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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기억법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10-16
  • 조회수 648

 곧 울어버릴 것 같은 구름이 불러온 안개를 조심해

 안개는 세상의 커튼이지, 이를테면 우리의

 눈동자에 묻혀 있는 울음을 가려버릴 수 있지

 우리의 울음은 가장 아름답게 왜곡되는 렌즈

 새하얀 커튼에 둘러싸여 막을 내리지 않기 위해

 손잡고 함께 걸었지, 해질녘의 해변을 


 태양이 다 녹아 바다로 스며드는 순간 밤이 오지

 어둑한 공기와 함께 밀려오는 안개가 있어

 우리는 시인의 눈을 가졌고 이따금 이 바다 앞에선

 지난 계절 침몰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슬퍼하고

 내가 황혼의 바다를 가르키면 너는 바다, 하고 

 발음하지 않지 그저 이토록 커다랗고 새파랗게

 묘지가 생겨났구나 태양이 입맞춤 하는구나 속삭이지


 우리의 울음은 불꽃과도 같아서 해변의 캠프파이어를 하지

 남겨진 사람들은 무얼 할 수 있어 내가 물으면

 너는 눈물 한 방울을 섞어 모래성을 만들고 

 남겨진 시인들이 무얼 할 수 있어 다시 물을 때

 그 모래성을 오래토록 간직하려고 하는 네 눈빛

 내가 안개를 가르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커튼

 하지만 가장 얄팍한 커튼이라고 네가 말하지 


 내가 다시 바다 위를 나는 새들을 가리키면

 너는 너의 렌즈로 한참동안 하늘을 담아내네

 아이들이 잠들어버린 바다를 바라보는 건 힘들어

 우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오랫동안 기록하고

 은유의 방법으로 펜을 드는 사람들의 언어로 

 새를 섬으로 여행 가는 아이들로 말하면 희석되는 슬픔 

 너와 손을 맞잡고 이 놀이를 할 수 있다니 다행이야


 놀이는 눈을 감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계속하고 

 시인들은 여기 남았고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고

 태양이 부서지는 파도에 입을 맞추고 손을 뻗어서

 넘실거리는 아이들의 혼을 쓰다듬어주는 걸 보고 있어

 우리는 눈동자에 맑고 선명한 울음을 새겨넣지 

 누구나 가져본 적 있는 이 울음을

 언젠가 와 본 적 있는 황혼의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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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는 연습

마음을 오래 쥐었다가 놓으면손금이 깊어진다는 걸 알기 전 그러니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창문을 열면 골목이 길게 쏟아졌다 넘쳐흐르는 아이들의 웃음 뒤엉켰다가 다시 흩어지는 동안 흙먼지처럼 피어오르는 즐거운 비명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모두 모여서 길이 되었다 커튼 아래 숨어 버렸던 그때 펄럭이는 정오가 나를 휘감고 아이들의 옆으로 나를 데려다 놓을까 봐 나는 아직 아무 겉옷도 챙겨 입지 못했는데 내 겉옷은 서랍 가장 안쪽에 살고 있었다 긴 소매는 팔을 접어둔 채 잠들었고 마음에 드는 외투는 늘 계절과 맞지 않았다 쉽게 잠들고 말던 어린 날 눈을 감을 때마다 새로운 길을 상상했다 내일은 내게 어울리는 날씨가 찾아올 수 있도록 꿈을 꾸며 깊어졌다 외투의 주름이 스치는 곳에손금이 자라났고상처처럼 골목처럼 선명해져갔다 들었다가 내려놓는 일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기분들이 손끝으로 모일까 나는 자주 굽는 어깨를 가지게 되었다 겉옷을 쥐었다 놓으면 결국 나는 놓아버린 사람 창문처럼 반쯤 열린 귓구멍 사이로 야 너도 나와 왜 안 나오는 거야 하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조금씩 깊숙해졌다 그러니 그때내가 아직은 놀이터에 가지 않고 바깥으로 걷지 않고 서랍 속을 방처럼 맴돌고 있을 때 시간의 주름을 놓아주며무수히 뻗어나가는 꿈을 꾸었다

  • 모모코
  • 2024-07-30
우림의 눈

밤새 시를 썼어 열대 우림에 관한 시였어 노트북 한쪽에는 우림의 사진이 십 초마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어 울창해서 너무 울창해서 앞이 보이지도 않는 풍경이 등장할 때마다 떨었어 나의 손 떨림이 자판을 두드렸어 때로는 몰아치는 마음이 나를 시의 방향으로 밀기도 했어 창밖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어 물방울의 발자국이 창에 새겨지고 장마의 발목이 두꺼워졌어 이제는 아무도 장마라고 부르지 않는 순간을 위해 시를 썼어 이곳에는 1년 내내 비가 온다고 했어 그렇다면 장마가 아니라 우기라고 부르는 게 맞다는 말을 들었어 누가 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시를 썼어 나는 구름처럼 흘려보내는 걸 못 했어 머금거나 토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므로 밤새 시를 썼어 사진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세상의 모든 우림은 다 가본 것만 같았어 나무는 계속해서 새로운 파문을 몸에 새겨가고 끝도 없이 안개가 흘러나왔어 넝쿨이 나의 손목을 휘감아서 내가 저 우림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 어쩌나 싶었어 우림 중에서도 구름이 너무 많은 곳은 운무림이라고 한댔어 나는 마치 옅은 구름층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어 창밖에서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어 순간의 정적 고요해지면 나는 사진 속 우림과 눈을 맞추었어 녹색의 정사각형이 내 눈에서 한없이 커져가는 시간이었어 계속해서 시를 썼어 한 문장을 완성할 때마다 방의 습도는 올라갔지만 나의 눈동자는 맑아졌어 우림과 눈을 정교하게 맞출수록 빗소리가 커지고 내 눈에 고여 있던 모든 걸 쓸어갔어 그래서 우림으로 떠나는 시를 썼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땅을 밟고 저 멀리까지 달리는 시였어 열대야가 끓어오르면 사람들은 이게 또는 그게 시가 아니라고 했어 꿈이라고 했어 그렇지만 나는 밤마다 시를 썼어

  • 모모코
  • 2024-07-03
아스팔트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귀를 기울였지. 길도 울고 있는 것만 같아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검은 길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울퉁불퉁한 표면을 곧게 깔아놓은 건 네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너를 닮은 것들은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넘어져서 얼굴이 쓸려도 아프지 않았어. 무르팍이 깨지지도 않았지. 아, 여긴 꿈이구나. 완전히 내가 만들어 놓은 상상의 안쪽이구나. 생각하다가. 나는 꿈에서도 너를 만나는구나. 맨발을 내려다보며 이 길 위에서 내가 자꾸만 넘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소리가 들리는 길은 처음이야. 울고 있는 길도 처음이지. 너는 분한 일이 있으면 울고야 마는 아이. 앞을 생각하다가 터져버린 울음, 나는 만나본 적 없는 것들 위에서 미끄러지고. 베개에 고개를 묻고 운 적이 있어. 너와 함께 울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힘껏 달려 본 적은 없어서. 아스팔트에서 눈을 뜨고서 알아차린 것들. 달구어진 길에 엎드려서 진동을 느끼고. 네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깔아두었을까. 깔아두며 앞으로 나갔을까 고민하는 동안. 너의 발끝에서 질질 흘러나왔을 아스팔트를 쓸어내린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 마음을 쥐어짠 뒤에 나오는 잔여물. 그러니까 울퉁불퉁한 눈물을 쓰다듬으며. 표정으로 포장된 심장. 검게 그늘 들이찬 얼굴 쏟아부으며 딱딱해진 길. 나 밤새 너를 생각했어. 단단하게 자리 잡은 아스팔트 뜯어내며 흘려보내는 한 마디. 너를 위해 우는 동안 실컷 미끄러졌어. 만나본 적 없는 길을 걸으며. 넘어지면 몰래 우는 소녀를 생각하며. 울음을 밑창에 끼우고 달리는 너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잘 이해하고 싶다는 다짐으로. 아스팔트는 나의 이야기를 먹고 부풀어 오른다. 조금씩 말랑해지다가 힘을 주면 뜯어져서 바닥이 보이고. 마침내 포장되어 있던 길의 안쪽을 만나고. 길게 펼쳐진 길을 끌어안을 수는 없지. 끝도 없이 달려가는 네 마음처럼. 다만 나는 귀를 기울일게. 말캉한 길. 너의 가장 내밀한 표정을 가만히 담아내는 상상. 알고 있지. 이 모든 건 내가 만든 상상의 안쪽. 나는 여전히 네 뒷모습을 보고 걸어가겠지만. 꿈에서도. 꿈속에서도 생각하고 있어. 악착같이 울부짖으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소녀를. 결승선보다도 뛰어가는 방법을 골몰하는 너를.

  • 모모코
  • 202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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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바다

    저는 어떻게 보면 글이 혼란스러운 편이라 읽는 사람들에겐 불친절하게 보일 수도 있는 글을 써서 요즘에 고민이 많은데요 모모코님 글을 보면 시 안에 모모코님이 담고 싶은 마음을 확실하게 넣는 것 같아 글을 읽는 사람들에겐 설득력을 넣어주면서도 모모코님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문체들이 예쁘게 표현되어서 너무 신기했어요! 개인적으로 [은유의 방법으로 펜을 드는 사람의 언어로]라는 부분은 정말 시인을 다 표현하는 구절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잘 봤습니다 :) 늘 응원할게요!

    • 2023-10-18 22:31:03
    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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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난바다 아고 제가 슬럼프가 심해서 ... 계속 무어라 답해야 할지 고민하다 그새 새로운 달을 맞해버렸네요. 몇 번이고 읽었어요. 댓글 감사드려요. 저는 서정시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 누구보다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또 따스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적 서사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그걸 난바다님의 댓글에서 다시금 깨닫네요. 예쁜 마음 보내주어 고맙습니다. 저도 난바다님의 창작을 늘 응원할게요.

      • 2023-11-09 23:16:34
      모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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