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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얀_1

  • 작성자
  • 작성일 2020-08-18
  • 조회수 161

사람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너는 내게 질문을 툭 던져놓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 자문자답을 즐기는 사람. 너는 그런 사람인데, 이번에는 질문을 허공에 휙 던져놓기만 한다. 너는 내가 대답을 하길 바랬다. 희한한 일이었다. 내가 고개를 돌려 네 눈을 마주보자 너는 멋쩍게 웃었다.

미안해, 미안해. 이건 진짜로 나도 잘 모르겠어.

너는 웃음섞인 목소리로 어리광을 피운다.

글쎄,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아닐까. 그러니까...콧구멍 사이로 따뜻한 공기가 들락날락할 때 말이야.

대답을 듣고 너는 웃었다. 그리고는 네 손으로 내 손을 들어 내 코를 쥐게 했다.

-그럼 이제 넌 고인이니. 


눈이 내리지 않는 추운 겨울이었다. 어제는 이렇게까지 춥지는 않았었는데. 나는 입에서 길게 늘어져나오는 하얀 김을 눈으로 좇았다. 저 새하얀 김은 어디로 부스러져 어디로 사라질까? 멍청한 질문. 멍청한 질문이었다. 저 새하얀 김은 그냥 다시 공기로 되돌아가는 거다.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다. 초등학교 때였나, 중학교 때였나, 교과서를 펼쳐 낙서를 하며 흘려 들었던 선생님의 말을 기억했다. 김은 김이다. 김은 김. 김은 김. 김은 김.

헛소리.

목소리를 죄다 지워버리고  멍하니 걷다 보니 시퍼런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그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이나 한숨 푹 자고 싶었다. 그러나 앞으로 걸어나가야만 했다. 어디서 들리는지 모를 조잘대는 대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나는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새까만 유리로 덮인 커다란 건물이었다. 분명 바깥은 온통 유리인데도 선팅 탓에 밖에서는 안이 전혀 보이지가 않아서, 전체적으로 건물은 커다랗게 부서진 연필심 같은 모양새로 보였다. 이 건물이 내가 앞으로 사흘 동안 머무를 호텔이었다.

이메일이 한 통 왔었다. 나는 그 이메일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내용은 딱 세 줄이었다. 문맥이 이상한 글이었다.

초대합니다, 초대합니다.

하이얀은 당신에게 정말로 어울리는 곳입니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이틀 안에는 방문해주세요. 그리고 나서는 딱 사흘 동안 함께 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총책임장 최호정. 나는 그 이름을 몰랐다. 따라서 이 메일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로부터 온,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는, 아주 의미심장하고 비밀스러운 메일이었다. 사이트 주소 하나가 함께 보내져 눌러 보았다.

하이얀

하이얀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텔의 홈페이지였다. 호텔 이름은 하이얀인데 외관 색깔은 시꺼맸다. 이 호텔로 찾아가면 되는 건가 싶어서, 홈페이지 아래에 작게 적힌 도로명 주소를 복사해서 길을 찾아보았었다. 걸어서 십오 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창문으로 봐도 보일 것 같은 거리인데, 하고 고개를 들어 창문을 내다 보았었다. 어디에도 하이얀 호텔 같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죄다 회색 건물들이었다. 여기도, 저기도 다 창문 하나씩이 어설프게 색깔이 다른 회색 건물들이었다. 인터넷 지도라도 켜서 가면 되겠지, 생각하고 일찍이 잠들었던 날이 정확히 이틀 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이상하다. 누구한테도 온 줄 모르는 메일이었다. 그 호텔에 찾아갔다가 한순간에 범죄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그 호텔에 찾아갔다가 온갖 사고에 휩쓸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위협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말의 경계심도 들지 않았다. 아무튼, 놀랍게도 그 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에 느낀 그 감정은 다음 날이 되자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세 줄짜리 메일과 함께. 나는 똑같이 학교에 가서 똑같이 수업을 듣고 똑같이 하교를 했다. 그러다 불현듯 이틀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다. 이틀, 이틀. 이틀? 가만히 생각해내다 사흘이라는 단어도 떠올랐다. 그리고 하이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바삭바삭하고 까끌한 교복 치마를 통 넓은 청바지로 갈아입고 약간 품이 큰 티셔츠를 걸쳤다. 발목께까지 오는 패딩을 입고 부츠를 신었다. 그래서 열심히 주소를 따라 걸어왔고, 이제는 새까만 건물 안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커다란 회전문 앞 매트에 글자가 적혀 있었다.

welcome to haiyaan 하이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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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형

    안녕하세요. 소설의 도입부 같은 시작이네요. 입김처럼 새하얀 순간을 상상하는 인물에게 하이얀 호텔에서 벌어질 많은 일들이 기대가 됩니다. 글틴은 한편의 완성된 소설을 올리는 공간이에요. 소설을 차곡차곡 쌓아 완성될 하이얀 호텔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2020-09-15 08:50:34
    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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