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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혹은 저주

  • 작성자 위다윗
  • 작성일 2023-10-26
  • 조회수 570

난 오늘 학교야자를 째고 내 인생 두번째 다운펌을 하고 왔다. 


고등학교 2학년이 외모에 신경쓸때는 아니라지만, 그런 말을 하시는 어른들의 청소년 시절은 어땠는지 누가 알겠는가? 참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 내가 간 미용실은 서울에서 거의 가장 비싼 샵이었는데 정작 나는 일푼도 내지 않았다. 그곳에서 디자이너가 되길 꿈꾸는 어느 지망생이 자신의 습작을 펼칠 사람이 필요했기에, 나는 공짜로 머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매우 친절하고 과묵하신 20대 남성분이셨는데 짜르는 종종 "머리가 정말 많이 뜨네", "돈이 많이 드는 머리네요" 등등의 코멘트를 달아주셨다. 우리 집에서 돼지털 머리라는 별명을 가진 나로서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머리가 정돈되 있는 "정상적인" 내 또래 애들이 부러워지는 마음도 인정하기 싫을 만큼은 있었다. 

그렇게 내 친구들은 학교에서 지겨운 일상의 반복과 피곤과 졸음과 싸우며 학교를 지킬때, 난 혼자 공짜머리를 하러 강남에 간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느끼는 이 자유로운 가을바람과 서정적인 풍경, 퇴근시간 이후 덜 분주한 지하철이 기분을 좋게 하면서도, 내가 미루어 둔 과제와 시험준비, 그리고 게걸스럽게 공짜를 집어들게 하는 우리 가정의 제정적 상황이 떠올라 다시금 무거워졌다. 그렇게 세시간이라는 값을 지불하여 만들어진 내 머리는 생각보다 꽤 마음에 들었다. 살짝 촌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나의 이 두가지 감각, 행복감과 박탈감은 내 헤어스타일에만 있지 않다. 우리 학교는 국제학교이자 국내코스가 마련되어 있는 조금 독특한 학교인데 나는 해외대학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종종 국내코스를 밟는 학생들이 날 부러워하지만 그들에게 난 그들이 부럽다고 말할 순 없어서 이렇게 글을 써본다. 말은 해외이지만 사실 미국대학의 비싼 학비를 댈 여력이 안되 아시아 대학에 일단 들어가 취업에 성공해 학비를 해결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보단 국제적인 도시들이지만 그 반면에는 엄청난 인구밀집도와 인종간의 갈등, 과한 도시화로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도시들이다. 흔하지 않는 유학이라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것은 감사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지, 부모님이 원하는 건지 분간이 안되는 목표를 향해 바다를 건너 고향을 그리워해야 할 나의 모습이 자꾸만 그려진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나의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부정할 수 없는 많은 도전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하나하나 넘었을때 내가 거두게 될 보상또한 클 것이다. 무엇보다, 적어도 인간다운 겸손함을 내게 남겨주는, 빛나지만 동시에 썪어가는 인류와 연결되게 해주는 고리가 되지 않을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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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당신에게 하고픈 말

안녕하세요저는 있잖아요그냥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어요 저는 글자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게 어떤 글자이든지 간에 그 글자에 황홀한 추억 하나 걸어놓으면 다 작품이 되거든요 그 까닭에 이 낭비스런 시간도 당신의 마음속 아름다운 액자에 걸어놓으면 다 보석이 된답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읽어보세요 당신은 오늘 힘든 일이 있었어요 당신이 질투하는 바로 그 잘난애에게,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바로 그 잘난애가, 고백을 했거든요 학교를 뛰쳐나가서 당신의 사랑을 망친 시험지처럼 찢고 싶었겠죠 그럼에도 기어이 참고 여기까지 오셨네요 제 글을 읽고 계시잖아요 저와 당신은 참 닮은 구석이 많아요 얼굴에 피가 나듯이 붉어오른 여드름 몇마리 이곳에서 답을 찾듯이 여러 글들 사이를 방황하고는 무엇을 써야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잠에 든 숲 속의 오로라이지요 당신은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어요 못생긴 미꾸라지라며 자신에게 언어학대를 남발하죠 저도 사실 그래요 이 글을 읽고 오늘 처음이라도본인을 사랑해보세요 사랑이라는 하늘속 우정이라는 연 위에 올라타 자유와 기쁨의 노래를 불러 보아요 마치 어두운 밤 서럽게 우는 두꺼비처럼 마음껏 모든 것을 바쳐서 노래를 불러 보아요 이제 제 손을 잡고, 내일을 기대해보아요 지금까지 제 말이 빈 말처럼 들리셨다면 그건 아마 제가 텅텅 빈 창고였기 때문이었을 거에요 만약 거미줄이 사방에 쳐진 창고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 결코 믿지 마세요 아니, 믿어주세요

  • 위다윗
  • 2024-09-25
나의 조금 아픈 사랑

그렇다. 내 인생은 미치도록 복잡하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 복잡하고 답답한 사실을 증명해보고 싶어 쓰고 버린 내 글들과 시간이 참으로 아까울 뿐이다. 모두가 어지러운 인생, 모두가 특별해지기 위해, 위대해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 세상에서 나 위다윗이 얼마나 특별한지 듣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뭐, 그렇다고 내가 정말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지하철만 타도 남고딩들이 신나게 욕을 쏟아 붓는 그 “문제적” 기독교 (어떤 불특정 다수에게는 *독교이겠지만)를 독실하게 믿고, 그 신앙에 자신의 젊음을 던진 목회자 부부의 외동아들이자 어릴적부터 동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꼈으나 그걸 억제하며 버텨온 꽤 인내심이 특출난 사람이라고 말하면 적당할 듯 하다. 참고로, 이미 보편적인 상식이지만 기독교는 동성애를 “사랑”의 형태가 아닌 인간 본성의 “뒤틀어짐” 내지는 인간행위의 “탈선”으로 규정한다. 더 나아가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는 오늘날 정통 개신교 내에서 동성애라는 죄와 그 죄를 행하는 LGBTQ 집단의 사람들은 주로 공감과 긍휼 대신 극심한 혐오, 경계와 거절을 받는 대상이다. (기독교인들도 당연히 양심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대우가 노골적이다기 보다는 동성애자들은 그러한 대우를 받는 게 합당한 사람들이라는 암묵적인 동의를 하는 것에 가깝게 보여진다.) 부모님께서 내가 여성의 몸보다 남성의 몸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내가 사춘기를 시작할 즘,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두분 모두 굉장히 속상해하셨지만 기도와 통제 속에서 충분히 꺾일 수 있는 죄의 씨앗이라고 여기셨던 것 같다. 물론 이 씨앗은 보수적인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했고 오늘날 나는 더이상 내가 남편으로 한 여자를 사랑하며 신앙안에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조차 없게 되는 남자가 되었다. 내게는 게이라이프 아니면 독신밖에, 적어도 솔직하게는, 선택권이 없게 느껴진다. 다행히 성경은 독신라이프를 반대하지 않는다. 신약성경에서 기독교 핵심교리를 확립했던 사도 바울도 독신으로 살았다. 문제는 내가 그걸 원하는가이다. 아니, 내가 그걸 견딜 수 있는지이다. 아무리 내가 애늙은이라도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갈망은 곧 스무살이 될 나에게 다른 이성애자 젊은이들보다 덜 강하게 일어나진 않는다.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이 안갈지 모르겠지만, 난 동성애가 죄라는 명제에 동의한다. 그러나 오늘날 크리스챤들이 동성애에 대해서 갖고 있는 편견과 오해, 적대심에는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다. 동성애라는 욕구는 한 남자의 한 여자를 향한 자연스러운 욕구만큼 실제이며 이 끌림은 육적인 필요를 넘어서, 한 인간의 영적, 정신적인 필요까지를 담고 있다. 동성애에 대해 말할때 흔히 내 교회 지인들은 “게이들은 온전히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목적으로 다른 남자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인사이더로서 분명한 것은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이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호간의 케미, 친밀감, 대상의 지적 능력,

  • 위다윗
  • 2024-04-08
내가 나로 숨쉰다는 것

어린 시절, 난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환경들은 오직 나를 위해 조성된 이들이고, 난 그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당당하게 살면 된다고 믿었었다. 난 세상과 나자신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유년기를 지나왔다. 어리기만 한 아이가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하나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많은 것들과 상충되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바로, 난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나와 이 세상에 대해 무지한 한 인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사실로서 다가왔지만, 사실은 전보다 나의 두눈을 더 감기게 만들었다. 도통 이 모든 현실이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지 않았다. 그 혼란속에서 어쩌면 나의 인생에 진정한 여정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충격과 두려움은 나의 머리 위를 덮는 어두운 나무의 그림자와도 같았다. 마치 키가 큰 나무옆에서 조용히 자라던 새싹이 키가 자라, 그 나무의 가지에 부딪치는 것처럼, 나또한 그순간 어떤 딱딱한 가지에 머리를 박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이상 내가 중요하거나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사라졌다. 더이상 내가 자유롭고 행복한 미래를 갖을 수 있다는 소망도 사라졌다. 대신 나의 성장과 미래를 가로막는 어두운 철장벽과 그늘진 가지의 모습만이 남았다. 그 모습은 너무도 볼품없고 연약해 보였다. 무지라는 암흑속을 헤메다가 외로히 그 속에서 끝나고 마는 이미지가 나를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었고 내가 가진 것들은 오직 진리라는 거대한 퍼즐의 파편들 뿐이었다. 그 속에서 내게 다가오는 파편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그 파편들은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이었고, 잔인할 정도로 나를 괴롭혔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사실들과 느껴지는 사실들은 절망의 구덩이를 향해 가리키고 있었다. 현재를 기준삼았을때, 현재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만을 기준으로 받아들일때, 우리의 삶은 제한적이고 움츠려든 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들이나 우리가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를 시위하는 여러 사실들은 이해하기 쉽다. 가시처럼 툭 쑤셔대며 우리의 마음에 통증을 일으키는 생각들은 우리의 기억에 선명히 그려진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너머에 있는 더 큰 진리가 있다라는 사실을 믿을때, 우리는 그 믿음안에 도전하고 성장해나가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어떤 환경과 상황이든지 희망과 꿈을 품을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이해되는 것 이상의 것, 즉, 이해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더 큰 진리가 우리의 인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살며 때로는 현실에 부딪치고 키가 큰 나무의 가지에 머리를 박게 되는 경험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어두움과 고통속에서 피어나는 내면의 힘이란 믿음이며 신뢰이다. 그 어두움 속에서 피어나는 서광과도 같은 희망은 우리의 인생을 무지안에 갇힌 삶이 아닌, 그 무지속에서 붙들어지는 새로운 내일의 세계로 인도한다. 내가 내일을 기대하며 붙드는 그것이 무엇일까

  • 위다윗
  •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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