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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살의 로맨스

  • 작성자 위다윗
  • 작성일 2024-01-01
  • 조회수 1,330


십대들의 낭만이란, 자기 삶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물론 나 자신도 십대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 “갬성”이 세상의 몇 안되는 불변의 진리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만약 사실이 아니라도 이 정도 낭만없이 누가 무슨 낙으로 인생의 폭풍을 견딜지…


나의 삶을 영화로 담는다면 애매모호해서 관객의 애간장을 태우면서 동시에 달콤쌉싸름한 여운을 남기는 한 편의 로맨스 작품일 것 같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사랑. 모두것을 바칠 수 있는 누군가이지만 그 누군가를 얻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극. 살얼음처럼 마비시키면서도 심장만은 산불처럼 타오르는 모순 그 자체인 로맨스이지 않을까. 


“난 솔직히 얘가 뭐가 특별한지 모르겠어”. 결코 잊을 수 없는 여덟살 소녀의 일곱살 소년을 향한 비수같은 말이었다. 어릴적 사촌 누나들과, 교회 형누나, 어른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던 나의 유아적인 자존심이 얼마나 유약한 유리처럼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말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항상 똑부러졌던 그 누나는 주변 사람들의 나를 향한 애정에 의문을 제기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가 누나를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내게 상처를 준 그 날카롭고 솔직한 성격, 남들의 생각과 취향에 충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 칼날같은 자세였던 것 같다. 인생을 흥분하며 태워버리기 바쁜 남들과 달리, 조용하면서도 지적인 누나의 매력속에서 나는 내가 지향했던 나의 이상형을 발견했다. 난 나의 자존심을 파괴한 누나에게 분노를 느끼며 언젠가 누나에게 따지는 꿈을 자주 꾸기도 했다. 그러나 느꼈던 분노만큼 사랑을 느꼈고, 동시에 38선 만큼 분명한 분리감으로 인한 절망을 느꼈다. 우리는 같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교회를 함께 다니면서도 지극히 서로 교차하지 않는 각자의 인생을 걸어갔다. 누나는 미국 상위권 대학에 합격해 모두가 기대했던 대로 자신이 노력했던 학업의 눈부신 성과를 맛보았다. 한 학기동안의 대학생활 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자 잠깐 한국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17년간 그래왔듯, 다시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누나도 더이상 차가운 얼음공주 여덟살 소녀이지 않듯이, 나또한 유리같은 낙천적인 기대를 품으며 상처받는 일곱살 소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 사교적이며 화장으로 가꾼 여대생 누나앞에서 나는 설렘이라는 떨림도, 분노를 가장한 사랑도 아닌 마치 어느 복잡한 거리에서 스치는 행인을 만나듯, 누나를 만났다. 


마치 하루가 지난듯 한달이 흐르고 새해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순전히 나를 위해 새해를 핑계로 멋을 잔뜩 부리고는 밤 12시까지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갔다. 예배가 끝났을때 날짜는 마법처럼 2023년 12월 31일에서 2024년 1월 1일로 바뀌어 있었다. 내 과한 패션이 마음에 드는지, 누나는 내게 다가오더니 축복과 관심을 담은 새해 인사를 해주었다, 그 비싼 미소와 함께. 오랜시간 봐와서 그런지, 누나의 말 너머 나를 향해 가지는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마치 십년 전에 던진 말을 취소하듯이, 내게  “넌 특별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난 그 순간 씁쓸한 행복감을 느끼며 누나의 미소가 끝나기를 두려워하며 기다렸다. 누나는 다시 광활한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나는 자그마한 동네 독서실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일곱살 울보는 아직 죽지 않았으며 이 어리석은 영화 또한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말은 내가 오늘 마신 커피맛처럼 쓰지도 달지도 않는 낭만일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낭만은 결말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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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금 아픈 사랑

그렇다. 내 인생은 미치도록 복잡하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 복잡하고 답답한 사실을 증명해보고 싶어 쓰고 버린 내 글들과 시간이 참으로 아까울 뿐이다. 모두가 어지러운 인생, 모두가 특별해지기 위해, 위대해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 세상에서 나 위다윗이 얼마나 특별한지 듣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뭐, 그렇다고 내가 정말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지하철만 타도 남고딩들이 신나게 욕을 쏟아 붓는 그 “문제적” 기독교 (어떤 불특정 다수에게는 *독교이겠지만)를 독실하게 믿고, 그 신앙에 자신의 젊음을 던진 목회자 부부의 외동아들이자 어릴적부터 동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꼈으나 그걸 억제하며 버텨온 꽤 인내심이 특출난 사람이라고 말하면 적당할 듯 하다. 참고로, 이미 보편적인 상식이지만 기독교는 동성애를 “사랑”의 형태가 아닌 인간 본성의 “뒤틀어짐” 내지는 인간행위의 “탈선”으로 규정한다. 더 나아가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는 오늘날 정통 개신교 내에서 동성애라는 죄와 그 죄를 행하는 LGBTQ 집단의 사람들은 주로 공감과 긍휼 대신 극심한 혐오, 경계와 거절을 받는 대상이다. (기독교인들도 당연히 양심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대우가 노골적이다기 보다는 동성애자들은 그러한 대우를 받는 게 합당한 사람들이라는 암묵적인 동의를 하는 것에 가깝게 보여진다.) 부모님께서 내가 여성의 몸보다 남성의 몸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내가 사춘기를 시작할 즘,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두분 모두 굉장히 속상해하셨지만 기도와 통제 속에서 충분히 꺾일 수 있는 죄의 씨앗이라고 여기셨던 것 같다. 물론 이 씨앗은 보수적인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했고 오늘날 나는 더이상 내가 남편으로 한 여자를 사랑하며 신앙안에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조차 없게 되는 남자가 되었다. 내게는 게이라이프 아니면 독신밖에, 적어도 솔직하게는, 선택권이 없게 느껴진다. 다행히 성경은 독신라이프를 반대하지 않는다. 신약성경에서 기독교 핵심교리를 확립했던 사도 바울도 독신으로 살았다. 문제는 내가 그걸 원하는가이다. 아니, 내가 그걸 견딜 수 있는지이다. 아무리 내가 애늙은이라도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갈망은 곧 스무살이 될 나에게 다른 이성애자 젊은이들보다 덜 강하게 일어나진 않는다.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이 안갈지 모르겠지만, 난 동성애가 죄라는 명제에 동의한다. 그러나 오늘날 크리스챤들이 동성애에 대해서 갖고 있는 편견과 오해, 적대심에는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다. 동성애라는 욕구는 한 남자의 한 여자를 향한 자연스러운 욕구만큼 실제이며 이 끌림은 육적인 필요를 넘어서, 한 인간의 영적, 정신적인 필요까지를 담고 있다. 동성애에 대해 말할때 흔히 내 교회 지인들은 “게이들은 온전히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목적으로 다른 남자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인사이더로서 분명한 것은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이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호간의 케미, 친밀감, 대상의 지적 능력,

  • 위다윗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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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다윗
  •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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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다윗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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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바다

    글이 너무 예쁜 것 같아요 ㅎㅎ 첫사랑과 만난 이야기도 묘하게 낭만적이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너무 오래 전이라 얼굴이랑 이름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 아이가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지 그 이후로는 딱히 좋아한다는 감정은 못 느낀 것 같네요 아마 이 글이 제 첫사랑의 기억도 생각나게 한 걸 보면 정말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늘 응원할게요!!

    • 2024-02-01 00:08:55
    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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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다윗

      @난바다 사실 이 글에 담긴 추억은 난바다님의 글을 읽으며 떠올려진 것이기도 했는데, 잘 읽으셨다니 기쁘네요 ㅎㅎ

      • 2024-02-02 20:38:20
      위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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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1500
  • 몽글mongle

    기록이나 일기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이상적인 걸 본 기분이에요! 감정의 묘사나 비유에 눈길이 가는 글인 것 같아요:)

    • 2024-01-06 23:54:18
    몽글mo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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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다윗

      @몽글mongle 좋은 댓글 감사해요 ㅎㅎ

      • 2024-01-07 00:32:34
      위다윗
      0 /1500
    • 위다윗

      댓글이 삭제 되었습니다.

      • 2024-01-07 00:32:46
      위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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