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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 작성자 갑상선
  • 작성일 2011-06-21
  • 조회수 456

선풍기

 

오래된 선풍기의 날엔 먼지가 가득 얹어져 있었다.

강풍 버튼을 누르자 화석처럼 굳어져 있던 것 같았던 선풍기가 아침잠을 막 깨고 난 뒤, 기지개를 피듯 아주 천천히,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왜 항상 이렇게 늦게 돌아가기 시작한 건지, 처음부터 빨리 돌아가면 좋을 텐데. 난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선풍기 가까이 댔다.

아아아아아-.

돌아가는 선풍기 날에다 대고 소리를 내니 마치 목에 진동기라도 삼킨 듯이 떠는 소리가 나왔다. 그런 소리가 신기하면서도 뭔가 이질적인 게 맘에 들었지만 금세 다시 선풍기에서 고개를 뗐다. 왠지 한심한 짓이란 생각도 들었고 선풍기 날에 많이 얹어져 있던 그 먼지들이 내 목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고개를 선풍기에서 떼긴 뗐지만, 그래도 선풍기를 내 바로 앞에 둔 채 고정을 시켰다. 선풍기의 미지근한 바람이 내 땀들을 천천히 식혀주었다. 한동안 눈을 감고 그렇게 바람을 쐬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풍기의 바람이 옆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회전을 누른 것이었다. 재빨리 눈을 뜨곤 고개를 들자 엄마가 내게 땅콩을 날렸다.

“야임마, 집에 너 혼자 있냐? 회전을 해 놔야 집안이 다 시원해질 거 아니여.”

갑작스런 땅콩에 난 짜증을 내며 말했다.

“선풍기 하나 회전해놓는다고 방 안이 어떻게 다 시원해진다는 거야.”

하지만 엄마는 내 짜증에 별 신경도 쓰지 않으며 말했다.

“그러고 있지 말고 요 앞 마트에 가서 모기약 좀 사와라. 남은 돈으로 용돈 좀 하고.”

그러면서 엄마가 내민 건 만원이었다. 아싸, 좋구나. 난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자정이 거의 다 되어가는 밤하늘은 매우 깜깜했다. 별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구름에 가려 흐릿해진 달빛 아래로 수많은 날파리가 윙윙거리는 가로등만이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마트는 집 앞에 있어 금방 도착할 수 있었지만 자그만 집들 사이사이로 난 으스스한 골목들을 관통해서 가야했기에 마음이 썩 좋진 않았다. 다른 여타 골목들이 그렇듯이 그 골목길 또한 다른 여러 골목들로 향하는 샛길들이 여럿 존재했다. 마치 거미줄처럼 연결된 그 샛길들은 낮엔 이용하기 편했지만 가로등 불빛이 다 비춰지지 않는 밤엔 그런 샛길의 어둠이 굉장히 으스스했다. 난 그 샛길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트로 향했다.

집 근처에 있는 마트는 이제 슬슬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트 안에 들어가 보니 어느새 시계의 긴 바늘과 작은 바늘 모두 12를 가리키고 있었다. 난 우선 모기약을 아무거나 대충 집어 들곤 콜라 1.5L짜리와 구구콘과 함께 계산했다. 구구콘을 핥으면서 나와 보니 그 잠깐 사이에 달빛이 더욱 흐려져 아까보다 더 어두워 보였다. 난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골목길로 들어섰다. 가로등 빛이 비치지 않는 샛길은 여전히 으스스 했기에 난 그 곳을 안 보고 지나가려 애썼다. 그 순간이었다.

악!

단발의 비명소리. 빛이 닿지 않아 어두컴컴한 좁은 샛길에서 한 남성의 굵고 짧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긴 했지만 함부로 그 샛길을 바라보진 못했다. 난 천천히, 왠지 모를 두려움을 숨긴 채 그 샛길을 살짝 훔쳐봤다. 빛이 비치지 않아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 길엔 웬 사내 2명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두 남자의 외곽만 얼핏 보일 뿐이지, 그 두 남자의 얼굴이나 옷차림도 잘 보이지 않았다. 두 남자 중 한 명은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서 있던 남자가 뭐라고 말을 중얼거렸지만 그 소리가 너무 작아 정확하게 들리진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말하던 남자는 갑자기 홱 돌더니 내 반대방향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짙은 어둠 속에서 쓰러져 있던 남자가 꿈틀대는 게 보였다. 그게 발작을 일으킨 건지, 아님 그냥 뒤척인 건지 나로썬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렇게 뒤척이던 남자의 움직임이 멈췄을 때, 난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는 걸 느꼈다. 여전히 그 사람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내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걸 깨닫는 순간, 난 본능적으로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다른 생각이 나를 막아섰다. 저 길 끝에 서있던 남자가 아직도 남아 있으면 어떻게 하지? 그 생각은 나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서있던 남자가 비록 내 시야에선 사라졌지만 저 샛길 끝 어딘가에 숨어있을 가능성도 충분해 보였다. 이쪽에선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난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난 한동안 그 샛길의 어둠속을 바라봤고 그 어둠 속에서 쓰러진 남자는 몇 번 꿈틀댈 뿐이었다. 그리고 난 돌아섰다.

그리곤 집을 향해 달렸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집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엄마는 방안에서 잠을 자고 계셨고, 텅 빈 거실에 선풍기 하나만이 홀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선풍기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너무 갑작스런 일이기에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천천히 회전하는 선풍기 앞에서 차근차근 생각해보았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좁다란 샛길, 한 사내가 들고 있던 날카로운 물체, 그리고 쓰러진 채 꿈틀대던 또 다른 한 사내,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나, 도망쳤던 나.

아, 내가 어쩌자고 그랬을까? 그 남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가? 근데 난 왜…….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이 밀려왔다. 내가 그 상황을 보고도 그냥 방관했단 말인가, 내가 그 자리에서 도망쳤단 말인가? 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선풍기의 미지근한 바람이 계속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내진 못했다. 심장은 쿵쾅거렸고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갑자기 밀려오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뇌리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그 상황은 내가 함부로 나설 수 없던 상황이 아닌가? 만약, 그 상황에서 함부로 나섰다가 그 어두운 길 끝에 사내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면? 그래, 난 현명한 선택을 했다. 그 때 나서는 것보단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경찰에 전화를 해야겠지. 그래, 경찰에 전화를……, 아냐 아니야. 만약 경찰들이 내게 왜 이렇게 늦게 신고했냐고 하면 난 뭐라고 하지? 아니다, 역시 경찰에 신고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괜한 일에 참견하진 말자고. 신고했다간 난 그 사건의 목격자가 되선 온갖 귀찮을 일들을 다 처리해야하니까. 난 범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내가 유일한 목격자이니 어쩌면 내가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을 수도……. 역시 참는 게 좋은 생각인 것 같아. 그럼, 그 남자는 어떻게 하지? 쓰러져 있던 그 남자. 근데 그 남자가 정말 칼에 맞아 쓰러진 게 확실한가? 어쩌면 그냥 바닥에서 자고 있던 술주정뱅이일 가능성도 있지. 비명소리가 들리긴 한 걸로 봐선 그 사내가 남자를 밟고 지나간 걸까? 아님 사내가 남자를 단지 주먹으로 몇 대 때렸을 뿐일지도 몰라. 그래,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곳에서 살인이라니, 말도 안 돼. 나도 참, 이런 걸로 고민하고 있었다니, 그래 잊자. 잊어버리자고, 어차피 별 일도 아닐 텐데, 뭘.

난 그렇게 긴 생각으로 치솟는 불안함을 애써 잠재웠다. 내 얼굴 바로 앞에 있던 선풍기는 여전히 미지근한 바람을 뱉어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난 그 먼지 낀 선풍기 날이 돌아가는 걸 유심히 살펴봤다. 회전이 눌러진 선풍기는 마치 천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야, 아니야,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넌 너 자신을 속이고 있어, 아니야, 아니야.”

선풍기가 고개를 흔들며 그렇게 내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난 더 이상 선풍기를 바라보지 않고 그냥 선풍기 코드를 빼버렸다.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며 돌아가던 선풍기는 서서히 느려졌고 선풍기 날에 낀 먼지가 하나 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선풍기는 다시 화석처럼 굳어졌다. 그렇게 굳어졌다.

 

 

갑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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