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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보고도

  • 작성자 랜돌프 카터
  • 작성일 2014-02-10
  • 조회수 243

 

  나는 웬만큼 중요하고 인상적인 일이 아닌 이상 순식간에 잊어버린다. 겨우 기억에 남은 일도 서서히 조각이 떨어져 나가다가 어느 순간 모두 흩어져 버린다. 민들레 씨앗처럼. 그래서 내 모든 기억은 흐릿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정도가 심한 것 같다.

 

  흐릿하게나마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일들이 있다. 언젠가는 잊어버리겠지만, 그래도 아주 오래오래 남아 있을 것 같은 일들. 많지는 않다. 그만큼 내가 평범하게 살아 왔다는 거겠지(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만). 어쨌든 그 중 하나를 이야기해 본다.

 

  날짜와 시각은 모른다. 왜 그만한 일을 당시에 상세히 기록해 두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간 과거를 어쩔 수는 없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비가 내리던 날이었음은 확실하다. 산책이 하고 싶어서 우비를 입고 나갔다. 시청 앞 교차로에 가 보니 사람들 몇 명이 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가갔다.

 

  사람 한 명이 도로 위에 엎어져 있었다. 남자였고,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보도 바로 옆에 있어서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엎어져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보자마자 직감했다. ‘이 사람 죽었군.’

 

  구경꾼들도, 나도, 무표정하게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맡에 피가 고여 있었다. 빗물은 하수구로 흘러가는데 어떻게 피는 고여 있는 것인가. 자세히 보니 무슨 덩어리가 피와 엉겨 있었다. 뇌일 거라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도로 건너편에 부서진 오토바이가 널부러져 있었다. 배달용은 아니었다. 자초지종은 끝내 알 수 없었지만, 빗길에 헬멧도 없이 달리다가 사고를 당한 것임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어느 새 경찰차가 왔다. 경찰관이 내렸는데 구경꾼들을 물리치지는 않았다. 어딘가로 무전을 했다. ‘의료원’ 한 단어를 언뜻 들은 것 같았다. 곧 구급차가 왔다. 구급대원들이 남자를 흰 천을 덮고 들것에 올렸다. 남자는, 시체는 구급차에 실려 갔다. 아까 들은 단어가 생각나, 의료원으로 갔을 거라고 짐작했다.

 

  나는 자리를 떴다. 한참 정처없이 걷다가 사고 장소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었고, 시체가 엎어져 있던 모양 그대로 하얀 윤곽선이 그려져 있었다. 핏덩어리는 없었고 핏물만 조금 남아 있었는데, 흐르는 빗물에 쓸려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핏물이 전부 사라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기억나는 건 이것뿐이다. 이마저도 확실한 기억인지 자신이 없다. 위에서 말했듯이 모든 기억은 흐릿하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이야 시간이 흘렀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시체를 본 그 순간에도 난 별다른 감정이나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우두커니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

 

  가끔 그 일에 대해 생각할 때면, 다른 것보다 ‘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지’가 의문이다. 내가 싸이코패스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생각하기도 싫다. 감정 결핍?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도 타인에게 무관심한 많은 현대인들(다 그런건 아니다. 절대로!) 중 하나라서?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 생각할 때면 꼭 따라붙는 기억이 하나 있는데, 그 이야기도 해야겠다. 너무 흐릿해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마찬가지로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기억.

 

  초등학생이 하나 있는데, 친척들과 같이 있다. 어느 영안실이다. 철제 탁자 위에 시체가 머리만 내놓고 하얀 천에 덮여 있다. 외할머니다. 어머니와 외가 친척들이 시체를 잡고 통곡한다. 초등학생은 모든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울지 않는다.

 

  나는 그때도 울지 않았고, 무슨 생각이나 감정이 들지도 않았다. 왜? 역시 내가 패륜아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생각하기도 싫다. 그럼 외할머니하고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어서? 아직 어려서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어서? 등등…….

 

  두 기억에 대한 해답은 다양하지만, 요즘 딱 한 가지 가능성을 고민하는 중이다.

 

  내가 죽음 자체에 무감각해진 건가?

 

  되짚어 보면, 수많은 매체에서 죽음을 다루지만 내겐 그다지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슬픈 최후를 맞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찔끔한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 것들은 실체가 없으니 그렇다고 쳐도, 진짜 시체를, 확실한 죽음의 결과를 두 번이나 목도했음에도 무덤덤한 것은 정말 의문이다. 고민 끝에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해답들이 나왔지만, 이 가능성을 쉽게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난 아직 18살이다. 어리다. 18살이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르다는 게 아니다. 난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생각도 짧다. 그러니 난 죽음에 무관심한 게 아니라 그냥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고민이 아주 쓸데없지는 않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내가 시체를 본 기억이 흐릿하게나마 계속 남아 있는 한, 이 고민은 어쩔 수 없이 나를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 길지도 않은데 띄어쓰기가 너무 많긴 하다.

잘 쓰지도, 못 쓰지도 않았다고 믿고 싶다.

나중에 좀더 고쳐서 쓰고 싶지만, 자신 없다.

<2013. 11. 17(아마도)>

랜돌프 카터
랜돌프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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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랜돌프 카터
  • 2014-02-25
귀환

      다시 돌아왔습니다. 느낌상 별로 바뀐 건 없어 보입니다만, 부끄럽게도 어디에 무슨 글을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생활글에 이 글을 씁니다.     돌아왔다고는 했지만, 처음 가입하고 나서도 활동은 전무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저를 기억해 주시는 분들은 한 분도 계시지 않겠지요. 게다가 저도 여기 글틴의 이모저모를 거의 잊어버렸으니,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네요.     있는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어느새 고2가 되었고, 학업에 치여 살다 보니 글틴도 문학도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째서 갑자기 시를 쓰기 시작했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게 한 10월 초였나, 공책도 장만했습니다. 그냥 한줄 한줄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다 보니 시가 하나 생겨 있더군요. 그렇게 공책을 한장 한장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제 시들은 '타는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왜 '타는' 쓰레기냐구요? 그냥 뭐, 종이에 쓰여진 쓰레기니까요. 그런 제 시들을 보여 드릴 때마다 친절하게 평가해 주시는 국어 선생님들께는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 외 주변인들에게는 아직 보여주지 못하겠네요.(겁쟁이 같으니라고) 그렇게 시를 하나 쓸 때마다 계속 국어 선생님들께 검사(?)를 맡으러 다니다가 너무 귀찮게 구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틴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내 머물 장소를 찾은 방랑자, 랄까요. 이런 말 하려고 생활글에 글을 쓰는 게 좀 부끄럽네요. 원래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각오를 쓰려고 했는데, 내년 수능이 마음에 걸리네요. 수험생 처지에 앞으로 시는 물론이고 글을 쓸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글틴엔 자주 들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만 줄일까 합니다. 제 모든 글이 그렇듯이 마무리가 엉성하네요. 흑흑. 아무쪼록 앞으로 제가 올리는 모든 시와 글들을 너그러이 보아 주시고 아낌없이 비평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랜돌프 카터
  •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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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생각이니까 그냥 참고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몰랐을 겁니다. 외할머니의 죽음, 즉, 사람의 죽음을 처음으로 본 것이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때는 타인의 죽음을 여러 번 본 사람들에 비해 어린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고, 시간이 지나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게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진 '나'처럼 보였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고 1때, 랜돌프 카터 님이 느낀 타인의 죽음에 대해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지켜본 이유는 간단히 다른 사람들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근묵자흑(먹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분위기에 이끌린 게 아닌지 생각합니다. 물론, 정확한 상황을 보지도 않았고, 제가 랜돌프 카터 님이 아니기 때문에 추측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즉,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랜돌프 카터님도 죽음에 무감각한 게 아니라 단지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의해 동조되면서 그들과 같이 지켜본 게 아닐까요? 물론, 어떤 일이 있든지 간에 죽은 사람을 보고, 그냥 지켜보면 안 되는 거지만, 나중에 그런 일이 생길 때 랜돌프 카터님이 먼저 신고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면 되니까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 2014-02-14 16:25:1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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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이 글은 옛날에 써놓고 묵혀두고 있었는데, 딱히 자책하면서 쓴 글은 아니라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올리려고 다시 읽어 보니 내용도 그렇고 자책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고치고 올릴까 하다가...... 그냥 올려버렸습니다. 지금 보면 엄청 부끄러운 글이지요.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별로 자책하지도 않고, 죽음의 무감각에 대해서 딱히 깊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때 일들에 관해선 문학황제님 말씀대로 그냥 어려서, 분위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납득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볼 문제도 아닌 것 같고... 아무튼 그냥 잊어가는 중입니다. 물론 그런 일이 다시 생기면 먼저 신고해야지요. 생기지 않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긴 조언 남겨주셔서 다시 한번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2014-02-14 21: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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