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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의 하루

  • 작성자 위다윗
  • 작성일 2024-03-26
  • 조회수 293


그 날은 무척 길었다 


우리는 시간이란 개념을 초월했기에 

시간이란 가방을 잠시 벗어 던졌다 

우리는 드디어 서로에게 

깊숙히 침수하기에 충분한 여유를 얻었다 



남자애들은 놀이거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볼링장에서 공을 굴렸다 

난 한번도 제대로 굴려보지 못했지만 

누가 그 순간 승패를 따졌겠는가? 

루져들이 승자들이 되고

승자들이 루져들이 되는 그 날에 


남자애들은 먹을거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소소한 식탁에 둘러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먹고 웃고 실없는 농담을 던져 대곤 했다

아니면 아마 그저 먹기에 바빴는지도 

마치 굶주린 사자 떼처럼 

도살당한 돼지를 파먹었는지도

적어도 우리는 더 큰 식판을 위해 

어깨를 비비며 다투진 않았다 


남자애들은 씻을 곳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목욕탕에 갔다

일곱명의 십대 소년들은

각자를 치장한 모자부터 속옷까지를 벗고 

신이 창조한 피부라는 똑같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때 너의 모양은

나의 모양이었다 

우리는 수줍었지만 

설렜다

우리는 민망했지만 

쾌활했다 

서로의 위아래를 훑어보고 

사춘기소녀들처럼 박장대소하며 

물을 튀겨대고

안 그래도 작은 아시안의 두 눈을 

질끔 감았다 



그 날의 페이지가 거의 마쳐갈때

천사들은 우리의 잔치가 남긴 난잡한 잔해를 청소했다 

만족스럽게 우리의 돌아오지 않을 순간은 매듭을 지어져갔지만

지금 뒤를 돌아보니 

그 날을 끌어안고 애무하고 입맞추지 못한 것이 후회일 뿐이다


우리가 그때 함께 누렸던 그 모든 것들은 

한여름밤의 꿈보다 더 꿈같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포옹보다 더 애절하나

역시 언제나 빛나는 순간은 우리를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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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다윗
  • 2024-09-19
성숙

희고 고운 비둘기 떼가 흙빛의 파장에 잠긴 우리 동네를 지난다 어린아이들은 돌을 집어 하늘을 향해 던진다 돌아보면, 다 그랬다. 순수한 아이는 순수한 동물을 해맑은 웃음소리 가시기 전에 죽인다. 순수함은 게임이 마치면 마쳐지는 환각이었을 뿐이다 창가를 열고 베란다에 나와 가솔린을 입은 비둘기 떼가 우리 동네를 지나는 광경을 보고 있다그를 해할 수 없어서 자신을 해할 수 밖에 없었던 더이상 인생이 게임이 되는 것이 그쳐버려 미쳐버릴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은, 무리에서 뒤쳐져 나는 비둘기한마리에게 저마다에게제일 달콤한 이름을 붙인다

  • 위다윗
  • 2024-09-10
현관문

현관문을 열면 이전의 세상이 닫힌다 열리고 닫히는 찰나까지 나에게 위협을 가하는 유리그릇 깨지는 소리엄마의 비명 소리 아빠의 고함 소리 나는 매번 이 소리들이 모두 나를 이불로 끌어당긴다 생각했었다 현관문을 열면 놀이동산 계단만큼이나 엉켜있는 계단을 하나씩 내려간다 한발 두발 세발 점점 작아져가는 새소리들개소리들원숭이소리들 이 소리들은 이제까지 내가 사람이 되도록 빚어왔다 나의 두발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 과연 내가 어디를 갈 수 있을까 오늘도 생존해야만 하는 길고양이들에게 길을 묻는다 아침이오면 태양은 나를 땀으로 기름을 바르고 밤이오면 태양이 보고 싶은 나는 눈물을 쏟는다 더이상 농담따먹기 게임은 하기 싫어 더이상 상류층흉내내기 게임은 할 수 없어 더이상 낭만주의 시대의 초상화를 감상할 수도 더이상 모래사장을 엄마와 나란히 걸을 수도 더이상 치킨 야식을 주문하는 일도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것도 있을거야 그러나, 만약 전부를 잃는다면만약 정말 그런 일이 닥친다면 현관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이 닫힌다

  • 위다윗
  • 202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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