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국내에서 락의 부정적 인식에 대한 짧은 생각

  • 작성자 데카당
  • 작성일 2024-03-16
  • 조회수 503

흔히 락의 특징을 반항이라고들 한다. 물론 punk의 영향을 받은 장르를 말할 때 이는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punk 또한 근본이 되는 가치는 do it yourself, 자족의 가치이다. 70년대 과도한 복지의 폐해를 줄이고자 했던 정책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패배주의를 거부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즉 락의 특징은 음악적 요소, 외향적 요소에 있지 반항 자체에 있지 않다. 권위주의적이고 경직된 사회의 탄압으로 반항이 꼬리표가 달린 과정을 살펴보고 문제를 파악해보겠다. 한국이 독재정권 아래에 있던 60-80년대, 그리고 독재정권은 벗어났지만 그 영향을 받은 권위주의적 정권 하의 90년대에 영미권에서의 대중문화는 단연 락이었다. 수많은 장르가 생겨났고 음반산업의 성장과 함께 실물앨범의 판매량도 증가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작 이전이므로 실물 앨범의 판매량 증가는 대중성의 증가였으며 이는 최근에야 테일러 스위프트에 의해 깨진 단일 공연 최다관중 기록이 70년대의 레드 제플린, 그 전에는60년대의 비틀즈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으로 어느정도 보여진다. 앨범 시장이 증가하고 공연 관람 인원이 증가하였으니 녹음 기술도 발달했을 것이고 이는 50년대에 드럼의 충격에도 녹음침이 흔들렸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발전한 것으로 확인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이 어느정도 받아들여졌다. 주로 미군기지 근처같이 해외 문물에 직접 닿아있던 이들에 의해서였고 음반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서 첫 탄압이 등장한다. 많은 음반이 검열되어 대표곡들이 잘린 채 수입됐으며 검열된 판의 음반을 수집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영미권 락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국내 음반들도 마찬가지의 검열이 가해졌다. 이는 물론 신생문화가 곧잘 겪는 것으로, 비슷한 시기의 만화와 이후의 게임이 그렇다. 정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문물에 대해서 기성의 경험은 별다른 쓸모가 없었고 무지해졌으며 무지는 공포로 이어지고 권력을 가진 이들은 탄압으로 공포를 제거하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해외 문물에 익숙하다는 것은 68혁명으로 발생한 문화의 자유에 더 익숙하다는 것이고 이들의 음악은 그런 가치를 기성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당시의 기성에게 당시의 락은 물론 반항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항은 반항에 목적을 두고 한 반항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표현일 뿐이었고 그 표현을 견디지 못한 기성이 딱지를 붙이고 탄압한 것이다. 이렇게 처음으로 락에 반항의 딱지가 붙었다. 그런데 그 딱지를 붙인 정권을 청산한 지 30년은 지난 지금까지 그 딱지가 남아있는 이유가 뭘까? 우선 락이 청년문화가 되긴 했지만 당시의 청년문화는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여유가 있거나 하는 특별한 경우에야 향유할 수 있는 문화라는 특징이 있다. 애초에 향유하는 인원이 적었으니 자연스럽게 완만히 줄어들어 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대다수의 이들에게 락은 이전의 기성이 열심히 가르친 반항으로 그대로 남았던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2000년대의 문화개방 시기에 해외의 펑크 부흥 운동이 넘어왔다. 청년들은 자족의 가치보다 친숙한 반항에 끌렸고 숨어있는 가치를 보지 않는 대중에 의해 펑크=반항이 새겨졌고 락은 펑크가 전면에 있었으니 펑크=락이었다. 따라서 2000년대 이후로 은연중에 락=펑크=반항의 등식이 정립되었다. 국내 락의 기틀을 닦은 이들은 자신을 표현하길 원했다. 그리고 그 표현을 본 기성은 락을 두고 ‘말을 듣지 않는다. 불만 많은 놈들이나 듣고 하는 음악. 반항적이다.’고 폄하한했으며 권위주의 사회에서 세대간 이루어진 너무나 효과적인 교육에 의해 타고타고 현재에 달했다. 표현의 자유를 반항으로 낙인찍고 억압하는 이들은 권위주의적인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반항을 억압하는 이들은 권위주의적이다. 즉 아직까지 남아있는 권위주의의 찌꺼기가 락=반항의 딱지인 것이다. 한국은 정치적으로 권위주의적인 이들을 쫓아냈지만 68혁명의 흐름을 받아들일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이후에는 외환위기를 겪어 30년이 지난 다음에야 옆나라들을 힐끔거리며 표현의 자유를 인식해야 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흐름을 그대로 타고 가야 할까? 대가족의 붕괴와 경제 구조의 변화로 유교 원리주의는 쓰러졌지만 쓰러진 자리가 정치, 가정이 아니라 문화였다. 뿌리깊은 나무를 칭찬하지만 나무의 사회적 쓸모는 수명에서 나오지 않는다. 잎이 멊는 나무는 이산화 탄소를 뱉어내기만 한다. 이렇게 사회의 목을 졸라오는 나무를 숭앙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탈권위가 비정상인 사회로 남았는가? 경제적으로 탄력적인 사회를 원하지만 근본이 경직된 사회에서 무엇을 바라야 하는가?

추천 콘텐츠

말도로르의 반항

말도로르의 노래는 로트레아몽이 발표한 산문시집이다. 카뮈는 그의 책 반항인에서 반항의 역사를 서술하며 한 가지 예로 로트레아몽을 드는데 이후에 서술되는 반항하는 인간상과는 꽤나 큰 차이를 보이는 말도로르의 경우를 자신이 사용하는 반항의 계보에 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말도로르의 특징은 신, 즉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반감과 그에 따르는 사회 규범의 파괴이다. 예를 들어 당시 사회 규범에서의 모범이 되는 가족(명예가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아버지, 가족 간 예의를 지키는 현명하고 다정한 어머니, 부모를 공경하는 자식들)이 나오는데, 그 가족의 아이를 꾀어내고 마대자루에 담아 포물선을 그리게 던져버린다. 반항의 사전적인 뜻을 찾아보면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 맞서 대들거나 반대함'이므로 말도로르의 일차원적인 테러들을 섭리에 대한 반항으로 보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카뮈의 반항은 아무런 숙고 없이 벌이는 무차별적인 테러와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이때 반항은 절대적 부정에서 변화해 일어난 행동이다. 부조리한 인간의 절대적인 부정은 모든 의미를 거부하면서도 생을 유지하려 하는데, 생을 선택하는 것에서 이미 생에 대한 가치판단을 한 것으로, 이 부조리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부조리한 인간이며 1차 대전을 통해 막 종교와 이성의 신성화에서 벗어난 유럽에서는 부조리의 추론으로 자살의 정당성을 숙고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너무나 솔직한 나머지 절대적인 의미없음에서 나오는 살인의 정당성을 떠올리기보다 자신까지 부정해서 자살로 피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대전이 시작되고 끝난 시기 유럽에는 부조리의 추론을 비틀어 국가적 단위의 살인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고 개인적인 숙고에서의 자살은 사실상 사라졌다. 부조리에서 도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살이 아니라 살인을 선택한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 반항이 아니다. 반항은 자신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침해를 막는 것이다. 침해를 거부하는 것이며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반항할 수 있다. 따라서 반항은 절대적 거부도 파괴만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전적인 긍정이다. 가치의 인정과 거기서 나오는 보존을 원하는 긍정이고, 따라서 폭력은 가치의 보호를 위해서 필요한 가장 극단적인 수단으로써만 행해질 수 있으며 그 책임 또한 짊어져야 한다. 말도로르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한다. 섭리, 절대선 등의 것과 거기서 오는 희망을 없애고자 한다. 그런 것들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섭리가 희망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희망을 따르는 이들도 용납할 수 없다. 섭리에 대항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섭리만을 공격하고 끝내는게 아닌 것이다. 이때 반항적인 추론은 가치를 손으로 가리는 것에서 시작해서 섭리를 밀쳐내고 마침내는 섭리를 끌어내리는 것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인간은 기준이 아무것도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 반항의 추론은 섭리를 끌어내고 자신이 거기에 앉는 것까지 나아가야 한다. 추론의 단계에서는 이미 섭리의 자리에 앉은 말도로르에게 섭리를 기준

  • 데카당
  • 2024-05-07
전락과 21st century schizoid man

전락은 대화의 형식을 빌린 극에서의 기나긴 독백이다. 작가는 대화 상대역의 말을 주인공이 대신 되받아 말하도록 했고 이에 그 연극은 일인극이 된다. 일인극에서의 독백. 주인공만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전개되는 독백은 세계를 만든 사람을 고립시킨다.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고립되는 것은 현대인의 특징이다. 그리고 극을 정신분열로 치환하면 21세기 정신분열성 인격장애 남자다. 일단 전락을 먼저 보자. 화자는 우선 자신의 예전 삶을 털어낸다. 약자의 편에 서는 잘 나가는 변호사로 평판까지 좋아서 행동 하나하나가 좋은 의도로 바라봐진다. 그런 상황을 연기라고 하면서 일부러 이해되기 힘든 주장을 할 때 이 평판은 저주가 된다.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는데? 피곤한가보다! 하는 식이다. 이미 화자는 사라지고 변호사(화자)가 만들어졌다. 물론 화자는 지속적인 노력,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함으로써 그 변호사를 죽였다. 그러나 변호사는 만들어진 것일지라도 그의 세계에서 발판이었기 때문에 화자는 허무함을 느끼며 방탕한 생활을 했고(전락) 또다른 허무함을 만들다 보니 시간이 흘러 방탕하게 살기에는 몸이 받쳐주지 않는 나이가 됐다. 이때부터 화자는 작은 항구마을로 가서 원래보다는 한가로운 생활을 시작했는데 청자가 왔을 때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화자는 과거를 말하면서 자신을 피고석에 세운다. 그리고 피고로 선 화자는 역으로 세상을 고발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냉소는 변호사라는 직업 전반에 대한 냉소로 확장되고 자신이 구하지 않은, 다리에서 떨어진 여자의 이미지로 나타내지는 자신의 법정이 자신에게 심판을 내리는 법정으로 팽창한다. 동시대의 사고에 갇히지 않고 비판하는 화자는 물론 현대적이지만 화자가 나타내는 현대의 인간은 세상에서 떨어진 개인일 뿐이다. 화자가 법정에 서는 이유는 세상을 고발하는데 있지 성찰을 위하는데 있지 않으며 모든 과정이 화자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법정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화자는 자신을 쪼개 청자를 만든다. 별개의 인격이 된 둘은 법정을 통해서 다시 한 곳에 섞여든다. 그렇게 진행된 재판에서 확장된 법정은 세계의 주인을 다시 자그마한 개인으로 전락시킨다. 두번째 전락이다. 세계에 빠진 개인은 허우적거리지만 세계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형량의 증가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만든 세계이기에 사형을 언도받는 일은 없고 허우적거리던 화자는 얕은 물 위에서 공포에 질렸었다는 것을 깨닫자 다시 청자에게 밖의 세계를 고발한다. 화자가 계획하는 세번째 전락이지만 화자만의 세계는 무너졌고 밖은 미동도 없다. 무너진 세계와 무관심을 살아가는 것이 화자에게는 최후의 심판이다. 화자는 냉철한 이성의 합리적 시각으로 세상을 심판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화자의 전락의 모티프는 최후의 심판에서 나왔으니 신앙에 기반한 시각, 신앙에 기반한, 황금률, 보편 윤리에 기반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신앙과 이성이 양립 가능하다고 보고 싶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신앙이 이성의 형식만을 따온 것이다. 이성의 공리

  • 데카당
  • 2024-04-20
자살의 밈화

자살. 스스로 죽는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지금까지는 자살을 사회 구조적인 문제, 개인의 철학적인 문제로 보는 관점만을 듣고 배우고 가져 왔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관점 또한 필요할 때인 듯 하다. 시작은 복제 단위로서의 밈이다. 가계를 따라 수직 낙하할 수밖에는 없는 유전자와는 다르게 밈은 가계를 벗어난 것에 더해 수평적이거나 역전되는 전달이 가능하다. 이것은 유전자가 번식기까지는 개체를 유지시키려 하는 것에 비해서 밈은 개체의 안전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효과를 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가장 성공적인 밈 중 하나인 민족주의는 민족끼리 배타적인 입장을 갖게 만들어서 결국 민족국가를 침체시킴에도 끝없이 퍼져나갔고 현재까지 복제되고 있다. 밈으로서의 자살 개념을 살펴보기 전에 자살 통계를 보면 때 30대 이상 연령층에서 한순간에 수와 비율이 폭증하는 것을 근거로 자살이 유전자의 작용이 아니냐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유전의 특징 덕분에 번식기가 지난 후 발현되는 치사 유전자는 도태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그친다면 논의는 끝난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기에 논의는 계속된다. 자살이 유전자 차원의 어느정도 퍼져있는 표현형이라면 경험적으로 노화라는 현상에서 보듯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오면서도 그 현상의 표면적인 이유를 집어서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 비극 같은 고전 자료에서 자살이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쓰이고 성서에 자살을 죄악으로 적어놓은 것을 보면 자살이 어느정도는 퍼져있다는 가정은 맞지만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고 극복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또 자살을 죄악으로 터부시하던 중세를 지나면 자살을 예찬하는 이들이 등장해 자살이 훌륭한 이유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하니 이들이 자살 밈을 성공적으로 퍼뜨린 개체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들의 자살 예찬을 유전자의 기능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해당 시기, 근대의 유명한 자살 예찬가들이 말로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삶의 방식에서 삶 또한 예찬했기 때문이다. 식사 후 플룻을 연주한 어떤 철학자와 풍성한 식사자리에서 자살을 논한 쇼펜하우어가 좋은 예시이다. 자살이 유전자의 표현형이라면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므로 밈이 개입했다고 보겠다. 탈출구, 해결책으로 던져지던 자살이라는 개념은 현대에 들어서 드디어 진지한 철학적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더이상 삶과 자살을 동시에 예찬하지 않는다. 밈의 복제과정은 유전자보다 덜 엄밀하기 때문이다. 유전자 복제는 단계별로 억제제를 갖지만 밈의 복제에 있어 억제제는 개체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라는 또다른 밈 뿐이다.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개별 유전자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반면 밈은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감각을 이용한 의사소통의 방식으로 복제되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며 따라서 개념이 바뀐 것이다. 위의 주장이 사회, 철학적 관점을 모두 사용한다고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밈으로서의 자살과 철학적 자살, 사회 구조적 자살을 보는 관점 사이 관계를 짚어야겠다. 우선 밈에 관한 관점이 가장 근본적이다. 개

  • 데카당
  • 2024-04-1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데카당

    3/20 수정

    • 2024-03-20 10:59:31
    데카당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