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조금은 늦겠지만

  • 작성자 사랑하마
  • 작성일 2021-12-29
  • 조회수 801

버스에 타면 늘 단골 자리가 있다. 교통카드를 찍고 한 계단 올라가서야 탈 수 있는, 기사님의 운전석 바로 뒤 위치한 자리이다. 눈이 오지 않았는데 나는 늘 미끄러질 생각만 했다. 몸을 뒤로 넘어뜨리고 나서야 의자 등받이가 내 뒤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참 다행이지. 버스 문이 피식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바퀴가 굴러갔다. 처음에는 한 발짝 정도 슬슬 나아가다, 본래의 속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버스가 1단지에서 출발했어. 뒤에 있는 아주머니께서 전화하시는데. 그분의 따님일지 반갑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이셨다. 머지않아 나의 핸드폰도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발신자명이 떴으나 눈앞이 희뿌옇기에 잘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화면을 내 눈앞에 가져다 대었다. 세희 언니였다. 전화를 받은 후, 정말 간단한 대화였다. 세희 언니는 오늘 낮에도 크리스마스 잘 보냈는지, 오늘 애들과 함께 저녁 먹으려 미리 모여있는데 몇 시까지 올 수 있을지 물었다. 이후로 버스 내 전광판을 지켜보았다. 몇 분씩은 꼭 어긋나있는 시계였다.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고 오른손으로 전원 버튼을 몇 번이고 눌러댔다. 일정하게 바뀌는 시간 속 숫자들에 압박감을 느꼈다.

창가로 서리가 눌어붙었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밀어내며 투명해지는 자국을 보았다. 버스는 좌회전해서 여느 대형마트 앞 정류장에 섰다. 그런 식으로 버스에 탄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그리고 버스는 계속 왼쪽으로 돌았다. 때로는 덜컹거리고, 때로는 급정차했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거리를 보니 동네 중학교 벽면에 붙여진 메시지들이 눈에 밟혔다. 때마침 버스 바닥 부분에서 히터를 틀어서인지 발목이 따뜻했다. 물론 가슴 한구석도 그리 춥지는 않았다. 어느덧 번화가 쪽으로 회전하는 버스. 나는 멍하니 다시 하얘진 창가를 보았다. 버스용 신호등에 초록빛이 켜지니 금방 목적지였다. 하차하며 카드를 찍었다. 매서운 공기에 눈물이 고였다. 눈이 완전히 없어진 광장은 몹시 차가웠고 메말랐다. 기나긴 바람과 함께하는 성탄절이다. 나는 광장의 트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 트리는 수백의 전등이 달려있었다. 모든 전등의 얼굴은 파랗다가 다시 하얗게 빛을 뿜었다. 인파 속에서도 아는 얼굴이 하나 보였다.

나를 포함한 넷이서 저녁을 먹기로 했던 친구 중 한 명인 서연 언니였다. 나는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외투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썼기에. 아마도 이 날씨에 짜증 나지 않았을까. 나는 머쓱하게 언니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언니도 이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우리는 별말 하지 않았다. 내가 “날씨가 너무 추운데 기다려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면 언니는 “아, 괜찮아, 어차피 우리 온 지도 얼마 안 되어서.”라고 앞장설 뿐이다. 서연 언니는 같은 무리였지만 그렇게 자주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니까, 어색한 게 당연하겠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성탄절 캐롤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각자 대열을 바꾸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황홀한 사람들은 셔터가 터지는 작은 소리에도 웃을 수 있었다. 나도 이제 웃을 수 있겠지. 우리는 계속 걸었다. 무단 주차되어있는 차들 사이에서, 서연 언니와 나는 도로 쪽을 빼꼼 쳐다보며 길을 건넜다. 조금은 늦었겠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한 발을 새로이 바닥에 내밀 수 있어 감사해졌다. 길거리에서 담배 연기를 맡아도 아무쪼록 좋았다.

닭갈비집이 있는 빌딩 입구에 문이 있었다. 그 문의 손잡이는 당연히 젖어 있었고, 그걸 잡으니 아려오는 손바닥에 흠칫했다. 우리는 계단을 올랐다. 2층이라 얼마 되지도 않지만 조금 숨이 찼다. 닭갈비집에 들어가니 늘 풍기는 고기 냄새에 침이 고였다. 서연 언니는 간장에 절인 닭고기를 더 가져오려, 접시를 들고 나섰다. 세희 언니는 나를 보고 손짓했다. 세희 언니 옆 의자는 뚜껑이 있는 동그란 통과 같았는데. 그 안에 옷가지와 가방을 넣었다. 패딩에 냄새가 스며들 걱정은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몇 분도 되지 않아 버스를 늦게 탔다던 수정이 왔다. 수정이도 왔구나. 드디어 네 명이 모이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닭고기 한 점을 집어 먹을 수 있었다. 가운데에서 연기를 내며 천천히 구워지는 닭고기였다. 그 안에서는 감칠맛 나는 즙이 흘렀다. 세희 언니는 분위기를 타며 자신이 뛰었던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아르바이트는 상품 출고와 관련된 업무를 했다. 시급도 꽤 괜찮아서 일일 아르바이트로 갔던 모양인데. 호되게 힘들었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쉽지 않은 일과 빠른 출근 시간, 그리고 중간에 언니가 먹었던 음식에 탈까지 나서 생고생을 했다. 우리는 세희 언니를 다독여주었다. 돈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희생이 필요하지만, 잘 안 맞는 일에 몸을 혹사해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와중에 우리는 닭고기를 집어가는 순간마다 눈치를 보았다. 중학생까지만 해도 그리 생각했다. 고기가 있는데 누가 굳이 고구마와 양배추를 더 많이 집어가겠어. 그래서 다들 무언가 망설이는 느낌이 드는 것이지. 그것도 틀리진 않는 말이다. 실제로도 고구마볶음은 언제든 인기가 별로 없었으니. 하지만 망설임에는 더 큰 까닭이 있었다. 세희 언니가 말한 아르바이트 이야기처럼, 우리도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 넷은 말수가 크게 줄어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저녁이라 하고픈 말들은 있겠지. 적어도 기존의 코로나와 오미크론이라는 연장선이 생기기 전까진, 마음껏 떠들 수 있었을 텐데. 벌써 비대면을 지향하는 두 번째 성탄절이 오고야 말았다.

질겅거리는 비계를 억지로 먹어 삼켰다. 사람과 만났는데 왜 얼굴을 볼 수 없을까, 왜 말을 건넬 수 없을까. 아니, 애초에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걸 권장하는 이 사회에서 무얼 할 수는 있을지. 순간 울컥했다. 건너편에 앉은 수정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착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좋은 친구야 너는. 몇 주 전 수정을 붙잡고 울었다. 우는 까닭은 간단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을 거란 야박한 평가와 도움을 청할 가치도 없다는 자기비하. 그뿐이다. 성탄절의 한 식당에서, 고구마볶음을 피해 닭고기를 열정적으로 찾는 지금의 수정은 아마 별생각 없겠지만. 난 그 애가 해준 말을 계속 곱씹어보고 있었다. 수정은 그때 나를 달래기 위해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나는 행복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했고, 그 애는 넌지시 말했다. “나도 그래.” 이 네 글자. 그렇지. 너도 그렇지.

아마 어릴 적 나라면 수정에게 화를 냈을 것이다. 오직 가시만을 들이밀면서도 구석으로 몰리기만 했으니. 이 모든 고립을 내가 자처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이미 지난 일이기에 현재의 나에게 오는 타격은 마음먹기에 달린 셈이고. 미안하지만 너도 힘들다고 했으니까 결국, 우리는 혼자일 수가 없었다. 울음을 멈출 무렵에 나는 수정이와 약속했다. 그 애는 내가 이번 겨울 방학에 건강 문제로 또 입원하게 된다면, 세희 그리고 서연 언니와 병문안을 꼭 오겠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어림없는 말이다. 입원하는 과정도 까다로웠을뿐더러 병문안은 거의 금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로 만족했다. 적어도 연말에 맡았던 닭고기 냄새로도 온기를 느낄 테니. 앞으로 남은 치료는 더 꿋꿋이 해내야지. 침이 흐르도록 먹음직한 기억을 음미해야겠다. 그건 바로 소소한 행복이니까.

바투 앉은 우리 사이에는 꼭 탁한 공기가 쌓여있었지만. 손 뻗으면 닿을 거리이였고. 서로 얼굴을 잊을까 초조해할 필요도 없었다. 서연 언니가 배부른지 젓가락을 먼저 놓았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켜 대뜸 게임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건장한 남성이었다. 새로운 캐릭터가 나왔는지 묻는데, 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그 캐릭터 하나가 내 친구 셋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훤칠했다. 개인적으로는 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내가, 정말 부러울 정도로 실력 있는 분이 이 캐릭터를 그렸다는 것인데. 선이 뚝뚝 끊기는 느낌도 채색의 부조화도 없었다. 그러나 요즘 게임을 하나도 모르기에, 친구들과 새삼 관심사가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 싶었다.

 

나도 캐릭터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좋아하지. 생각해보니 그림들을 글과 엮어볼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다. 동화 작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계획도 금년에 들어오면서 확고해졌다. 문제는 글과 그림을 병행할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 고민에 꽤 깊게 빠져있었기에 친구들과 식사 하면서도 좀 멍했다. 이 식당에서는 환경부담금이 나온다는 이야기에 몇 조각을 더 챙겨 먹고, 다들 옷가지를 단정히 입고, 계산한 후 밖으로 나올 때까지. 멍하게 있었다. 바깥은 얼어있었기에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세희 언니는 급하게 일이 있다며 수정으로부터 책이 든 봉투를 하나 받아들고 손을 마구 휘저었다. 성탄절 식사는 그렇게 마무리했다. 이후 수정이가 세희 언니에게 준 책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 서점에 들렀다. 수정이도 글을 쓰는 걸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데. 그 책을 찾고 보니 두께가 있었다. ‘소설 쓰기의 모든 것’은 총 5권 시리즈인데 1권과 5권만 샀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문체가 간단하다고 추천해주셔서 골랐다. 독서 후 감상문을 썼던 중학생 때에도 그리 책과 친하지 않았는데. 뭔가 신년이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오늘부터 달라져야 하겠지.

분명 옷을 밀폐된 통 안에 넣었는데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 냄새를 둘러싼 다른 냄새들. 종이에 코를 댄 채로 잠들고 싶었다. 책을 두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지폐를 몇 장 꺼냈다. 책을 다시 들고, 그대로 걸어가 계산대에서 가격을 재확인했다. 도장 찍힌 도서를 꽉 안아 들었던 순간, 내가 그 책들의 식구가 된 듯 설레었다.

서점의 문을 열었다. 손잡이가 차갑게 젖어 있겠지 싶어, 유리면을 밀었는데 그것도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냉기의 정도가 딱히 다르지 않았다. 다음부터 문을 보면 온몸으로 밀고 나가야겠다고 혼잣말했다. 열 살의 나는 보도블록을 걷다가 정해진 무늬를 따라서 혼자 놀았다. 현재는 길가에서 고개를 푹 숙이는 일이 있어도 그 놀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스무 살이다. 놀 수는 있으나 그것보다는 대학교에서 학점을 관리하고, 자격증을 따고, 취업 준비를 먼저 해야 하니까. 요즘 드는 생각이 그렇다. 나라는 사람이 돈을 벌 수 있을까. 상하차는 몸이 고장 날 것같이 힘들고, 편의점은 자리가 없고, 일반 카페에 가기에는 난관이 많을 텐데. 땅 위 돌조각을 마구 차면서 걷느라 목덜미가 좀 아팠다. 이제 죽음에 관한 생각은 줄었다. 그렇지만 언제든 내 목을 밟을 수 있는 위험한 사고방식이라 경계해야 했다.

 

요즘 묵직한 작법서를 보면 기분이 차분해졌는데, 내가 글을 쓰며 얼마큼 애썼는지 그만큼 작품들을 정말 소중히 여기려 했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두 달 전 내 지인분의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문예창작과에 들어온 새내기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있다는 것. 주요 인물을 끝까지 비극적 사건으로 괴롭히는 과정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소설은 간혹 자살 혹은 살인을 저지르는 등으로 완결되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결말이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저녁식사 후, 집 가는 마을버스로 달려가거나 버스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꼭 붙잡아놓은 질문이 있었다. 나는 어떻게 나의 캐릭터를 사랑할 수 있을까. 물론 먼저 나 자신을 더 아끼는 법이 필요하겠지만.

수정에게 위로를 들었고, 세희 언니에게 배려를 받았고, 서연 언니도 날 걱정해주었다. 정작 나는 나에게 준 것이 없었구나. 힘이 없었다. 메시지로 수정이에게 오늘 배부르게 먹었는지 물어보려다 지쳐서 그만두었다. 핸드폰 화면을 끄자마자 버스의 문이 요란하게 닫혔다. 원래대로 버스는 운행되었다. 생각해보니 이제 새내기가 된 친구들은 전부 다른 지역으로 가버릴 것이다. 헤어져야만 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성인으로서 만날 수 있는 것들도 그야 생기겠지만. 어린 청소년의 나날들에 너무 정들어버렸다. 운이 좋게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났으니 그걸로 만족하겠다. 글을 쓰며 그리워하고 아끼다 흘려보내야지.

버스는 신호에 자주 멈춘다. 눈 끔벅이면 벌써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일 것이다. 걱정은 좀 덜어내도 상관없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듣기 어려울 만한 작은 소리로, 이무진 가수의 ‘신호등’을 흥얼거렸다. ‘신호등’의 노래 가사처럼 성인이 되어도, 혼란스럽기만 하고 큰 변화가 계속 몰려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늦어도 더 넓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점. 곧 떠날 장소여도 이곳은 아늑했다는 점에서 모든 것에 감사하다. 수 십 개의 가로등이 버스 앞을 스쳐갈 무렵, 빛 아래서 맑아지던 나의 표정을 더 오래도록 보고 싶다.

 

    

-

미대를 다니는데 드로잉을 그리 잘 하는 편이 아니라 열등감이 들었는데.
고민한 끝에 사진 두 장을 올리기로 했지만. 아직도 제 그림을 온전히 사랑하진 못하나 봐요.

이래 봬도 나는 사람들이 좋아요. 다만 방어적인 태도와 피로감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다가가질 않았고.
사실 굉장히 후회돼요. 매일매일을 내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아쉽네요.
이곳에서 내가 끄적였던 글이 다른 게시글들 사이에 꽂혀 있을 때마다 은근 소속감이 들었어요.
이번 달에 참여했던 글틴 캠프는 비록 다른 장소이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죠.
댓글이나 답글을 많이 남겼어야 했어요. 나에게는 무엇보다 표현하는 자세가 필요했을지도 몰라요.

타인의 시야가 된 듯한 글을 쓸 수 있게, 작은 경험이라도 차근차근 쌓아야겠어요.
요즘 취업에 관해서 정보를 좀 더 수집하고 있었어요. 편입 영어나 토익도 슬슬 준비해야 하죠.
졸업 작품도 선배님들이 했던 포트폴리오를 참고하며 대강 구성을 짜야 할 테니까, 바쁘네요.

슬플 땐 오늘 같은 한겨울에 훌쩍이며 방황하지 말고, 따뜻한 품 속에서 눈물 좀 흘려야겠네요.
그동안 진솔한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분들을 떠올리며 오래오래 살아야겠습니다.

스물, 가장 어린 어른이니 너무 급하게 행동하지 마요. 늘 응원할게요.

사랑하마
사랑하마

추천 콘텐츠

매미보다 금방 뒤집히곤 했지만

배를 보이고 죽는 것들이 있다. 적어도 우리는 아니다. 우린 반드시 엎드린 채 죽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등을 드러내며 숨이 멎는다는 것은 평범한 임종이 아니다. 등줄기가 공중에 훤히 드러난 채로 잠들어버린 이들이 늘어난다 해도 가슴에 묵직하게 놓인 서러움이 풀려야지. 우린 그걸 제대로 된 죽음이라 부른다. 자꾸만 떠오르는 숨들은 파도를 마신 후 주마등에 덮인다. 점점 뭍으로 다가오는 운동화들을 본 적 없겠지만, 그중 한 켤레는 분명 주인의 발보다 치수가 크겠지. 신발끈 매듭은 늘 단단해야 보기 좋아 보이던데. 급하게 떠나는 여행이라서 대충 묶었을 것이다. 혼자 한강 다리에 가서 철로 된 난간의 차가움을 쓸어내고 싶었다. 검게 그을린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모르는 이들의 얼굴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 별을 밟는 것에 죄책감이 들곤 한다. 우리의 운동화도 너무 더러워서. 턱까지 차오르는 뜨겁고 싸한 기운을 이겨내려고 자기 전 약 봉투를 뜯을 때마다 나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는 건 너무 짧아 한정판 상품을 대량 구매하는 것처럼. 한 번이라도 더 숨 쉬는 것을 의식해봐야지.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어렵사리 세상을 떠나 다른 별로 옮겨 간 이들을 떠올린다. 약의 둥근 모서리가 손바닥의 손금을 타고 구를 때. 너무 쉽게 떨어지는 몸들을 생각하면 자꾸 우리가 떠오른다. 수면등을 키고 얇은 이불을 덮어도 나의 입속에 털어놓았던 모진 말들의 몸집이 커져 숨통이 막히게 된다. 병든 사람들의 신음이 위 속에 녹을 때까지. 부작용이 없길 소망하는 기도를 중얼거린다. 부작용, 배를 감싸 쥐다가 밤을 지새우고. 간혹 열린 베란다 밖으로 풀벌레 소리가 별 알갱이들처럼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아파하고, 아파도 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 높은 다리 주변에는 잡초가 많다. 홀로 남은 사람들은 나방의 날갯짓 소리에도 나처럼 복통을 느꼈을 것이다. 야밤에 서성이던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소화제 몇 알과 사람의 목소리였다. 은은한 새벽달이 흘러가는 것을 본다. 순간, 네가 있는 메신저 방에 알림이 뜬다. '다들 자는 거야?' 친한 언니에게서 온 메시지. 지금은 새벽 다섯 시잖아. 나는 피식 웃음을 낸다. 그런데 여름엔 이른 다섯 시에도 해가 뜨긴 하는구나. 그렇게 낮이 오면 우리는 늦잠에 들고 한층 느린 꿈을 꾼다. 나의 잠버릇은 좀 고약한 편인데 주변의 이불을 끌어모았다가 다시 풀어헤치고 완전히 두 손발 벌리며 잔다. 그리고 멍한 얼굴로 낮에 일어나 볶음밥을 한다. 약 먹은 빈속에 배고프면 잠이 안 오지. 식사를 마친 후 싱크대에 그릇을 넣고 물을 받아둔다. 지금 나는 그럭저럭 살 만하다, 너도 그렇니. 글을 쓰면 입술을 닫고 있는 근육이 이완되는 것처럼 뭐든지 편히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너도 오늘 새벽에 깨어있었지. 널 만나면 나의 걱정이 솟는다. 과연 우리 모습을 이 용지에 담아낼 수 있을까. 내가 너에게 손을 제대로 뻗는 중일까. 최대한 오랫동안 숨결을 지어낼 수 있길 바라며 내게 있어, 애원하듯이 적어 내린 극복 서사는 질리지 않는다. 몇 번

  • 사랑하마
  • 2021-09-14
표류하는 한계를 뚫고

노력과 재능 모두 한계가 있다. 나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능이 없으면 얼마나 초조한지 잘 안다. 이번 주 내내, 몸도 정신도 지쳐있었다. 텅 빈 용지 위에 쓸 수 있는 문장은 없었다. 한 글자도 쓸 수 없어, 숨이 턱턱 막혀와서 가만히 엎드렸다. 팔뚝에 눈물을 다 묻혔다. 종이 한 장을 꺼내 간단한 그림을 그렸는데 자꾸 입술이 말랐다. 그림도 그릴 수 없고, 글도 쓸 수 없는 이 무력함에 빠져들었다. 나는 입술을 뜯었다. 뜯은 딱지가 으깨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결과물이 없어도 과연 상관없을까. 다른 농도의 의견들이 머릿속에서 섞였다. 그러다 드는 생각, 나 정말 노력하고 있나. 과연 재능이 있을까. 어느 분야에서든 한계를 마주한다는 것에 너무 미숙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넓은 도화지의 맛을 처음 알았다. 그 텅 빈 바닥은 나에게 점을 찍어보라고 속삭였다. 그렇게 연필을 잡고 몇 시간 동안 그린 작품이 있었다. 물론 그전에 무언가를 제대로 그려본 적은 없었다. 비뚤게 튀어나온 선들을 겨우 덧칠했던, 크기도 손가락만 한 그림은 정말 허접했다. 마음에는 이미 그림을 향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이후로 새벽 6시에 기상했다. 학교 가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버릇이 되었다. 좋은 습관도 아니고 조금 까다로운 버릇이었다. 잠이 많아서 학교와 학원의 쉬는 시간에 선잠을 자야 했으나. 그것도 거부했다. 틈이 날 때마다 색연필을 들었다. 가방 안을 주섬거리다 한 뼘짜리 스케치북을 꺼내고. 꾸벅꾸벅 졸며 선을 그었다. 몸이 약해져서 링거를 자주 맞았는데. 일단 한 손도 못 쓰고, 입에서는 마늘 향과 비슷한 약 냄새가 났다. 오른손잡이답게 링거를 맞을 땐 항상 왼팔을 들이밀었다. 왼팔 중앙부의 혈관을 못 찾는다면 손, 혹은 팔목이라도 맞아야 했다. 오른손으로 그림의 구도를 짜며 알사탕을 깨물던 나는 희열을 느꼈다. 그림을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때는 몰랐다. 나는 말주변이 없었다. 거절 표현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눈초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걸로 나를 여러 방식으로 찢어버릴 것 같았다. 체육 시간에는 짝이 없었다. 짝이 생기더라도 그 애는 어설프게 3인조 팀을 만들거나, 몇 번 릴레이를 하다 어딘가로 달아나는 것이다. 나는 반에서 며칠 결석을 하더라도 모를 아이였다. 그렇지만 생판 모르는 애들도 내 그림만 보면 늘 기대 이상의 칭찬을 해주었다. 예고를 목표로 하며 입시를 하던 친구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나를 잘 알았다. 교내 그림대회에 세 번 나가서, 두 번 1등을 거머쥐고 왔다. 체육대회 현수막을 그릴 땐 언제나 내가 있었다. 아이들이 그림을 보며 숙덕일 때, 전시된 그림을 비교하는 내용이 다수였지만 그곳에서도 실력으로 밀린 기억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미술 관련 진로를 찾아보라며 권유하셨고. 드디어 맨몸으로 뛰어든 도화지에서 성공적인 잠수를 해냈다. 더 깊게 잠수할 의지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가며 입시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나는 내 그림을 선생님

  • 사랑하마
  • 2021-08-06
하얀 얼굴 그리기

커튼이 바람에 밀려 창문 옆 책상을 삼켜버릴 때가 있었다. 자리 주인은 오늘도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도 몇 년 뒤에도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의 모서리는 둥글어졌다. 그렇다고 완벽한 원형의 모습은 아니었다. 곡선 끝에는 각각 다른 직선이 있어 우리가 흔히 엎드리던 책상의 모양이 되었다. 언덕을 네 번 넘으면 올해의 사진첩을 묻어두었던 곳에 도착할 것이었다. 우리 발에 묻은 먼지가 나무의 무늬를 따라 빙빙 돌았다. 세 번째 언덕을 걷던 나는 너에게 물었다. 사진을 보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도 그러기로 했다. 돌아온 우리는 맨손으로 책상에 뚫린 구멍을 더 넓혔다. 그 안에는 사진첩이 있었다. 사진마다 글이 적혀있는데 눈을 찌푸려도 보이질 않아서 읽는 것을 관뒀다. 숫자가 드문드문 보였다. 분명 날짜일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말자고. 모든 사진의 너머로 나무의 핏줄이 비쳤다. 책상의 가공된 부분은 반들거리고 볼록했다. 팔꿈치를 사진첩 곁에 두려고 움직이며 급여된 우유곽을 쳤다. 진한 냄새가 나는 방울들이 책상 모서리에 매달렸다. 나는 우유를 실수로 흘릴 때마다, 그 책상에 무슨 계절이 왔다고 불러야 하는지 통 알 길이 없었다. 우유 방울의 늘어나는 팔을 보면 고드름이 자꾸 떠올라 겨울이라 불렀고, 찝찝한 기운이 흐르면 여름이라 불렀다. 너는 사진첩을 보느라 흘린 우유를 늦게서야 보았다. 물수건을 꺼내 대강 얼룩을 닦아내는 네 뒤에서 나는 적당한 날씨의 계절을 그리워했다. 목련이 깔끔한 꽃잎을 내밀던 봄, 비둘기가 새털구름을 뚫기 위해 높이 날아올랐던 가을. 그러니까 언제나 하얀 얼굴을 했다. 다들 마스크를 쓰지만. 우리는 십 년 전부터 늘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지금 비린내가 나는 책상 앞, 그리고 네 곁에 앉아 어깨에 머리를 포갰다. 너를 잘 알아보지 못하겠다고. 나는 웅얼거렸다. 자라며 잃고 얻은 것이 많아서. 네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여기에 있다고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대로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만난 적이 없으니까. 너도 나의 옷자락 대신 팔뚝에 있는 살을 잡아당기지 않을까. 옷을 벗고 도망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서로의 살점을 꼭 붙들어놓았다. 이제 방과 후 교실에서 커튼만 일렁이는 것이다. 보드라운 귀 안팎에는 아무것도 매달리지 않았다. 다만 천이 스치는 소리가 뒷등을 따라 움직였다. 막연히 결핍만을 생각했던 시절에도, 평범했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여덟 살의 나는 좀 더 깔끔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골목길 사이를 뛰어다니다, 뒤에서 늦게 따라오시는 할머니를 기다리고는 했다. 그 골목에는 공구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가게 주위에는 높은 턱이 길쭉하게 있었고 이를 살살 넘었다. 내리막길을 가다 보면 카네이션 서넛이 어느 텃밭에 자라있었다. 철로 된 울타리 너머 자리를 텄기에 그것을 직접 따올 수는 없었다. 나는 그들처럼 자랄 수 없었지만, 나를 꽃처럼 바라보던 아이가 있었다. 권호는 몸집이 조금 컸다. 행동도 둔한

  • 사랑하마
  • 2021-07-03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5월의 무언

    아늑했던 기억을 꼭 붙잡고,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요. 사랑했던 순간이 말로만 기억되고 과거가 되어버리니까, 그냥 지금 다가오는 순간들을 최대한 사랑하고 느끼기. 행복하게 보낸 날이면 돌아가는 버스가 이상하게 기억에 남던데, 제가 느꼈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고 믿고 있어요. 제 자리는 맞은편이에요. 운전석의 바로 뒤, 그 오른편에 위치한 자리요. 언젠가 한번 그 자리에 앉아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러 갔는데 조수석에 앉은 기분으로, 기사님이 바라보는 바깥 풍경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정말 신기했었어요.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도 그 자리에 앉았죠. 그 이후로 기분이 좋을 때면 그 자리에 앉아서 밖을 바라 봐요. 아마도 사랑하마님이 느꼈던 그런 마음 그대로 앉아서, 가로등이 지나가고 신호가 움직이고 차들이 흐르고. 그렇게 돌아왔나 봐요. 그런 기억을 떠올렸네요. 멋진 글 고마워요. 스무살 화이팅.

    • 2021-12-30 16:30:22
    5월의 무언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