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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기 휘날리며

  • 작성자 김백석
  • 작성일 2024-05-28
  • 조회수 231






늦저녁 어스름한 날에 죽었다던 봄 

시체가 된 벚꽃 위에 동충하초처럼 핀 붉은 꽃 

할아버지는 이름을 꺼낼 수 없던 그 꽃과 태어났어 

꽃잎 다 떨어지어 봉숭화 마냥 세상 푸르름 붉게 조르던 날 

매캐한 탄내와 내리던 8월의 첫눈은 첫사랑을 가져 갔더랬지 

서울에 걸린 인공기와 곰보처럼 피어오른 붉은 꽃들 

그의 여름은 말끔히 잘리어 수건을 입에 물고 통곡하듯 한탄하지 


요즘의 어느날에 

단풍 마냥 겹겹히 쌓인 한탄들이 검게 썩어가고 

눈사람 수십개 쯤은 녹이는  세월이 지나고 

얼었던 한강이 부서지듯 녹을때 

담배 한개비와 베란다로 향하는 그 발 

눈은 내리지 않고 겨우 그 시체가 비로 내리던 날


거세지는 비와 바람은 날카로워지고 세상이 매몰치어 지면 

그의 연기는 몸짓을 불리지 

무엇을 태워서 무엇을 떠나 보내어 

가장 깊은 곳 첫눈에 깔린 첫사랑이 누워있는 곳 가장 깊은 곳에심부

마른 단풍을 밟는 소리

젖은 단풍이 타는 소리

너무나 늦은 화장 


번제의 연기는 무자비하게 커져서 

그를 가두었던 아파트들을 넘어서 오래전에 잊은 해에 닿는다 

아파트는 옛집이며 아버지가 붙어먹던 논이며 하던 온갖 추억을 밟고 그 위에 썩어가는 한 남자 


해방된 연기를 찾아 추억의 잔향을 쫓아 

할아버지는 진자운동을 시작해 

아파트를 넘기 위해 집과 멀어졌다가 위태롭게 돌아온다 닿을 수 없음을 알아도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조금씩 젖어 간다 말라비틀어진 잎파리 처럼 꼴사납게도 


결국 집에 묶인 개처럼 떠나지 못한 그는 기침과 함께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할아버지는 연꽃처럼 웃는다 

눈꺼플 위의 어둡고도 처량한 그 곳에서 수십년을 인내하던 마르고 작은 씨는 

어제와도 그리 다르지 않은 오늘에서야 

기어이 피어오른다 


비는 여전히 무진장 차갑고 내일이면 아무래도 눈이 올것 같다만 

달라지지 않는 비린내를 맡으며 

아마도 봄비가 내린다 



김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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