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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함이 죄가 되지 않길

  • 작성자 백석
  • 작성일 2024-05-26
  • 조회수 292




눈과 눈이 마주친 0.1초가

내겐 영원이 되었다. 

나는 한편의 진부한 영화를 찍는다. 

시를 쓴다면 진부한 사랑의 속삭임에 “진부한 표현들을 줄이세요”라고 합평 받겠지. 

영화는 푸른 하늘을 가리키고 노래 ‘가장 보통의 존재’가 들려온다. 

푸른 잡초들이 흔들흔들 휘날리고

‘나에게 너는 허무한 별빛’

‘너에게 나는 스며든 빛’

우리의 사랑에서 방부제 냄새가 나길. 

나는 중얼거리고 너는 고개를 돌린다. 거울이라면 깨진 거울이다 


노래가 끝나면 과거 회상이 시작된다. 

내 영화들은 대개 과거만 찍는다

과거는 항상 아름답다. 과거의 사람들은 알까. 그대가 가장 아름다운 시대에 산다는

걸.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다만 나는

항상 발가락 사이에 바디워시를 바르는 것을 깜빡하는 사람이고

지체장애인 형제가 벌레를 죽이는 걸 말리지 않는 사람이고

영화는 비극적인 영화만 보는 사람이다. 

과거 화상은 미련이다. 


‘러브레터’는 흰 설원에서 “오겡끼데스까”를 외치고 눈이 오던 겨울날 너는 손을 내민다.

나는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눈이 오는데도


그리고 한번 온 겨울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는 짧고 굵다. 


영화는 끝이 가장 아름답다. 


너도 그렇다. 


노래가 들린다. 


내가 아주 아주 좋아했던 노래의 한 구절이. 


그리고 남아있는 흰 설원의 발자국들. 


그리고 영화의 검고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 크레딧, 써져있는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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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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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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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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