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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과 옛날의 세계에서의 기상학

  • 작성자 백석
  • 작성일 2024-04-20
  • 조회수 215






빨간 수성펜이 찍-그어지고

빨간 비가 내린다

하얀 숲에 깊은 상처를 내며

검은 악마들이 사는 흰 숲에


빨간 비는 나의 자화상

검은 악마는 내 바짓단을 잡는 빚쟁이

직선과 곡선으로 직조된 자그마한 창살

검과 흰이 겹쳐진 양복들


찍- 찍- 수성펜이 그어지면

검은 악마들이 했던 말이 사실이 되고

날카로운 검은 곡선이 나를 찌른다


단단한 양복에 몸을 기워 넣는 삶


아파, 아파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

서서히 빨간 비를 지운다

눈물이란 헛된 진로에 취해


빨간 비는 눈물에 터져 

흰 숲에 번져나가고


검은 양복을 입은 검은 악마들은 무릎을 꿇고 

그들의 간언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펑펑 울었다


물에 약한 수성펜의 씁쓸한 진실이여

악마들은 탐욕적일지언정 진실이고

눈물은 행복일지언정 거짓이다


울지마라, 그리고 유성펜을 들어라 

약해진 마음에 검은 양복을 덮고

울음을 그쳐라 나의 아들아


푸른 눈물이 뚝- 떨어지고

지워진 빨간비 사이에 더욱더 진한 유성펜을 

찍-그은다

악마는 날 보며 웃고 

지워진 빨간비들을 유성펜으로 고치고

눈물은 뚝- 그치고

그래 이만 거울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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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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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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