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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 작성자 쟈크
  • 작성일 2005-10-24
  • 조회수 277

 깨달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침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신 엄마의 전화였다. 오늘 너무 늦어서 내일 저녁에 오신다는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작은 바늘이 9를 가르키고 있었다. 저녁도 먹지 않은 터라 엄마를 기다리던 나의 뱃속, 밥 시계에서 자명종 소리가 울렸다.

주말이라 친구들과 찜질방에서 자고 온다는 형도 엄마와 같이 나갔기에 방금 들어오신 아빠와 나밖에 집에 있지 않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유의 시간인가, 그리 크게 터치하지 않으시는 아빠 덕에 자정을 넘길 때까지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겠구나. 게다가 컴퓨터 한 대를 놓고 싸우는 적이 없으니.......

나 혼자 별생각을 다해가며, 기억에 남는 자유의 날을 맛보기 위해 여러 장면을 공상했다. 10시가 넘은 시간에 아빠와 나는 저녁을 시켜 먹었고, 내가 짜여 놓은 그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날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일 일찍 나가신다는 아빠는 저녁을 먹은 후, 일찍 잠자리에 들으셨고 컴퓨터 한다고 비키라는 형도, 너무 많이 한다며 그만하라는 엄마도 없었기에, 나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른 체 컴퓨터게임에 열중했다.

얼마나 했을까? 컴퓨터 세계에 정신을 놓아버린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창가 쪽으로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밖을 보니, 어두운 그림자들이 사라지고 옅은 붉은빛이 하늘에 퍼져 있는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날을 샜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가. 점점 머리가 몽롱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컴퓨터를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온 방안은 환한 빛으로 가득했고, 1시를 가르키는 시곗바늘이 눈에 들어왔다. 잠이 덜 깬 체, 안방으로 향했다. 아무도 있지 않았고, 썰렁한 기운만 받았다.있어야 되는 엄마가 보이지 않아, 부엌을 비롯하여 화장실, 베란다에 가서 엄마를 불렀다.

순간, 어제 엄마가 저녁에 올 거라는 목소리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허전했다. 어제 내가 원했던 자유의 시간을 가졌고 충분하게 흥미와 행복을 느껴 것만, 이런 찜찜한 기분을 개운하게 떨쳐 버릴 수 없었다.

티비를 켰다. 엊그제 했던 쇼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평소만 같았어도 밥도 미뤄가며 봤을 프로그램이었지만, 온몸을 이용해 가며 관객을 웃기려는 개그맨을 보니, 그저 한심 할 따름이었다. 티비를 끄고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 역시, 특별히 재미가 가지 않았다. 어제 그 많은 시간에 게임의 목표를 달성했기에 특별히 하고자 했던 건 없었다. 다시 티비를 켰다.

그리고 다시 티비를 껐다. 티비를 켰다, 껐다를 반복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열었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반가움과 왠지 모를 서러움을 억누르며 엄마를 맞이했다. 그 뒤를 이어 형이 왔고 아빠가 왔다.

물론 엄마와 형이 없어서 나의 즐거움을 달성하는 데에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그로인해 평소 내가 했던 양보다 넘치게 했고 짜여놓은 생활 계획표를 어겨, 생활의 패턴이 엉망이 돼버렸다. 그날이후로 나는 깨달았다. 그 순간의 기쁨과 흥미보단, 그 하루의 기쁨과 흥미를 더 원하기 때문이다.

쟈크
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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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예” 방학시즌이고해서 형이 공장에서 방학 때까지 당분간 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나도 돈을 준다는 물질적인 만족감에 이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드렸다. 그렇게 나는 이모네가 사는 서울로 떠났다.  미싱소리로 울려 퍼지는 공장 안은 쾌쾌한 먼저로 가득 찼다. 80평정도 크기의 공장은 세, 네 명의 아줌마들과 두 명의 아저씨들이 각각 미싱질과 옷을 단면적으로 자르는 일을 하고 계셨다. 그때마다 엄마가 직장에서 오셔서 늘 어깨가 쑤시다고 말하시는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것저것 챙겨줄게 있다면서 다시 이모네로 갔다. 돼지고기며, 갖가지 나물들을 비롯해 옷들도 챙겼다. 이미 양 손엔 짐 이란 짐을 다 들은 상태였고 그리고 마지막에 이모가 봉투를 건넸다. 이모네를 나오자마자, 나는 봉투를 열어보았다. 떡하니 보이는 만원자리 10장.

  • 쟈크
  • 2006-01-09
나를 위하여...

 눈을 떴다. 오늘이 실업계 원서를 접수시키는 날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라 초등학교 때의 중학교 진학문제와 다르게 많은 고민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괴로웠다. 글을 잘 쓰지는 못했지만, 글을 좋아하기에 안양 예술 고등학교 문예창작과도 지원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쓰라린 불합격의 맛을 보았다. 예고 실기를 보러 갔을 때, 중학교 내신은 나와 있었고 온통 예고에만 심혈을 기울인 탓이라 예고의 불합격 소식을 듣고 내신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인문계 갈 내신은 된다고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만, 500초과와 인문계를 가서 공부할 믿음이 나에겐 있지 않았다. 일치감치 글에 매력에 빠져 버렸기에 인문계와 실업계사이의 고민에서도 글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었다. 하늘이시여 어찌해야 합니까, 이 마음을 어떻게 잡아야 합니까. 많이 부족한 문장력과 좁은 상상력의 세계를 넓게 펼치고 습작 또한 최선을 다해서 해나가기로 하였다. 백일장도 물불 가리지 않고 경험을 쌓는 목적으로 다 참여하기로 했다.   내 생애 속에서 실패라는 단어의 쓴 맛을 보았고 진학의 고통과 고민을 통해서 나 자신을 한 뼘 높이 세운 느낌을 받았다. 지금, 이 답답한 마음을 담아서 쓴 글 입니다.

  • 쟈크
  • 2005-11-11
진정한 행복이란

  10분이 넘게 버스가 오는 쪽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버스는 이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지 않았다. 내가 먼저 버스에 올라탔고 앞에 앉아 그가 버스를 어떻게 올라타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런 여러 생각들이 교차되어 내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조금 지나, 그가 일어섰다. 그가 일어섰을 때 버스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냥 쳐다만 보았을 뿐,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쯧쯧쯧 하며 혀만 찼고 어떤 사람은 다시 다른 곳을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이런 저런 손가락질과 무관심속에서 나를 탓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문단 나누기가 이상하게 되었네요. 

  • 쟈크
  • 200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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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있을 때는 못 느낀, 가족의 소중함이요.

    • 2005-10-27 16:36:3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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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마지막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네요.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인지요?

    • 2005-10-26 22:39:1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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