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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 작성자 영너꿈
  • 작성일 2015-03-04
  • 조회수 485

 

성장

 

 

 

 그 소녀는 아직 촛불처럼 자그마한 불꽃에 불과했다.

 

*

 

 소녀는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서 주위를 둘렀다. 밤하늘에는 흰 구름이 켜켜이 쌓였고, 소녀가 서있던 주위로는 시멘트와 풀밭이 묘상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소녀는 차가운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야경을 훑듯 둘러보았다. 불빛은 건물의 외벽을 타고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 거렸고, 허무맹랑한 풀밭 새로 제가끔 조형물들이 밤빛세례를 받고 있었다.

 소녀는 그 미지의 아름다움에 그것들을 스치듯 지나다, 문뜩, 이 주변도 이처럼 아름다울 것만 같다는 기대감에 그곳을 빠져나갔다.

 겨울바람은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설치며 돌아다녔다. 그러나 소녀는 그저 제 주위에 펼쳐진 것들이 전부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곁눈질하며 겉옷을 단단히 여몄다. 소녀는 제게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돌아나가며, 제 반대편에 놓인 건물들을 올려보았다. 절벽처럼 깎아 내지른 외관, 그리고 그에 듬성듬성 박힌 불빛들은 그것이 마치 장벽인 양 소녀를 현혹시켰다. 자그마하던 소녀는 그 장벽에 놀라움을 느끼는 한편, 그것이 꽤나 위협적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그 모순이, 소녀가 그 동대문 일대가 겉과 속이 다른 피에로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하나의 절차일 수도 있었다.

 소녀는 그 길을 쭉 돌아내려갔다. 허나, 그곳에는 사람들은커녕 허무한 도로만이 잔재했다. 점차, 어두운 거리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외려 심오한 풍경만이 소녀 앞에 그려질 뿐이었다. 이미 셔터를 닫아버린 상점들 앞으로 여러 나라들의 이름을 명시 해놓은 팻말들이 잔뜩 이었고, 그 건너에는 꾀죄죄한 겉모습의 쇼핑센터가 차갑게 불을 꺼놓은 채였다. 그리고 소녀는 그곳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었다.

 “춥다…….”

 소녀는 나지막이 한 마디를 얕게 읊조리고는 계속하여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러다, 소녀는 횡단보도등만이 무뚝뚝하게 남아 있던 사거리로 들어섰다.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갈피를 못 잡던 소녀는, 무뜩 표지판을 올려 보고는 이유 없이 ‘청계천’을 향해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제가 갈 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길은 나약한 소녀가 가기에는 한없이 위험하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듯, 암흑 속에 제 모습을 겹겹이 감추고 있었다. 소녀는 순간, 제 등 뒤로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그러하나, 소녀는 대담스럽게도 그저 침 한번 깊게 넘기는 것을 끝으로 그 길 속으로 제 모습을 감추었다.

 

 가지만 덩그러니 내놓은 가로수들이 양옆으로 포진해 있었다. 제가끔 괴이한 폭음의 오토바이들만 길 위를 내달릴 뿐, 이렇다 할 행인들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무 것도 뵈지 않는 거리 속에, 자그마한 촛불은 서서히 저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가엽게도, 소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제 주위를 노려보았다. 달빛이 처량하게 쏟아지는 간에, 잠시간 흰 구름이 발광하는 달빛을 가려내었다. 그 새를 못 참고는, 인도(人道)에 만연했던 암흑은 한층 더 짙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소녀의 두려움 역시 조금 더 깊어지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찰나,

 “이렇게 판 돌려서 어제 몫들 챙기시것소?”

 멀찍이, 길목 한 구석에서 시커먼 안개가 너풀거렸다.

 “아따, 누가 냄비 돌멩이 들고 질 줄 알았것어?”

 소녀는 문득,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들에 되레 잔뜩 움츠러들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곳을 지나는 잠시간에, 소녀가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누군가 소녀를 데려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 누군가 그녀에게 악의로 해코지 하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순, 덜컥 겁에 질려버린 미약한 소녀는 제 뒤에 놓인 길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곳을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시간이 꽤나 늦어 버린 지 오래였고, 더욱이 소녀의 다리는 떨려오기까지 시작했다. 그 길을 돌아가기에도, 지나가기에도. 소녀는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였다.

 가만히, 소녀는 다시 제 앞길을 살피다 온 몸에 힘을 가득 머금은 채, 눈을 꽉 감고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소녀의 머릿속으로는 이런저런 광경들이 연신 스치고 지나갔다. 그곳에 있던 안개가 소녀에게로 퍼져와 소녀를 잔뜩 휘감아버리는 경관, 소녀의 육신을 탐하여 혓바닥을 날름거릴지도 모르는 방랑자! 그러나, 소녀는 온갖 상념들을 잊으려 노력하며 서서히 도로의 끝으로 다다랐다.

 그리고 소녀가 눈을 뜬 순간, 소녀의 신발코 앞으로 자동차 불빛들이 휘양 찬란하게 길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멍하니, 소녀가 고개를 들자 길의 반대편으로 허름한 신발 상점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두 거리 새에 청계천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

 퍼뜩, 느껴지는 안도감에 소녀가 고개를 뒤로 돌리자, 구석에서 도박을 즐기던 도박꾼들은 천천히 어둡고도 더럽던 거리 속으로 동화(同化) 되어 가고 있었다. 소녀는 또 다시 심장을 조여 오는 긴장감에 세차게 고개를 떨쳤다. 그러고는,

 청계천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일차선도로 정중앙에서, 소녀는 발꿈치에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지저분하게 저를 괴롭히는 동통에, 소녀는 가만히 그 길목에 서서 머리를 세차게 떨치고 말았다. 그러고는 곧, 신발 밖으로 저의 발뒤꿈치를 흘겨보았다.

 소녀의 발꿈치에는 자그마한 물집이 잡혀 있었다. 여러 번, 긴 숨을 내뱉던 소녀는 이윽고, 신경질적으로 저의 귓가에 울리는 자동차 경적소리에 깜짝 놀라 잠깐 새에 그 길을 건너버렸다.

 그러곤, 청계천의 난간을 잡은 채로 소녀는 저의 물집에 오른손을 살포시 얹어버렸다.

 일순간,

 그 작은 촛불에게 느껴지던 형용할 수 없는 감정……

 

 소녀는 왈칵,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그저 자연스레 청계천으로 허한 시선을 내던지며, 그것처럼 고요하게 눈물만을 흘려냈다. 그곳에 다행스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었는지, 사회에 느껴지던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저를 집어 삼키리라 생각 되었던 수많은 잡념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이었는지.

 소녀는 그곳에 주저앉아 공허하게 슬픔을 토해냈다. 그러나.

 그 짙은 밤거리에서 그 누가 소녀를 도와주려 하였겠는가?

 한참을 그곳에 앉아 울던 소녀 역시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을 것임을 지각한 것이었는지, 소녀는 털털거리며 씩씩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헛헛한 눈빛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흰 구름은 언젠가 사라진 채, 아련한 달빛만이 조금은 커져버린 불꽃에게로 따스한 시선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소녀는 더 이상 촛불처럼 자그마한 불꽃만은 아니었다.

 

성장, Fin.

2015. 02. 20.

Fri.

 

 

 

 

 

+

어쩌면 이제 ‘아이들에게 사회가 무섭다.’ 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은 없을 것만 같아요.

그간 너무 글이 똑같았어서 이 글을 올리는 것도 고민을 거듭하다가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랄까요...

 죄송할 나름입니다 ㅠ

 

 

영너꿈
영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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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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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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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너꿈
  • 201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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