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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비거
  • 작성일 2011-01-15
  • 조회수 550

 컴퓨터를 켜고 한글을 켠다. 몇 자 적어본다. 노트북을 세게 닫는다. 무릎을 끌어안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들.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글들. 무릎을 꽉 안는다. 은근히 기대했던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원래 글은 나를 자유롭게 하곤 했다. 어눌한 내가 세상에 할 수 없었던 말들을 글은 그 누구보다도 잘 받아주었다. 글을 쓰면서 난 정말 행복했고, 생애 처음으로 나를 찾았다.

 신은 내게 이런 사치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여주었다. 진실하고 순수하면서도 그 감동을 그대로 전달하는 글. 그 글들이 주는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하나를 읽을 때마다 파도에 밀려 주춤주춤 난 발걸음을 뒤로 옮겼다. 내 글은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의 글이 올라올 때마다 내 마음은 읽기 싫다고 외쳐댔지만 마우스를 쥔 내 손은 어김없이 클릭 소리를 만들어냈다.

 가끔은 내 또래가 쓴 글인데도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글도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호평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문제는 내게 있었으므로 그럴 때 나는 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내 마음은 어느 새 나 자신을 잃었다. 동경이라는 단어가 두 글자밖에 안 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 마음은 그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사랑하면서도 무서워한 그 글들은 나를 어디든 쫓아다녔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계속 따라온다고 느끼던 한 드라마의 남주인공이 그랬듯, 나도 정신을 분산시킬 이상한 주문이라도 외울 수 있었으면 싶었다.

 글을 쓰려고 할 때 난 더 이상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 글들이 안개가 되어 내 시야를 가렸으므로. 그 글들을 바라보면 부러움이라는 풍선에 바람이 채워졌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진 부러움을 안고 문장을 썼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떨까 생각했다.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계속 문장을 썼지만 그 속에 나는 없었다.

 어쩌다 나를 담아 낸 짧은 글을 짓게 되더라도 그 글은 되레 날 조롱했다. 내 얕음을 조롱했다. '이런 걸 써봤자 넌 결국 네 작은 세상의 공주님일 뿐이야'라고, 다른 사람들은 내 작은 고민에 감동 대신 조소 섞인 부러움을 느끼게 될 거라고 했다. 나도 정말 부끄러워,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난 그런 내가 지금 정말 필요해. 대신 앞으로 정말 내가 노력할게. 한 동안은 그렇게 버텼다.

 하지만 결국 나를 가두던 많은 철창 가운데 '글'이라는 이름의 철창이 추가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빠른 시일 내에 없애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이렇게 포기했던, 그래서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나로부터 분리시켰던 다른 수많은 꿈들처럼 내 기억 속에 지금의 나를 가두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나도 정말 부끄러워. 하지만 난 그런 내가 지금 정말 필요해. 대신 앞으로 정말 내가 노력할게.

 외쳐보려 했지만 마치 주변이 진공 상태인 양 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나는 계속 외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튼 입술을 뜯으며 앉아있었다. 입술을 모두 뜯고 나면 내가 풀려나올 것도 아닌데 난 계속해서 뜯었다. 마음속은 봉인의 마지막 단계를 위해, 탓할 사람을 찾아 탓할 사건을 찾아 기억 속을 돌아다니며 부단히도 애쓰고 있었다.

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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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3년 동안 나를 예뻐해 주신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찾아갔다. 엄마 아빠가 지켜보는 가운데 선생님과 감동적인 이별을 했다. 선생님이 우셨다. 나는 감사했다는 말만 연신 해댔다. 울 수가 없었다. "무슨 선생님이 우시고 학생은 안 우냐. 싸가지 없다." 집에 오는 길에 엄마가 농담조로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빠가 학원으로 날 데리러 온 그 밤이 기억난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빠, 나 요즘 가슴 아픈 기분이 뭔지 알 것 같애." 그냥 아빠랑 진지한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 궁금했던 걸지도 모른다. "아빠, 마음이 아프면 진짜 여기가 아프다, 여기." 아빠는 뒤를 잠깐 돌아보고는 운전을 계속 했다. 40분 동안 아무 말 않고 우리는 차 안에 함께 있었다. 그 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역시 아빠 앞에서는 울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날 키워주신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가끔 두 분의 장례식장을 상상한다.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나온다. 하지만 그런 날 지켜보고 있을 아빠를 생각하면 상상 속의 나는 곤란해진다. 난 정말 슬픈데 울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날 보고 배은망덕하다며 손가락질한다. 아닌데, 난 정말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했는데, 정말 울고 싶은데.......  아빠가 미웠다. 아빠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여야 했다. 어른들의 감정은 모르는 어린아이여야 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난 이미 노예가 되어있었다. 감동적인 TV 프로그램을 보며 엄마가 훌쩍거리고 있을 때 난 혼자 눈을 크게 뜨고 눈물을 말려야만 했다. 그 흔한 아이돌 그룹도 좋아할 수 없었다. 가족들 앞에선 내게 사춘기는 없다며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아빠가 죽을 때까지 난 이렇게 살겠구나, 했다.    커가면서 우습게도 부모가 되는 상상을 자주 한다. 처음엔 자신이 넘쳤다. 내가 나중에 부모가 되면 우리 자식은 이렇게 키울 거야. 절대 우리 엄마 같이는 안 키워야지. 우리 아빠 같이는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이제는 자신이 없다. 현실을 알게 된 걸까. 한 아이를 키우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무서워 가슴이 내려앉는다. 난 절대 엄마가 될 수 없을 것만 같다.  아빠를 볼 때 이젠 아빠가 아닌 한 명의 인간이 보인다. 불쌍하다. 아빠 같은 완벽주의자가 아빠 노릇을 하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생각해보면 나를 대하는 아빠의 태도 하나하나에서는 항상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그 날, 학원에서 날 데리고 오는 차 안에서 아빠는 많이 무서웠을 거다. 갑작스럽게 아빠가 두려워하던 그게 찾아왔으니까. 어쩔 줄 몰라 아무 말도 못할 만큼 무서웠을 거다.  원래 아빠 생각을 할 때면 내 자신이 불쌍해 울었다. 지금은 아빠가 불쌍해 계속 눈물이 나온다. 아빠를 용서하는데 왜 이다지도 오래 걸렸을까.   *좀더 진솔한 마음을 쓰고싶어 존대를 생략한 부분이 많습니다. 보기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비거
  • 2010-12-04
내 글 감상문

   오랜만에 글틴에 들어갔다. 다른 글들을 구경하다가 내가 쓴 글을 읽게 됐다. 읽고 나서 삭제 버튼을 누를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이었다면 나는 이 글을 쓴 사람을 당장에라도 싫어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 글을 쓸 당시를 생각해봤다. 열 번 스무 번 읽으며 만족했던 감정이 생생하다. 이건 분명 내가 쓴 글이다. 그 때 어떤 감정이 나를 휩쓸어서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도 아니다. 내 그대로를 쓴 글이다.    내 진짜 생각을 쓴 건데 왜 이제와선 조소 밖에 나오지 않는 걸까. 글에서 은근히 비춰지는 '나는 피해자예요'의 태도가 싫었다. 그걸 감추려는 의도의 당당한 어조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내 글이니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 속이 빤히 비춰지니 더 보기가 거북했다. 오늘 구경한 많은 글들 중 이런 글은 내 글뿐이다. 삭제 버튼으로 손이 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이게 나였다. 내가 너무 싫어해서 항상 감추려고 애쓰던 내 모습이지만 아직 이 모습은 내 안에 있었다. 이런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내가 힘들게 감추고 다니는 모습을 그 사람들은 너무나도 편하게 드러냈으니까.     나 자신을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만 받아들였던 말이 피부로 느껴진다. 이제까지 사람을 싫어할 때 감정만 받아들였지 그 이유를 파고들어간 적은 없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와 닮았다는 끔찍한 사실을 인정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    내 동생의 얼굴, 내가 싫어하는 그 애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린다. 그리고 나. 이제는 용서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 비거
  • 2010-12-03
말할 게 있어

  잘난 티 아는 티를 있는 대로 내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인정받지 못해 안달이 난 불쌍한 인간'으로 규정짓고 아낌없는 혐오를 보내기 마련이다.   '횽아들, 이거 우울증 맞아?'   인터넷 사이트의 한 글이 눈길을 끈다. 한 때 항우울제를 처방받기도 했던 나는 혹시나 내가 도움이 될까 싶어 들어가 본다. 제목 옆 괄호에 표시된 꽤 많은 댓글 수에도 관심이 간다. 침대에서 나오기가 싫고 그냥 꼼짝을 못하겠어. 이거 우울증이 아닐까? 짧은 글을 읽고 나니 댓글들이 나를 기다린다. 무기력한 증세네 전형적인 우울증이야: 이건 긍정형이다. 하지만 긍정형 댓글보다는 역시 부정형과 하소연형이 압도적으로 많다. 내가 우울증 걸렸을 땐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어…정말 힘들었지 우울증…이렇게 인터넷에 글도 쓸 정도면 괜찮네 뭘 그려……나는 창을 닫아버린다. 아니 사람이 우울하고 힘들어서 글을 올렸는데, 위로는 못해줄망정 웬 신세타령? 나도 우울증에 걸려 봤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꼴 보기 싫어 내가 자주 가는 록 커뮤니티로 걸음을 옮긴다. 아, 나는 록 음악을 좋아한다. 물론 인터넷 상에서만 이렇게 음악 취향을 밝힌다. 여고생 하드코어 팬이 드문지라 내 친구들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는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이 음악 이야기를 할 때면 가슴이 갑갑하다. 물론 취향의 차이니까 친구들의 잘못은 없지만 가끔 신나게 좋아하는 밴드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할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얼마 전엔 꿈에 정말 그런 장면이 나왔다. 친구들이 록밴드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신나게 이야기하며 내 취향을 마음껏 표현했다.   표현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표현에 관한 게 아닐까. 내 가슴이 갑갑했던 것도, 질문 글에 사람들이 그렇게 생뚱맞은 댓글을 달아놓은 것도 다 표현의 결핍에서 온 게 아닐까. 나야 우울하면서도 여기저기 찾아가 울 것 다 울고 하소연 할 것 다 했으니 아쉬울 것 없지만 그런 댓글을 단, 아니 달아야만 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 그들은 왜 이 가상 세계의, 하소연이 어울리지도 않는 글에 자신의 이야기를 달아 놓았어야 했을까. 그들은 아마 그 댓글을 쓸 때 꿈을 꾸고 있었을 거다. 내가 꾼 그 꿈처럼 딱하고도 우스꽝스러운 꿈을 말이다.   혼자만 알고 있을 수도, 혼자만 좋아할 수도, 혼자만 경험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숨을 쉬지 못한다. 표현은 우리를 숨 쉬게 하고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어쩌면 그냥 숨을 쉬려는 게 아닐까.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욕을 먹어가며 '나대는' 것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방금 내가 한 페이지의 글을 써낸 것도.

  • 비거
  • 201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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