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 작성자 이거되나
- 작성일 2023-11-30
- 좋아요 0
- 댓글수 2
- 조회수 573
〈바다〉
1
“어디서 왔어?”
으레 그런 것이었다.
“저쪽.”
나는 저곳을 가리킨다. 어렴풋이, 빛바랜 색으로 보이는 섬. 그곳에는 나의 가족이 있고, 나의 친구가 있고, 내가 있다. 그러나 그곳에 나는 없다. 나는 떠나가 버렸다. 물론, 별일은 아니다. 으레 있다.
……
“전학 온 지 한 달인데, 뭐 불편한 건 없니?”
“딱히요.”
“그렇구나. 선생님은 요즘 네가 너무 혼자서만 다니는 것 같아 걱정이란다.”
“신경 쓰지 마요. 어련히 잘살고 있으니까.”
“지후야, 나는 네 선생님이란다…….”
다음부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과거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나를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들이 하나하나 사라져 가는 듯한, 그래서 내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는 듯한…….
그러나 하늘은 푸른빛이었다. 아콰마린 따위는 보석이 아니었다. 나는 그만 그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만다. 눈앞에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 눈부셨던 하늘이.
하늘은 이제 회색이다.
하늘은 내게로 고갤 돌리며 말했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너무나 기가 찼다. 그러나 하늘은 맑게 개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날씨는 더 이상 비가 아니었다. 눈물이 흘러내리었다. 영롱한 보석들, 굴곡진 운율. 시적인 그의 말들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아 곧 유희였다. 하나 나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유희로…….
유희란 이름이었던 듯도 하다. 아무래도 예쁘다.
엉망진창이다. 발이 끈적거린다.
회색 하늘에서는 이제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이제 회색도 아니다. 청색에, 맑다. 나는 맑게 갠 하늘을 치어다보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미소가 환했다.
2
미소가 좋다. 은은한 것이 좋은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저 웃음이 좋은가 하면 그것도 또 아니다. 나는 그저 미소만이 좋은 것이다.
하늘은 무심치 않아 죽 내 곁에 있었다. 뭉친 문장들이 풀리지 않는다. 영화 필름처럼 말끔하지가 않다. 내 곁에 있어서, 그는 있었다. 있었는가? 글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계속하여,
“딱히요.”
딱따구리처럼. 이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의 속에는 나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글쎄. 생각해 본 적 없어.”
“내가 보기에 너는……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어.”
“왜?”
“선생님 같으니까!”
“하하하!”
순수하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하지만 이 회상은 그저 회상일 뿐이다. 필름이 망가진 다큐멘터리 영화일 뿐이다. 나는 인식한다.
3
띄엄띄엄. 그것이 나의 기억이다. 망가져 있다. 무대는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진다. 나는 웃지 않는다.
하늘은 여직 푸르다.
4
아니다. 안 된다. 나는 떠올려야 한다.
섬과 육지 사이를 뒤덮은 바다는 아주 푸르고 또 창창하여서, 그리고 광활하여서― 나는 그만 그를 모르고 만다. 모른 채 그는 나를 깜짝 놀래키려고 아주 작정을 하는 것이다.
“와!”
바다가 널따랗다. 널따란 바다는 나를 감싸고 있었다. 섬의 아이다. 섬이 낳았다고도 할 수 있는 아이다. 나는 편안했다. 하기에 그의 놀래킴에는 당하지 않은 것이다.
솨솨 하는 파도 소리는 나를 감싸 안는 듯하다.
“에잇, 반응이 없네.”
조금 아쉬운 투의 목소리다.
“내게 반응을 기대했어?”
“글쎄에.”
러닝. 정확히는, 러닝셔츠. 소년. 선생님은 아니다. 어른 역시 아니다. 그러매 나는 한번, 방파제에 걸터앉아 보는 것이다.
방파제는 차가웠다.
“옆에 앉아.”
“응.”
갈매기의 끼룩거리는 소리, 파도의 쏴쏴 하는 소리뿐이었고,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바다조차 모르게 되어버린 듯했다.
섬은 그저 있었다. 아, 섬은 그저 있었다. 나는 섬인 듯했다. 아무도 모르게.
그는 섬이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었다. 나는 섬의 아이였다. 나는.
1
학교는 퍽 밝은 곳이어서, 그곳에만 가면 애들이 아주 밝은 표정이 된다. 그럴 정도로 학생들은 밝아야 하고, 또 밝다. 나는 그런 밝음이 썩 좋기도, 그런 밝음에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과거형이었다.
나는 너울처럼 찰랑거리고 싶었다. 방죽에 앉아선 해가 질 때까지 줄곧 바다 생각을 하고 싶었다. 너울거리는 배에 서서 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싶었다. 내가 태어나고 묻힐 섬을, 죽 뻗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 꿈은 선생님 때문에 깨어지는 것이었던바, 선생님은 말했다.
“그런 꿈 말고, 네 장래 희망을 말해 보렴. 비웃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그게 제 장래 희망이라니까요.”
“그러지 말고. 제대로 말해보렴.”
하고 선생님은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가,
“지후야, 나는 네 선생님이란다…….”
나와 상담할 때면 선생님이 아주 입에 달고 있던 말이다. 지금까지도, 줄곧. 나는 이 말이 퍽 짜증스러워서,
“제 선생님이면 어쩌려구…….”
하는 것이었다.
이후는 마찬가지로 기억이 흐릿하다. 물론 흐릿해도 싸 마지않는 기억이다. 선생님은 그만큼이나 작은 존재였다.
2
순수함은 언젠가 빛이 바랜다고 어느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좀 싫었다. 계속 순수한 채이고 싶다고 어느 아이가 말한다. 나는 이조차 좀 싫다. 모두 싫으면 대체 무어가 좋냐고 물을 순 있겠지만, 나는 이런 물음마저 싫다.
하여서 나는 그 “네 집은 어디야?”라는 유희의 질문에,
“저어기.”
하며, 부러 거짓 방향으로 손을 뻗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손을 뻗어 봤자 아무런 것도 집을 수 없다. 유희도 그를 아는지,
“저기엔 아무것도 없잖아.”
하였다. 내가 가리킨 곳은 바다였던바, 당연하다.
“너는 왜 이렇게 바다에 집착하는 거야?”
여전히 유희의 말이다. 하기에 나는 여전히,
“딱히.”
하고, 의미를 종잡을 수 없는, 어긋난 답을 한다. 그러자,
“뭐가 딱히란 거야…….”
하고 유희는 곤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런 유희의 꼴이 퍽 웃겨서, 웃음소리를 풋 흘려 버린다. 그런데 유희는 그 흘려 버린 웃음이 썩 좋았는지,
“그나저나 너, 목소리 참 좋다.”
“목소리? 목소리라. 이건 또 참신한 칭찬이네.”
“그래? 난 너 처음 봤을 때 목소리 참 좋다고, 여자 여럿 울릴 목소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대화를 은근히 듣고 있던 어느 아저씨가 풋 웃는다. 나는 조금 어처구니없어서,
“‘여자 여럿 울릴’이라니, 뭐야 그게…….”
“이상한 표현인가? 아빠가 자주 쓰길래 그냥 썼는데.”
“우리 나이에 뭔 그런 표현이야. 망측해라.”
‘망측하다’라는 비아냥거림에 유희는,
“망측하다니, 우리 나이에 뭔 그런 표현이야! 하하.”
하고 맞소리한다. 나는 순간 유쾌한 기분이 든다. 대저 유희 때문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우리의 오른쪽에서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샛바람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실은 이 바람 때문임이 분명하다. 아니면 바람[所望] 때문이거나.
이 바닷바람에는 기분마저 시원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누굴 향해서든 상관없이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어서, 유행가에 바다 관련 가사가 많다거나, 사람들이 마음을 식히러 바닷가에 오는 것 따위는 모두 이 힘 때문이다. 내가 이 힘의 있음을 안 것은 정말 어릴 적의 일인데, 정말이지 유희―바다와는 한 치 겹침이 없다.
아무튼 유흰 인제야 간다. 나를 떠나간다. 갈림길이 나온 까닭이다. 나는 한번 멀어져 가는 바다의 뒷모습―바다는 신기하게도 바다의 반대편에 있다―에 대고 한번,
“내일 또 만나.”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외치는 말이었다.
3
나와 시다바리 노릇을 한다. 섬이 퍽 멀리 있으니, 매일 뱃값을 치르기보단 차라리 이렇게 하숙하며 일을 하는 게 더 낫다.
4
방죽에 앉아 갈매기의 끼룩거림을 듣고, 바다의 너울거림을 묵시한다. 하늘은 아직 푸르지만, 곧 연붉은색으로 물들리라. 하는 생각에 나는, 한번 하늘을 치어다봐 본다. 해는 아직 높고, 구름은 아직 하얗다. 나는 어느새, 손을 치켜들고 있다. 하늘을 향하여, 치켜들고 있다.
그는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한참 전에 그의 발소리를 들은지라, 저 애가 곧 내게 장난을 치겠구나 하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그를 잘못 알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장난을 쳐 오지 않아, 한번 그가 있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방죽에서 일어서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었고, 그의 눈망울은 하얗게 일렁이는 채였다. 나는 또 깜짝 놀랐다. 이는 그의 울음을 처음 보는 때문이기도 했고, 그의 잘 울지 않는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때문이기도 했으며, 이렇게나 우는데 그동안 소리 한 번 안 들린 때문이기도 했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후,
“괜찮아?”
했다. 그러자 그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응, 괜찮아…….”
했지만,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 듯했다. 나는 일단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고 그를 나름대로 위로해 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하고. 그러나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그의 울음은 더욱, 소리 없이 거세지었다. 필시 나는 위로에 서툴렀던 것이리라.
해가 지고 나서야 그의 울음은 끝맺혔다. 나는 그제야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그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그는 답하지 않았다. 종내 답하지 않았고, 종래 답하지 않았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에도, 어쩌면 그를 다시 만났을 때에도…….
밤 깊은 데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1
“요즘 같이 다니는 친구 있잖니.”
“□□이 말예요?”
“응.”
“걔가 왜요?”
“괜찮은가 싶어서. 너도 알겠지만…….”
“………………?”
“응, 그래서 말이다.”
선생님은 부끄러우리만치 당당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의 태도에 조금 구역감이 들었다.
2
바다는 파랗다. 동그랗다. 철썩인다. 나는 그런 심상으로써 멋대로 바다를 상상해 내곤 하였다.
유희는 어떠했을까. 나는 지금에서야 궁금해한다. 유희는 어떤 심상으로써 바다를 상상해 내었을까.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없다.
하여서 나는,
“이제 괜찮아?”
그때도 소리 없이 울고 있었던 유희는,
“……응.”
“정말로?”
“응.”
“진짜지?”
“응.”
이렇게만 대답하고 설명은 하지 않았다. 나는 굳이 집어 물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언젠가 저 스스로 말하겠지 하고, 햇볕에 탄 그의 몸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하굣길이었다. 유희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유희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하고 물어보았지만, 그는 내 눈과 말을 피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나를 불렀던 것 때문이리라고 어렴풋이 짐작하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선생님의 말은 이유의 일부이긴 했지만, 전체는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그의 바닷속에 가라앉아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어야 했을, 어떤 다른 이유가 있었다.
비로소 그의 바다를 탐사할 수 있었던 나는 언젠가, 지금은 내 기억 속에 조각조각 찢겨 형체를 알아보려면 그의 조각에 손을 뻗어야만 하는 유희, 내 기억 속 유희에게 물었다. 그 다른 이유를 내게 알린 이유가 무엇이었느냐고. 뭣 때문에 내게 자신의 바다, 깊숙한 심해―심장을 보여준 것이었느냐고. 그러나 물론, 유희는 답이 없다.
유희는 그제까지와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왜냐고 물었지만, 당연히도 유희는 답이 없었다. 그 답의 없음은 너무도 완강하였기에 나는 그를 놔두고 하숙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고 달이 중천에 올랐을 즈음 났던 비명 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여자의 비명이었다.
다음 날 유희는 학교에 결석했다.
3
무대에 대하여: 섬은 무대가 될 수 없다. 유희는 섬에 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지 또한 무대가 될 수 없다. 나는 사실상 육지에 발을 내디뎌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디가 무대가 되어야 하는가. 답은 단순하다. 시간이 무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은 고정적이지 못하다. 강처럼 흐르고, 바다처럼 너울거린다. 섬과 육지를 분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유희를 부른다. 목청껏 부른다. 이곳에서라면 유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는.
4
소리가 거슬린 적은 없다. 너울의 수많은 거품이 바닷가에서 부서지는 소리, 어쩔 땐 노랗고 어쩔 땐 노란 윤슬의 찬란한, 댕그르르 하는 소리. 이 소리들은 내 귀를 간지럽히었고, 동시에 내 목소리를 곱게 하였다. 또 호흡이 제자리를 되찾도록 해 주었고, 동시에 시원한 바람과 함께 땅의 소리를 쫓아내는 양했다. 그런즉 나에게 바닷소리는 물체의 찬란한 빛깔과 같았고, 수억 원이나 하는 고가의 예술 작품과 같았다.
그런데 그는 어느샌가 나의 그 가치 체계를 깨뜨려 버렸다. 바닷소리의 위상을 한껏 아래로 끌어내 버렸다. 권좌에서 끌어내려진 두령을 대하는 감각은 어딘지 야릇하였다. 그야말로 이상야릇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 바다를 마주 대하고 있다. 바다는 넘실거린다. 마치 병에 차인 물인 듯. 나는 넘실거림으로써 형성된 바다의 이랑에 손을 담가 본다. 차갑다. 감각이 깨어질 듯이 차디차다. 나는 그 차디참에 유혹되어 허리를 굽힌다. 짧은 머리카락이 찰랑이는 바다를 향해 드리워진다. 그림자도 마찬가지로 물 위에 드리워진다. 물그림자다.
물그림자는 나를 따라 한다. 내가 손을 들면 손을 들고, 웃음을 지으면 볼을 조금 부풀린다. 나의 평면적인 복제품. 나와 분리될 수 없는 철저한 복사. 복합적인 파도의 결집체, 바다. 그리고 유희. 그것이야말로 유희이기에, 사진은 푸른빛으로 바래었다.
그는 따라쟁이였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나와 같은 행동을 하는, 나의 둘도 없는 따라쟁이였다. 나는 내 따라쟁이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는 어째선지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었지만, 부끄러움을 몰랐기에 나는, 그의 붉은 얼굴을 무시하고 말았다. 누구보다 부끄럼쟁이였으면서.
하고 추억의 파편들이 널브러진다. 추억 속에서 이곳은 또한 저곳이고 저곳은 또한 이곳이지만, 내 의사와 반대되게도 유희는 내가 아니고 나는 유희가 아니다. 그럼에 나는 씁쓸함을 느낀다. 푸르고도 달콤한 씁쓸함을. 그리고 숨과, 숨에 묻어져 나오는 새파란 갈증은, 나로 하여금 지평선을 향하여 손을 뻗게 한다. 저 지평선에 내 손은 절대 닿을 수 없음을 앎에도 나는 숨과 갈증의 지시를 따른다. 왜일까. 지평선에 그가 서 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1
나는 영원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영원히 알지 못함으로써 살아간다. 만약 내게 알아야만 하는 것이 있었다면? 아아, 상상하기도 싫다. 그렇기에 나는 유희에게 부러 묻지 않았던 것이리라.
비명이 들린 다음 날, 유희는 학교에 결석했다. 애들은 유희의 앓던 누나(사실 그에게는 누나가 없었다)가 죽었기 때문이라고들, 결국 그 연애 행각이 부모님 귀에 들어가고 말았기 때문이라고들 뇌까려 댔다. 내게 이유를 묻는 자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 결석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는 바다로 떠난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목적지인 섬조차도 모르게.
그는 자신이 육지를 떠나리라는 것을 내게만 일러 주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 이름을 믿지 못하였기에, 막상 정말 떠나 버렸다는 사실을 목도하자 썩 어안이 벙벙해진 것이었다.
나는 어제의 기억을 한번 되살려 보았다: 바다는 이렇게 물었었다.
“너는 내 말을 믿니?”
나는 이 말에,
“아니.”
라고 답했었다. 바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사람 걱정되게.”
하고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헛말임을 알아챈 것은 이미 늦은 후였다.
“글쎄. 그냥 심심해서?”
하며 그는 미소지었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면 항상 미소를 짓곤 했다. 아니, 애초에 미소 자체를 그는 거짓말로밖에 이루어 낼 수 없었다. 그의 내부는 항상 눅진한 파랑으로 가득 차 있어서, 둑으로든 뭐로든 막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범람해 온 마을을 집어삼킬 듯했다.
나는 또 한 번 물었다.
“너는 이곳이 싫어?”
바다는 단박에 답했다.
“응.”
유희의 뒤, 가깝지만 아뜩히도 먼 바다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2
학교가 파하자마자 나는 선착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몇몇 뱃사람만이 방죽에 걸터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 젓다가 뒤 보니 옥문도는 저 멀리
창하여도 저는 즈으라 늬 일 아니더냐 즈으라
부연 안개에 바다는 드넓고 옥문도는 저 멀리
창하여도 저는 즈으라 늬 일 아니더냐 즈으라
……
섬과 육지를 오가는 유일한 통로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조금 의아해했지만 지금은 그따위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침몰하고 싶어.”라는 그의 나즈막한 말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관자놀이가 조금 지끈거렸다.
선착장을 살펴보았지만 유희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들여다보았지만 그중에 유희의 얼굴은 없었다. 그러나 이전에 순수함은 언젠가 빛이 바랜다고 내게 말해 주었던 뱃사람 아저씨가 보였기에, 나는 그에게 유희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또 그에게 언제부터 여기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점심 먹고부터 여기 있었다고 답했다. 나는 또또,
“근처에 선착장은 더 없죠?”
“없구말구. 저쪽 멀리에 하나 있긴 한데, 안 쓴 지 오래야. 니네 태어나기도 전에 사고가 났었거든.”
“그러면 배는 없겠죠?”
“없겠지.”
“혹시 이곳 말고 섬으로 갈 수 있는 데는 있나요?”
“사실상 없지. 굳이 멀리 있는 나루까지 갈 필요가 어딨어, 바로 앞에 있는데. 근데 닌 그걸 왜 물어보는 거냐?”
“……감사합니다.”
하고 나는 그의 집 쪽으로 달려나갔다. (침몰해서, 그래, 내 위에 흙이 쌓였으면 좋겠어.) 왜인지 아저씨에게는 유희에 관해 말하기가 싫었다.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흙은 물 밖에 얼굴을 내미는 거야.) 하늘은 아직 푸르렀다. (그리고 더 쌓이고 쌓여서는, 하나의 온전한 섬이 되는 거지. 나를 뿌리로 한, 커다랗고 푸르른 섬이.)
3
“어때? 멋지지 않아?”
“응, 멋지네.”
4
섬아 니는 어머님고 아바님고 나의 아들고
창하여도 저는 즈으라 늬 일 아니더냐 즈으라
나의 딸이고 나의 한아범고 나의 한어멈고
창하여도 저는 즈으라 늬 일 아니더냐 즈으라
……
초인종을 눌러 보았지만 누군가 문을 열어주기는커녕 인기척조차 나지 않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문을 슬쩍 밀어 보았다. 그러자 녹슨 철 특유의 끼익 하는 소음을 내면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길로 나는 집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인기척은커녕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아주 황량한 마당이었고 집의 겉모습이었다. 나는 이런 황량함에 이곳에 산다는 유희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확신했다. 정말 이런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밖에서 사는 게 더 나은 듯 보였다.
마당에도 역시 유희는 없었기에 나는 현관 앞에 섰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알루미늄의 공허한 울림이 귀에 들어왔다. 그 밖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는 듯했다.
잠시 기다렸지만 역시 아무도 없는 성싶어 발걸음을 돌려 지금은 쓰지 않는다던 그 선착장으로 뛰어갔다. 뛰어도 이십 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곳에서는 갈매기의 끼룩거리는 울음소리와 바다의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나에게 그런 해의 찬란한 몰락은, 황금빛 노을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방죽에 걸터앉아 구슬픈 가락으로 노랠 부르고 있는 유희와, 구슬픈 노래에 맞춰 파르란 춤을 추는 바다만이 보였던 때문이다.
……
아으 하ᄂᆞᆯ아 훨훨훨 날으는 사이[鳥]야 느이들 어듸로들 가ᄂᆞ냐
챵ᄒᆞ야도 쟈ᄂᆞᆫ 즈ᅀᅳ라 늬 일 앙이드냐 즈ᅀᅳ라
느이들 어듸로들 가ᄂᆞ냐 아므리 창ᄒᆞ야도 가ᄂᆞᆫ 길 모ᄅᆞᆯᄊᆡ라
챵ᄒᆞ야도 쟈ᄂᆞᆫ 즈ᅀᅳ라 늬 일 앙이드냐 즈ᅀᅳ라
……
아까 뱃사람들이 불렀던 노래와는 다르게 느리고, 또 낮은 노래. 노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으매 바다는 철썩였다. 나는 그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음에도 불그스름히 익숙함을 느낀다. 아, 이는 저녁의 놀인바 태양은 유난히도 시불그죽죽하여 바다의 노랗고 적(赤)한 윤슬을 빛내었다.
유희 너는 뒤에서 가만히 네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에게,
“옆에 앉아.”
하였다. 나는 그 말에 따라 그 옆에 앉았다. 방죽은 차가웠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흐르는 바다만을, 바다의 물결만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유희의 얼굴을 떠올린다. 유희의 앳된 얼굴을 떠올린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왜 이곳에 온 거야?”
나는 당연하다는 듯,
“좁아서, 너무도 비좁아서, 이 넓은 곳에 온 거야.”
그러나 그는,
“여기가 더 비좁지 않아?”
“비좁긴 뭐가?”
“내가.”
하곤 손가락을 내 가슴팍에 댄다. 그의 눈에 바다가 비친다. 증기선이 회색 안개를 내뿜는 바다가. 그리고 나는 방죽에 걸터앉은 유희에게,
“너는 왜 여기로 온 거야?”
하며, 적적한 침묵을 깨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넓어서, 이곳, 이 마을이 너무도 넓어서, 마치 도망칠 곳이 있을 듯했어. 그래서 도망쳤어. 이곳으로.”
“네게 도망칠 일이 어딨다고.”
“있어. 나는 죄를 지었어. 네게.”
그리 말하고 유희는 일어섰다. 내가 그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올리자 그는 내가 흐르는 눈물을 못 보도록 고개를 돌렸다. 이런 마당에 뭐가 부끄럽다고.
한참이 지나 해는 완전히 저물어 대신 달이 해의 그 자리를 차지하는바 어둑한 밤이 찾아왔다. 주변에 불빛이라곤 잠시 뒤 켜진, 저 먼발치서 보이는 어선 따위의 소박한 불빛뿐이라 전체적으론 어둑어둑했다. 반딧불은 우리네 사투리와 함께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유희는 눈물을 멈추고 방죽에 다시 걸터앉았다.
우리는 또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다가 유희가 느닷없이 말했다.
“섬은, 어떤 곳이야?”
나는 답했다.
“별거 없는 곳이야. 작은 섬이라, 슈퍼도 하나밖에 없고, 병원도, 선착장도 하나밖에 없고…….”
“그래? 그런 데서 살면, 심심하지 않아?”
“응, 심심하지. 적어도 나는 심심했어. 그래서 이곳에 온 거잖아.”
“그렇구나.”
동해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래도, 멋진 곳이야.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그럼 여기도 멋진 곳이야?”
“글쎄. 여긴 멋진 곳이라기보단, 뭐랄까, 좀 짜증나는 곳이야, 내게는.”
“왜?”
“섬 출신이라고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잖아.”
“그런 건 어쩔 수 없지. 섬 애가 여기 오는 건 흔치 않으니까.”
“그건 알지만…….”
“그래, 어쩔 수 없지.”
샛바람이 불어왔다.
“어쩔 수, 없지…….”
(그러는 유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노래할 때의 떨림과는 조금 다른 유의 것이었다.)
(나는 계속 궁금해 왔던 것을 이참에 물어보려고 했지만, 금방 포기해 버렸다. 아무래도 그걸 묻는 것은 치사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무례한 듯싶었다.)
(저곳, 지는 태양의 반대편에 위치한 그곳에는, 어렴풋이, 빛바랜 색으로 보이는 섬이 있다. 그곳에는 나의 가족이 있고, 나의 친구가 있고, 내가 있다. 그러나 그곳에 나는 없다. 나는 떠나가 버렸다. 물론, 별일은 아니다. 으레 있다.)
“…….”
(그리고, 으레 있으리라.)
(이 육지를 과녁 삼은 기만과 그 진실성 또한 으레 있으리라.)
(유희 너는 나의 영원한 이상이었음을, 나는 네게 입속말으로나마 알렸으리라.)
(그러나 너의 사라짐 이후, 내가 앉았던 그 자리에는, 샛바람만이 뒷걸음질을 하며, 그저 있더라.)
그러한바, 하늬바람은 불어오지 않았다.
하늬바람은 불어오지 않는다.
…….
불어오지 않으리라.
추천 콘텐츠
달 따윈 아파트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밤. 본래라면 어두컴컴해야 했을 길목을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두 사람은 그런 길목을 거닐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뜬금없이 말을 건다.“야야.”“왜?”“이야기 좀 해도 됨?”“뭔 이야기?”“뭐든. 근데 호응 좀 해 주셈.”“오키”“그럼 시작하겠음”“이응”……봄달이 어여쁘게도 뜬 밤이라. 불빛이 비추고 있는 거리를 어느 두 사람이 걷고 있는데, 길 양옆에 늘어선 벚나무들에 벚꽃이 정말 잘도 피어 있더라. 하나 그렇게 잘도 핀 벚꽃들 건너에 유난히 화려하게 핀 벚꽃나무 있으니, 저 그 벚꽃나무 가리키며 왈“자네 저 나무 좀 보소 건너편 집 옆에 있는 저 나무 좀 보소,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 이쁘기도 하야 이야 봄이누나 하고 절로 외치게 하구나 저 나무는. 그런데 여보쇼 밤이라 그런지 색깔이 잘 뵈지 않는데…… 저게 분홍색인가 하얀색인가 꽃빛이 헷갈리는고랴 빛색이 헷갈려. 가지가 엉기고설키고 벚꽃은 저에 줄지어 피여 있고 줄기는 이야 탄탄도 하고, 아래는 꺼무죽죽하면서 화사하고 이에 응하듯이 위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 이쁘기도 하샤 아으 봄이누나 하고 절로 외치게 하는데 밤이라 정말, 꽃빛만이 헷갈리는구려 빛색만이 헷갈리는구려.”그러자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자 왈“늬 눈이 있냐 없냐 지 앞에 있는 것도 못 보게 된 거냐 정말 눈에 뵈는 대로 하얀색인데 무슨 공연한 것을.”하니 투가 아무래도 비꼬는 투라 저 왈“에잇 헷갈릴 수 좀 있지 이 사람이……. 그리고 분홍색이든 하얀색이든 무슨 상관인가 벚꽃이긴 한가진데. 그건 그렇고 너 저 나무를 알어?”“나무가 알 게 뭐 있나.”“모르는 소릴 하네. 알 게 왜 없어? 우리보다 오래 산 몸일 텐데.”“아무리 그래도 우리보다 많이 산 나무 있겠나.”“없긴 왜 없어 천세 장수한 나무도 있는 판국에. 무식한 사람이구나 무식한 사람. 그런데 내가 말하려 한 건 그런 게 아니고, 저 분홍색인지 하얀색인지 하는 나무가”“위에서 봐도 아래서 봐도 하얀색이잖나 이 사람아.”“거 좀 다물어 보게 이 사람아. 어쨌든 저 분홍색인지 하얀색인지 모를 나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었다는 전설 아나?”“모르지 그딴 전설 없으니까.”“아잇 내 말 좀 들어 보소 거참 사람 말을 못 믿어서…….”“그건 니가 미덥지 못해서 아닌가?”“그딴 말 치우고 내 말을 들어 보라니까 이 사람이. 그래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게 무어더냐? 언제적 일이더냐? 하고 이 근처를 지나가던 한 선비가 물었더니 지나가던 농분가 뭔가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 게 아니오. 이 나무가 겉보기에는 마냥 이뻐 보이기만 하는데, 안을 보면 속이 터응 비어 있다고. 한데도 봄이 되면 꽃을 피우고 눈엽(嫩葉)을 틔우고, 여름즈음이 되면 핀 꽃은 낙화(落花)가 되고 눈옆은 또 만엽(萬葉)하고, 가을이 되면 만엽했던 것은 낙엽(落葉)이 되고 꽃은 썩어 그 자취가 온데간데없고, 겨울이 되면 끝끝내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추고 또 그나마 남겨 있던 잎도 말라비틀어지는 것이 속 꽉 찬 다른 나무들과 다를 바 없는데 거
- 이거되나
- 2024-04-28
《회색빛 골목길》 아(我) - 암캐한 블록을 가서 왼쪽으로 돌고, 이제 두 블록을 가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또다시 오른쪽으로 돌면, 내가 익숙해하여 마지않는 어느 한 골목이 나온다. 나는 이 골목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곤 하는데, 즉 “나의 골목”이라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나의 골목에는 다른 골목과는 다른,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이 골목에는 ‘그들’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가족―정확히는 나의 부모님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는, 이 골목에는 어두움이 없다는 점이다. 어두움은, 없어야 마땅한 것이다.내가 이 골목에 ‘나의’라는 관형어를 붙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한 이 년쯤 됐을까.(살아가는 기간에 비해서는 굉장히 짧다.) 내가 이 골목을 처음 발견한 당시에는, 정말 빨강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지러웠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빨강.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어지러운 점에 마음이 끌렸다. 그 끌림에 저항하지 않고 나는 골목을 꾸미기 시작한 것이었다.처음에 빨강이었던 골목은 차차 녹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바뀌어 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회색이 되었다. 이 골목이 처음 회색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내게 야유를 보내는 듯했다. 그들은 뭐라도 색이 있는 골목이 더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회색을 좋아하는 것을.회색은 색이 없으면서도 어둡지 않아서, 어렸을 적부터 죽 좋아해 왔다. 칙칙할망정 어둡지는 않다. 색이 없을망정 결코 어둡지는 않다. 그러한 회색이야말로 최고의 색상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회색이 내 골목의 색이 되었을 때, 나는 그야말로 환호했다. 어디서 파티라도 열 듯했다. 아니, 자그마하게나마 실제로 열었다. 판자 위에 빵 몇 조각과 우유 한 컵을 놓고, 두 명이서 파티를 즐겼다. 한 명은 나고, 다른 한 명은 개다. “야”라는 이름의 개.‘야’는 하얀 진돗개, 그러니까 흔히 ‘백구’라고들 부르는, 그런 시골 개다. 다른 백구들과 차이가 있다면, 조금 작고, 조금 더 아프다는 것뿐이다. ‘야’와 만난 지는 아직 한 달 정도밖에 안 되고, 당시에는 더욱이 얼마 안 되었는데, 즉 그때의 만남이 거의 초봉(初逢)이었던 것이다.“너도 먹을래?”한참 파티 중이던 내가, 멀리서 어슬렁거리던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기에 나는,“싫으면 말고.”“……으음.”그는 망설이다가, 이윽고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빵 조각을 집어 왼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에게 빵 조각을 올린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손에 주둥이를 대고, 빵 조각을 물었다. 씹고, 결국에는 삼켰다. 그의 하얀 몸체에는 앙상한 갈비뼈가 드러나 있었다.“하나 더 먹을래?”나는 다른 한 조각을 다시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가 “으응” 하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빵 조각을 내밀었다. 그는 기쁜 듯했다.우유마저 그에게 줘 버리고 나서야, 나는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는 답하지 않았다. 이름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리라고 다짐했다.‘야’라는
- 이거되나
- 2024-01-30
《爾》〈三人之爾 三者面對〉 1 我너는 사랑하다. 너는 손을 뻗다. 너는 책을 읽다. 너는 그림을 그리다. 아무도 그림을 그리지 않다. 역시나 당신은 눈을 크게 뜨다. 당신은 나를 바라보다. 나의 눈에 감추어진 우주를 꿰뚫을 듯 바라보다. 우주 속에는 우주가 있다. 대우주와 소우주. 소우주는 인간이 부재하다. 우리를 감싸고 전체에 존재할 뿐. 계속, 끊임없이 존재할 뿐…… 2 余너흘 맞남ᄋᆞᆫ 계졀조차 긔억 아니날 까맣아득히 머ᇍ 과거일디니 내 저흘 긔억ᄒᆞ며 내 녚ᄋᆡ셔 구룸을 바라보오ᇝ 젼ᄎᆞ인이라. 하ᄂᆞᆶᄋᆞᆫ 흐르고 내[川]ᄂᆞᆫ 긔 거스ᇍ쪽ᄋᆞ로 가ᄂᆞ니 록빛 ᄉᆞ과ᄂᆞᆫ 내게로 다가와 먹히는이라. 나ᄂᆞᆫ ᄭᅬ죄죄ᄒᆞᆫ 하ᄂᆞᆶ 아래 새ᄅᆞᆯ 보고 워기는데 福이가 다가와 짓글히ᄃᆡ,“쥭어라, 쥭어. 먹혀라, 먹혀. 이히히.”3 吾삼삼오오 모여 짓걸이는 꼴이 역력하나 지금 뵈는 광경만치 역력하지는 않으니, 당신의 존재가 나와 맞닿은 까닭이라. 당신은 나보다 너른 존재이니 잘 아시리라. 내가 당신께 미치는 힘이 벼룩의 간만큼도 못함을. 그러니 나는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니,“죽여라, 죽여. 먹어라, 먹어. 이히히.” 1 我너는 푸르른 나무 아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너는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자 서둘러 일어섰는데, 들판은 싸했고 강은 졸졸 위에서부터 아래로 흘렀다. 계단을 올라 근처 지붕 아래에 뛰어든 너는 웃었다. 하하 웃었다.이윽고 이슬비가 가득 내리기 시작했다. 가는 선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폭우였다. 너는 우산을 챙기지 않았기에 정자에 앉아 구경하던 내게로 와 말했다.“우산 좀 빌려줄 수 있어? 어차피 여기 계속 있을 거잖아. 비 그칠 때까지.”“안 돼.”너의 귀에 들어은 나의 대답이었다. 너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우산이 없었다.“왜?”“바로 갈 거니까.”“어디로?”“집으로.”그러나 나는 집으로 가지 않는다. 비가 계속 내린다. 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 닿지 않았다.“어디로?”너는 다시 한번 묻는다. 하기에 나도 다시 한번,“집으로.”그러나 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 닿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가지 않는다. 너는 부러 못 들은 척을 하였다. 어차피 비가 그칠 때까지 여기 계속 있을 것이었기에.“바로 갈 거니까.”하고 나는 말을 잇는다. 나는 부러 집으로 가지 않았다. 너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우산이 없었다. 비 그칠 때까지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 닿지 않았다. ‘비 그칠 때까지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라는 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그럼 딴 사람 찾아봐야겠다.”너는 그냥 가 버린다. 2 余어느새 너는 내게 이시더니 너는 내게로 다가와 말ᄒᆞ되,“이셔 주외.”ᄒᆞ나 나는,“가요, 얼릉.”ᄒᆞ고 너를 내ᄶᅩᆾ옴이엿고 나는 ᄯᅩᄒᆞᆫ 너를 바다드리고자 ᄒᆞ얏지만 죵내,“이셔 주외.”ᄒᆞ나 너는,“가요, 얼릉.”(ᄯᆞ라자블수업슨ᄯᆞ라잡기、순라계속바ᄭᅱ는순라잡기) 3 吾하고 나는 너를 보앗스나 너는 나를 보지못하얏고 그러나 나는 네 안에 잇엇기에 이는 어긋
- 이거되나
- 2023-10-29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