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구비
- 작성자 윤교
- 작성일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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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302
냉장고, 구비
울리는 알람을 끄고 난 구비는 냉장고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시원한 냉기를 맞으며 그는 시계를 보았다. 예전 같으면 출근 시간까지 꽤 여유롭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각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대로 한 시간은 냉장고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어야 하는데 회사가 멀어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삼십 분 채 있지 못하고 그는 출근했다.
한 달 전쯤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구비는 손으로 얼굴을 한 번 매만졌다. 아이스크림처럼 끈적한 무언가가 그의 손에 묻었다. 그것은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가 그의 코를 찔러왔다. 구비는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썼다. 화장실에서 재빨리 손을 씻고 거울을 보자 구비는 얼굴을 싸쥐었다. 최대한 압력을 가해 얼굴이 흘러내리지 않게 막아냈다. 때마침 그의 룸메이트인 고애가 화장실로 왔다. 고애는 코를 막으며 눈이 동그래진 상태로 구비를 냉장고 앞으로 데려갔다. 잠시 냉장고에 머리를 집어넣었던 구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누구나 겪는 증상이잖아요.”
고애의 말에 구비는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구비를 따라 웃자 파인 눈은 더 깊게 들어가 버렸다. 그 덕에 그녀의 눈은 한층 더 답답해 보였고 구비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안면 근육을 양옆으로 힘껏 당겼다. 고애의 말처럼 누구나 겪는 증상이었다. 원인은 제각각이었기에 아직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열 명 중 아홉 명은 얼굴이 흘러내리는 증상을 겪었다. 구비는 이런 일이 처음이었다. 자신은 아무렇지 않았다고 말하는 고애의 이야기를 들으며 구비는 살집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천천히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비는 살며시 시계를 확인했다. 일곱 시 십오 분. 그가 출근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천천히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본 고애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 손뼉을 한 번 치며 말했다.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그 ‘곧’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구비는 그럴 것이라 맞장구쳤다. 결국 휴가를 낸 그는 하루 세 번 8시간 간격으로 냉장고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는 동안 그가 느낀 것은 냉장고 안은 김치 쉰내가 나 시큼하게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곧 익숙해졌지만, 그가 원하는 다른 ‘곧’은 찾아오지 않았다. 휴가가 끝나고 출근을 했지만, 여전히 구비의 얼굴은 나아질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구비를 짙은 향수를 여러 번 뿌렸다. 썩은 내가 나지 않도록, 직장 내 사람들이 알 수 없도록 말이다. 삼십 분 밖에 냉장고에 얼굴을 들이민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곧 밖으로 나갔다. 더운 열기가 얼굴을 훅 들이밀어 구비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직 괜찮아. 구비는 속으로 생각하며 가슴을 두 번 가볍게 쳤다.
구비가 탄 지하철은 분명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하철만의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암내가 구비의 숨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인사하는 대상은 앞 사람이 될 때도 있었고, 옆 사람이 될 때도 있었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도 했다. 구비도 그중 하나였다. 아마 구비는 오늘 아침만 해도 남들이 반평생 할 만큼의 인사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회사에 도착한 구비는 상사의 자리로 눈을 흘겼다.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의자를 보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 때쯤에 상사가 구비를 불렀다. 걱정하는 듯한 말로 시작했지만, 젊은 친구가 고작 그런 걸로 휴가를 쓰면 곤란하다는 이야기였다. 구비는 얼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자신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분간이 어려웠다.
오후 열 시가 되자 구비는 퇴근했다. 사실 여섯 시가 퇴근이었지만 그동안 밀린 일을 처리해야 했기에 평소보다 늦게 전철에 올랐다. 3 번 칸의 사람은 구비와 소녀였다. 구비는 자신의 신발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오랜 회사생활에서 터득한 직감일 것이다. 구비는 슬며시 고개를 올렸다. 맞은편에 앉은 소녀와 구비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사색이 된 채 굳어 있었다. 투둑. 그의 무릎에 살점이 빗방울처럼 내렸다. 구비는 바랐다. 얼굴이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살점이 더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지를. 애석하게도 그의 이마는 벌써 물컹한 푸딩처럼 출렁거렸다.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무너질 듯이. 그다음은 눈 위 살이 녹아 시야가 뿌옇게 보였다. 얼굴을 감싸 달려도 뚝뚝 떨어지는 살집은 그의 다리보다 더 빠르게 하강했다. 흐릿한 시야로 급히 현관문을 열어 냉장고로 향했지만, 구비의 얼굴은 이미 그 형태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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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주인공의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이름을 좀 더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사소한 것이지만 룸메의 이름도 특별하게 지어준다던지요. 글도 대체로 무리없이 읽혔습니다만, 냉장에 대한 사유가 좀 더 드러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민규 작가의 [카스테라]라는 단편 소설을 보시면 냉장에 대한 사유와 주인공이 냉장고를 다루는 태도가 연결되는 것을 찾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얼굴의 형태 - 냉장이라는 것에 대한 윤교님의 사유가 적절히 배합되면 더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저도 주인공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제가 지었지만 말이죠 헤헤헤... 구비라는 이름을 활용해 더 좋은 작품 많이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고은 작가님의 일인용 식탁 소설집 안 읽어보셨으면, 읽어보시길 추천해요!! 좋아하실 것 같거든요. 글 재밌게 잘 읽었어요. 냉장고에 얼굴을 들이밀어야만 하는 일상이라니.. 발상이 신선하고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