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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어른과 열일곱 아이

  • 작성자 shine연경
  • 작성일 2023-12-09
  • 조회수 349

있잖아, 나 진짜 신기한 걸 알아냈어.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다시 밤이되면 잠자리에 드는 게 ‘인생’이라고 불리더라. 참 놀랍지? 인생이 고작 이런 것이라니. 어렸을 땐 인생이 대단한 건줄 알았어. ‘인생 참 힘들다.’ 고 말하는 어른들은 거창한 일을 하는 건 줄 알았어. 그런데 어른이 돼 보니까 아니더라. 혹시 나만 이런 어른인 건가? 너는 어때? 어른이 될 날이 기다려지니?  그런데 어른이라고 해서 어른이 뭔지 아는 건 아니야. 너도 이걸 명심했으면 해. 그래야 성인이 되었을때 난 왜 이런 사람인 걸까, 라며 주저앉지 않을 수 있거든.

세은은 여기까지 쓰고는 손을 멈췄다. 그리고는 모든 말들을 지워버렸다. 소년 형우에게 할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사실 세은과 형우는 둘다 고3이고 같은 반이다. 그러나 세은은 생일이 이른 탓에 먼저 만18세, 성인이 되었고 형우는 아직 아니다. 그러나 세은과 형우 사이에는 이질감이 전혀 흐르지 않았다. 

“윤세은 뭐함?”

“공부하지 뭐하겠냐?”

“그딴 걸 왜함?”

“너가 할 소리냐?”

이렇듯 세은과 형우는 늘 투닥거리며 돈독한 친구 사이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세은이 갑자기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수능이 끝나고 어른을 체감해서일까? 세은은 가정 형편이 썩 좋지는 않았던 탓에 여러가지 알바를 알아보며 일자리를 전전했다. 그러나 알바 자리를 구하는 건 세은의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리다고 혹은 알바 경험이 없다고 세은을 써 주지 않는 알바도 많았다. 그런 냉대에 지쳐서일까? 어쨌든 세은은 어찌저찌 카페 알바 자리를 구하기는 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자거나 놀고 있을 때 홀로 빠져나와 일을 해야 했다.

“어디가냐?”

“알바”

“그걸 왜 함? 귀찮게.”

친구들과의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세은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카페로 갔다.

“가서 옷 갈아입고 와.”

“네.”

세은은 주인아주머니가 주시는 유니폼을 받아들고 비품실로 들어갔다. 유니폼은 작은 세은의 몸에는 약간 컷지만 흘러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번에 알려줬던 거 기억나?”

“네….”

“해 봐.”

세은은 키오스크로 온 주문을 클릭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이 아직 몸에 익지 않았기에 다른 알바생들보다는 속도가 느렸지만 나름대로 잘 해냈다. 그 후 연달아 다른 주문들이 들어왔다. 세은은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줬던 방법을 하나하나 기억해내며 카페라떼, 오레오초코 등을 만들었다. 세은의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었다.

”나 이제 가볼 테니까 잘 하고.”

“네.”

주인아주머니는 카페 뒷 문으로 사라졌다. 세은은 크게 심호흡을 했고 다음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입구에서 종이 딸랑,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세은의 반 아이들 몇명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그다지 친하진 않은 애들이었길래 세은은 가볍에 손을 한번 흔들었다. 

“윤세은 너 여기서 일했어?”

“응. 얼마 전부터.”

“오… 벌써부터 돈을 벌다니.”

그때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저게 뭐가 대단하다고. 돈 없어서 알바나 하는 거지 주제에.”

목소리의 주인은 아니꼽기로 유명한 해선이었다. 세은은 못들은 척 해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해선도 그랬다. 세은은 서둘러 아메리카노 두 잔을 내밀었고 그 애들은 음료를 받아들더니 금세 사라졌다. 그제야 세은은 몸이 약간 떨리는 것을 느꼈다. 잠시 알바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세은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러나 세은은 그 후로 음료를 잘 만들어내지 못했고 손님으로부터 핀잔도 여러 번 들었다. 

알바 교대 시간이 다 되었다. 다행이도 지안 언니는 시간에 맟춰 왔다. 세은이 이제 끝났다, 고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고 카페를 나서려는 순간.

“야, 윤세은. 나 오늘 하루만 대신해주라.”

“죄송한데 집에 가서 할 일도 있고…”

“야. 너 짤릴 수도 있어.”

“네?”

“됐어 꺼져.”

세은은 올 때보다 훨씬 더 무거운 걸음으로 나섰다. 가슴이 온통 먹먹하고 답답했다. 이곳에 다시는 발걸음을 디디기가 싫었다. 간판마저 보기 싫었다. 그냥 애초에 이 카페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일도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맘껏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세은이 세상의 쓴 맛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그 후로 세은은 어딘가 달라 보였다. 어두웠다고나 할까. 말수가 줄고 늘 의욕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매일 이 지겨운 곳을 드나들었으며 그 때마다 새로운 상처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끔은 눈물이 세은의 뺨을 타고 내리기도 했다. 알바조차 이렇게 힘든데 사회 나가서는 어떻게 살지, 란 생각도 들었다. 엄마에게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엄만 세은을 위로했지만 세은은 다 쓸데없다고 느꼈다. 쓸데없는 아픔을 겪으며 힘들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정말 ‘인생’ 이라는 것만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던 중 형우에게 연락이 왔다.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구나, 세은은 생각했다. 형우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조금, 아주 조금 힘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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