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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속에서의 성찰

  • 작성자 귤나무
  • 작성일 2020-02-03
  • 조회수 460

난 내가 맞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가끔 한다. ‘과연 난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가. ’ 사실 그렇다라고 대답한 적은 거의 없다. 아니 한 번도 없을 것이다. 난 항상 자존감이 낮고 게으르고 또 우울했으니까.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으면서 고통받는 내가 바보같았고, 한심했고, 답답했다. 참 멍청한 짓들을 잘도 해왔다. 어제까지도 죽으려던 내가 오늘은 이 시간들이 언젠간 다 나의 경험이 되리라는 재미있는 소리를 하고있다. 너무나도 이중적인 모습이 우습기도 역겹기도 하다. 이 모습들이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는 것임을 알기에 연민의 감정마저 든다.

맞다. 나는 죽고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누구보다 격렬하게 살고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행복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행복에 관한 책을 읽고, 남들의 행복에 귀기울였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보이는 듯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행복을 찾고싶었다. 난 살기 위해선 행복해야만 했으니까.

진정한 행복을 위해 많은 고뇌를 했다. 그 덕에 알게 된건 인간이란 참 바보같다는 것이다. 모두 결국은 행복하기를 바란다. 행복, 무엇인지도 모르는 행복을 쫓아 경쟁하며 불행해지고 있다.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의 불행을 감수한다.

지금의 행복보다 미래의 행복은 당연히 가치있는 일일까?

지금의 불행을 이겨내지 못하고 내가 죽는다면?

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삶을 마감하는 것인가?

그렇게 죽는다면 나는 왜 미래의 행복을 쫓았던 것일까..

의문들이 생긴다. 풀리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해되지 않지만 다들 당연하단 것처럼 수긍하고 있다. 이렇게 보다 보면 불확실성이란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닫는다.

가치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 불확실성이라는 가격표로 가치가 매겨진다. 내가 5만원씩 받는 용돈보다 길거리에서 주운 만원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예정되어 있는 방학보다 갑작스런 휴가가 나를 기쁘게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불확실성에 많이 좌우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행복을 무시한 채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나 막연한 미래의 행복을 쫓아가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불확실이란 공포에 휩싸여 확실한 지금의 행복을 놓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공포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무모한 사람, 철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하지만 난 그 사람들을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그 공포에 떨며 그저 눈을 감고 있기에.

 

귤나무
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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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4:00

새벽은 항상 날 이상하게 만든다. 한 없이 밝지도 한 없이 어둡지도 않은 애매한 색을 가진 시간. 그 시간이 나도 모르게 생각에 빠지게 한다. 감정이 파도처럼 요동치고 밀려오게 만든다. 내일의 내가 오늘처럼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걸 알면서 내일은 다를거라며. 그래야만 한다며 의미없는 반성과 함께 나는 작아져만 간다. 생각 속에 빨려들어간다. 그런데도, 날 우울과 공허함으로 몰고가는 새벽인데도. 좋은 이유는 뭘까. 모두가 잠든 시간. 오로지 나만이 깨어있는 것 같은 고요함. 깜깜하지만 덕분에 달은 밝게 빛날 수 있는 시간. 밤이 깊어지는 만큼 내 생각도 깊어져만 간다. 어떨 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거 같은 날이 있다. 그럴 땐 산책을 핑계삼아 슬쩍 나가 꽤 오랫동안 찬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곤 한다. 차지만 어딘가 포근함이 느껴지는 새벽공기. 새벽 공기만이 가진 그 특유의 냄새가 나를 깨우는 듯하면서도 안아주는 듯하다. 이 모순된 공기는 날 행복하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하늘은 새벽이 되어서야 나타난다. 새벽이 좋은 이유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한밤의 새까만 어둠보다는 미묘하게 밝아진 듯한 하늘에 보이는 달과 수많은 별들. 낮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흐렸던 내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 동시에 끝을 알 수 없는 하늘이 날 먼지보다도 작게 만들어 괜히 초라해졌음을 느낀다. 광활함에 고개를 내릴수 없게 한다. 하지만 그게 날 안심하게 만든다. 별 거 아닌 존재이니 굳이 뭔갈 잘 해내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서. 생각지 못한 위로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일찍 자겠다는 다짐을 자꾸만 어겨가며 얻은 새벽은 그 사실로 날 분노하게 하면서도 소중해 계속 간직하고 싶다. 그것이 매일 오는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미묘하게 다른 느낌들이라. 왜인지 그게 나에게 지나간 밤을 느끼게 해 아련하게 만들고 다가오는 아침을 알려주어 불안하게 만든다. 아침해처럼 떠오르는 아쉬움은 또 다시 눈물을 불러온다. 나에 대한 아쉬움. 지나간 하루에 대한 아쉬움. 따뜻한 전기 장판과는 다른 서늘한 공기가 날 위로하는 듯 시린 코 끝을 기분좋게 건드린다.

  • 귤나무
  •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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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글자, 한 없이 작아져 세상에서 사라지고만 싶어지는 이 기분. 내색하진 않았지만 아니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이게 현실임을 점차 깨닫는다.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반전이 있지도, 낭만적이지도, 내 뜻대로 되지도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런 선물이라니. 이제 정말 원하는 선물만 받던 그 때는 지나버린 걸까. 뒤늦게 터져나올 것 같은 눈물을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본다. 이렇게라도 하지않으면 정말 괜찮지 않을 것 같아서. 불합격이라는 사실보다도 날 괴롭게 하는 건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이었다. 난 언제나 부담과 기대에 버거웠고 확신에 찼던 결과는 내가 믿었던 만큼 충격과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건 비단 나만의 얘긴 아니었다. 나를 믿었던 사람들도 같이 무너졌다. 그 사실이 나를 더한 나락으로 빠뜨리게 한다. 이 불합격 하나가 나를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 분명 어제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인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에 대한 평가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다. 스스로가 너무나 싫어진다. 후회가 된다. 바보 같아진다. 아무것도 믿고 싶지 않고 내가 실망시켰다는 사실이 너무 아프다. 남들은 다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듯해 더 비참하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이리저리 할 일을 찾아 열중해보려 해도 이 비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목에 걸린 가시마냥 날 계속해서 불편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지금 이 시간도 내가 지금껏 보내왔던 것처럼 지나갈거란 걸 분명 머리론 알고 있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나는 여전히 힘들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허우적거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기력감이 날 옥죈다. 내 편, 내 맘을 이해해줄 사람 하나 없는 것 같아 쓸쓸하기까지 하다. 겨우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 스스로 위로하는 내 모습이 말도 못하게 처량하다.  그저 행복해 하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합격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친구들과 웃으며 떠들던,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뒹굴거리던, 걱정없던 그 날들이 지금과는 한 없이 멀어보여 아련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좌절을 겪지만 나는 그게 나에게 올 줄, 나의 일이 될 것이란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성인이 되기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나는 나름 여러 번의 성장통을 겪고 성장했다 생각했지만, 난 여전히 아이였다.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가진 듯 행복해하던 아이. 어려움에 맞닥뜨리면 도망부터 가고 싶어했던 그 아이는 지금도 도망가고 싶다. 이 차갑고 무서운 현실에서 간절히 도피하고 싶다. 한 동안 깨지 않는 긴 잠에 빠지고 싶다. 아무것도 마주하지 않게. 내일이 오지 않게. 모두가 날 보아도 느끼지 못하게 눈을 꼭 감고 싶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일지 몰라도 이 세상에서 난 엑스트라였다. 그것도 깨닫지 못한 난 멍청하게도 허울좋은 명언들에 취해 성숙한 척, 강한 척, 우스운 짓들을 해왔다. 그 명언을 남긴 사람들은 세상의 주인공인 줄도 모르고 우쭐대고 있었다. 스스로도 구제하지 못하면서 현자라도 되는 듯이 조언과

  • 귤나무
  • 2020-12-25
다시 날아오를 날을 소망하며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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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귤나무
  •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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