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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은

  • 작성자 naR
  • 작성일 2012-09-12
  • 조회수 128

 김은 스미는 냉기에 옷깃을 다시 여민다. 혹 빠트린 부분이 있을까 다시 한번 잘 살핀 뒤 수건을 내려놓는다. 미리 준비해둔 삼베옷을 들고, 후배와 함께 조심조심 팔과 다리를 들어 옷을 입힌다. 옷고름을 매고 버선까지 신긴 뒤, 화장 가방을 열고 도구를 꺼낸다. 고개를 들던 그의 눈길이 유리창 너머 눈물 섞인 시선과 얽힌다. 말없이 묵례하고 다시 고인(故人)에게 몸을 향한다.


 ‘당신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지.’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김은 순간 몸을 흠칫한다. 고인과 유족에게 무례한 생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김은 미묘한 승리감을 지우지 못한다.


 고인은 마흔여덟 살, 김과 같은 나이였다. 마음이 뒤숭숭해지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이십여 년간 장례지도사 일을 하는 동안 김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접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가난한 사람부터 부유한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그러는 동안 죽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죽은 이들보다 한발 앞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선배?”


 상념이 길었는지 후배가 작은 목소리로 김을 불렀다. 김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손에 익은 화장 도구를 집어 든다. 김은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과 고요히 눈감은 얼굴을 번갈아 본다. 색이 변한 피부 톤을 최대한 생전에 가깝도록 다듬어주고 혈색이 도는 듯 보이게 터치를 더해준다. 죽었다기보다 편안히 잠든 듯 보일 수 있도록, 손길 하나하나 정성을 담는다. 사자(死者)의 마지막 얼굴을 꾸민다. 김이 은은한 향의 향수로 화장을 끝내자, 후배는 유족들이 들어올 수 있게 문을 열어준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일렁이며 들어온다.


 넓다고는 할 수 없는 염습실 가득 울음소리가 찬다. 애써 억누르려는 사람도, 목 놓아 우는 사람도, 누구 하나 슬픈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슬픔에 함몰된 사람들 틈에서 상주 완장을 두른 청년이 김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청년은 떨림을 감추려는 듯 일부러 더욱 힘을 주어 김의 손을 잡는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늘, 사람들 앞에 나설 때는 꼭 정갈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이런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면 아버지께서도……아버지께서도…….”


 그는 결국 말을 맺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김은 빈손을 들어 두 손으로 그의 손을 감싸 쥔다.


 “저는 아버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 가족들에게 이토록 사랑을 받으신 분이라면, 분명 좋은 분이셨을 듯합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이 평안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청년은 다시 제 아버지 곁으로 가 무어라 말을 건다. 다른 사람들도 제각기 고인과 인사를 나눈다. 미망인과 고인의 아들딸을 바라보며, 김은 습관처럼 왼손 약지를 만진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법원을 나선 게 벌써 5년이 지난 일인데도 왼손 약지의 허전함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아내와 함께 캐나다로 떠나버린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려본다.


 김은 후배와 함께 유족들을 다독이며 반함과 입관을 돕는다. 성복제를 마치고 본격적인 조문이 시작된다. 쏟아지는 조문객들에, 경황없는 상주를 돕는 김과 후배는 쉴 틈이 없다. 몇 시간 후, 속속 찾아드는 문상객들에 상주도 제법 익숙해졌다고 느껴질 즈음에야 김은 후배에게 속삭인다.


 “잠시, 화장실 좀.”


 고개를 끄덕이는 후배를 뒤로하고 김은 화장실로 간다. 참았던 요의를 달래고 빈소로 돌아오는데 화환 세 개가 그를 따라온다. 화환은 빈소 앞까지 그와 함께 와서는 이미 늘어선 화환들 옆에 나란히 자리 잡는다. 무슨 동창회, 무슨 산악회, 무슨 회사, 무슨 동호회……. 김은 잠시 멈춰 서 다양한 사람들이 보낸 화환을 살핀다.


 “살아생전에 적적하게 지내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혼자 중얼거리며, 김은 자신의 빈소에 올 화환을 꼽아본다.


 ‘○○상조, 동창회, 그리고…그리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는 표정을 가다듬고 유족들 쪽으로 걸어간다. 화환의 개수가 무색하지 않게, 유족과 슬픔을 나누려 찾아오는 조문객은 줄어들 줄을 모른다. 김은 또다시 왼손 약지를 어루만진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집사람, 아니, 전처와 아이들은 돌아올까?’ 


 몸에 밴 익숙함으로 바쁘게 접객을 돕는 와중에도, 김의 머릿속에서는 가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화환은 몇 개나 올까?’

 ‘내가 지금 죽는다면, 누가 상주가 되지?’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내가 지금 죽는다면…….’



 밤이 깊어서야 김은 집으로 돌아온다. 피곤한 몸을 씻고 자리에 누우려다, 돌연 한 쪽에 놓인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춰본다. 피로한 얼굴 위로 죽은 동갑내기의 얼굴이 겹친다. 동갑내기를 에워싼 사람들이 비친다. 죽은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김은 혼자다. 김은 눈을 크게 끔뻑인다. 거울 속에는 여전히 죽은 이의 얼굴이 있다. 아니, 그것은 김 자신의 얼굴이다. 죽은 이와 다를 바 없는 얼굴이다. 아니, 그보다 못하다. 화장을 마친 동갑내기는 살아 있는 듯 보였지만 살아 있는 김은 죽은 듯 보였다. 김은 덜컥 두려워져 화장품을 가져온다. 피부 톤을 다듬어주고, 혈색이 도는 듯 보이도록 터치를 가미한다. 죽은 이를 매만지던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꾸민다. 떨리는 손으로 화장을 끝내고, 다시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에 있던 동갑내기의 얼굴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은 그 얼굴을 몰아내려 거울을 향해 말한다. 거울 속 입도 함께 움직인다.


 “당신은 죽었고, 나는 살아 있어.”

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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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떠나기 전, 마지막 오 분

 채소를 다듬던 노인이 문득 시계를 올려다본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칼을 내려놓는다. 짙은 블랙커피를 탄다.  노인은 갯벌 근처 외딴 집에 홀로 살았다. 아내는 오래전에 죽었고 아들은 도시로 떠나 가끔 돈을 부탁하는 전화를 할 뿐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매일같이 손님을 맞이하고 배웅했다. 그 손님은 시커먼 갯벌 저 너머에서 넘실거리며 찾아왔다. 한참을 머물다 또다시 갯벌 너머로 뒷걸음질쳤다. 매일 썰물과 밀물 때를 맞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바다만이 노인을 찾아주는 유일한 방문객이었다. 노인의 집은 바다의 움직임에 따라 바닷가였다가 아니기를 반복했다. 노인은 매일 썰물과 밀물 때를 맞춰 베란다로 나갔다. 예상 시간보다 오 분 십 분 정도 일찍 나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노라면 저 멀리 지평선이 수평선으로 바뀌거나 수평선이 지평선으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인은 날마다 자신을 찾아와 머물렀다 가는 바다를 십 년이 넘도록 웃음으로 맞이하고 배웅했다.  베란다로 나가려다 말고, 노인은 싱크대 옆 첫 번째 서랍을 연다. 젊은 시절부터 한 푼 두 푼 모아온 통장들을 망설이듯 바라보다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다. 한숨을 내쉬며, 노인은 커피잔을 들고 베란다로 향한다. 언제나처럼 바다를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이 오늘따라 약간 어둡다. 실은 어제저녁 또 아들의 전화가 왔다. 아들은 언제나처럼 돈을 부탁했고 노인은 처음으로 아들의 부탁을 거절했다. 아들은 애원하고 설득하다 마침내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이젠 그런 전화까지도 오지 않을 테지."  어제의 통화를 떠올리며, 노인은 낮게 중얼거린다. 우울한 마음속에서, 언제까지나 아들의 응석을 받아주기만 하는 것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아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일 것이라고, 그러니 이런 충격 요법도 한 번쯤은 필요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노인은 시계를 확인한다. 앞으로 십 분 남았다. 바다는 아직 평소와 다름없지만 노인이 보기에는 바다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늘 겪는 일인데도 오늘따라 노인은 더욱 짙은 아쉬움을 담아 난간에 기대어 선다.   "네가 가면, 나는 또 혼자 남겠구나."  철썩, 약한 파도만 노인의 혼잣말에 대답한다.  그때, 노인의 귀에 웬 소리가 들린다.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문은 분명 닫혀 있었고, 노인 외에 이 집의 열쇠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아버지, 안에 계세요?"  조금도 기대치 못했던 목소리. 설마 하던 노인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가라앉히고 외친다.  "베란다로 오너라!"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 온다. 노인은 아들과 마주 앉아 바다를 배웅할 생각에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곧 아들이 노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만이구나."  "아버지, 그간 잘 계셨어요?"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긴 시간만의 재회에 노인은 할

  • naR
  • 201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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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R
  • 2012-05-27
새가 날아오른 자리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한 마리 새가 날아온다. 새는 창밖 나뭇가지로 날아와 앉는다. 텅 빈 나뭇가지가 채워진다. 새는 노래한다. 나무를 위해. * * *  우연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의 포장마차였다. 그곳은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나는 그곳에 맥없이 무너져 내려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혀를 끌끌 차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였다. 내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그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빈자리가 없어서. 방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게 다였다. 그는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바로 맞은편에 앉아 마스카라가 번지도록 울고 있는 여인에게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표정없이, 거의 기계적으로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 잔을 기울였다. 우리는 그렇게 마주 앉아 서로 홀로 술을 마셨다.  먼저 일어선 것은 그였다.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으면서도, 그는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로 자리를 떠났다. 나는 왜인지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또다시 그 포장마차를 찾았다. 가만히 술을 마셨다. 다시 그가 나타났다. 빈 테이블이 있었지만 그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는 잠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또다시 홀로 술을 마셨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밤 아홉 시,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홀로 술을 마셨다.  그가 입을 연 것은 일곱째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다, 그는 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차였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저도요.」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웃었다. 그 날, 나는 그의 집으로 갔다. 우리는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 * *  하룻밤은 길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충분한 길이였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3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그는 제대와 함께 이별을 통보 받았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다. 많은 술병이 비었다. 아침이 되어 나는 말없이 그의 집을 나섰다. 그날 밤 아홉시, 나는 대학로로 나갔다. 그는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다. 그날 우리는 함께 걸었다. 우리는 그 뒤로 포장마차를 찾지 않았다. * * *  그는 과묵한 사람이었다. 나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우리는 주로 말없이 걸었다. 다른 연인들처럼 함께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지만, 대화는 별로 오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았다. 우리는 말없이 소통했다. 우리는 그저 함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나는 그가 있어 행복했고 그는 내가 있어 행복했다.  그는 간혹 우리 집에 왔다. 집에서, 우리는 함께 술을 마셨다. 그때만큼은 두 사람 다 약속이나 한 듯 말수가 늘었다. 많이 말하고, 많이 웃었다. 처음 그의 집에 갔던 날처럼. *

  • naR
  • 201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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