴. 혹시 모르지 내 이름으로 된 여행 에세이 책이 나올지도?ㅋㅋㅋㅋㅋ……중략……. 사실 삼수를 결심하면서, 아니 집에게서 삼수를 강요받으면서 수능이라는 것에도, 집안에게도 염증을 느꼈거든. ……중략……. 학창시절에도, 재수를 할 때에도 수능이라는 것 때문에 친구들과 시기하고, 등 돌리는 게 너무 싫었고ㅋㅋ. ……중략……. 너를 만났을 때 너에게서 나랑 비슷한 느낌이 나더라, 너도 그랬냐? 그래서 너랑은 좀 어울리고 싶더라고 그래서 죽을 생각으로 간 설악산에까지 (지금 생각하면 죽으러 가는데 남을 데려가다니 무슨 생각이었는지 참, 사실 죽기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바보같이 너를 데려갔는데 내가 꾸역꾸역 혼자 산을 올라가도 악착같이 따라오는 너를 보면서 어쩐지 너를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주제넘은 참견이었을지 몰라도 네가 내가 느꼈던 그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더라고. 그래서 네 형처럼 좀 굴었다. 어땠냐?ㅋ ……중략…….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또다시 만나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몸 건강해라.」

 

 기나긴 장문의 편지였다. 과연 형은 형이었다. 자신은 수능이라는 녀석을 신경 쓰느라 영호를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영호는 일 년 전 처음 만났던 자신을 위해 이 일 년을 산 것이나 다름없었다. 꿈을 찾아 떠난 영호, 어른들은 철없는 혈기라고 하겠지만 문형에게 그만큼 멋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호는 문형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부모가 깔아놓은 레일을 달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문형이었다. 영호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그 사실이 문형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문형의 방바닥에 물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졌다.

 

“이 인간이, 누가 맘대로 형이래.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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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11포인트 그대로 가져와서 좀 포인트가 큽니다.

뭐 상관없겠죠.

작성자 본인이 말하니 웃기지만 마지막 오글거리네요.

유운
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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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운
  • 201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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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운
  • 201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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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운
  • 201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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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C.c.g님 ㅋㅋ 그러다가 외국어영역 보실때 졸면 어쩌시려구요 ㅋㅋㅋㅋ

    • 2011-01-18 17:30:4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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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cg

    나도 수능 때 공이나 들고 가볼까...

    • 2011-01-15 20:46:37
    c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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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집에 도착해 가장먼저 핸드폰을 확인한 문형은 영호에게서 멀티메일이 한통 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글은 제대로 읽으시고 덧글을 다시는건지 아니면 문자하실때 ㅋㅋ 하나 안치시는분인지 궁금하네요 ^^

    • 2011-01-14 19:13:2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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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저도 잘쓰는 사람이 아니지만, 문장에 ㅋㅋ같은 것들은 없는게 좋겠네요. 인터넷소설이 아니니까요^^

    • 2011-01-14 08:11:2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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