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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한계를 뚫고

  • 작성자 사랑하마
  • 작성일 2021-08-06
  • 조회수 911

노력과 재능 모두 한계가 있다. 나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능이 없으면 얼마나 초조한지 잘 안다.

이번 주 내내, 몸도 정신도 지쳐있었다. 텅 빈 용지 위에 쓸 수 있는 문장은 없었다. 한 글자도 쓸 수 없어, 숨이 턱턱 막혀와서 가만히 엎드렸다. 팔뚝에 눈물을 다 묻혔다. 종이 한 장을 꺼내 간단한 그림을 그렸는데 자꾸 입술이 말랐다. 그림도 그릴 수 없고, 글도 쓸 수 없는 이 무력함에 빠져들었다. 나는 입술을 뜯었다. 뜯은 딱지가 으깨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결과물이 없어도 과연 상관없을까. 다른 농도의 의견들이 머릿속에서 섞였다. 그러다 드는 생각, 나 정말 노력하고 있나. 과연 재능이 있을까. 어느 분야에서든 한계를 마주한다는 것에 너무 미숙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넓은 도화지의 맛을 처음 알았다. 그 텅 빈 바닥은 나에게 점을 찍어보라고 속삭였다. 그렇게 연필을 잡고 몇 시간 동안 그린 작품이 있었다. 물론 그전에 무언가를 제대로 그려본 적은 없었다. 비뚤게 튀어나온 선들을 겨우 덧칠했던, 크기도 손가락만 한 그림은 정말 허접했다. 마음에는 이미 그림을 향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이후로 새벽 6시에 기상했다. 학교 가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버릇이 되었다. 좋은 습관도 아니고 조금 까다로운 버릇이었다. 잠이 많아서 학교와 학원의 쉬는 시간에 선잠을 자야 했으나. 그것도 거부했다. 틈이 날 때마다 색연필을 들었다. 가방 안을 주섬거리다 한 뼘짜리 스케치북을 꺼내고. 꾸벅꾸벅 졸며 선을 그었다. 몸이 약해져서 링거를 자주 맞았는데. 일단 한 손도 못 쓰고, 입에서는 마늘 향과 비슷한 약 냄새가 났다. 오른손잡이답게 링거를 맞을 땐 항상 왼팔을 들이밀었다. 왼팔 중앙부의 혈관을 못 찾는다면 손, 혹은 팔목이라도 맞아야 했다. 오른손으로 그림의 구도를 짜며 알사탕을 깨물던 나는 희열을 느꼈다. 그림을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때는 몰랐다.

나는 말주변이 없었다. 거절 표현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눈초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걸로 나를 여러 방식으로 찢어버릴 것 같았다. 체육 시간에는 짝이 없었다. 짝이 생기더라도 그 애는 어설프게 3인조 팀을 만들거나, 몇 번 릴레이를 하다 어딘가로 달아나는 것이다. 나는 반에서 며칠 결석을 하더라도 모를 아이였다. 그렇지만 생판 모르는 애들도 내 그림만 보면 늘 기대 이상의 칭찬을 해주었다. 예고를 목표로 하며 입시를 하던 친구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나를 잘 알았다. 교내 그림대회에 세 번 나가서, 두 번 1등을 거머쥐고 왔다. 체육대회 현수막을 그릴 땐 언제나 내가 있었다. 아이들이 그림을 보며 숙덕일 때, 전시된 그림을 비교하는 내용이 다수였지만 그곳에서도 실력으로 밀린 기억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미술 관련 진로를 찾아보라며 권유하셨고. 드디어 맨몸으로 뛰어든 도화지에서 성공적인 잠수를 해냈다. 더 깊게 잠수할 의지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가며 입시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나는 내 그림을 선생님들께 쉽사리 보여주지 못했고, 붓으로 조색하는 것도 버거웠다. 하지만 은연히 내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꽤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 입시를 하며 또래 아이들이 두세 명 들어왔다.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한 달이 더 지날 즈음 나는 차이를 느꼈다. 같은 그림을 모작하는데 그 친구들의 그림 그리는 속도가 한 박자 빨랐다. 속도에서 벌어진 간격이 점차 넓어졌다. 친구들은 손이 더 빠른 만큼 더 많이 그렸다. 그림의 구도, 채색법, 세세한 영역을 묘사하는 법까지 나보다 우세했다. 열일곱이 되어서 열등감이 등골을 타고 기어올랐다. 선생님은 그림 열 점 정도를 바닥에 깔아 그것들을 평가했고. 수치심에 얼굴이 쉽게 달아올랐다.

곱절로 늘어난 다른 친구의 실력을 보면서, 나는 재능이 무엇인지 답할 수 있었다. 재능은 틀이다. 평범한 반죽을 넣어도 세련되도록 모양 잡는 틀이 있다면. 좋은 반죽을 구워도 틀이 아예 없을 수 있다. 모양은 일단 이목을 끌기에 값어치가 더 늘어난다. 맛은 몰라도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모습이 곧 재능이었다. 하루하루 지나며 미술에 대한 흥미를 빠르게 잃어갔다. 뼈만 남은 먹잇감을 문 채 쏘다니는 개처럼. 애를 쓴 흔적이 남은 그림들, 난 괜한 기대를 걸며 방황했다. 그림을 찢어버리고 변기에 처박는 상상으로 살았다. 물론 실행하지는 못했다. 대신 학원 화장실 칸에 숨어 입을 막고 끅끅 울었던 것. 약간 붓기가 남은 눈으로 거울 바라보던 것은 멀미가 났다. 밑바닥의 시야는 참 좁아서 여유가 도통 생기질 않았다.

 

미술로 좌절감에 시달리며 재능을 갈망했다. 운 좋게도,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구멍을 발견했다. 수능 공부를 하며 문학을 자주 접하게 되었을 입시생 시절. 그때 보았던 글은 살이 가득 차 버릴 뼈조차 없었다. 한 문장마다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나도 시를 써보고 싶었다. 사실 노래 가사 쓰는 걸 좋아했지. 음악 없이 글을 쓰는 건 정말 어려웠다. 여덟 살에 폴더폰으로 짧은 글을 쓰고, 열세 살 이후로 글귀를 끄적인 게 다였으니.

그럼에도 그림 그리는 것과 달리 글쓰기만의 묘미를 느꼈다. 열일곱이었던 나는 책꽂이에 깊숙이 넣었던 일기장을 꺼냈는데. 그것을 펼쳐보니 문드러진 감정을 찬찬히 읽어낼 수 있었다. 글의 형식이 아니었다면, 나의 오래된 마음을 명료하게 불러오기 힘들었겠지. 몇 장을 넘기며 어린 시절의 나에게 젖어갔다. 일기장을 덮고 펜을 잡는데. 한참 공책의 줄을 훑으며 시를 지었다. 초고를 대강 써보고 퇴고를 거듭했다. 산문처럼 내용이 길어지면 핸드폰에 대신 적어내고. 오직 그 작업만 반복했을 뿐이다.

글을 쓰다가 가능성이 보였다. 더는 밀리지 않을 분야를 찾은듯한 확신이 들었다. 다만, 이번에는 오직 ‘글쓰기’만 해서 탈이었다. 말 그대로 글만 쓰고 독서를 하지 않았다. 책을 아주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고 흥미가 보통 정도로 머물지도 않았다. 그저 책에 무관심했다. 책마다 눈길이 머물렀던 적은 별로 없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일부러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빌렸다. 다시 반납할 때에는 얼마 못 읽은 채로 내버리기 일쑤였다. 내신 감점이 두려워 독서기록장은 꾸준히 채워서 냈다. 와중에 책을 제대로 완독하지도 못하고 목차만 보며 내용을 짐작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줄거리와 인물 관계를 알아듣지 못했는데. 지인들은 책 페이지에서 흐르는 미묘한 감정선을 좋아했다. 도저히 그 기분이 뭐라고. 자존심이 퍽 상하는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그럼 같이 영화를 보거나 다른 매체를 접하자고 하셨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활동은 내 시간을 빼앗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남의 창작물을 접할 시기도 미루다가 갑자기 계속 글을 써보겠다니. 확실히 고된 일이었다.

내가 아는 시인들은 문제집에서만 본 저명한 얼굴들인데. 다양한 시집 읽는 것을 즐거워하며, 독서에 완전히 중독된 친구들은 큰 언덕처럼 보였다. 나와 너무 달랐다. 차라리 서로를 뛰어넘어야 하는 경쟁은 그만하고 편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야 나는 글 잘 쓰는 사람을 동경할 뿐이다. 분명 다양한 작품을 접했다면 나도 변화가 생겼을 텐데. 많은 힘을 쏟았던 미술과 달리, 이번에는 틀어진 노력이 문제였구나. 책 없는 문학은 없으니까.

 

재능이 있다면 오래 버틸 수는 있다. 하지만 재능은 잠재력에 가깝다. 첫 폭발을 일으키지는 않고 몇 번이고 연쇄적으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마다 내재한 가능성은 절대적이라 생각했으나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재능이 부재하면 성장이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노력이 부재하면 성장하는 기세가 확 꺾이고 만다. 이젠 텅 빈 종이를 보면 망설이게 되었다. 한 번에 뛰어들 용기가 부족했다. 그러나 문단을 뛰어넘어 다른 문단을 쓰거나. 도화지에 머무는 색채를 오랫동안 떠올리면. 막상 한계가 밀려와 내게 부딪혀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재능과 노력에 대한 불안감은 잠시 미뤄두고, 가벼운 낙서를 했다. 그리고 무턱대고 서점에 가서 중학생 때 읽었던 소설책 한 권을 샀다. 다시 정독하는데 울컥했다. 천천히 문장을 헤아리느라 등이 자주 굽어졌다. 팔을 아래로 뻗어가는 잉크 한 방울처럼. 어쩌면 그날엔 가장 유동적인 자세로 잠수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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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늦겠지만

버스에 타면 늘 단골 자리가 있다. 교통카드를 찍고 한 계단 올라가서야 탈 수 있는, 기사님의 운전석 바로 뒤 위치한 자리이다. 눈이 오지 않았는데 나는 늘 미끄러질 생각만 했다. 몸을 뒤로 넘어뜨리고 나서야 의자 등받이가 내 뒤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참 다행이지. 버스 문이 피식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바퀴가 굴러갔다. 처음에는 한 발짝 정도 슬슬 나아가다, 본래의 속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버스가 1단지에서 출발했어. 뒤에 있는 아주머니께서 전화하시는데. 그분의 따님일지 반갑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이셨다. 머지않아 나의 핸드폰도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발신자명이 떴으나 눈앞이 희뿌옇기에 잘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화면을 내 눈앞에 가져다 대었다. 세희 언니였다. 전화를 받은 후, 정말 간단한 대화였다. 세희 언니는 오늘 낮에도 크리스마스 잘 보냈는지, 오늘 애들과 함께 저녁 먹으려 미리 모여있는데 몇 시까지 올 수 있을지 물었다. 이후로 버스 내 전광판을 지켜보았다. 몇 분씩은 꼭 어긋나있는 시계였다.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고 오른손으로 전원 버튼을 몇 번이고 눌러댔다. 일정하게 바뀌는 시간 속 숫자들에 압박감을 느꼈다. 창가로 서리가 눌어붙었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밀어내며 투명해지는 자국을 보았다. 버스는 좌회전해서 여느 대형마트 앞 정류장에 섰다. 그런 식으로 버스에 탄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그리고 버스는 계속 왼쪽으로 돌았다. 때로는 덜컹거리고, 때로는 급정차했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거리를 보니 동네 중학교 벽면에 붙여진 메시지들이 눈에 밟혔다. 때마침 버스 바닥 부분에서 히터를 틀어서인지 발목이 따뜻했다. 물론 가슴 한구석도 그리 춥지는 않았다. 어느덧 번화가 쪽으로 회전하는 버스. 나는 멍하니 다시 하얘진 창가를 보았다. 버스용 신호등에 초록빛이 켜지니 금방 목적지였다. 하차하며 카드를 찍었다. 매서운 공기에 눈물이 고였다. 눈이 완전히 없어진 광장은 몹시 차가웠고 메말랐다. 기나긴 바람과 함께하는 성탄절이다. 나는 광장의 트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 트리는 수백의 전등이 달려있었다. 모든 전등의 얼굴은 파랗다가 다시 하얗게 빛을 뿜었다. 인파 속에서도 아는 얼굴이 하나 보였다. 나를 포함한 넷이서 저녁을 먹기로 했던 친구 중 한 명인 서연 언니였다. 나는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외투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썼기에. 아마도 이 날씨에 짜증 나지 않았을까. 나는 머쓱하게 언니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언니도 이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우리는 별말 하지 않았다. 내가 “날씨가 너무 추운데 기다려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면 언니는 “아, 괜찮아, 어차피 우리 온 지도 얼마 안 되어서.”라고 앞장설 뿐이다. 서연 언니는 같은 무리였지만 그렇게 자주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니까, 어색한 게 당연하겠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성탄절 캐롤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각자 대열을 바꾸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황홀한 사람들은 셔터가 터지는 작은 소리에도 웃을 수

  • 사랑하마
  • 2021-12-29
매미보다 금방 뒤집히곤 했지만

배를 보이고 죽는 것들이 있다. 적어도 우리는 아니다. 우린 반드시 엎드린 채 죽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등을 드러내며 숨이 멎는다는 것은 평범한 임종이 아니다. 등줄기가 공중에 훤히 드러난 채로 잠들어버린 이들이 늘어난다 해도 가슴에 묵직하게 놓인 서러움이 풀려야지. 우린 그걸 제대로 된 죽음이라 부른다. 자꾸만 떠오르는 숨들은 파도를 마신 후 주마등에 덮인다. 점점 뭍으로 다가오는 운동화들을 본 적 없겠지만, 그중 한 켤레는 분명 주인의 발보다 치수가 크겠지. 신발끈 매듭은 늘 단단해야 보기 좋아 보이던데. 급하게 떠나는 여행이라서 대충 묶었을 것이다. 혼자 한강 다리에 가서 철로 된 난간의 차가움을 쓸어내고 싶었다. 검게 그을린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모르는 이들의 얼굴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 별을 밟는 것에 죄책감이 들곤 한다. 우리의 운동화도 너무 더러워서. 턱까지 차오르는 뜨겁고 싸한 기운을 이겨내려고 자기 전 약 봉투를 뜯을 때마다 나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는 건 너무 짧아 한정판 상품을 대량 구매하는 것처럼. 한 번이라도 더 숨 쉬는 것을 의식해봐야지.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어렵사리 세상을 떠나 다른 별로 옮겨 간 이들을 떠올린다. 약의 둥근 모서리가 손바닥의 손금을 타고 구를 때. 너무 쉽게 떨어지는 몸들을 생각하면 자꾸 우리가 떠오른다. 수면등을 키고 얇은 이불을 덮어도 나의 입속에 털어놓았던 모진 말들의 몸집이 커져 숨통이 막히게 된다. 병든 사람들의 신음이 위 속에 녹을 때까지. 부작용이 없길 소망하는 기도를 중얼거린다. 부작용, 배를 감싸 쥐다가 밤을 지새우고. 간혹 열린 베란다 밖으로 풀벌레 소리가 별 알갱이들처럼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아파하고, 아파도 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 높은 다리 주변에는 잡초가 많다. 홀로 남은 사람들은 나방의 날갯짓 소리에도 나처럼 복통을 느꼈을 것이다. 야밤에 서성이던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소화제 몇 알과 사람의 목소리였다. 은은한 새벽달이 흘러가는 것을 본다. 순간, 네가 있는 메신저 방에 알림이 뜬다. '다들 자는 거야?' 친한 언니에게서 온 메시지. 지금은 새벽 다섯 시잖아. 나는 피식 웃음을 낸다. 그런데 여름엔 이른 다섯 시에도 해가 뜨긴 하는구나. 그렇게 낮이 오면 우리는 늦잠에 들고 한층 느린 꿈을 꾼다. 나의 잠버릇은 좀 고약한 편인데 주변의 이불을 끌어모았다가 다시 풀어헤치고 완전히 두 손발 벌리며 잔다. 그리고 멍한 얼굴로 낮에 일어나 볶음밥을 한다. 약 먹은 빈속에 배고프면 잠이 안 오지. 식사를 마친 후 싱크대에 그릇을 넣고 물을 받아둔다. 지금 나는 그럭저럭 살 만하다, 너도 그렇니. 글을 쓰면 입술을 닫고 있는 근육이 이완되는 것처럼 뭐든지 편히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너도 오늘 새벽에 깨어있었지. 널 만나면 나의 걱정이 솟는다. 과연 우리 모습을 이 용지에 담아낼 수 있을까. 내가 너에게 손을 제대로 뻗는 중일까. 최대한 오랫동안 숨결을 지어낼 수 있길 바라며 내게 있어, 애원하듯이 적어 내린 극복 서사는 질리지 않는다. 몇 번

  • 사랑하마
  • 2021-09-14
하얀 얼굴 그리기

커튼이 바람에 밀려 창문 옆 책상을 삼켜버릴 때가 있었다. 자리 주인은 오늘도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도 몇 년 뒤에도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의 모서리는 둥글어졌다. 그렇다고 완벽한 원형의 모습은 아니었다. 곡선 끝에는 각각 다른 직선이 있어 우리가 흔히 엎드리던 책상의 모양이 되었다. 언덕을 네 번 넘으면 올해의 사진첩을 묻어두었던 곳에 도착할 것이었다. 우리 발에 묻은 먼지가 나무의 무늬를 따라 빙빙 돌았다. 세 번째 언덕을 걷던 나는 너에게 물었다. 사진을 보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도 그러기로 했다. 돌아온 우리는 맨손으로 책상에 뚫린 구멍을 더 넓혔다. 그 안에는 사진첩이 있었다. 사진마다 글이 적혀있는데 눈을 찌푸려도 보이질 않아서 읽는 것을 관뒀다. 숫자가 드문드문 보였다. 분명 날짜일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말자고. 모든 사진의 너머로 나무의 핏줄이 비쳤다. 책상의 가공된 부분은 반들거리고 볼록했다. 팔꿈치를 사진첩 곁에 두려고 움직이며 급여된 우유곽을 쳤다. 진한 냄새가 나는 방울들이 책상 모서리에 매달렸다. 나는 우유를 실수로 흘릴 때마다, 그 책상에 무슨 계절이 왔다고 불러야 하는지 통 알 길이 없었다. 우유 방울의 늘어나는 팔을 보면 고드름이 자꾸 떠올라 겨울이라 불렀고, 찝찝한 기운이 흐르면 여름이라 불렀다. 너는 사진첩을 보느라 흘린 우유를 늦게서야 보았다. 물수건을 꺼내 대강 얼룩을 닦아내는 네 뒤에서 나는 적당한 날씨의 계절을 그리워했다. 목련이 깔끔한 꽃잎을 내밀던 봄, 비둘기가 새털구름을 뚫기 위해 높이 날아올랐던 가을. 그러니까 언제나 하얀 얼굴을 했다. 다들 마스크를 쓰지만. 우리는 십 년 전부터 늘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지금 비린내가 나는 책상 앞, 그리고 네 곁에 앉아 어깨에 머리를 포갰다. 너를 잘 알아보지 못하겠다고. 나는 웅얼거렸다. 자라며 잃고 얻은 것이 많아서. 네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여기에 있다고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대로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만난 적이 없으니까. 너도 나의 옷자락 대신 팔뚝에 있는 살을 잡아당기지 않을까. 옷을 벗고 도망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서로의 살점을 꼭 붙들어놓았다. 이제 방과 후 교실에서 커튼만 일렁이는 것이다. 보드라운 귀 안팎에는 아무것도 매달리지 않았다. 다만 천이 스치는 소리가 뒷등을 따라 움직였다. 막연히 결핍만을 생각했던 시절에도, 평범했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여덟 살의 나는 좀 더 깔끔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골목길 사이를 뛰어다니다, 뒤에서 늦게 따라오시는 할머니를 기다리고는 했다. 그 골목에는 공구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가게 주위에는 높은 턱이 길쭉하게 있었고 이를 살살 넘었다. 내리막길을 가다 보면 카네이션 서넛이 어느 텃밭에 자라있었다. 철로 된 울타리 너머 자리를 텄기에 그것을 직접 따올 수는 없었다. 나는 그들처럼 자랄 수 없었지만, 나를 꽃처럼 바라보던 아이가 있었다. 권호는 몸집이 조금 컸다. 행동도 둔한

  • 사랑하마
  • 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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