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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 작성자 난바다
  • 작성일 2023-08-11
  • 조회수 783

날아가고 싶어.

 

a는 b에게 그렇게 말했다. b는 한심한 표정으로 a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주위를 가리켰다. b의 손가락 끝에는 흰 솜사탕마냥 그의 바로 옆에서 떠다니는 구름이 있었다.

 

이 곳은 하늘 위 구름 섬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그리고 그 구성원에는 a와 b가 포함되어 있었다. a는 이 구름 섬에서 꽤나 독특하다고 소문 난 아이로 매번 날아가고 싶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기 일쑤였다. b도 그 마을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b는 a와 몇 년 지기 친구로 이러한 반응이 익숙했기에 이미 하늘에 떠 있음에도 계속해서 날아가고 싶다고 떼를 쓰는 a를 향해 그저 어깨를 들썩였다자신이 a에게 무슨 해결책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자신도 그저 한낱 소시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그는 늘 이렇게 평화롭게 구름 섬사람들 사이에서 튀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a가 염불처럼 외는 것처럼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다. a는 그런 b의 심정을 아는지모르는지그 푸르른 평행선을 가리키며 다시 한 번 외쳤다.

 

난 날아가고 싶어비상하고 싶어.

 

네가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비상하니?

 

그래도 난 날아가고 싶어.

 

어린아이도 아닌데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하는 a를 바라보며 b는 참으로 답답하였다고지식한 건지고집이 센 건지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이 구름 섬으로부터 날아가려면 언젠가 우주에 닿을 거고 그러다 블랙홀도 만나면 어떡할 거니.

 

블랙홀에 들어간다면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광활한 우주검은 도화지 위에 그저 흰 물감을 실수로 튀겼을 때의 모습만 보다 그렇게 쓸쓸하게 가는 것은 b에겐 질색이었다. a는 사시나무마냥 바르르 떠는 b를 보곤 그저 배시시 웃었다. b가 그런 a를 보고 부끄러움에 몸의 떨림을 멈출 때 즈음, a는 구름 밑 세상을 가리켰다.

 

봄이 왔나 봐온통 분홍빛이야!

 

벚꽃 나무가 잔뜩 핀 세상구름 섬과는 달리 온통 연분홍빛이었다. b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눈썹을 들썩였다.

 

네가 봄을 좋아했던가?

 

아니난 겨울을 가장 좋아해.

 

그럼 왜 그렇게 좋아하는데겨울이 떠나고 봄이 왔는걸네가 좋아하는 계절이 지나가 버렸잖아.

 

a는 그 말에 다시 배시시 웃었다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라고 분명 그렇게 얘기해 놓고 얼굴은 봄을 사랑하는 표정이다. a는 그 웃음 그대로 간직한 채로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구름 섬 위에는 구름 한 점 하나 없었다. a는 푸념하는 것 마냥 또박또박 발음하며 말했다.

 

그렇지만 이 곳은 어떤 계절인지 하나도 알 수 없는 걸.

 

구름 섬이 구름 섬에는 그 흔한 나무 하나 없었다나무라는 정의도 이 구름 섬 밑에 있는 세상을 통해 배웠지나무가 무엇인지 아직도 자세하게는 몰랐다. b는 굳이 알아야 하나 싶었지만 학교에서 처음 나무를 배웠을 때 즈음. a는 배낭을 흔들거리며 b에게 달려와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 쳤다.

 

나무를 보면 계절을 알 수 있대!

 

그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아직도 생생했다어차피 나무를 볼 수 없는데 왜 이렇게나 신나 하는 걸까. b는 도리어 a에게 묻고 싶었지만 입술을 꽉 물었다저렇게 좋아하는데 굳이 분위기를 깨트려야 하나 싶었다집으로 돌아가는 내내나무에 대해서 연설하는 a의 말을 꾹 참으며 b는 돌아갔었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 b는 여전히 a가 나무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절절히 되새길 수 있었다그는 구름을 꽉 쥔 채로 정신 없이 구름 밑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 a를 흘끔 쳐다보았다.

 

참 이상한 아이였다.

 

 

 

*

 

 

 

a가 b에게 나오라고 연락을 했다. b는 아직 이른 시간인데 왜 부르는가 싶어 잠옷에 외투 하나 걸친 채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저 멀리에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근처에 있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a가 보였다.

 

너 왜 여기 있어?

 

저기 봐봐비가 내려.

 

비가 내리는 게 왜?

 

우리 마을엔 비가 안 내리잖아.

 

여름장마가 찾아오는 계절아직 봄인가 싶었는데 비가 내리는 걸 보면 여름이었던 모양이다구름 섬 위에는 거의 구름이 존재하지 않아서 비를 맞은 적이 거의 없었다지금껏 살아오면서 딱 한 번딱 한 시간비가 내리긴 하였지만 그 이후에는 구름 섬에는 비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긴저 녀석비가 내렸을 때 참 좋아하긴 했지.

 

b는 속으로 혼잣말을 하고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구름 밑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 옆에 앉았다. a는 그런 b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날아가고 싶어.

 

?

 

.

 

왜 오늘은 안 하나 싶은 말이었다. b는 a와 마찬가지로 검게 변한 구름 밑쏟아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았다. a는 그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어차피 키도 작은 녀석이라 손도 짧을 텐데뭐가 그리도 닿고 싶은지 안간힘을 쏟아내며 손을 뻗는다그러다 삐끗. a가 고개를 휘청거렸다. b가 놀라 a의 손목을 꽉 쥐었다하마터면 저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너무나도 놀란 탓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b는 이어 찾아온 화에 붉은 얼굴로 a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 잘못되면 어쩌려고!

 

바다야.

 

?

 

하늘인 줄 알았어.

 

자신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b는 그에 더욱 목소리를 높이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밑을 바라보는 a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나 보였기에 b의 말문이 막혔다저 푸른 뭉텅이가 뭐가 그리 예쁘다고 보는 건지그 눈으로 나나 다시 한 번 봐주지. b는 심술궂은 눈으로 구름 섬 밑 세상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고요한 바다만이 b의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

 

 

 

b우리 곧 어른이야.

 

a는 어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말투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그 손에는 웬 단풍잎이 들려있었다며칠 전학교에서 a가 오랜만에 졸지 않았다며 칭찬하는 마음으로 선생님께서 단풍잎을 주었다고무표정이긴 하지만 b는 알 수 있었다. a가 오랜만에 신났다는 사실을 말이다그게 퍽 마음에 들지 않아 b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너는 어른이 되면 뭐할 거야?

 

날아갈 준비를 해야지.

 

b의 물음에 a는 그렇게 답했다정말 우리는 이제 학생이 아닌 어른이 될 텐데 아직까지 그런 망상에 사로잡혀서는 어떻게 할 건지. b는 단호한 목소리로 a에게 말했다.

 

네 말대로 우리 곧 어른이야현실적으로 생각해야지.

 

난 충분히 현실적이야, b.

 

현실적무슨 날겠다고 하는 사람이 현실적이란 말인가이 곳은 구름 섬날려고 뛰어들어봤자 얼마 안 가 낙하할 것이다저 녀석은 낙하와 비상의 차이점을 잘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b는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곤 a의 손에 들린 단풍잎을 힐끔 쳐다보았다그래저 나무에 대한 환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우리는 이미 구름 섬에서 태어난 운명무슨 나뭇잎을 그리도 소중히 여기는지. b는 a가 가지고 있던 단풍잎을 홱 낚아채 충동적으로 구름 섬 밖으로 던져버렸다처음엔 무슨 일인지 몰랐던 a는 순순히 b에게 단풍잎을 전해줬지만 곧 이어 b가 한 행동으로 인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오늘 하루 종일 a가 애지중지 아꼈던 그 붉은 단풍잎이며칠 동안 책 속에 껴 놓으며 혹시나 찢어지지 않을까안절부절 난리를 치며 지켰던 그 단풍잎이떨어지고 있었다구름 섬 밑으로. a가 뒤늦게 손을 뻗었지만 이미 단풍잎은 바람을 타고 저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a우린 이제 어른이야너도 그만 해야지.

 

b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스스로에게 해명하며 a에게 조심스레 말했다화를 낼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a는 환한 미소로 b에게 외쳤다.

 

나 알겠어나는 방법!

 

?

 

b는 눈살을 찌푸렸다분명 단풍잎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나는 방법을 알았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b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a에게 질문을 마구 던져댔지만 a는 그저 손을 흔들며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b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 그 날 하루를 꼬박 밤을 새야만 했다.

 

 

 

*

 

 

 

b는 목도리를 두른 채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다름 아닌 a가 꼭 할 말이 있다고 자신에게 이 시각에 나오라고 전 날 밤 얘기를 했기 때문이었다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a의 성격 상범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b는 심호흡을 연신 해대며 늘 그들이 만났던 장소로 나갔다길 가는 길에 보이던 구름들에게서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밤이라 그런지흰 눈이 더욱 눈에 띄게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서, a도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b는 가볍게 물었다. a는 언제나 그랬듯 눈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난 오늘 밤 날거야.

 

오늘 밤 날다니어떻게늘 날 거라며 얘기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오늘 밤에 날겠노라고 대답했다. b는 순간 불안한 마음에 정신없이 a를 살펴보았지만 달라진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드디어 정말 미친 것일까. b는 자신의 목도리를 a에게 두르며 차가운 그 손을 어루만졌다눈을 만진 적은 없어도 만지게 된다면 이 감촉일 것 같았다.

 

붙잡아도 소용없어난 날 거니까.

 

네가 허공으로 발 딛는 순간 떨어진 데도.

 

그게 뭐가 떨어지는 거야비상이지!

 

비상뭔 비상이야그건 낙하라니까!

 

거꾸로 보면 비상이잖아바다도 하늘도 둘 다 푸르고 세상을 거꾸로 뒤집으면 나는 떨어지는 게 아니야오히려 높이 날라 가는 거야.

 

a는 다시 한 번 손을 쫙 펼쳤다그 동작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했고 해맑아 보였다모순적이게도 그 모습이 오히려 a에게 잘 어울려 보였다아니솔직히 말하자면 잘 보지 못했다바람 때문에 눈이 여기까지 와서 안 보이는 걸까겨울과는 사뭇 다른 뜨거운 눈물이 계속해서 차올라서 그런 걸까. b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눈은 왔다. a의 등 뒤로 흰 눈이 계속해서 떨어졌다우주에서 별을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검은 도화지에 흰색 물감이 마구 튀고 있었다. b는 입을 떡하니 벌린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네가 허공에 발을 딛는다면그렇다면.

 

나 혼자 남는 거잖아.

 

난다고 얘기했던 a의 곁에서 계속해서 꾸준히 말렸던 것은 자신이었다모두가 결국엔 그래너 한 번 날아봐라말하고 떠나는 것에 반해 b는 a의 곁에 남아 계속해서 안 된다고 말했다그것만큼 귀찮은 일은 없었지만 왜인지 b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지금에서야 알겠는 것은 a가 없는 이 구름 섬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없고 지루하고...

 

b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a를 향해 손을 뻗었다. b가 감싼 a의 목도리가 바람결에 나풀거렸다. b의 손 끝에 따뜻한 털실이 스쳐지나가고 그렇게 닿은 것은 a의 따뜻한 손바닥이었다.

 

우린 날고 있어지금!

 

흰 눈이 계속해서 자신의 얼굴을 씻긴다. b는 제 눈앞에서 그 누구보다 환한 얼굴로 웃고 있는 a를 바라보았다그래 내 머리 위에 푸른 무언가가 있고내가 그 곳을 향해 가고 있다면그게 누군가는 비웃고 설령 우스운 짓이라 할지라도 내가 확신을 갖는다면.

 

그게 비상이지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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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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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바다
  • 2024-07-24
무명

개인사정으로 글 내립니다

  • 난바다
  • 2024-06-24
물거품

비가 오면 망할 반지하 방에는 물이 스며들어왔다. 비는 멈춘 지 오래이건만. 이미 반지하 방으로 들어오는 물줄기들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물을 푸는 와중에도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줄기를 보며 숨이 턱 끝까지 막혔다. 역시 이 놈의 가난은 내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내 턱을 타고 흐르는 물이 새어 들어오는 물줄기인지, 아니면 내가 흐르는 눈물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이 망할 가난은 물줄기와도 같아서 퍼내고 퍼내어도 끝이 없이 쏟아지고. 결국엔 이 방을 무슨 어항처럼 만들고는 우리를 다 익사시키지는 않을까, 하고. 창문 바로 밑에 주전자를 두고 다시 테이프를 덧붙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은 동생이 풀어야 한다고 떼를 썼던 문제집과 내 소설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맨 위 선반에 두었다는 점일 것이다. 불행은 동생의 교복이 쫄딱 젖었다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그러면 불행이 너무 큰가? 알 수 없다. 하필이면 오늘이 또 일요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아마 아빠가 지어주신 민주라는 이름은 총명할 민慜에 모일 주輳가 아닌 망할 민泯에 살 주住겠지. 내 인생이 이렇게 망한 것을 보면 말이다. 아, 아니지. 주는 살 주住가 아닌 젖을 주澍인가? 물에 빠진 쥐새끼마냥 쫄딱 젖은 내 꼬락서니를 보면 말이야. 사실 잘 모르겠다. 뭐, 어느 쪽이 되었든 내 인생이 시궁창 인생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니 별로 상관할 필요도 없긴 했다. 어떨 때는 시궁창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제 처지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으나 그것도 옛말. 지금은 시궁창 인생에라도 머무르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다.물론 어렸을 때부터 운이 더럽게 없는 놈이라는 소리는 자주 듣고는 했었다. 태어나 보니 집은 반지하에 어머니라는 사람은 빚을 잔뜩 진 채로 내 나이 열하나에 소리 소문 없이 도망쳤다는 사실은 어지간히 운이 더럽게 없지 않고서야 일어나긴 힘든 일이었다. 아버지가 그나마 민환이와 나를 챙겨주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셨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십 년 전. 세상을 뜨셨다. 사인은 영양실조. 현대 사회에서 웬 영양실조가 사인인 경우도 있냐고 하지만 그 경우가 우리 가족이었다. 30대 청년이 아사로 사망했다는 뉴스에 요즘 누가 영양실조나 아사로 죽냐는 댓글을 바라보며 그래, 그 경우 여기 있더라,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지막 인사할 때는 웃으면서 인사하고 싶다던, 삐쩍 말라붙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손으로나마 인사하고 싶었지만 또 그러지 못했다. 엉엉, 또 울면서 아빠, 아빠 가지 마요, 라고 떼를 썼다. 내 나이 열아홉, 민환이 나이 아홉. 영장사진을 겨우 드는 민환이의 손을 꾹 붙잡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네 손에는 물 안 묻히게 해 줄게. 누나가 민환이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라고. 엉엉 우는 민환이의 귓가에 손을 대고 다짐과 같은 말을 뱉었다. 그 다짐, 아직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교복을 말리러 밖에 나선 이 순간에도 민환이

  • 난바다
  • 202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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