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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문학특강'을 갖다 오며.....

  • 작성자 여우씨
  • 작성일 2010-08-15
  • 조회수 516

8월 14일 '구병모 문학특강'을 한다고 메일로 왔을 때, 심심해서 작성한 글이 놀랍게도 뽑혔다. 좋은 경험일 것 같아서 가겠다고 승낙을 하고 그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8월 14일 이른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면서도 소설가 구병모를 만난다는 것 때문에 너무나도 떨리고 기뻤다.

난 길을 잘 못찾는 터라 12시즈음에 왔지만 길을 헤메서 간신히 아르코 미술관을 찾아 1시즈음에 들어갔다. 안에는 사람이 꽤나 있었고 분위기 있게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찰과 확인증서를 받고 빈 자리로 가서 앉았다. 짐을 정리 하고 있는데 졸업생 선배님들이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면서 날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형, 누나, 그리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나는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2시 30분 구병모 선생님의 강의가 시작되고 난 어느때보다 더 조용하고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하는 시간에 내 질문이 뽑혀서 구병모 선생님께 질문도 하게 되어서 너무나도 기뻤다.

구병모 선생님과 단체사진을 찍고 싸인을 받은 다음에 여러가지 선물을 받으니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좋았다.

그 뒤에는 나의 조원과 노래방으로 놀러갔다. 원래 활동적이지 못한 성격인 나로서 잘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았지만 그때만은 나도 이상하게 시리 활동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조원들과 헤어질 시간이 왔을 때 아쉬운 마음이 너무나도 남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서 놀자고 약속을 하고 그렇게 대전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서울역으로 향했다. 

난 새로 만난 사람들은 2시간도 채 안되서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그렇지만 이번엔 왠지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좋은 경험 이었고 그들을 만났다는게 행복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 만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고 연락도 자주 해서 친분도 계속 쌓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차안에서 나는 행복했던 시간을 되짚으며 잠시 잠이 들었다. 

여우씨
여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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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었을까. 특별한 날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부엌에서 바쁘게 음식을 준비하고, 베란다에 놓인 촛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줄곧 특별한 날이나, 기도를 할 때 엄마는 언제나 촛불을 켜고 생각에 잠기곤 하셨다. 촛불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신비로운 기분에 사로잡힌다. 촛대에 놓인 채 수수하게 불을 밝히는 촛불의 빛은 네온사인에서 나오는 빛이나 형광등의 빛과는 달랐다. 영롱한 빛과 일렁이는 흔들림은 가만히 심지를 응시하도록 끌어들인다. 그러나 가만히 촛불을 바라다보면 볼수록, 매혹적인 빛 뒤에는 언제나 나를 슬프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왜 그럴까. 왜 저 아름다운 빛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도 우울한 감정이 드는 것인지 궁금했다. 붉은 입술을 가진 여인이 추는 매혹적인 춤이 왜 그렇게 날 가라앉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촛불을 30분 정도 바라본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았던 초는 시간이 지날수록 볼품없어지고 점점 작아지다 꺼져버렸다. 촛대를 보니 남은 것은 촛농 조각 몇 개와 타버린 심지뿐이었다.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초도 남는 것이라곤 촛농조각 몇 개 그리고 검은 심지를 남기고는 떠나버렸다. 남겨진 촛농조각과 검은 심지는 촛불의 시간이 흘러서 끝에 다다랐다는 증거일 것이다. 촛불이 꺼지는 것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부모님이었다. ‘이제 나의 부모님도 촛불이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이제 별로 시간이 많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너무나도 우울하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부모님이 나에게 다가오면 나는 차갑게 대답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반응에도 언제나 똑같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시며, 따뜻하게 대해주신 부모님. 그런 따뜻한 말과 행동이 나는 싫지 않았지만, 표현이 서툴러 언제나 차갑게 대했었다. 하지만 ‘이제 나를 보며 먼저 건네는 손길과 말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오늘도 다음 날도 똑같이 내게 다가와서 날 편안하게 해주는 이 존재들이 사라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너무나도 슬펐다. 중국의 옛 시중에 이런 시가 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향기 미소가 가득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행복은 가까이 있다는 말이 있다. 나도 가까이 있는 행복은 보지 못한 채 언제나 멀리만 바라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앞에 있는, 날 편안하게 해주는 이들과의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몰랐던 내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촛불의 교훈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매일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 여우씨
  •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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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하면 어렸을 때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어렸을 때의 생각을 하면 엄마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 난 태어날 때부터 힘들게 태어났다. 태반에 끼어 엄마와 내가 둘다 목숨을 잃을뻔하였다. 난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4살 때 아파트에서 떨어지게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온몸을 붕대로 감고 깁스를 하고 버텨야만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 자신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병원에서 나는 약냄새와 붕대냄새를 맡으며 침대에 계속 누워있어야 했다. 내 일상은 먹고 자고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 뿐이었다. 4살인 나에게는 억울한 현실이었다.   ‘시간이 약이다.’란 말이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시간은 내게 가장 필요한 약이었다. 시간은 천천히 나의 건강과 병원생활의 적응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퇴원을 얼마 안 두고 어느 화사한 햇빛이 드는 날 할머니께서 병문안을 와주셨다. 할머니의 걱정과 안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머니께서 ‘우리 손주 뭐 먹고 싶은 거 없나?’ 라고 물으셨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 어눌한 말투로 ‘따당면’이라고 말했다. 발음 때문에 ‘자장면’이 ‘따당면’이 된 것이다. 나의 말과 동시에 할머니는 중국집으로 달려가 자장면을 포장해서 가져 온 것이다. 그때 먹은 자장면의 기억은 희미하게나마 잊지 않고 있다. 포장해온 자장면을 허겁지겁 먹어 정확히 맛은 모르겠지만 ‘맛있었다.’라는 것은 기억한다.   지금 17살인 나에게는 아직까지도 자장면은 좋아하는 음식중의 하나이다. 즉석식품이나 봉지형태의 자장면이 아닌 시켜 먹는 것을 좋아한다. 배달이 되기 전 기다리는 즐거움 그리고 자장면의 비닐을 뜯을때의 설레임, 형용할수 없는 맛있는 맛,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자장면을 포기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마다 ‘뭐 먹을까?’라는 부모님의 질문에 나는 100번이라도 더 한 ‘자장면’이라고 대답을 한다. 부모님은 질린다고 다른 것을 먹자고 하지만 텅빈 냉장고의 현실을 보면 그냥 시키라고 하신다. 그렇게 나와 동생 부모님들은 자장면을 시켜 먹는데, 유독 엄마만 자장면을 다 못드시고 남기시거나 동생들이나 나에게 주신다. 한 두 번이 아닌 자장면을 시킬 때마다 남기신다. 그래서 왜 안 드시냐고 물으면 맛도 별로이고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드시기가 싫다고 대답하셨다. '무슨 기억 때문에?' '있어 그런게..' '아 뭔데?' 끈질기게 물어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냥 자장면만 먹고 있으면 네 어렸을 때 병원에서 할머니가 사준 자장면 먹는 기억이 나서..' 엄마는 자장면만 보면 내가 아팠을 때의 기억이 나서 먹을 기분이 안 생긴다고 말하였다. 엄마의 말을 듣자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다. 나 때문에 엄마는 슬퍼하고 힘들어하셨다. 자장면을 볼

  • 여우씨
  • 201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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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우씨
  • 201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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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아 그리고 그 때 저와 같은 조원이셨던 분들 연락처좀 가르쳐주세여 연락처를 몰라서 좀 아쉽네여

    • 2010-08-16 13:41:0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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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죄송해여 제가 철자를 그냥 무심코 썻네여 글 쓸때도 철자땜시 점수 깍아먹음 ㅠ0ㅠ

    • 2010-08-16 13:40:2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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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음 ㅋㅋㅋ 좀 더 놀았어야 되는데 ㅋ 겨울 캠프 때 못 놀았던 거 한을 풀자구 ㅋ^^

    • 2010-08-15 21:33:3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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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제목 '갖다 오며' 가 아니라 '갔다 오며' 에요 ^^;........................................................

    • 2010-08-15 16:34:1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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