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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 작성자 파란색스머프
  • 작성일 2014-12-25
  • 조회수 425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를 때마다 입에서 하얀 김이 퍼져 나왔다. 창피한 건 둘째 치고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이러다 기타 줄에 손가락이 베이는 건 아닐까 싶었다. 부르는 사람은 얼어 죽을 것 같은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흐뭇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어거지로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기까지는 참을 만했다. 내 한 몸 희생해서 호객행위를 하면 가게 매상도 늘고 내 월급도 늘고, 뭐 너도나도 좋은 거니까. 그러나 한 시간에 한 번꼴로 소주병을 든 채 내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저기요- 따위의 말을 붙이는 사람들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약은 약사한테 타시고 고민 상담은 K에게 하세요- 라는 말을 꾹 삼킨 채 참을성 있게 말을 들어주면, 답도 없는 고민을 털어놓은 뒤 그 사람들은 꼭 내 대답을 들어야 하겠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딱히 할 말이 없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러주면 뭔가 감명받은 듯 혼자서 울더니만 네, 힘낼게요···! 하더니 그냥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떠나보낸 아까운 고객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곁에 둔 미니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반짝 빛났다. 전기료는 더럽게 많이 잡아먹지만 겉보기에는 참 좋은 장식물이었다. 나는 노래가 끝날 때마다 하하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따위의 인사를 뱉었다. 가게 문을 나서는 손님들은 한층 더 행복해진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같은 노래를 구간 반복하는 엠피쓰리가 된 기분이었다. 이게 다 K가 시킨 일이었다.

이게 다, 장사라는 거 아냐. 서비스업. 알겠어? 이게 바로 사기 아니냐는 말에 K는 사회생활할 줄 모른다며 깔깔 웃었다. 나는 아직도 인간 된 도리상 타로집이라는 간판을 뜯고 돈을 주면 네가 원하는 말을 해드린다는 간판을 붙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었다. 애초에 K가 사용하는 타로에는 죽음 같은 나쁜 카드는 없었고, K가 주로 하는 일은 점을 봐준다기보다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시험에 떨어져서 힘들어 죽겠어요- 라는 고민에는 그렇군요, 많이 힘들겠어요- 하며 공감하는 척을 해주며 고민을 들어주고,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타로 점을 봐준 다음에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하는 식이었다. K의 빈말에 사람들은 웃고 울었다. 추측이지만 정신과 상담 대신 K를 찾아오는 사람도 꽤 되는 것 같았다. 처음 점집을 차린다고 했을 때만 해도 전세금만 뽑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끔 가게는 잘 됐다. 가끔 다시 찾아와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주스를 건네는 사람들도 있었다. 말 몇 마디로 K는 너끈히 나를 먹여 살렸다. 물론 내가 호객행위를 잘하는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오, 너 대단한데- 하는 나에게 K에게 손 키스를 날렸다. 습관처럼 의미 없이 하는 행동이란 것을 알지만, 그 행동에 설레고 행복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홍대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기타를 치고 있을 때였다. 그날따라 운이 좋아 앞에 놓아둔 기타 가방에 천 원짜리 다섯 개 정도가 들어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 lights go on again. 기타를 파는 대신 삼각김밥 하나로 하루를 버텼던 시절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던 노래였다. 기타 가방 앞에 쪼그려 앉아 돈도 주지도 않으면서 계속 홀린 듯 앉아 있었던 것이 K였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소주병과 인연이 깊은 모양인지, K는 풀린 눈으로 내 노래를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켰다. 다른 노래를 부를라치면 째려보는 것이 부담스러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같은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같이 밤을 새우다 이제는 고시원에 들어가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K와 눈이 마주친 건 그때였다. 눈이 참 예쁘네요- 퉁퉁 부은 눈을 보고 당황한 나는 얼결에 그렇게 말했고, 후에 K는 그 말 덕분에 그날 한강대교에 가지 않았다고, 참 고마웠다고, 그러니 결혼하자고 했다.

빈말의 힘을 믿는다고 언젠가 K는 말했다. 아마 계속 K를 보러 찾아오는 이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노래가 끝나고, 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코를 훌쩍이며 나왔던 여자가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왠지 나까지 행복해지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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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메리 크리스마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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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길고 긴 새벽이었다. 딸이 고무줄놀이를 하듯 마당에 누워있는 사다리를 건너뛰고 있었다. 첫 번째 칸에서 두 번째 칸으로, 두 번째 칸에서 세 번째 칸으로. 딸은 가볍게 발을 뗄 때마다 옷에 배긴 향내가 코끝을 스쳤다. 그 모습이 부러워, 이제는 자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무리 발을 옮겨 봐도, 나는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침대에 혼자 누워 밤을 지새우는 것에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세찬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밤이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옆자리를 더듬었다. 익숙해진다는 말이 낯설었다. 남편이 대장암 2기 진단을 받아온 것이 작년의 일이었다. 2에서 3으로, 4로. 숫자는 쉽게 바뀌었고 나는 그것이 아득했다. 모든 치료의 시작은 인정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그래도 비쩍 마른 남편의 손을 잡을 때마다 다른 사람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밤새 몸을 뒤척이는 그를 위해 젖은 수건을 땀을 닦아주고는 했다. 그러다 보면 금세 동이 텄다. 해는 무심하게 끊임없이 뜨고 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잠든 남편의 배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있다가 없다로 바뀐 것뿐인데도 나는 자주 잠을 설쳤다. 딸이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나는 친한 친구들과 다 떨어졌다며 우는 딸을 건성으로 달래며 남편을 찾았다. 입학식 어디선가 남편이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았다. 엄마아- 하고 딸이 나를 불렀다. 같이 와서 놀아달라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한 얼굴이었다. 제사상을 치우는 것을 뒤로한 채 사다리의 첫 번째 칸을 밟았다. 첫 번째 칸에서 세 번째 칸으로, 세 번째 칸에서 여섯 번째 칸으로. 몸은 앞으로 나아가도 마음은 아직도 작년에 붙박여있었다. 나는 울음을 참은 채, 다시 발을 떼었다. 저만치 앞서간 딸이 어서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 파란색스머프
  • 2015-01-12
본동

* 예전에 올렸던 본동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장소만 같아요.   노량진 1동. 이정표에 적힌 글자를 읽어보았다. 본동은 어디로 간 걸까. 본동 위에 새 주소가 덧씌워져 있었다. 오늘은 꼭 버리겠다고 마음먹은 지도에는 여전히 본동이라고 적혀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든 지도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막 세계지도를 가지고 놀던 어릴 적 일이었다. 등 뒤에서 내 손을 쥐고 여기가 미국이고 저기는 아프리카야- 하고 알려주던 첫 번째 아버지. 본동은 아버지의 본적이자 나의 본적이었다. 등 돌린 채 문을 나서던. 그 뒤에서 한참을 울었던, 내 기억 속 최초의 집이 있던 동네이기도 했다. 근 이십 년 만에 오는 본동이었다. 작은 구멍가게 터에 채소 가게가 들어섰지만 귀신이 나온다던 좁은 골목길도, 뿌리가 드러난 채 기울어져 있던 커다란 느티나무도 그대로였다. 전국적으로 새 주소로 바뀌었는데 지도도 업데이트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팀장은 말했다. 가락본동, 봉천본동, 일원본동. 지금껏 수많은 본동에 들렀다 마지막에 온 본동이었다.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고 잊고 싶었던, 그런 곳이었다. 누군가 부모님은 잘 계시니, 물어보면 엄마는 잘 계세요, 라고 대답하고는 했다. 아버지는 집에 없었고 나는 자주 아버지는 없는 사람이다- 생각했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종이에는 자주 가족관계를 적는 란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을 적었다가 화이트로 덮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하얀 화이트 밑에 잠들어 있었다. 없는 것이 익숙했고 굳이 있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빠랑 참 닮았구나. 언젠가 먼 친척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봤다. 움푹 팬 볼, 눈 밑에 난 커다란 점. 아버지도 이런 얼굴을 했었나. 떠오르는 것은 어깨가 축 처졌던 등뿐이었다. 아버지는 없는 사람이다- 다시 생각했다. 그릇을 깨거나 할 때마다 근본 없는 놈, 하고 들었던 욕을 생각했다. 그러나 내 얼굴이 한없이 낯설어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몸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술에 취한 채 소리를 지르다 문득 정신이 돌아오면, 나를 쳐다보는 아들의 얼굴 위로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울면서 바닥에 엎어진 그릇을 치우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하품할 때 크게 소리를 내거나 술을 마시면 그릇부터 깨고 보는 것이 아버지의 오래된 습관이었고, 그 뒤처리는 나의 몫이었다. 언젠가 아버지 몰래 술병을 내다 버렸던 적이 있었다. 뒷산 꼭대기에 올라가 나무 둥치에 소주병을 던졌다. 튀어 오른 유리조각이 뺨을 스쳤다. 그때 마음속에서 아버지가 부서졌다고, 입에 술을 털어 넣을 때마다 생각했다. 크게 삐져나온 나무뿌리에 걸터앉았다. 언덕배기에 있던 탓에 본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다닥다닥 들러붙은 작은 벽돌집 어딘가 아버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 어릴 적 살았던, 셋이서 옹기종기 붙어 잠을 자고는 했던 반지하일 것이다. 지도를 펴고 수정할 곳 없음이라고 적었다. 문득 지도에서 오래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낯설고 익숙한, 순간 그리워지는 냄새였다.  

  • 파란색스머프
  • 2015-01-03

  불 꺼진 방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었다. 분명히 여기에 의자가 있었는데, 하고 손을 뻗어도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가깝다 싶으면 멀고, 멀다 싶으면 가깝고. 눈앞에 손을 가져다 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안, 나는 내 손과 의자, 그 틈새 사이의 어둠을 생각했다. 속을 알 수 없는 깊고 깊은 어둠. 의자와 내 손까지의 거리가 얼만지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옆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P의 얼굴을 더듬거렸다. 덮은 이불이 축축이 젖어있었다.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켜니 모니터에 수정 중이던 A시 지도가 떴다. 오전에 현장 답사를 갔던 곳이었다. 새로 건물이 들어서 수정이 필요하다고 P는 말했다. 날마다 건물이 들어서거나 없어지는 바람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현장 답사를 나갔다. 달라진 건물 탓에 같은 구역 안을 뱅뱅 도느라 짜증을 내는 나에게 모든 지도에는 오차가 있는 법이라고, 그러니 이해하라며 P는 웃어 보였다. 매일 악몽을 꾸는 게 참 힘든 일이란 거 이해한다는 라는 말에 P는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라고 대꾸했다. P는 자주 자기가 꾸는 악몽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오는 사람은 매일 달라진다고 했다. 손가락이 잘린 귀신이 나오기도 하고 장애인이라고 놀림 받던 형이 자신을 쫓아온다는 말에 나는 그렇구나, 힘들겠구나- 싶었다. 내가 꿨던 악몽은 넓은 집에 혼자 남아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꿈을 꿀 때마다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득해졌다. P도 그렇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김이 솟는 뜨거운 차를 들이켜며 P의 말을 되씹었다. 문득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다른 사람 말 들어주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아, 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좋아-. 친구는 이어서 말했고 나는 그게 참 좋아서 풋 웃었다. 굳이 그게 아니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도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P에게 주려던 편지를 만지작거렸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나마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쓴 편지였다. 힘주어 눌러 적었던 글자들이 편지에 잠들어있었다. 불 꺼진 방 안에서 스탠드를 켜고 P 몰래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너를 이해해. 그러니 나에게는 맘 놓아도 돼. 이해, 라는 글자 사이의 여백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길을 잃은 것만 같아 침대로 돌아가 잠든 P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P의 몸은 따뜻했다. 괜스레 울 것 같았다. 수정한 파일을 메일로 보내자 창틈 사이로 햇볕이 스며들었다. 어둠에 잠겨있던 방이 점점 밝아지며 익숙한 가구들이 보였다. 어제와 똑같은 위치에 서 있는 의자와 탁자. 나는 눈을 감고 일어서 의자를 향해 걸어갔다. 한참을 부스럭거리던 P가 아침마다 집안을 도는 습관 좀 고치라며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매일 찾아오는 장님이 된 것 같은 밤, 그때마다 나는 길을 잃고 그 길의 끝에 P가 있었다.  

  • 파란색스머프
  • 201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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