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내 삶의 작은 기억 속에 S를 주머니에 넣으며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2-18
  • 조회수 710

{위 노래를 들으며 읽기를 바란다.https://www.youtube.com/watch?v=fsMzaOtaLtQ}


현존하는 엘레지의 여왕이라 평가되는 가수 이미자의 <내 삶의 이유 있음은>에서 이미자는 본인의 인생에 언제나 노래가 있었음을 밝혔다. 누군가 내게 "위 노래를 부른 이미자처럼 너도 힘들고 기쁠 때 늘 함께 해준 것이 있니?"라고 물으면  나는 당당하게 "글 쓰기."라고 답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질문을 바꿔 "함께 해준 사람이 있니?"라고 물으면  "친구 S"라고 답할 수 있을 것같다. 


S와 나의 만남은 중2 때부터 이어졌다. 나는 중학교 3년동안 서기로 출석부를 관리했다. 그래서 난 맨 앞 중앙자리가 편했었다. 그 이유는 선생님들이 출석부를 쓰는지 않쓰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부담스럽게 만들어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반 출석부는 매일 깨끗했다. 이를 20대 담임 선생님께서 아셔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교육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1년 내내 원하는 자리에 앉게 만드셨다.  그 덕분에 나는 맨 앞 중앙자리에 계속 앉을 수 있었다.  많은 친구들은 맨 앞자리를 피하고 계속 다른 자리에 앉았지만 나와 옆에 앉은 S는 1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았다.나는 이에대하여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S에게 질문을 했다.  "S야 너는 왜 계속 이 자리에 앉아?"라고 물으니 그의 답은 "옮기기 귀찮아서 옮기지 않았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S가 내게 역으로 물었다."희찬아, 너는 왜 맨 앞 중앙에 앉는거야?" 나는 출석부 때문에 앉는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약간 어색한 대화가 오갔다. 그 이유는 아마 우리 둘 모두 MBTI I형이기 때문인 것 같다.서먹 서먹했던 우리의 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하고 취미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또한 둘이 잘하는 과목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를 보안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알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 고민상담 등을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중2의 어느 시절 우리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정확히는 나에게 고난이 찾아왔다. 그 고난의 이름은 기침으로 학교에서 지속 되는 기침 때문에 많은 걱정을 했다. 친하게 지낸 친구 사이도 멀어지고 반 친구들과 나쁜 사이가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는 나의 잡생각일 뿐이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 "괜찮아?"라고 물었다. 그럼 나는 애써 괜찮은 표정으로 "괜찮아."라고 답을 했다. S 또한 내게 먼저 괜찮냐 묻고 걱정을 해줬다.  또한 중2 시험들이 끝나고 집에 갈 때마다 "몸은 좀 어때?" 라고 물었고 나는 "괜찮아, 그리고 고마워. 시험점수도 나쁘지 않게 나와서 너무 좋아." 라고 말을했다. {그 당시 수학, 영어, 가정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이 올 100이었다.}그러면서 웃으며 지난 시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즐겼다. 기침으로 힘들었던 내 정신 세계의 일종의 빛이 되어줬다.


 하지만 우리는 중3이 되면서 반이 달라지며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이어져갔다. 그리고 나는 S 덕분에 용기도 얻게 되었다. S는 내게  스포츠 수업시간에 앉을 수 있는 용기를줬다. 중 3 때는 먼지로 인한 기침을 줄이고 공부에 집중하게 체육시간에 교실에만 앉아 있었다. 또한 내가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스포츠 시간만큼은 나갔다. 기침이 심해져도 나가서 자리를 지켰다. 그 이유는 스포츠가 맨 마지막 시간이기도 하고 S가 나의 말동무가 되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서 스포츠 시간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물론 나와 S가 이야기를 한 것은 스포츠 담당 선생님들의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린 스포츠 시간에 우리는 옛날에 하지 않았던 다양한 고민과 과거를 이야기했다. 특히 나는 용기를 내서 S에게 내가 초등 5학년-6학년 시절 있었던 우울의 암흑기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우리 가족과 S, 상담.진로 선생님과 정신과 선생님 뿐이다.} 이 시절 때문에 밝았던 E인 내가 어둡고 조용한 I가 되었다는 그런 사소하지만 내게는 큰 이야기를 했다. 이를 듣고 S는 많이 놀랐다. "지금보다 더 어두웠다는 생각을 하면 감이 잡히지 않아"라고 말하며 "지금은 괜찮아?" 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빠른 시간내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속으로 "말하길 잘한 것 같아."라고 독백했다.  S와 대화를 하면 그 때만큼은 내가 밝아지고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시절의 이야기를 잠시나마 말하며 잊을 수 있었다.


나에게 S는 내가 제일 추한 모습까지 보여준 유일한 친구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사귄 많은 친구 중에 제일 기억에 많이가고 도움이 많이 된 친구다. S는 내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만든 나름의 이유가 되고 내가 한발짝 나갈 수 있게 만든 길이었다. 그런 S와 이제 이별을 해야한다. 고등학교는 비록 떨어졌지만 우리의 추억은 언제나 가까운 거리에 있을 것이다. 아니라도 그렇기를 바란다. 잊지 않을 것이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만의 이유로 S를 기억할 것이다. 


내 삶의 작은 기억 속에 S를 주머니 속에 넣으며 지나간 S에게 마음을 담는다.

추천 콘텐츠

첫 만남

"선생님, 저 살면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어요." 상담 선생님께 이 말을 하니 선생님이 많이 당황하셨다. "진짜 태어나서 처음인 거야?"라고 역으로 질문하셨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17살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여기서 놀라는 포인트는 친구와 혼자가 아니라 처음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17살이 되기 전, 늦어도 12살에는 친구를 스스로 혼자 만나야 사회화가 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관점에서 볼 때 사회화가 잘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내가 17살이 되도록 친구를 혼자 만나지 못한 것은 내 내향적인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친할머니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가 내게 친구의 단점을 계속 말하며 친구를 골라 사귀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아빠 친구 OO이는 이 짓거리 때문에 아직 결혼도 못 갔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이 말을 한 번만 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자주 반복해서 듣다 보니 문제가 되었다. 나는 그로 인해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었지만, 완전한 친구, 즉 의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 번도 친구들과 혼자 만나서 논 적이 없다.그러나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정확히 내가 원인 불명의 기침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더 작아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함께 있을 때 편했던 친구는 중2 때 만난 S(의 S와 동일인물이다.)라는 친구다. S는 나와 매번 맨 앞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와 나는 많이 친해졌고, 그는 내가 중2 때 갑자기 시작된 기침 때문에 시끄러웠을 것 같은데도 아무 말 없이 나에게 "괜찮아? 몸 안 좋은 것 같은데."라고 물으며 걱정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S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져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것은 서로 알려주며 지냈다. 그래서일까? 중3에 올라가서 반이 달라졌음에도 우리는 만나면 재미있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게 친구구나."라고 생각했다.이후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나와 S는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 때문에 더 위축되었으며 기침이 더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타난 친구가 바로 K(의 K와 동일인물이다)다. 그는 내게 먼저 와서 말을 걸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저절로 K에게 많은 의지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이야기를 하며 서로 모르는 문제를 연구하며 잘 지냈다. 그러나 올 6월부터 감기가 들어 기침이 심해졌다. 잦은 조퇴와 건강 악화로 인해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자퇴하기 전 K에게 이 소식을 미리 전할까 고민했지만, 시험 기간이라 분위기가 흐려질까 걱정되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퇴 날 개인톡으로 연락했다. 그러자 K는 나에게 "나도 너 덕분에 학교생활 잘 적응했어. 네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등 나에게 좋은 말과 감동적인 말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을 다시 다잡을

  • 송희찬
  • 2024-09-29
샤이닝

별은 스스로가 빛나는 것을 모른다. 그 이유는 별이 빛을 내고 폭발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도 스스로 빛나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특히, 많은 부담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빛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빛나는 사람이다.나는 지난 6월부터 기침이 심해져 9월 10일 자퇴 서류를 작성했다. 자퇴서를 쓴 후, 선생님께서 "지난 6개월간 함께한 친구들에게 인사할래, 아니면 톡으로 남길 거야?"라고 물으셨다. 친구들을 보고 인사하면 감정이 북받쳐 울 것 같아 톡으로 남기겠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그래서 고마움과 감사함 그리고 미안함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썼다.편지에는 기침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회상이 담겼다. 또한 영어독서,국어 부장과 팀장 역할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포함되었다.이 편지를 쓰면서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감정을 다잡지 못한 채 반톡 화면을 뚜러져라 바라보며 눈물이 날려는 날 참았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따뜻한 택스트들로 이 마음은 약간 괜찮아지려고 했다.톡을 올린 지 5분 정도 지나자, 중학교 동창이자 2학기 학급 반장이 반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동안 고마웠어, 희찬아." 이 말을 시작으로 몇몇 친구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과학 탐구 실험 조의 친구는 "그동안 학교 생활 수고했고, 앞으로도 힘내길 바랄게"라고 했다. 특수반 친구는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주었다.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 친구였던 친구도 "우리 반을 위해 노력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이후 개인톡으로 몇몇 친구들이 나를 위해 메시지를 보냈다. 대부분의 내용이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 그리고 앞날을 응원할게"라는 내용이었다.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친구는 수학부장 K였다. (K는 의 K와 동일인물)K 덕분에 나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결석이나 조퇴 시 필기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줘서 아픈 것을 덜 참아도 됐다. 그래서 K에게 개인톡으로 "K야, 너 덕분에 학교 생활을 생각보다 오랫동안 할 수 있었어. 그리고 네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줘서 너무 고마워. 나는 해준 게 없어 미안해.그리고 고마워."라고 전했다. K는 내 메시지를 보고 5분 후에 답장이 왔다. "나도 너 덕분에 학교 생활 잘 적응했어. 내 사소한 질문에도 항상 진지하게 들어줘서 고마워. 네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나는 이 문자를 보고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친구들에게 피해만 준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많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퇴를 서둘렀던 지난 죄책감이 미웠다.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짊어진 무게와 운명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지나치게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폭발할 때 빛난다. 우리는 언제나 빛나는 별이며, 삶을 살아가는 길 중에 폭발이 있을 뿐이다.

  • 송희찬
  • 2024-09-28
학교 하교

지난 8월 말, 담임 선생님께서 조용히 부르셨다. "희찬아 잠깐 나 좀 보자."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순간 겁이 막 올라왔다. 나는 분명 잘못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부르셔서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에 갔다. 교무실은 시험기간이라 조용하고 엄숙했다. "희찬아 3년을 버틸 수 있겠어?" 선생님의 첫 마디가 정적을 깼다. 대화는 10 정도였지만, 대화의 깊이는 상상 이상이있었다. 나는 이 말이 "이제 버티기 힘들 것 같다. 희찬아."라고 들렸다. 한 마디로 자퇴를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나는 놀랐기 보단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침 때문에 학교 생활을 오래 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 생각 뒤에는 약간의 서운함과 억울함 그리고 속상함이 가득했다. 내가 기침을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닌데. 나는 22년 10월부터 다양한 원인의 기침을 앓고 있다. 정신과에서는 틱으로 보고 대학 병원에서는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보고 있다. 23년에는 증상이 줄었다가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나서 다시 심해졌다. 그러다가 6월에 감기가 들어오면서 기침이 악화됬고, 6월의 절반 이상을 조퇴, 결석, 지각으로 보냈다. 2학기가 시작된 8월에는 상황이 더 심해졌다. 매주 조퇴를 2~3번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이 자퇴 이야기를 하신 것은 이해가 갔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의 끝자락을 물고 온 말을 듣고 나는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고 기침이 더 심하게 나왔다. 선생님은 "이러다가 네가 너를 잡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몸에서 땀이 계속 흘렀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이명과 함께 수업 종이 울렸다. 다음 시간은 부담임 선생님이신 국어 선생님의 수업이었다.나는 급히 상담을 마무리 하고 빨리 교실을 향했다. 내 몸은 몸살에 걸린 것처럼 더 힘들었고 마음 역시 몸살에 걸린듯 무거웠다 수업에 들어가자 국어 선생님이 나에게 "희찬아 무슨 일이야? 왜 늦었어?" 라고 물으셨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무겁게 답을했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이 있어서요."그렇게 시집을 읽었지만 시의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수업 시작 전 5분은 시집 읽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답답했지만 어찌저찌 이 날의 모든 수업을 끝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가 생각했던 것을 해야되나 봐." 엄마에게 이 말을 할 때 내 감정은 억울함, 허무감, 우울함, 배신감 등이 몰려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나는 꾹 참았다.엄마는 의외로 덤덤했다. {아니면 내 앞에서 덤덤한 척을 한 것이다.} 나는 엄마의 반응에 다시 무너졌다. 그렇지만 울지는 않기로 다짐했다. 집에 도착하니 선생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희찬아, 잠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주말동안 쉬렴." 선생님의 문자에 나는 한 번 더 흔들렸다. 결국 나는 위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여러 감정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감정 정리는 어려웠다. 우울함이 더 몰려왔다. 엄마는 이런 내가 안쓰러웠을까? 상담

  • 송희찬
  • 2024-09-2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