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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교문앞에서 멈추는가?

  • 작성자 표리부동
  • 작성일 2019-02-27
  • 조회수 715

인권은 교문앞에서 멈추는가?

 

인권이 불가침의 권리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자신과 타인의 인권을 지키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학교라는 체제안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짓밣힌다. 자신의 개성을 유지할 권리를.

구세기의 독재자는 민중의 두발과 복장을 제한했다. 명분은 좋았던걸로 기억하지만 명분은 결코 결과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당연히 터무니없는 제한은 해금되었고 민중은 권리를 되찿았다,

 

놀랍게도 아직까지 권리를 되찿지 못한 자들이 있다. 슬픈 이름, 학생이다.

 

그렇다면 학생은 민중이 아닌가? 학생은 민중이 아닌 다른 범주에 속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민중은 학생을 포함한다. 학생은 다른 모든 민중이 누리는 권리를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학생들은 실용성이 떨어지며 멋대가리없고 심지어 비싸기까지한 교복을 입는가?

왜?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가?, 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수 없는가?

왜? 민중들이 숨쉬듯 누리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가? 학생은 민중이 아닌가? 왜 그러는가?

 

왜 교복을 입는가? 왜? 세탁의 용이성과 단정함을 말하고 싶은가? 교복말고 세탁이 용이하고 단정한 옷이 없는가? 옷은 널리고 널렸다. 근처 의류수거함만 봐도 알수 있는 사실이 아닌가?

세탁의 용이성은 인정한다고 해도 단정함은 인정할 수 없다. 학생이 왜 단정해야 하는가? 학생이나까라는 답은 사양한다. 그러한 논리를 들이대자면 대학생들도 교복을 입어야하지 않는가? 학생은 왜 단정해야하는가? 학생이 노변의 벽돌담인가? 학생이 벽돌처럼 단정해야하는가? 경제성? 가정형편? 교복으로 감출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 정말로?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글렇게 생각한다면 당신 목위에 달린건 대갈통이 아니라 똥통이다. 머리를 조금만 굴려보시라.

 

왜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가? 한 인간이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노예인가? 죄수인가? 설사 노예나 죄수일지라도 합당한 이유없이는 자신의 권리를 제한당해서는 안된다. 합당한 이유는 있는가? 공중위생? 단정함? 학생다움? 공중위생을 찿으려면 5천만 민중을 스님으로 만들어야지 학생들의 머리를 가지고 난리칠 일이 아니다. 단정함? 왜 학생에게서만 단정함을 찿는가? 기왕 단정해지려면 모든 민중이 다같이 단정해지지? 이미 그런 주장은 20세기에 힘을 잃은지 오래다. 단정해지고 싶으면 당신 머리나 자르지 남의 머리의 홍동백서,조율이시를 논하는가? 당신의 주장이 근세 중국의 전족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왜? 안그런가? 여자는 발이 작아야지? 학생다움? 도대체 학생다움이 무엇인가? 학생다움에 머리카락이 무슨영향을 미치는가? 당신이 영향을 증명한다면 어느정도는 동의해 줄 수도 있지만 그 전에는 어림도 없다.

 

 

 

 

 

왜 자신의 거취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가? 앞서 말한대로 우리가 죄수인가? 아니면 노예인가? 우리가 죄수나 노예 취급을 받을만큼 죄를 범했는가? 타인의 안전과 권리를 해치고 사회의 질서과 공공복리를 심각하게 훼손한 경력을 가지고 있거나 재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 가지고 있다면 군말하지 않고 앉아있어 주겠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권리를 제한당해야 하는가? 합당한 이유도 없이?

우리는 민중이 아닌가? 인간이 아닌가? 민중인가? 인간인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묻겠다.

민중이며 인간인 우리 학생은 왜 인간답게, 민중답게 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가?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있다고 해도 권리를 제한하는 일이 맞는가? 제한한다고 해도 영향을 줄일 수는 없는가?

 

우리는 인간이 맞는가? 민중이 맞는가?

 

맞다면 이렇수가 있는가? 우리를 위해서라고? 당신네들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악인들은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한적이 단 한번도 없다.

민중을 위해, 민족을 위해, 경제를 위해, 질서를 위해 등의 빛좋은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는가?

 

정말 우리를 위한다면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아니 듣는걸로는 모자라니 뼈에 새겨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지 말고 뼈에 새겨라.

 

뼈에 새기지 싫다면 새겨주겠다. 당신들이 우리가 무언가 하기 싫다고 할 때,

그럼 하지않아도 된다고 했는가?

 

학교의 문을 여는 사람은 감옥의 문을 닫는다고 했던가? 참으로 맞는 말이다.

학교의 문과 감옥의 문은 하나이니 말이다.

표리부동
표리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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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리부동
  • 201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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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리부동
  • 201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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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성현

    안녕하세요. 표리부동님. 첫 만남 반갑습니다. 교복으로 인해 학생의 개성과 인권이 제한당하는 부당함에 대해 의견 올려주셨네요.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학교생활을 희망하고 계신 듯합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글을 써주셨네요. 우선 교복이 인권을 해친다는 것에 대한 주장의 근거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획일적 단정함과 학생다움의 추구가 인권에 문제가 된다는 근거로는 약한 듯합니다. 근거가 약해지면 작자가 다소 감정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학생의 교복 착용을 개성과 자율이란 관점에서만 본 것도 아쉽습니다. 교복과 사복을 입었을 때의 장단점들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함께 올려주셨으면 어땠을까요? 각각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살펴준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복폐지가 필요함을 강조해 주시는 것이 독자들을 설득하는데 효과적입니다. ’거취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가?‘라는 내용은 무엇을 말하는 건지요? 학교 선택이나 진로를 말하는 건가요? 이 내용에 대해서도 보완이 필요할 듯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2019-03-04 21:24:24
    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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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리부동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복이외의 다른 부분은 괜찮으신가요?

    • 2019-02-28 11:56:59
    표리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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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현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괴테의 명언 하나가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청년은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감동이나 자극을 받기 원한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면, 아이러니 하게도 교복 자율화가 허용되었던 시대가 전두환 정부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정부 때 우리나라는 1년 유예기간을 두고 1982년부터 두발 자율화, 1983년부터 1986년까지 교복 자율화를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학생들의 일탈 및 가계부담 증가, 지도의 어려움이 계속되자 문교부(현 교육부)에서는 1986년 2학기부터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교복을 착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당연히 학교는 곧바로 교복을 도입하려 했으리라 생각하셨겠지만, 의외로 상당수의 학교가 문교부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1990년 전후까지 교복이 아닌 사복을 착용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상당수의 학교가 교복을 착용하는 이유는 탈선 및 가계부담이 사복착용 이후로 지속해서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1992년 전국 77% 중·고등학교가 교복착용을 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지요. 지금도 교육부에서는 교복 착용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현재에도 교복을 착용하지 않는 학교가 상당수 있고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도 사실 교복이 없었습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설 공립학교였고, 학생들은 개성 있고 자유로워야 한다는 교장선생님의 뜻 때문에 교복을 착용하지 않았죠. 하지만 결국 저희 학교도 교복을 착용하게 되는데, 재미있는 것이 교복착용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 저희 학교 선배님들. 즉 학생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주장 중 하나가 학창시절에만 입을 수 있는 하나뿐인 옷을 부활해라!라는 문구였습니다. 의사가 의복을 입고, 혼례 때 혼복을 입듯 가장 학생다운 옷이 교복이라는 주장이었죠. 현재 교복을 착용하게 있는 후배인 저희 또래는 어떨까요? 교복이 불편하다, 사복을 착용하게 허용해달라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학생들은 스프링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누르면 튀어 오르는, 그런 존재라고요. 물론 교복착용이 학생의 자율권과 자유를 침해한다는 문장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사복착용과 교복착용의 과도기를 겪어온 제가 보기엔 교복과 제한들이 정말 학생들을 억압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복을 입게 해달라는 반발심, 사복을 입게 해달라는 반발심. 이러한 우리들의 반발심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민중들은 의외로 정의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익을 위해 행동하고 외치곤 하죠.  교복이 우리의 쇠사슬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학생 때에만 입을 수 있는 정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따로 교복을 빌려 입으며 과거를 추억하는 것일까요? 정말 교복이 우리를 억압하기만 할까요? 물론 표리부동님이 주장하신 것처럼 교복이 우리를 억압하는 쇠사슬일지도 모르지요. 인터넷에서 본 문구가 생각나네요. 노예가 노예로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어느 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더 무거운가. 어쩌면 교복착용이 너무나 당연해진 나머지 사복착용을 주장하는 발언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미 교복 자율화로 인한 부작용이 있었다는 점, 교복의 순기능도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다음에는 주장하는 글쓰기를 하실 때는 감성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다가오셨으면 좋겠다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건독, 건필하시길.

    • 2019-02-28 02:26:29
    성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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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성현

      성 현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19-03-04 21:29:18
      전성현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