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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너]

  • 작성자 이거되나
  • 작성일 2023-10-29
  • 조회수 670

三人之爾 三者面對

 

너는 사랑하다너는 손을 뻗다너는 책을 읽다너는 그림을 그리다아무도 그림을 그리지 않다역시나 당신은 눈을 크게 뜨다당신은 나를 바라보다나의 눈에 감추어진 우주를 꿰뚫을 듯 바라보다우주 속에는 우주가 있다대우주와 소우주소우주는 인간이 부재하다우리를 감싸고 전체에 존재할 뿐계속끊임없이 존재할 뿐……

 


너흘 맞남ᄋᆞᆫ 계졀조차 긔억 아니날 까맣아득히 머ᇍ 과거일디니 내 저흘 긔억ᄒᆞ며 내 녚ᄋᆡ셔 구룸을 바라보오ᇝ 젼ᄎᆞ인이라하ᄂᆞᆶᄋᆞᆫ 흐르고 내[]ᄂᆞᆫ 긔 거스ᇍ쪽ᄋᆞ로 가ᄂᆞ니 록빛 ᄉᆞ과ᄂᆞᆫ 내게로 다가와 먹히는이라나ᄂᆞᆫ ᄭᅬ죄죄ᄒᆞᆫ 하ᄂᆞᆶ 아래 새ᄅᆞᆯ 보고 워기는데 이가 다가와 짓글히ᄃᆡ,

쥭어라쥭어먹혀라먹혀이히히.”



삼삼오오 모여 짓걸이는 꼴이 역력하나 지금 뵈는 광경만치 역력하지는 않으니당신의 존재가 나와 맞닿은 까닭이라당신은 나보다 너른 존재이니 잘 아시리라내가 당신께 미치는 힘이 벼룩의 간만큼도 못함을그러니 나는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니,

죽여라죽여먹어라먹어이히히.”

 


너는 푸르른 나무 아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다가 너는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자 서둘러 일어섰는데들판은 싸했고 강은 졸졸 위에서부터 아래로 흘렀다계단을 올라 근처 지붕 아래에 뛰어든 너는 웃었다하하 웃었다.

이윽고 이슬비가 가득 내리기 시작했다가는 선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폭우였다너는 우산을 챙기지 않았기에 정자에 앉아 구경하던 내게로 와 말했다.

우산 좀 빌려줄 수 있어어차피 여기 계속 있을 거잖아비 그칠 때까지.”

안 돼.”

너의 귀에 들어은 나의 대답이었다너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우산이 없었다.

?”

바로 갈 거니까.”

어디로?”

집으로.”

그러나 나는 집으로 가지 않는다비가 계속 내린다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 닿지 않았다.

어디로?”

너는 다시 한번 묻는다하기에 나도 다시 한번,

집으로.”

그러나 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 닿지 않았다나는 집으로 가지 않는다너는 부러 못 들은 척을 하였다어차피 비가 그칠 때까지 여기 계속 있을 것이었기에.

바로 갈 거니까.”
하고 나는 말을 잇는다나는 부러 집으로 가지 않았다너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우산이 없었다비 그칠 때까지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그러나 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 닿지 않았다. ‘비 그칠 때까지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라는 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

그럼 딴 사람 찾아봐야겠다.”

너는 그냥 가 버린다.

 


어느새 너는 내게 이시더니 너는 내게로 다가와 말ᄒᆞ되,

이셔 주외.”

ᄒᆞ나 나는,

가요얼릉.”
ᄒᆞ고 너를 내ᄶᅩᆾ옴이엿고 나는 ᄯᅩᄒᆞᆫ 너를 바다드리고자 ᄒᆞ얏지만 죵내,

이셔 주외.”

ᄒᆞ나 너는,

가요얼릉.”

(ᄯᆞ라자블수업슨ᄯᆞ라잡기순라계속바ᄭᅱ는순라잡기)

 


하고 나는 너를 보앗스나 너는 나를 보지못하얏고 그러나 나는 네 안에 잇엇기에 이는 어긋남인 동시에 포옹이엇던 바이라하나 나는 생각하기에 대관절 네 안에 잇슨 적이 없음으로,

너는 정말 내가 아니엇고 나는 정말 네가 아니엇고…….”
하기에 우리의 비극은 시작되엇음인가.

 


우리의 방향이 맞몰린 때는 오직 단 한순간우리의 마지막 만남 때뿐이었지만 그곳에는 다른 이들이 없었기에맞닿음은 결국 흩어져버린 것이었다.

내게 우산이 없었던 그때는 같은 곳에 있었던 우리의 첫 대화에 불과했지만 너는 내게네가 나를 줄곧 바라보고 있었음을 가르쳐주었다, ‘어차피로써.

너는 나의 반대편에 있었다지하철이었다너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네 뒤의 창밖으로는 밤의 쓸쓸한 정경세상에서 가장 도시적인 정경이 빠르게 지나갔다나는 정경의 빠른 지나감 때문에 그리고 가로등 불빛의 화려함 때문에 그 정경을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없었다그러나 너너의 조는 모습만은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없었다.

너는 긴 감[]색 머리를 길게 늘여뜨리며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었다겨울이어서 불그죽죽한 체크무늬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있었고감청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눈의 일부를 가릴 정도로 기른 앞머리의 엉망인 형태가 눈에 띄었다너의 그 앞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어 주고 싶었다그러나 우리 둘 사이의 거리고작 세 걸음 남짓가 너무 멀어 나는 일어섰음에도 걸음을 내딛지 못하였다지하철은 덜컹거렸다.

역에 도착하여 나는 너를 뒤로하고 내렸다졸고 있던 너는 종착역까지 가서야 잠에서 깨었다너는 내가 언제부터 잠들어 있었던가 하며 몽롱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물론 아무도 없었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너는 위를 보았다천장이 보였다형광등 몇 개가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역 전체를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빛이었으므로 주위는 어두컴컴했다.

개표구를 지나 너는 역 밖으로 나왔다선선한 바람이 네 뺨을 스치었다은은한 미소가 네 입가에 지어졌다.

 


그곳에는 아모도 업섯다형광등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넘치고넘쳣지만 그곳에는 아모도 업섯다지하철은 덜컹덜컹햇지만 너는 창밖을 본다역시 아모도 업다너는 허리를 가꾸로한다허리가 역으로 접힌다이루말할수업는 뒤틀림그것이 네허리의 이름이엇다너는 네쪽창문을 본다물논 아모도 업다너의행동은 보답받지 못하엿다.

이것은 내이야기엿을지도 모른다나는 그것을 뒤늦게 파악한다.

 


너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만다너는 한참을 안들여보다가 만다나는 너에게 묻는다: “너는나를본적이잇나요.” 그러나 너는 대답지 안는다그러나 침묵으로 일관하지도 안는다너는 상투적인 말로 내게 대답햇음이다. “아뇨.” 오호 그렇구나하나 나는 알고 잇다너의 진실한 대답을.

그러지 말구.”

그르지 마세요.”

이중적 의미는 그야말로 함축적이기에 알맞았다.

 


달이 저 높은 하늘에 잘도 떠 있었다아아 휘영청 밝아라휘영청이란 말은 참 재밌어하고 너는 생각했다그때 산들바람이 불어 네 발치의 풀들이 나부꼈다너의 긴 옷도 나부꼈다나는 마치 세상에 너와 나 단 둘만이 있는 듯했다그러나 아니었다세상에는 너밖에 없었다나는 그러한 세상을 그려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끔찍한 감정을 느꼈다하지만 그 동시에…….

이것은 그림이 아니야그렇지하므로 세상에는 너밖에 없었다휘영청이란 말은 참 재밌어 하는 네가 바로 내 옆에 있었다그러나 그 동시에…….

달은 저 높은 하늘에 절로 떠 있었다산들바람이 불어 네 발치의 풀들이 나부꼈다나는 한심했다나는 작았다그러나 그 동시에 너는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나는 너를 찾았지만 너는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그 동시에…….

너는 어느 울타리에 걸터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다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네게 하고많은 상념이 떠올랐다수많은 일들이 네 머릿속을 스치어 갔다나는 그 일들을 알 수 없었다.

네 감빛 머리칼이 휘이 나부꼈다.

 

나는 아직도 학교에 있었다딴 사람들은 이미 하교하거나 퇴근해 없었다정문도 뒷문도 잠겨 있었다.

조금 어둑했다또다시 비가 오려나 하고 고개를 쳐들어 구름을 살폈다먹구름은 없었다.

에이 가자.”
하고 나는 너를 포기했다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볼 수 업섯다맹목적이엇다너를 기다리던 나는.

허나 너는 계속 기달렷다영원히 나를 기달렷다어ᄶᅢ서나는 묻는다허나 너는 그냥.”이라고 말할 ᄲᅮᆫ. “그냥이라고만 말할 ᄲᅮᆫ…….

엇저면 너는 나를 줄곧 바라보고 잇엇는지도 모른다차라리 너는 나를 줄곧 바라고 잇엇는지도 몰른다.

내 말을 들어 줘요내 말을 들어 줘요.”
하며.

그러나 나는 그런 너의 말을 들은체도 않고 길을 지난다구걸하는 너를 지나고 「콩크리트」로된 길을 걷는다걸음에는 반듯이 ᄭᅳᇀ이 잇지만 길에는 ᄭᅳᇀ이 업다나는 내 발의 물집이 터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계속 ᄯᅡᆨᄯᅡᆨ한 길을 걷는다.

 


우리는 멈춰 있다무의미한 하늘을 빙글빙글 돌며 를 지껄이고 있다너의 발밑에는 수많은 동물의 사체가 있다.

달이 아름다이 밝다.

 


사실 기다림이라기보단 망설임에 가까웠다언제 떠날까 하는 망설임에 가까웠다그래그렇다.

졸업하기 직전에 나는 너를 추억했다추억 속에서 너는 그렇게 밝을 수 없다축축한 눈가에 발그레한 뺨이 그렇게 예쁠 수 없다그러나 나는 그런 너를 저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다부끄러웠던 것일까아니다나는 그저 싫었다네가 그저 싫었다.

다른 추억 속에서 너는 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휘 밝은 너를 나는…….

 

너는 시간이 너무 늦었음을 깨달았다어디 하루 묵을 곳을 찾아보지만 쉽지가 않았다애초에 돈이 없었다지갑도 휴대전화도 집에 두고 왔었다.

결국 너는 어디 공원에서 노숙을 하기로 했다공원에는 마침 적당한 장의자가 몇 개 있었다.

너는 장의자에 몸을 뉘었다가로등이 네 머리의 옆을 비추었다주변에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 달이 잘 보였다.

너는 눈을 감았다춥거나 하지는 않았다편안한마치 우리 마음속 고향의 푸르른 들판에 큰대자로 들어누운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는데 저 멀리서 사박사박 발소리가 들려왔다게슴츠레 눈을 떠 발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보니사람이었다.

그는 어딘지 허름한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고운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힘든 일이라곤 손도 대지 않은 듯한 깨끗하고 고운 피부……마치 강렬한 불협화음이 사람으로써 표현된 듯했다너는 누운 데서 일어났다.

이윽고 그 사람은 멈춰 섰다공원의 중앙쯤 와서였다.

(찾았었고잡았었다.)

그는 불현듯 조끼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색종이 하나를 꺼내더니종이접기를 하기 시작했다접는 과정이 왜인지 익숙했다언젠가 어딘가에서 많이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보아 온 종이접기였다그것은 접는 사람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그의 접는 과정 자체에서 비롯된 듯싶었다.

종이는 인제 네모가 아니었다일련의 과정으로써 흰 종이 비행기로 일변한 것이었다흰 종이는 가로등의 빛을 받아 달처럼 빛나고 있었다.

 


흰비행기가하늘을지난다.

거지를지나듯이

하늘을지난다.

 


삶에 우리 두 사람은 엮였음인가나는 고민하지만 결국 일어서기로 한다.

 


달빛이 날아가는 종이 비행기를 파랗게 비춘다너의 시선은 종이 비행기에서 벗어나지를 않는다종이 비행기가 달과 같은 하양을 띠고 있었던 까닭이다.

곧 비행기는 나아감을 멈춘다추락한다고작 십 미터 남짓한 거리를 비행기는 날았다그는 비향기가 추락한 자리로 뛰어간다비행기는 아직도 달빛을 받고 있어 파랗다.

너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수많은 별이 까만 하늘에 마치 반짝이처럼 흩뿌려져 있다잘도 떨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안녕.”
하는 말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뒤를 돌아보니 비행기를 날렸던 그 사람이 장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있었다너는 조금 놀랐지만 대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녕하세요?”라고인사를 건넸다그러자 그는,

안녕 못 해.”
하고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했다.

어머.”

비행기가 잘 안 날아갔거든.”

그렇군요.”

어떻게 하면 더 잘 날릴 수 있을까?”

글쎄요좀 더 세게 던지면?”

해 봤는데오히려 더 못 가더라.”

각도가 뭔가 잘못된 거 아녜요?”

아마도 그렇겠지그런데 그 각도를 잘 잡는 게 여간 어려워야지.”

그건 연습하면 나아질 거예요.”

그래서 연습하는 중이다.”
하고 그는 다시 공원의 중앙으로 가 종이비행기를 접고 날렸다그것이 바닥에 떨어지면 주머니에서 종이를 하나 더 꺼내 다시 종이비행기를 만들었다그러고는 다시 날렸다……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잠기운이 좀 가시고 나서야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나는 아무래도 몽중(夢中)에 공원에 가 평소 하던 대로 종이비행기를 접고 날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의 그런 광경을 어느 학생이 지켜보고 있었다왜인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날던 비행기가 또다시 떨어졌다.

 


일어날 시간모두가 일어날 시간그러나 나는 일어나지 않으니늦잠꾸러기는 아니고 다만 올빼미인 까닭이라미네르바의 올빼미인 까닭이라.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헤겔의 것이 아니고 차라리 데카르트의 것이기에 나는 꿈속에서도 포조의 하인 럭키마냥 생각을 내뱉는 것이리니, “××× 씨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이것이 있고 저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있고 하기에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합목적성을 지니는……” 함이라.

그러한 까닭에 나는 전연 알지 못하는 것이라바깥에서 무엇이 어찌 되고 누가 어찌 되고 정세는 또 어찌 되고 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하나 나는 만족하는 것이라나의 꿈속 세상은 너무도 광대하고 창활(昌闊)하여 질릴 새가 없기 때문이라.

한편 나는 고개를 쳐들지 않음이라꿈속 하늘에는 아주 무서운 것이 있는 까닭이라그것은 너무도 괴악한 생김새를 지녀 보기만 해도 오줌을 질질 싸 버릴 지경이 되는 것이라고 들은 바 있음이라.

(그것은 실상의 정경이라.)

 


나는 뒤늦게 잠이 들었다꽤 오랫동안 밖에 나가 있었던 때문인지 잠이 달콤했다그러나 한편으론 네 걱정이 되었다그리 잠들어서 혹여 큰일이 나버리는 건 아닐는지물론 그런 걱정은 몰려드는 잠의 강압성에 비할 바가 안 되어서내 정신(精身)의 눈은 그 강압적인 무게에 스르르 감기어 버린 것이었다.

어둠이 찾아왔었다고깃덩이로 뒤덮인 어둠 속에선 보통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그것은 틀린 상념이다그런 어둠 속에선 물론 강렬한 시각의 잔상이나 형형색색의 선형 구조도 보이는 법이지만 역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바로 허상이다맺히지 못한 상의 설운 목마름이다.

너 역시 그런 목마름을 몇 번 들었으리라그 무너진 하늘인 듯한 검은빛 발성을 말이다아니라고안 들었다고그것이야말로 아니다너는 들었다너는 분명 들었다.

나에게도 그 발성이 찾아왔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어날 시간모두가 일어날 시간.”

 


진작 영원한 비행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결론지었으면서 내 손은 끊임없이 시도를 목말라하는 것이었다하나 그런 한심스러운 짓거리도 이제 마지막이다이것이 마지막 시도인 것이다하며 나는 종이비행기를 날렸다날린 쪽으로 센바람이 불었다종이비행기는 휘 부는 비행기의 한 좌석에 앉아 날아갔다.

 


꿈속에서 너를 본오라마치 영화를 관람하듯이 너의 생활을 관람한오라푯값은 싼이라열다섯 시간의 수면 시간그뿐이라.

열다섯 시간이 비싸다고 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없는 것이라나는 시간이 만한오라아주 썩어 넘친오라누구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물론 내가 여느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산다거나 피곤해지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이는 그저 이곳이 꿈속이기 때문이라.

바깥보다 느린 이곳은 깊게 흐른이라함으로써 샘이 이심이라이러한 샘은 나의 심장에서 발간 모습으로 흐른이라하나 그것은 단지 눈 깜빡할 사이의 환상일 뿐임이라너의 모습마저 그저 환시일 뿐임이라…….

 


일어났다꿈을 꾼 듯하기는 하지만그 꿈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전연 기억나지 않았다.

양치를 했다잇몸이 좀 아팠다거울에는 내 모습이 비쳤다안경 벗은 나는 썩 잘생겼다아니다시 보니 못생겼다일 분쯤 지나고 양칫물을 뱉었다입을 헹궜다혀에 치약 맛이 계속 남아 있었다.

나만 쉬는 날이라 집안에는 아무도 없어불 꺼진 거실에는 금붕어만이 움직이고 있었다나는 금붕어가 있는 어항에 다가가그것을 통통 두드린다금붕어들은 깜짝 놀란 듯하기도 했고 무심한 듯하기도 했다귓가에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리인지 차가 지나가는 소리인지 모를 것이 왱왱거렸지만 사람은 없었다나만 쉬는 날이었다.

쉬는 날에는 할 것이 없다그래서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무작정 밖엘 나갔다어제의 그 우중충한 하늘은 일절 없었고다만 푸르고 탁 트인 하늘만이 있을 뿐이었다나는 그 하늘을 마냥 치어다보았다조각난 구름들이 바람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문득 종이비행기가 떠올랐다누군가가 날린 그것은 잘도 바람을 따라 비행하고 있었다훠이 훠이 새야 날거라…… 새이야 새이야……그러나 새는 한 마리도 뵈지 않았다.

 


나는 벙쪄 있었다십수 년간의 염원이 이렇게 허무하게 이루어졌다니그림의 떡을 먹는 듯했다.

멀리도 날아가네요.”

구경하고 있던 학생이 말했다종이비행기는 인제 너무도 멀리 있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러네.”

달이 아름다이 밝은데 나는 참 겨우가지만치 초라했다너는 초라한 내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는지하며 나는 뒤늦게 후회하는 것이었다.

 


()약기운에 몽롱한 상태로 네게 편지를 쓴온이라.

만일 네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정말 좋을이라그러나 분명 닿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이리 편지로 보냄이라.

잘 지낸으냐나는 잘 지낸오라작월에 내가 보낸 편지가 있던데내가 그걸 잘못 보지나 않았는지 걱정된오라.

내 이리 편지를 써 보내는 이유는다름아닌 네가 새로이 시작하더라는 소식에 걱정이 되어서이라네가 새 삶을 시작하더라는 소문에 걱정이 되어서이라.

임아내 걱정은 어차피 안 할 테니 걱정 말라는 소린 말오라다만 내가 널 걱정코 있음만을 알아 줬으면 싶은오라.

……(후략)……

 


보이지 않는 새는 어디로 가는가나는 무슨 답을 할 수 없었다말문이 막힌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나는 정말 안다네가 사라졌음을.

(사이광고광고의 중간중간은 아무것도 없다.)

 


너는 어느 편지를 받았댔다빨간색으로 쓰인 소름돋는 글자들너는 그것들이 무섭댔다나는 모르겠다그런 것들이 무서운지.

너는 나를 찾아왔다아니지내가 너를 찾아왔다너는 항상 공원에 있었고그 공원에 찾아오는 사람은 나뿐이었다공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라진 공원인적이 끊긴 공원오직 나만이 갈 수 있던 공원그곳에 너는 침입하였다너는 노란빛 옷을 입은 침입인이었다그러나 그 동시에 너는 침입인이 아니었다너는 침입하지 아니하였었다너는 오히려 나를 침입자로 생각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그 까닭은 네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도망쳐나온 참이었음이다.

너는 그 사람이 편지를 보냈고그 사람이 자기를 틀에 박아 넣었다고 했다어떻게 박아 넣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너는 대답했다.

우산을 씌어 줬어.”

나는 당최 이해가 안 되었다.

 


검은빛 무대 위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나는 길을 걷다라의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걸음이러라.

얼마 만에 바깥으로 나온 거지.” ― …….”

이야 삼 년 만이군.” ― …….”

삼 년 새에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어그렇지 않아?” ― …….”

너는 침묵하더라나는 참을 수가 없다라그러나어떻게나는 참지 않는 법을 모르다라너무도 오래 참고 있다라몸의 한 구석도 남김없이 수동적인 인간이 되고 말다라.

이야 얼마 만에 바깥으로 나온 거지.” ― …….”

십 년 만이군아마.” ― …….”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 ― …….”

(그러나 헛말이라헛발채기로 나는 그만 고꾸러져 버릴 양한이라.)

이 얼마 만의 바깥이냐…….” ― …….”

원래 저곳에 건물이 있었든가내 기억상으론 저기가 분명 산이었는데…….” ― …….”

저기는 옛날 그대로군조금 낡아 버린 것만 빼면 기억과 똑같애.” ― …….”

(그러나 나는 아직 꿈속이라꿈속에서 미망하는 새[].)

 


몰래금 설치한 나의 비밀스러운 동화(動畫)를 들여다보았다네가 비치고 있었다투명함에 둘러싸여 너는 비치고 있었다.

너는 나를 보고 있었다화면 너머를 꿰뚫듯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조금 식겁하였다그러나 안녕하는 나의 인사에 너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마치 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듯이분명 들을 수 있으면서.

하나 나의 헛소리다귀담아들을 필요는 하등 없는 나의 헛소리다나는 이렇듯 자기 말이 온통 헛소리뿐임을 알면서도헛소리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汝 꽤 멀리서 왔어요멀리라 해 봤자 서울 끝에서 끝 정도일 테지만.

余 어디서 왔는데?

汝 글쎄요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余 여기 올 때 항상 지하철 타잖아.

汝 무의식적으로 타거든요.

余 아무리 그래도 보통 자기 타는 역쯤은 기억하지.

汝 제가 워낙 생각이 짧아서요.

余 그쯤 되면 그냥 생각이 없는 거 아냐?

汝 그럴지도요.

 


汝 …….

吾 나를 기억하니?

汝 아뇨.

吾 편지 계속 보냈잖아.

汝 …….

吾 아무리 그래도 이쯤 보내면 기억해야지.

汝 당신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吾 나의 실제를 보길 주저하는 게 아니고?

汝 그럴지도요.



그리고 이조차 헛소리였기에 나는 너의 비밀스러운 동화를 그만 부수어 버렸다어차피 이조차 헛된 것이었다.

검은 눈물이 흘렀다탄내가 났다탄내의 속에는 엉큼한 분홍색이 있었다내가 여지껏 그려 온 너의 피부색이 있었다달콤했다설탕 타는 냄새가 났다.

지하철에서 본 후로너는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몇몇 사람이 지하철역에서 널 봤다고 했다나는 지하철을 별로 타지 않아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내 동화에 따르면그것은 사실이었다너는 하루도 빠짐없이 역에 가 ×호선을 탔다하행열차우리네 얕은 고장은 노선의 끝자락에 있어서잘만 타면 금방 종착역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종착역에 도착하여 너는 내렸다그 사람과 만나는 것은 밤의 일이었지만도착한 너는 아침 하늘을 보았다시간을 착각한 것이었던가아니다그저 네 저릿한 눈빛의 표출일 뿐이었다그렇기에 너는 곁에 사람 한 명 두지 않은 채 홍등광협로(狹路나돌듯 길을 걸었다나로선 너무도 먼 길을너는 걸었던 것이다.

나는 너와 학교를 겹치어 본다학교에는 네가 있었고너는 학교에 있었다그러나 너는 지금 학교에 없다있으려야 있을 수 없다너는 학교란 데를 졸업하였기에하기에 내 겹침은 그저 망상으로서만 종결된다헛되이아주 헛되이.

 

네게는 사람이 없었다나는 네 곁에 사람이 있었음을 부정한다내게 너는 그저 외톨이였다외톨이여야만 했다그래야 나는 너와 동일선상에 있을 수 있었다.

외톨이인 너는 학교가 파하자마자 곧장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지하철을 기다리느라 학교에 남는 날이면나는 종종 도서실 창문을 통해 네가 하교하는 모습을 내려다보곤 하였다썩 높은 층에 있는 도서실이었기에 사람들이 전부 검은빛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너의 머리칼만은똑같은 검은빛인데도 불구하고 참 잘만 보였다.

그러나 흑점형(黑點形)의 너는 금방 사라져 버렸다내가 보려야 볼 수 없는 곳으로 행하여 버렸다나는 네가 없는 학교에 홀로 남겨져외사랑을 하였다.

(자랑스럽고 소름 돋는 나의 첫사랑.)

 


汝 아저씨랑 있으면왜인지 마음이 편해져요.

余 내가 어떤 사람일 줄 알고?

汝 노숙자 아녜요?

余 내가 노숙자처럼 보여?

汝 아뇨.

余 …….

汝 하지만 왜인지노숙자 같으세요.

余 칭찬은 아니지?

汝 칭찬이에요제 나름의 칭찬.

余 별 칭찬을 다 듣네애최 칭찬을 받아 본 적이 별로 없긴 하지만.

汝 그래요?

余 받을 만한 일을 별로 안 했거든해 줄 사람도 없었고.

汝 지금은 해 줄 사람이 있으세요?

余 물론 있지어머니친구들지인들……너는 있고?

汝 글쎄요절 칭찬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많긴 해요그런데……

余 칭찬을 잘 해 주진 않는다?

汝 왜인진 모르겠지만요.

余 부끄러워서 그래다 어른이들인 거야.

汝 아저씨도 어른이시잖아요아니어른이이시잖아요.

余 나도 어른인 동시에 어른이이긴 하지칭찬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받는 거든하는 거든.

 

(사이)

 

汝 ……성숙해진다는 건 뭘까요.

余 글쎄다성숙한 사람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는데너는 밤마다 공원에서 종이비행기나 날리는 사람한테 대체 뭘 물어보는 거야?

汝 성숙한 사랑이란 건 또 뭘까요.

余 갑자기 웬 사랑?

汝 아는 사람이 누구랑 사귀고 있거든요.

余 이런 건 꼭 자기 이야기던데.

……

 


보일 수 없더라나는 너에게너는 나에게 보일 수 없더라네가 나를 보지 않던 때문이라허나 나ᄂᆞᆫ.

흐들흐들ᄒᆞᆫ 수면ㅅ아래가마ᄑᆞᄅᆞ래ᄒᆞᆫ 그림제우리는 서르를 울힌오라ᄒᆞ나 나는.

말장난. ‘모든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너는 너무도 어린이라(둘 모두의 의미로). 나는 이러한 연유로 네게 다가가지만 바닷속 너는 너무도 찬란하던이라. (그러하외정말로하매 이시어 주오이나는 ᄀᆞᆯ온이라.)

汝曰 죽으면 어떻게 돼요?

吾曰 서서히 굳어가지물질이 되어 가는 거야영혼이 빠져나가고볼이 옴폭해지고살이 썩어 가고…….

汝曰 …….

吾曰 무섭니?

작디작았던 너너는 그 무엇이러니 나는 너를 본오라다시 한번의 봄[]은 회상이러라.

 


汝 착각도 유분수지.

我 대체 뭐가 착각이라는 거야우리 분명……

汝 너는 자기 믿음 속에 갇혀 있을 뿐이야.

我 ?

汝 다 네 착각이라고지금껏 네가 말한 모든 게.

我 …….

汝 내가 너를 기다려개소리 좀 작작 해난 너에게 정말 아무런 관심도 없었어그저 같은 반 애들 중 한 명으로 생각했었다고그런데 넌대체 뭔 지랄이야그게 범죄인 건 알아?

我 미안……

汝 그뿐이야지금껏 네가 한 짓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진 알아정말 미칠 지경이었어항상매일매일 네가 듣고 있지는 않을까또 어디에 카메라를 숨겨 놓진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그런 생각이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하루하루가 불안해서 미쳐 버릴 것 같아아니이미 미쳐 버렸는지도 몰라불을 끄고 주변이 온통 어두워지면 머릿속에서 환청이 들려와나를 잊었느냐고다 네 탓이라고지금이라도 네게 싹싹 빌라고 하는끝없는 환청……너는 그 환청을 들어 봤어들어 봤냐고.

我 정말 미안해난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그냥 네가 걱정돼서…….

汝 같잖은 변명 하지 마나를 감시하고 싶었던 것뿐이잖아네 같잖은 욕구를 채우려고.

我 아니야나는 정말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아니라……아무튼 제발 믿어 줘그딴 더러운 욕구 때문은 아니었어.(그 비밀스러운 화면에 비치던 너는 너무도 반짝였다.) 믿어 줘…….

汝 대체 내가 왜네 행동은 더럽게밖에 보이지 않아누가 봐도 넌 그냥 의심할 여지 없는 쓰레기이고범죄자라고 낙인찍혀 사회에서 매장당할 새끼야.

我 난 정말 네가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지하철에서 잠든 걸 보고무슨 호된 일이라도 당하면 안 되니까.

汝 여기가 무슨 슬럼가야아니지아무리 치안이 안 좋은 곳이라도 지하철에서 잠든다고 반드시 뭔 일이 일어나진 않아거기다 여긴 치안이 그리 나쁘지도 않다고신문물에 적응하지 못하는 9세기 사람이라도 돼네 행동은 그냥 빼도 박도 못할 범죄야인정해.

我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도 멀어 나는 걸음을 내딛지 못하였음은 분명하다하나 그 대신에 나는 일종의 프러포즈를 한 것이었다그래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딱딱한 프러포즈를.) 아니야. (그 멋진 프러포즈를.) 인정 못 해.

汝 …….

我 인정 못 해…….

 


연락이 끊겼댔다잘 된 일이고 나는 생각했다정말 그건 좋은 일이었다그러나 무언가 어긋나 보였다너와 세상 사이에 어떤 메꿀 수 없는 틈새가 있는 듯했다또한 너는 그 틈새를 계속 벌리고 있었다틈새는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져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게 되리라만약 실제로 그리 되면 너는 너의 행동을 후회할까하고 나는 궁금해했다.

꾸준히 너는 나를 기다렸다정말 단 하루도 빠짐없었다어떻게 나를 이리도 꾸준히 기다리는지가 썩 의문이었다그러나 나는 부러 묻지 않았다홀로 벤치에 앉아 있던 너의 그 갈 곳 잃어 두려워하는 표정을 나는 언젠가 흘끔 보았었다.

물론 후련했지만조금 아쉽기도 했어요.”

할 말이 더 남았던 거야?”

그것보단말할 감정이 남았었어요.”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다고?”

.”

나도 가끔씩 그러지.”

아저씨도 화낼 때 있어요?”

너무 당연한 질문 아니냐?”

그렇긴 하네요.”

어쨌든물론 있지.”

뭐 때문에 화내셨는데요?”

친구가 내게 청첩장을 보내서내게 남은 마지막 친구였거든걔 말고 다른 친구는 죄다 지 가족들이랑만 두런거렸는데인제 걔도 지 가족이랑만 두런거리게 되었으니…….”

고작 그거 때문에 화내신 거예요외로워서?”

그렇지 뭐해도 술자리에서 화냈으니 망정이지결혼식에서 난장판을 쳤으면 어우말하기도 싫네.”

얼마나 화를 내셨길래요?”

음식도 쏟고 병도 깨지고…… 그만한 난리도 없었지다행히도 친구가 사람이 좋아서아주 관계가 끊어지거나 그러진 않았어그런데 왜 이리 캐묻는 거냐?”

그냥궁금했어요어른도 화를 낼 때가 있나 해서.”

어른이라고 화를 안 낸다는 건 또 어디서 나온 말인지화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너네 부모님은 화를 잘 내시는 편이셨니?”

아뇨별로요좋은 부모님이셨어요좋은 부모님이셨는데…… 굳이 더 말을 하고 싶진 않네요.”

왜인지 어른스럽네.”

그런가요?”

적어도 나보단 어른스러워.”

어디가 말예요?”

여기가.”
하면서 나는 나의 측두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검지 않다는 게.”

 


(종내 닿지 않았다.

…….

그러니 부모로서 말한다.

종내 닿지 않았다.

…….

낭비일 뿐이런가.)

 


그를 언급하는 일은 결국 사라졌다그러나 연애에 관한 이야기는 오히려 늘어서연애라곤 대학생 때 몇 번 치기로 해본 게 전부인 나로서는 이야기가 조금 거북살스러웠다때문에 나는 저기,” 하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너에게 말을 걸었다.

왜요?”

나랑 말하는 거지겹지 않아?”

아뇨재밌어요.”

대체 어디가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느니 하는 이야기에 뭔 반응도 안 나오는 대환데.”

그런 게 가장 재밌어요…….”

너에게서 나는 학대의 흔적을 엿본 것이었다그러나 나는 사실을즉 나의 시선을 네게는 부러 말하지 않았다보통 그런 유의 아이들에게 연민을 보이는 건 오히려 독이 된다고 어디서 주워들었던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는 사실 너무도 잘못된 접근법이었다특히 너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는.

 


내가 빛을 잃었을 제 너는 그저 보송한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 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너는 아으 이 얼마나 참한 모습이냐.(나는 그러리라고 믿는다.) 내 빛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네 모습은 정말그다지도 어여쁠 수가 없었다물론 내 자식이라서 그랬겠지마는…….

나는 아직도 그 새천년을 기억한다북극성을 중심으로 전회하던 너의 별자리를 기억한다너는 내게 운명을 주었다그것은 새로운 운명이나 신항로(新航路따위가 아니었다그것은 나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인그렇기에 새롭지도 구면이지도 않은 운명이었다.

너도 알듯이 운명은정말 시나브로 찾아와선 또 시나브로 사라지는 것이다우리는 그 운명을 어떻게든 잡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닿을락 하면 떠나고 또 닿을락 하면 떠나는 게 그 본성이라다만 시선을 둘 수만 있을 뿐그 하얀 광원을 우리는 결코 잡아낼 수 없는 듯싶다하나 나는 이 운명이라는 것을피부가 다 해지도록 좇고 또 좇다 보면 언젠가는 쟁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이유인즉 너의 성장그뿐이다정말 그뿐이다.

너는 날이 갈수록 성장해 갔다어머니 없이도 쑥쑥 잘만 크더라나는 그런 네가 자랑스러웠다그런 네가 장했다그러나 내 행동은갈수록 내 마음과 반대가 되어 갔다너에게 대한 나의 태도가 점점 더 냉담해져 간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네게 사과해야 하겠다나는 너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 주지 못하였고그것도 모자라 너로 하여금 내가 널 미워한다고 생각하게까지 하여 버렸다뒤늦게 나의 잘못을 깨달았지만때는 이미 늦었더라하기에 이 과오를 나는 내 명이 다할 때까지 간직하기로 하였다끊임없이 괴로워하며그래그 대상이 될 사람이 죽어버렸단 듯이 속죄하려던 것이다.

 


誰 차라리 싸구려 신파 영화 속이기를하고 생각했어울음소리뿐인 지루한 십 분이 지나고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이 시간이 끝나는 거지관객 대부분은 하루이틀 후엔 영화의 내용을 완전히 잊을 거야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지게 될 거고그러면 마침내는나조차 자기를 잊게 될 거야.

誰 이미 너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없어애초에 있던 적이 없었어다들 제멋대로 자기들만의 너를 상상해 낼 뿐이었지.

余 어른스럽네.

示 전혀요.

 


……그럼에도 너를 알고 싶었다다른 것은 어찌 되든 좋았다어찌 되든 좋으니너를 돕고 싶었다.(오지랖이니 뭐니 해도 좋다실제로 나의 행동은 오지랖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입을 뗐다.

몇 살이야?”

너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지도 않고,

열여섯 살이요.”

만 나이가?”

세는나이로.”

생각했던 것보다 어린데.”

몇 살이라고 생각하셨는데요?”

열아홉 정도.”

그렇게 늙어 보여요?”

열아홉이 늙은 거면 난 무슨 송장이냐?”

송장이죠.”

얘가,”
하고 나는 뭔가 말을 더하려다가 웃음보를 터뜨려 버렸다그 꼴을 너는 웃음기 없이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메마른 표정이었다.

 


……

하나 나는 지금생기가 얼마 남지 않은 때에서야 깨달았다나의 직접적이지 않은 속죄 방법은 잘못된 것이었음을그래내가 아무리 처절하게 속죄한다 해도그 목소리는 네게 닿지 않는다목소리를 내지 않으니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나는 너에게 또 한 번 사과하여야만 한다.

그러니 사과한다

너의 마음을 지나쳐 버린 것에

나의 마음을 속인 것에

너를 너로서 생각하지 않은 것에

나를 나로서만 생각한 것에

 


저의 종아리를 파랗게 물들인 것에

저의 눈을 빨갛게 물들인 것에.

당신은 저를 미워하셨기에 이리 눈물을 흘리셨으니

저 또한 당신을 미워하기에 이리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저는 당신을 미워하는가그렇다반은 당신의 죄 때문에나머지 반은 당신의 속죄 때문에.

당신은 이를 아는 둥 모르는 둥 눈을 감았다.

 


너는 그러나 너 자체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었다즉 너의 생일너의 집너의 가족은 알려줄지라도 너의 성격너의 취향너의 생각은 전혀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네가 알려주지 않는 것을 궁금해하였지만부러 그들에 대해 물어보지는 않았었다그러나 그때부터는 달랐다그럼에도 나는 너를 알고 싶었기에…….

하기에,

왜 나를 자꾸 찾아오는 거야빈말이라도 괜찮으니 답을 좀 해 줘.”

그게 궁금해요?”

.”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요?”

그냥 궁금할 뿐이니 꼭 중요한 거라곤 할 수 없지.”

그러면대답 안 해도 되죠?”

되긴 되는데…… 왜 이리 대답을 피하는 거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아저씨한텐 말하기 싫기도 하고.”

뭣 때문에?”

당신이 저를 기다려 주기 때문에.”

너는 그러고 나의 눈동자에 시선을 맞췄다나에겐 없는 어떤 것을 너는 보고 있었다거짓부렁으로 점칠된 우리[吾等]였다.

 


너는 정말 나엿고 나는 정말 너엿고…….”
함에서야 우리의 희극은 시작함일가.

아니리다이리하얏다 해도 우리는 정말이지 피 한방울 안 석긴 남남임에는 변함이 업기에.

하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얏슬가흐리어가는 의식속에서 나는 생각하얏다물논 답은 나오지 안앗다영원한 하양에서 나오지 안앗다…….

 

아으 어ᄶᅵ 그리도 비극적인 결말일가하고 말하니 너는마치 고요한 극장인듯 묵묵하얏다눈물 한방울 안 흘니며……막은 내려간지 오래엿다결말은 나의 종명(終命)이엿다진작에 내어진 영결(永訣)이엇다.

내가 눈을 감을 제 너는 무어라 말햇든가

밉더ᅌᅵ요.”
하더라.

……ᄭᅳᇀ으로 나는 사라졋다.

 


그것은 분명 진심이었다그러나 반쪽짜리 진심이었다즉 꾸밈없는 심()이긴 하였지만 망설임없는 진()은 아니었음이다.

(후회에 대하였었다.)

저기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얘기 들어 보니까그래도 쌌던 것 같은데.”

그렇죠?”

(까닭에 대하여외면은 아니었다과장도 물론 아니었다나의 눈으로만 판단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라고 말하려 했지만거짓임이 분명하였기에 실지로 행하진 않았다다만 그 대신,

아저씨는 제가 왜 여기 온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그 물음에 조금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해도 돼?”

되다마다요.”

……집안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너는 그 말을 듣더니 풋 하고 비웃음을 냈다그러곤,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

웃기지도 않네…….”

그녀의 눈동자에 언뜻 실망이 스쳤다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그게 아님 뭔데학교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왜요학교 일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거였으면 학교 일을 편하게 말하진 않았겠지.”

괜찮은 척한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끝이 없지뭐가 진짜인지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려.”

그래도…….”

너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나는 장의자에 앉아 묵묵히 앞을 보고 있었다어째선지이런 시간의 끝이 다가오는 듯했다.

줄곧 나는 서툴렀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나는 를 떠났다와 더 있으면나도 그처럼 세상과 괴리될 것 같았다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와 함께 있음으로써만와 같은 장의자에 앉음으로써만나는 세상에서 괴리되지 않을 수 있었다세상에 의해 이해될 수 있었다…….

 

역을 떠나오면서나는 내가 갈 데가 없음을 깨달았다그래이제 학교도집도공원도 없었다나는 더 이상 가 아니었다그저 일 뿐.

爾 그저 일 뿐이라…….
하고 나는 어떤 말을 덧붙이려다가 만다.

爾 나를 라고 불러 준 사람이 있었던가.

있었다 해도 나는 지금 기억하지 못하기에 무용(無用)하다.

爾 모든 사람이 다 이런 걸까다 나처럼 로서 불리지 못하는 걸까?

그러하리라.

爾 그렇다면 나는 왜남들도 다 겪는 걸 못 견디어서……?

(나는 누구 한 명 찾을 수 없었다누구 한 명 뵈지 않았다내가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 했기에?)

爾 ……[]도 혼자일가?

모른다여지껏 내게 하였던 말이 온통 거짓부렁일 수도 있고내가 공원을 떠난 이후 새로운 만남을 가졌을 수도 있다그러나역시 나는 모른다그를 모른다.

爾 모르는데 왜 나는 를 떠났을가?

나도 그처럼 세상과 괴리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아니다사실은너무도 두려웠기 때문이다어느 누구의 눈에 비친 나를 보는 것이그럼으로써 나는 희롱되고 결정되어 가 아닌 가 된다는 것이…….

하나 어쩌면애최 나 또한 그러한 로써 나를 희롱하고 결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 팔다리를 꺾고 뒤틀어 라는 대명사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것일지도 모른다아니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실제로그리 잔혹한 짓을 하고 있다.

爾 이러한 생각에 너는 한없이 서글퍼졌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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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되나
  • 2024-01-30
바다

〈바다〉 1“어디서 왔어?”으레 그런 것이었다.“저쪽.”나는 저곳을 가리킨다. 어렴풋이, 빛바랜 색으로 보이는 섬. 그곳에는 나의 가족이 있고, 나의 친구가 있고, 내가 있다. 그러나 그곳에 나는 없다. 나는 떠나가 버렸다. 물론, 별일은 아니다. 으레 있다.……“전학 온 지 한 달인데, 뭐 불편한 건 없니?”“딱히요.”“그렇구나. 선생님은 요즘 네가 너무 혼자서만 다니는 것 같아 걱정이란다.”“신경 쓰지 마요. 어련히 잘살고 있으니까.”“지후야, 나는 네 선생님이란다…….”다음부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과거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나를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들이 하나하나 사라져 가는 듯한, 그래서 내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는 듯한…….그러나 하늘은 푸른빛이었다. 아콰마린 따위는 보석이 아니었다. 나는 그만 그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만다. 눈앞에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 눈부셨던 하늘이.하늘은 이제 회색이다.하늘은 내게로 고갤 돌리며 말했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너무나 기가 찼다. 그러나 하늘은 맑게 개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날씨는 더 이상 비가 아니었다. 눈물이 흘러내리었다. 영롱한 보석들, 굴곡진 운율. 시적인 그의 말들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아 곧 유희였다. 하나 나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유희로…….유희란 이름이었던 듯도 하다. 아무래도 예쁘다.엉망진창이다. 발이 끈적거린다.회색 하늘에서는 이제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이제 회색도 아니다. 청색에, 맑다. 나는 맑게 갠 하늘을 치어다보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미소가 환했다. 2미소가 좋다. 은은한 것이 좋은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저 웃음이 좋은가 하면 그것도 또 아니다. 나는 그저 미소만이 좋은 것이다.하늘은 무심치 않아 죽 내 곁에 있었다. 뭉친 문장들이 풀리지 않는다. 영화 필름처럼 말끔하지가 않다. 내 곁에 있어서, 그는 있었다. 있었는가? 글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계속하여,“딱히요.”딱따구리처럼. 이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의 속에는 나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글쎄. 생각해 본 적 없어.”“내가 보기에 너는……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어.”“왜?”“선생님 같으니까!”“하하하!”순수하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하지만 이 회상은 그저 회상일 뿐이다. 필름이 망가진 다큐멘터리 영화일 뿐이다. 나는 인식한다. 3띄엄띄엄. 그것이 나의 기억이다. 망가져 있다. 무대는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진다. 나는 웃지 않는다.하늘은 여직 푸르다. 4아니다. 안 된다. 나는 떠올려야 한다.섬과 육지 사이를 뒤덮은 바다는 아주 푸르고 또 창창하여서, 그리고 광활하여서― 나는 그만 그를 모르고 만다. 모른 채 그는 나를 깜짝 놀래키려고 아주 작정을 하는 것이다.“와!”바다가 널따랗다. 널따란 바다는 나를 감싸고 있었다. 섬의 아이다. 섬이 낳았다고도 할 수 있는 아이다. 나는 편안했다. 하기에 그의 놀래킴에는 당하지 않은 것이다.솨

  • 이거되나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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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30 00: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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