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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 작성자 애화
  • 작성일 2006-09-11
  • 조회수 311

 

어느 눈망울이 이다지도 작고 둥근가,

갓난애 손톱만한 솜털이 부슬부슬한

둥글게 여물은 포도의 눈매를 바라본다.

원산지 대부도, 대부도의 햇빛을 마시며

한때는 포도나무의 눈이 되어 울컥

번지는 세상을 꾹꾹 눌러 담았을 세월.

바짝 말라오는 햇볕에 널어놓아도

널찍한 이파리로 감추는 눈두덩,

섬 바깥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소금기 어린 세상사를 두 눈 깊이 새기며

흰 종이에 서걱서걱 배나오는 설움이

쟁반에 내어놓은 포도 한 송이

게 껍질처럼 속을 감춘 새까만 동공 위로

슬픈 빛으로 붙박여 흐르고

포도 알알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앵혈인 듯 빨갛게 맺히는

통각이 마모된 섬뜩한 신경다발들.

팽팽하게 물이 오른 포도알을 집어

세파에 하얗게 서리 내린, 서늘한

포도의 희뿌연 각막을 벗겨내면

내 몸의 가장 민감한 촉수로 와 닿는

육질의 물컹함.

허나, 이 사이에 물고 혀로 잘 고르면

살 아래 단단한 뼈가 감춰져있어

딱딱하게 응어리진 고통의 중추가 있어

항거하듯 입 안 가득 신맛을 퍼트리고

가시를 발라내듯 까만 씨를 뱉어내면

땅 건너 어느 마을

눈매가 선한 섬 아이가

포도나무 그늘에서 홀로 비를 피하고 있을 것 같아

가물은 입천장의 메마른 고랑으로

흥건하게 단물이 번진다.

애화
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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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화
  • 200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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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화
  • 200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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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화
  • 200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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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5점

    • 2006-09-12 01: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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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먹고 와서 씁니다. 맛은 있는데 먹기 귀찮아서 기피하는 포도.....걱정 마세요 낭인형 포도주는 많이 마시니 ㅎㅎ 음, 시어를 읽어야 하는데 포도맛밖에 생각이 안 나요.

    • 2006-09-11 21: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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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오르페우스님 시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왠지 자신의 눈을 거봉만하다고 우기는, 눈매가 선한 섬(특히 대부도라는 섬)아이가 생각나네요

    • 2006-09-11 20:12:4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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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는 아닌듯 해.누구눈매가 선하다는 게야=-=++

    • 2006-09-11 20:08:2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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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

    • 2006-09-11 19: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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