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

 고개를 들었다. 오후에 나른한 햇살이 창틈으로 비치고 있다. 잠시 엎드려 있는 사이에 깜박 졸았나 보다. 의자에서 몸을 조금 틀었다. 창가 쪽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주변은 고요했다. 모두들 점심 먹으러 나가서 나혼자만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 했지만 배가 아파 혼자 교실에 남아있기로 했었다. 한숨 더 잘까? 나는 뭐 할거 없는지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나와 같이 점심을 안먹고 있는 애를 발견했다. 미라였다. 미라는 교실 뒤 큰 거울에 손을 대고 멍하게 거울을 바라보고 았었다. 꼴에 자애적인 성향이라도 있는 걸까?
 미라는 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어째서 인지 우리반 일진들 한테 괴롭힘을 당하곤 했고. 그런 미라의 상황을 우리는 못 본척 하며 넘어가곤 했다. 미라가 어디가 모자라거나 이상한 점이 있는건 아니였다.. 때문에 조별 활동을 할때나 어떤 도움을 받을 때는 조용히 끼여서 자기 할 몫을 다하곤 했다. 물론 같은 짝이 될 사람을 구한다면 말이다.
 나는 미라 한테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일진들도 다른 애들도 아무도 없고, 마침 심심하기도 했다.
 "뭐해?"
 미라한테 사뿐히 다가가 물었다. 방해 안되게 덤덤히 묻는다 했는데 미라는 화들짝 놀랐다.
 "왜 거울을 뚫어져라 보고 있어?"
 내가 재차 물었다. 미라는 조금 당황하는 듯 했다. 아마 이유를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하는 눈치다. 그래서 조금 닥달 해봤다.
 "무시하는 거야?"
 "거,거울"
 공격적인 말에 미라는 급히 대답했다.
 "거울속에 있는 다른 공간말이야."
 공간? 거울속에? 무슨 소리지?
 "거울속에 들어 갈 수 있을 까 해서."
 거울속에 들어가? 나는 잠시 거울에 눈길을 줬다. 거울에 미라와 나, 그뒤로 텅텅빈 교실이 비추고 있었다. 미라는 거울에 비치는 교실을 보고 또다른 공간이라 말하는 걸까. 나는 다시 미라를 쳐다봤다. 미라는 자기가 말하고도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이 몹시 재밋게 느껴졌다.
 "어떻게 들어가는데?"
 내가 물었다. 그러자 미라가 멍하니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 보았다. 아마 맞장구 쳐줄거란 생각은 못했나 보다. 미라는 다시 안절부절 하다 거울에 손을 짚고 말했다.
 "여,여기 거울속에 내가 막지 않고 비켜 줄 때."
 미라의 손을 따라 거울을 봤다. 거울에 비친 미라가 진짜 미라랑 똑같이 손을 뻗어 서로 손을 포개고 있는 모양이 되었다.
 "그러니까 거울속에 내가 이렇게 막는단 말이지?"
 나도 따라 손을 거울에 댔다. 역시나 거울 속에 나도 따라 손을 대어 막았다. 그와 동시에 미라는 거울에서 손을 때고 내 눈치를 살폈다. 미라가 되게 재밋는 아이로 여겨졌다. 나도 손울 땟다. 시계를 보니 곧 있음 다른 애들이 하나, 둘 들어올 시간이다. 슬슬 빠질까 생각 했지만 이 모처럼에 이상한 대화를 끝내긴 아쉬웠다.
 "너 있잖아. 내번호 모르지?"
 "응?"
 "7523에 ○○○○야 기억해둬. 저녁쯤에 문자 할테니까. 괜찮으면 이 얘기 계속 나누자."
 마을 마친 나는 미라를 제치고 뒷문 쪽으로 갔다. 곧 있으면 애들이 와서 곤란해진다. 일단 교실을 벗어나기로 했다.
 "저,저기"
 막 뒷문을 열었을 때다. 미라가 날 불러 세웠다.
 "내 번호는..."
 "알아"
 급했기에 미라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비상연락막에 다 적혀 있잖아."
 그리고는 교실을 나왔다. 아직 애들은 안다니는게 골치아프게 엮일 일은 없을 것 가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 까지 도서관에 있어야겠다. 나는 바쁜 걸음으로 빠르게 교실로 부터 멀어졌다. 비상연락망은 종례시간 때 봐두면 될것이다. 문자는 저녁을 먹고 나서 보내야 겠다. 답장이 올지 걱정 되기도 하지만 자기 번호를 가르쳐 주려 했으니 승낙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평소 말 섞을 일 없던 미라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대 됐다.
 나는 몸을 씻고 침대위에 털석 앉아 머리를 말렸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쯤 미라랑 문자를 주고 받을 예정인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비상연락망에 미라 전화번호가 안적혀 있던 것이다. 분명히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다고 까지 했으니 휴대폰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가기 전에 미라에게 물어봐도 됐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러진 못했다. 그런데 왜 미라 번호만 공백이였을까. 하여튼 그 때문에 밥 먹고 나서 할게 없어졌다. 기껐 전화 한다고 호언장담 해놓곤 이모양 이라니. 어쩌면 내가 그 일진들 처럼 자기를 놀려먹은 거라고 생각 할 지도 모랐다. 괜히 얘기나눠 보겠다고 일을 벌려서 내 이미지만 나빠졌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씻어 내려고 샤워를 했다. 생각 해 보니 미라는 그런 일을 떠벌릴 곳이 없다. 미라한테야 미안 하지만 내 양심을 제외하곤 심각한 피해는 없을 듯 하다.
 머리를 다말리고 컴터 앞에 앉았다. 기분도 심란한데 게임이나 하면서 풀어야 겠다. 총으로 적들 몇명씩 쏴 죽이다 보면 양심도 조금 무뎌지지 않을까? 그럴리가. 나는 컴퓨터가 켜지는 사이 휴대폰을 살펴봤다.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와있었다. 씻고 있을 때 온 거 같다.

 - 저녁쯤에 문자 한다고 했는데 아마 내 번호 모를 것 같아서 내가 보내 봤어. 비상연락망 적어 낼때 난 안냈거든.

 미라다. 나는 미라인지 묻는 확인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그렇다고 답장이 왔다. 나는 미라의 전화 번호를 저장 했다. 그리고 묻고 싶었던 말을 적어 답장을 보냈다.

 - 너 책 읽는 거 좋아하지? 상상력이 남달라 보이던데?
 - 가끔 틈틈이 시간 날때마다 읽는 편이야. 그리고 그 얘기는 그냥 잊어줘. 그냥 헛소리니깐.
 - 아냐 상당히 흥미로웠어 ㅋㅋ 거울 속에 들어 갈수 있는데 그럴 때 마다 거울 속에 내가 막는 다는거. 재밋는 발상 아냐?
 - 그런가? ㅎㅎ
 
 미라가 초성을 이용해서 답장을 보냈다. 평소 이미지랑 엇갈려서 그 또한 재밋게 느껴졌다.

 - 재밋지. 거울은 내가 한 행동을 따라하니깐. 어쩌면 내가 안에 들어가고 싶으면 거울 속에 나도 밖으로 나오고 싶어서 서로 지나 가려다 못 나가는 거 아냐?  ㅋㅋ
 - 아냐. 양 쪽 모두가 같은 행동 같은 생각을 한다 해도 같은 인생 일리는 없어. 어느 한 쪽이 나가고 싶으면 어느  한쪽은 막는거야. 서로가 제자리에 있어야 자기 삶이 안정 되니깐.

 미라가 갑자기 진지한 투로 나왔다. 태도로 보아 단순한 상상 따위가 아닌 듯 했다. 생각을 뒤틀어 자기만에 세계에 빠져 있기라도 한건가. 미라가 생각하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 나도 한번 그 세계에 발을 들여 보기로 했다. 좀더 미라의 대답을 꺼집어 내기 위해 적당히 장단을 맞춰줄 필요도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조금 진지해지기로 했다.

 -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거울 속 세계로 갈 수 있을까?
 - 글쎄. 거울속에 내가 나를 받아 줄 때가 아닐까?
 - 그럴 때가 언제인데?
 - 그거야 그쪽 마음이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뭐야 싱겁긴. 상상력이 조금 모자랐나. 그때 재차 답장이 왔다.

 -그래도 내가 힘들 때 간절히 원하면 들여 보내 줄 거라고 믿어.

 미라는 마치 모든게 진짜 인 것 처럼 답장을 썻다. 그런 점이 재밋었다. 나는 밤 늦게 까지 미라와 환상속에(아마 미라한테는 진실인) 얘기를 나누었다.
 점심시간 나는 일부러 도서관에 들른다고 밥을 같이 먹자던 애들을 때어 냈다. 도서관에 들러서 몇권의 책을 빌린 다음 일부러 빨리 나왔다. 교실에 돌아와 보니 예상대로 미라 혼자 있었다. 교실 문을 열었다. 소리 때문에 미라가 이쪽으로 돌아봤다.
 "미라 안녕. 오늘도 거울을 보고 있네?"
 내가 간단하게 인사했다.
 "오늘도 거울 속 너는 비켜줄 생각이 없는거야?"
 "그런가봐."
 미라가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거울에서 떨어졌다. 쑥스러운가보다.
 "책 읽는 거 좋아한다며? 너도 교실에서 죽치고 있지 말고 도서관에 들러보는 게 어때? 요즘 신권 많이 나왔다고."
 내가 책을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확실히 교실에 혼자 남아 있는 것 보단 도서실에서 책을 구경 하는 게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싫어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많은 데는 싫어."
 미라가 대답했다. 하긴, 다른 학교 도서관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우리 학교 도서관은 책을 보러 오는 것 뿐 아니라 조용히 대화 나눌 장소라던가 쉬러 오는 장소로도 쓰여서 사람들이 꽤 북적됐다.
 "사람 많은 데도 가고 좀 성격을 개방 해야 친구도 생기고 그렇지 않겠어?"
 내가 책상에 앉으며 말했다. 가지고 온 책을 폈다.
 "거울 세계가 언제 들여줄지도 모르는데. 거기 너무 목메지 말아."
 나는 펼친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가끔 미라 쪽을 쳐다봤는데 미라는 이제 거울을 보고 있지 않았다. 미라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책을 꺼내 읽고 있었다. 도서관에 가기 싫다더니 집에 있는 책 몇권을 들고 다니나 보다.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책을 마저 읽었다. 오늘 저녁에 문자로 무슨 책을 읽는 지나 물어 볼까 한다.
 점심을 안 먹기 시작 한 지 3일 째가 지났다. 그동안 문자로나 점심시간마다 나눈 대화로 미라랑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미라가 어제 추천 해준 책을 빌렸다. 어제 저녁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 서 추천 받은 책이다. 주위에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없어서 항상 혼자 찾아서 책을 읽곤 했는데 처음으로 추천받은 책이라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빨리 읽어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교실 문앞에 다다랐을 때다. 무언가 나를 멈칫 하게 했다. 문에 달린 창으로 안이 비쳤는데, 일진들이 미라를 둘러 싸고 있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왠일인지 다시 시작 했나 보다. 미라를 도와 줘야 된다. 하지만 떠오르는 생각과는 반대로 나는 교실 문도 열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일진들이 미라한테 뭐라 말하는 가 싶더니 발로 차서 미라를 넘어뜨렸다. 엮이고 싶지 않다. 어느 때 보다 도움이 필요 할 것 같은 그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일진 하나랑 눈이 마주쳤다. 나는 침착하게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빌렸던 책을 책상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교실 밖으로 향했다. 그러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살짝 고개를 돌려서 일진 패거리를 봤다. 미라의 상황만 어떻게 되어가는지 곁눈질로 살짝만 보려 했는데 그만 미라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상훈아!"
 미라가 나지막이 소리 쳤다. 나는 반사 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일진 패거리 중 하나가 나를 불렀다.
 "너 얘랑 친하지?"
 "아니. 같은 반인 정도 밖에..."
 나는 재빨리 얼버무리고 교실을 나왔다. 괜찮을까? 살짝 마주쳤지만 미라의 눈은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교실을 나와 도서관으로 향했다. 엮이고 싶지 않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 지 않은가? 나에겐 이미 친한 친구들이 몇명 씩이나 있다. 그런데 미라를 위해 위험을 감수할 메리트는 없다. 책도 혼자서 여태까지 잘 골라 봤다. 엮이고 싶지 않다. 문자 몇번 주고 받는 것은 친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미라도 여태껏 혼자 잘 해왔으니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 할 것이다. 나는 무엇에 쫏기 듯 도서관을 향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쳤을 때 나는 비로소 교실로 돌아왔다. 곁눈질로 미라 자리를 보았다. 미라는 자기 자리에 고개를 숙인채 앉아 있었다. 5교시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문자를 보내 보기도 했다. 그러나 폰을 들고 다니지 않는지 미라는 반응 없이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런 미라를 보며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쉬는 시간 종이 쳤다. 애들이 화장실에 가거나 떨어져 앉은 친구와 대화 하기 위해 이리저리 흩어졌다. 미라도 일어서서 교실 뒤 거울을 향해 갔다. 쉬는 시간에 미라가 거울을 보는 건 오늘 처음 보는 일이였다. 미라가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울 속에 미라도 손을 뻣어 막았다. 미라가 손을 거뒀다. 이윽고 주먹으로 거울을 내리쳤다. 거울속에 미라도 똑같이 주먹을 쥐고 미라의 주먹을 막았다. 그 소리에 몇몇 아이들의 시선이 미라를 향햤다. 그리고는 곧 수근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라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듯 미동도 없었다. 미라가 고개를 숙이고 거울에 기댔다. 미라의 입이 웅얼 거렸다. 마치 거울에 대고 무언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튿날 미라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못 나온다고 했다. 어제 저녁. 안부 문자를 계속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 미라가 어디 사는 지도 모른다. 미라는 나의 세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미라는 어디 갔을까. 어쩌면 미라는 거울 속 자신 만에 세계로 들어 갔는 지도 모르겠다. 누가 미라를 거울 속으로 내몬 것일까.
 점심시간 나는 일진 패거리 한테 불려갔다. 그들은 갑자기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너 미라랑 친했지?  점심시간 마다 얘기 나누고 같이 책도 읽고 그런다던데."
 지켜보던 우리반 일진이 말했다. 패거리의 구타가 더 심해졌다.  나는 몸을 최대한 말아서 방어했다.
 "야, 너 때문에 미라가 안나오잖아. 왜 친구가 부르는 말을 무시해서 우리 귀여운 미라가 학교를 안오게 만드는 거야? 어?"
 미라가 안나오기 시작한건 정말 나 때문일까. 갑자기 몸 안에서 부터 더 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방어 하던 몸을 폈다. 패거리들의 주먹과 발길질을 온몸으로 받았다. 무진장 아팠다. 하지만 그럴 수록 내마음의 고통은 비교적 수그러 들어갔다. 지켜보던 일진이 내 얼굴에 침을 뱉고 말했다.
 "앞으로 미라가 안 나오면 다음 샌드백은 너다. 알아 들었냐?"
 그날 저녁, 여전히 미라로 부터 답장은 없다. 나는 몸을 씻기 위해 욕실에 들어갔다. 욕실 거울로 부터 비친 내 몸이 온통 멍 투성이였다. 미라 생각이 났다.  미라도 맨날 이런 식에 삶을 살았을까. 시간을 되도릴 수 있다면 이번엔 미라를 구할 것이다. 미라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나는 거울을 향해 손을 뻣었다. 그러나 거울 속에 멍든 나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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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게 재밋어서 지난 글에 문제점도 파악 못한채 또 써버렸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