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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선 위성도 빛이 나겠지

  • 작성자 난바다
  • 작성일 2023-10-02
  • 조회수 773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본래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면서 자신만의 세상을 가진 작가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비록 이과들로 점령된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 추상적인 부분이 많이 있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나의 가족들은 계산적인 면들이 다소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부분들을 즐기는 편이다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돌연변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어째서 너 하나만 이렇게 눈에 띄는 것이냐며 놀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난 이런 나만의 특별함을 소설보다도 더 좋아한다.

 

일단 내가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래 전에 같이 지내던 친구로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이어지게 된 것은 소설만이 가진 매력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그 매력에 사로잡힌 나는 중학교에서도 소문난 소설 광으로 유명했다그 당시지금보다도 나는 더 소설에 열광적이었고 그 결과나는 선생님께 찾아가 당당하게 소설 동아리를 만들게 해달라고 주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주장은 단칼에 거절당했다지금 되돌아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동아리 담당 선생님은 누구고 부원들은 누구고 우리는 무슨 활동을 할 것인지 말도 하지 않고 무작정 소설 동아리를 만들어 주세요!’ 라고 주장하다니. (심지어 나는 그 때 이미 생물부에 가입한 상태였다.) 아마 선생님 눈에는 작은 생쥐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치즈를 달라고 외치는 꼴이 아니었을까이런 발칙한 행동 탓에 같은 교무실을 쓰시던 독서 선생님께 나는 눈도장이 당당히 찍혔다.

 

독서 선생님의 일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한 뒤그 책을 독서 감상문으로 쓰도록 하는 업무였다물론초등학교 졸업에 불과한 아이들이 독서 감상문을 진심으로 쓰는 일은 많진 않았다장난스러운 말투로 뭐가 재밌었고 뭐가 슬펐고 뭐가 무서웠습니다라고 쓴다거나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독서 감상문을 그대로 베끼거나책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아이들 가운데에서 유독 열심히 쓰던 내 독서 감상문과 학교에서 가장 무섭기로 유명한 선생님 앞에서 당돌하게 고개를 치켜 든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으신 모양인지 그 날독서 선생님께서는 따로 수학 시간에 나를 부르셨다애들의 부러움 섞인 눈빛을 받으며 나는 영문도 모른 채독서 선생님을 따라갔다독서 선생님이 내게 쥐어주신 것은 손원평 작가님의 아몬드였다선생님께서 그 후뱉으신 말씀은 딱 한 마디였다. ‘다음 시간까지 이 책으로 독서 감상문 써서 가지고 와볼래?’ 나는 짧게 라고 대답했다.

 

중간 중간 독서 감상문을 쓰면서 사서 선생님께 조언도 듣고 틈틈이 책을 읽었다아몬드를 이미 읽었지만 사서 선생님께서 감상문을 쓰면서 한 번 더 보는 것은 어떠냐는 말씀을 따라 난 처음으로 같은 책을 두 번 읽었다분명 첫 번째 읽었을 때에 울지 않았건만나는 두 번째 읽었을 당시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보았다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워낙 요란하여 엄마가 놀라 나를 달래 주기도 했다그러다 왜 우냐고 물으면 나는 책이 너무 슬프다고 말했고 엄마는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시며 빙긋 미소를 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아몬드의 독서 감상문은 그런 내 눈물이 잔뜩 묻어져 있는 글이었다이 사실을 독서 선생님께서 아신다면 참으로 놀라실 일이다마지막으로 글을 직접 연필로 쓰던 날에 우습게도 연필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나를 애틋하게 만들어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다행히 그 날은 울지 않았다선생님께 눈물 자국 잔뜩 있는 독서 감상문을 제출한다면 선생님께서도 놀라실 테니까그리고 나의 독서 감상문을 보시던 독서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이번에도 딱 한 마디. ‘앞으로도 독서 감상문을 써서 가지고 올래?’ 나는 다시 한 번 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과는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그 중가장 기억나는 대화를 굳이 하나 고르자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날이었다나는 선생님께서 주신 깔끔한 표지의 책을 보고선 굉장히 재미없을 것 같은 책이라고 말했다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시곤 미소를 지으셨다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굉장히 의외였다나도 소설이 싫다는 짧은 말독서 선생님이 말하기에는 굉장히 부적합한 발언이었기에 나는 동그랗게 눈을 뜬 채로 엎드려 누워 선생님을 힐끗 보았다여전히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정확히는 주인공과 조연이란 말이 싫은 거라고 해야 할까주인공도조연도 각자의 삶이 있는데 말이야.’ 그 말을 하면서도 선생님의 표정은 덧없이 무던한 표정이었다이어 그 점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고이 책에 나와 있는 모두가 빛이 나는 것처럼 묘사한 부분 때문이라며 크게 웃으셨다나는 조명이 켜져 있는 건물 모양이 그려진 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주인공과 조연그날따라 그 단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기이한 마음을 가진 채 무려 한 학기 동안 총 12장의 독서 감상문을 썼다선생님이 주시는 책을 보면서 차차 글을 써 내려갔다독서 선생님께서는 한 학기동안 내 글을 봐 주시고 어떤 부분을 고치는 것이 좋은지어떤 부분은 또 네가 간직했으면 좋은지 알려주셨다그 기억을 토대로 난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선생님은 아실는지선생님께서 가르친 학생이 아직도 그 기억 속을 더듬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아쉬울 따름이다만약 선생님께서 여전히 학교에 남아 계신다면 찾아뵐 수라도 있을 텐데 말이다선생님께서는 한 학기 동안 나에게 이런 추억을 선물하시고는 학교를 떠나셨다사유는 불명아무리 다른 선생님께 물어봐도 그것은 알려줄 수 없다며 모두가 나에게서 대답해 주지 않았다나는 선생님께서 마지막 날에 주신 텅 빈 독서 감상문을 꼭 쥔 채로 교무실 앞에서 입술을 잘근 잘근 씹었다여느 때처럼 교무실 앞선생님께서 소설책을 줄 것만 같은데 문 너머로 보이는 선생님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입 안에서 옅은 피 향이 났다썼다.

 

그 일은 내가 겪었던 경험 중 최악의 일이라 손에 꼽을 만큼 비극적인 일이었다내 친구들은 어차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중 한명이라며 나를 위로했으나 그것은 나에겐 위로가 되지 못했다우습게도 선생님께서는 주인공과 조연이란 단어가 싫다고 했지만 선생님과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내가 퍽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져서정확히는 주인공처럼 느껴져서선생님과의 시간이 난 너무 좋았다보잘 것도 없어 보이던 내가 유일하게 빛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어쩌면 내가 과도한 애정 결핍에 시달려서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여럿 존재할 것이다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주인공과 조연의 관계선이 흐릿하게만 보였다.

 

어느 날내 친구는 나에게 밤 산책에 나가자고 말했다선생님이 떠나신 지 보름이 안 될 무렵이었다그리고 선생님이 떠나신 후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의 몇 년 지기 친구이기도 했다그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편의점에서 사와 내게 건네고는 뜬금없이 밤하늘에 별세기 놀이를 하자고 했다나는 곧장 검은 도화지마냥 까만 밤하늘에 유일하게 흰 색 점을 찍은 것처럼 빛나고 있는 것을 가리켰다친구는 그건 위성이라고 말했다아니아닐 텐데나는 눈을 찡그리고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여전히 빛나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친구는 그런 내가 웃기기라도 했는지 코웃음을 쳤다. ‘바보야내가 어느 만화에서 봤는데 밤하늘에서 보면 위성도 똑같이 빛난다고 했어저건 별이 아니야.’ 나는 친구의 말을 끝으로 다시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정말로 친구가 위성이라 지칭하는 것은 밤하늘에서 반짝 빛나고 있었다어떻게 보면 별들보다도 더 밝았다나는 아이스크림이 내 손에 흘러내려오고 있는지도 모르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주인공과 조연에 대한 단어를 이해하게 된 시점이었다.

 

그날부로 나는 독서 감상문 대신 소설을 썼다시인이신 나의 할머니께서는 어떻게 작은 미물 하나하나를 그리도 아름답게 보는지 궁금했지만 웃기게도 그것의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나의 세상은 내 마음 가짐에 달려있다는 것을내 세상도 그 무엇보다 빛날 수 있다는 것을나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내 소설 속에 녹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그 후로 소설을 정말 열심히 썼다인터넷에 올렸을 때에 연락 온 경우도 여럿 있었다나는 내가 존재하는 세상이 다른 사람들처럼 빛나고 있음을그리고 다른 사람도 나처럼 빛나고 있음을 그제야 깨달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밤하늘의 달빛이 나의 방을 비출 때면 일부러 고개를 치켜들고 빛나고 있는 것들을 찾고 있다별도위성도 밤하늘에서 보면 똑같이 빛이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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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글틴을 알게 된지 6개월, 글틴에서 글을 쓰게 된 지는 어느덧 5개월이 지났다. 열여덟, 어떻게 보면 입시에 집중해야 할 나이에 글틴을 알게 된 것은 꽤나 늦은 나이였다. (매일같이 내가 하루라도 빨리 글틴을 알았더라면, 이라는 말로 후회하고 있다.) 사실 그 때의 나는 공모전을 알아보고 있었고 글틴에 글을 꾸준히 올리는 것은 꽤나 힘들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왜인지 모르게 그 때의 나는 글틴이라는 사이트에 당당히 내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 아마 내가 처음에 글을 쓰게 된 것도 문학이 아닌 웹소설이었기에 더욱 그랬던 거일지도 모르겠다. 웹소설 역시 훌륭한 글의 장르라 생각하지만 순수문학에 빠진 이후로 그와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었으니까. 그 날로 당장 글틴에 가입을 하고 ‘난바다’라는 어떻게 보면 유치한 필명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그니까 순전히 나의 호기심과 모험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글을 쓰는 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이고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입시 스트레스와 글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겹치면 힘들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난 5개월 동안 글틴을 통해 글을 쓰며 글에 대한 즐거움을 다시 정의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그 5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나라는 사람은 참 많이도 바뀌었다. 모태 게으름이었던 내가 글을 꾸준히 쓰기 시작하고. 전에 쓰고 싶다고만 막연히 생각하던 소재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늘 생각만 해오던 일들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내가 지금껏 써오던 글은 소설과 시뿐이었는데. 글틴에 오고 나서부터는 감상과 비평과 수필에도 맛이 들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 것만 같아 흡족하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수필이다.) 예를 들어 감상과 비평이라는 부문은 나라는 사람이 쓰기엔 굉장히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어휘력도 좋지 못하고 배움도 짧은 사람이라, 아직까지도 글을 쓸 때에 어떻게 써야 할지 한참을 고민해야 한다. 전에 멘토님께 지적을 받았던 것처럼 같은 문장을 반복한다거나, 또는 굳이 높은 표현을 써서 가독성을 떨어트리는 것처럼. 내 글에는 나 역시 미처 발견하지 못한 흠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 지적을 받았을 때, 처음엔 정말 그런가 당혹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었고 다시 살펴보면 정말로 그 부분이 이상하다는 것이 내 눈에도 보여 놀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감상과 비평 부문에 글을 쓰면 오히려 책의 본질을 내가 흐리게 만들 것만 같아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감상과 비평에 글을 올리게 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만큼이나 책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글을 읽는 것이 좋았고, 그 글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으며 나 역시 글틴에서 올라온 감상과 비평 글을 보며 많은 감명을 받기도 했으니.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 야심한 밤에 내가 잠 대신 글을 쓰기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글을 사랑하는지 대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글틴에 오고 나서 힘들었던 기간도 있었다. 사람의 욕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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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7
바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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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바다
  •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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