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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볼

  • 작성자 피리명이
  • 작성일 2022-08-03
  • 조회수 434

그 여자는 항상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언제부터, 라고 묻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그냥 눈치챈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나는 그녀와 함께했다. 그게 기분 나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불쾌했고, 무서웠다. 어쩌면 그 웃는 여자가 날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웃는 여자가 저주를 내릴지도 몰랐다.

 

나는 꽤 미신이나 괴담 같은 잡다한 것들을 믿는 편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무서우니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그런 이야기들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눈에만 보이는 그 여자가 정말 무서웠다. 어쩌면 내 눈에만 보이는 악귀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내가 정신병에 걸린 것 같기도 했으니까.

 

사실 그 여자를 귀신이라고 생각하기로 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솔직히 정신병보다는 귀신 쪽이 더 합리적이고 안 무섭다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제일 무서운 것 1순위가 정신병에 걸리는 것이었고 2순위가 귀신이었으니 최악 대신 차악이라는 선택지였다.

 

어쨌건.

그 여자가 생겨난 뒤로 내 태도는 한결같았다. 무시였다. 사실 시야 한구석에서 계속 웃고 있는 여자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무시하려고 할수록 더 의식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

 

의식되는 걸 계속 무시하는 척하는 것도 꽤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나는 머리를 빗으면서 최대한 눈의 초점을 흐리게 했다.

 

귀신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거 다 순 뻥이다. 귀신이 거울에 비치지 않기는 무슨. 너무 잘 보여서 탈이었다. 사람이 사회적 체면도 있고 거울을 완전히 안 보고 살 순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끔 들여다보는데, 그때마다 보이는 여자가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중년 배우의 다정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이 보여서 아찔했다.

 

그 여자의 시선은 항상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더 그랬다.

 

거울로 보지 않은 여자의 웃음은 정말 불쾌하기 그지없는데 거울로 보이는 여자는 정말 다정한 웃음을 짓고 있어서 속이 불편했다. 마치 내가 호의를 거부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한층 더 불쾌하다.’

 

심지어 그런 이유뿐이라면 어찌어찌 넘어가겠지만 다른 문제도 있었다.

 

“윽, 또….”

 

이상하게 심장이 아파왔다. 아니 사실 심장이 아닐지도 몰랐다. 물속에 깊게 빠져 있는 것 같이 숨이 막히기도 했고 폐가 뒤틀리며 쥐어짜는 것 같기도 했다. 아랫배가 답답해지기도, 코가 시큼해지기도 했다.

 

저 웃기지도 않는 여자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세상이 일렁거렸다. 무언가 내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문제는 난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거다. 내일 어느 수업을 들어야 하고 우리 집 비밀번호는 무엇이고 다음 주 주말에 친구랑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으며 월세를 내일까지 내야 한다는 것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단언컨대 잊어버린 것은 없었다.

 

-띠로로로로, 띠로로로로로,

“누구지?”

 

전화기를 보니 익숙한 번호가 떠 있었다. 얼마 전에 같이 살게 된 친구였다.

 

_띠로로로로, 띠로로, 띠.

“여보세요?”

“그래 자기야.”

“응, 마이 허니. 왜 전화했어?”

“우웩.”

 

시답잖은 것에도 곧잘 웃곤 하는 친구가 토하는 시늉을 하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밖일 텐데 저렇게 폭소하는 것도 안 쪽팔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뭔데.”

“아 맞다. 그 머시기, 나 마중 좀.”

“마중은 무슨.”

“아잉 자기양. 우리 사이에 이럴 거야?”

“웩, 우리 사이에 마중은 왜? 너 혼자 잘 돌아다니잖아.”

“그게… 우산 안 챙겨왔어.”

 

우산?

 

나는 하나로 묶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창문 앞에 섰다. 구름이 무너지고 있었다.

 

“알았어. 어딘데?”

“앗, 여기 집 근처 스터디카페.”

“도착하면 전화함.”

“나 외로우니까 빨리 와야 한다?”

 

나는 더 길어질 것 같은 헛소리를 무시하며 집 안의 모든 창문을 닫았다. 혹시 빗줄기가 더 굵어져 들이치면 후에 굉장히 귀찮아지리라.

 

간단히 겉옷을 걸치고 신발을 구겨 신었다. 신발은 하도 구겨 신어서 그런지 저항감 없이 부드럽게 발을 받아들였다. 나는 발뒤꿈치에서 느껴지는 딱딱함에 눈살을 찟뿌렸다

 

“신발 새로 하나 사야겠네….”

 

사시사철 신발 하나로 다니고 신발을 다루는 것도 그리 친절하진 않은 편이라 금방 낡았다. 대충 구겨 신어버리는 버릇은 뒤꿈치부터 발목을 가볍게 감싸주는 쿠션을 쉽게 닳아버리게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버릇처럼 아무도 없는 집안에 인사를 내뱉고 나갔다. 비 오는 날 특유의 습함 때문인지 약간 짜증이 났다.

 

아직 흐릿하긴 했지만, 밖으로니 더 확실하게 물방울들이 보였다. 잿빛 하늘이 기껏 평온해지려던 기분을 망친 느낌이라 기분이 나빴다. 손을 한 번씩 쥐었다 폈다 하면서 길을 나섰다. 아무래도 오늘은 외식을 해야겠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를 지나 더 걷자 곧 상가가 드러났다. 어릴 적부터 살아온 곳이라 상가에 무엇이 있을지 뻔히 알았다. 횡단보도 건너편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는 편의점이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시장이 있었다. 매운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를 지나면 작은 무인 아이스크림 점포가 있었고 그 옆에는 인형 가게가 그 옆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쭉 신세진 가게가 있었다.

 

그리고, 또… 그 건너편에는 조금 규모가 있는 잡화점이 있었다.

 

나는 잡화점 앞에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평소 가게 앞에 진열되어 있던 스노우볼이 가게 안으로 들어간 게 조금 아쉬웠다.

 

‘잠깐만 들릴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딸랑, 딸랑.

 

우산을 가볍게 털고 가게에 진입하자 습한 기운이 없는 가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엄청 추웠다.

 

아주 어릴 때 죽은 여동생이 있었다. 나랑 2살 차이밖에 안 나는 아주 작은 여동생이.

 

“감사합니다.”

-딸랑, 딸랑.

 

스노우볼은 정말 비싼 장난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보기만 할 수 있건만 제일 싼 것도 만원이 넘어갔다. 내가 보기엔 돈 낭비의 극치지만 여동생은 스노우볼을 정말 좋아했다. 생일 선물로 아껴온 용돈을 모아 제일 싼 스노우볼을 가지고 가면 그 후로 일 년간은 좋은 꼬봉이 되곤 했다.

 

나는 포장도 마다한 채 손으로 들고나온 스노우볼을 쳐다보며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또다시 구름이 무너졌다.

 

여동생이랑은 사이가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내가 정말 여동생이랑 사이가 좋았다면 여동생이 죽었을 때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나는 그 흔한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눈물을 흘리셨는데 나만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슬픔에도 공감 못하고 하릴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손만 꼼지락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죽음이 와 닿지 않았나? 아니었다.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았다. 여동생이 단순히 잠들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도 알았고 여동생과 다시는 추억을 쌓지 못할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슬프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 난 여동생을 잃었지만 슬프지 않았다.

 

“예쁘네.”

 

여동생이 죽은 후로 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약간의 골이 생긴 것 같다 느꼈지만 무언가 조처하지는 않았다. 나는 여동생의 죽음이 슬프지 않았고 나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냥 슬프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런 내가 약간 거북해지신 것 같았다.

 

“예쁘네….”

 

나는 스노우볼 너머에서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그 여자를 직시했다. 스노우볼 안에 있는 여자는 웃고 있지만 일견 슬퍼 보이기도 했다.

 

이상했다.

 

코가 갑자기 시큼해지고 눈가에 열이 올랐다. 가슴에 물이 가득 차올라서 툭 건드리면 쏟을 것 같았다.

 

“아”

 

숨을 쉬기 힘들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누가 커다란 손으로 나를 쾅쾅 치는 것 같다. 구름이 무너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지만 그런데도 일렁이는 세상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속눈썹이 먹먹하니 무거워졌다. 잿빛 하늘을 가려준 원색 우산이 이상하게 흐렸다. 나는 콱 막힌 목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언제인가 떨어진 친구의 우산이 눈에 들어왔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볼을 타고 내리는 빗방울이 추했다.

 

 

나는, 여동생의 죽음이 슬펐다.

 

 

구름이 무너졌다.

비가 내렸다.

피리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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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지현

    피리명이님 안녕하세요.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은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 인지의 순간을 그리기 위해 스노우볼이라는 매개체를 선택하셨는데, 개인적으로는 좋은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야기의 전반부에 스노우볼이 배치되어야 독자도 스노우볼의 이미지를 계속 유념해 나가며 글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굳이 귀신이 나타나지 않아도 스노우볼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들을 그려내면서 주인공의 감정선을 설명할 수 있을 것도 같고요. 마찬가지로 함께 사는 친구에게 주어진 역할이 너무 작은 것 같아요. 주인공을 밖으로 불러내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스노우볼과 마찬가지로 앞 부분에 등장하면 어떨까 합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2022-09-19 15:32:49
    송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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