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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면 용감하다

  • 작성자 루극
  • 작성일 2011-08-16
  • 조회수 57

무식하면 용감하다

분필처럼 뚝뚝 끊어지던 모가지들이
혁명하듯 몰려간 복도에는 시커먼
쥐 같은 비둘기가 활개를 치고 있구나
너도 잠이 부족한 거지, 하며 벌건 눈으로
돌바닥에 고개를 괭이질하고 있구나

손바닥만한 날개 푸닥거리가 창문에,
대학간판처럼 훤한 창밖에 닿는다
일수 이수 삼수 너는 매일 까먹고
유리는 신이나서 너를 깨부순다
낙엽 같은 피, 나뒹구는 손바닥

이 거대한 돌의 전당 누가 세웠나
눈먼 사람처럼 앞으로 몇걸음 좌로 몇걸음
처음부터 줄줄 외워야 나갈 수 있구나
그 사실 알았다면 너는 시작도 안했을 것이다
빵 부스러기처럼 너를 꼬이던 칭찬 몇 조각

내가 진짜다 유망하다 유혹하는 사각 풍경에
둘러싸여 드러누운 너 책가방처럼 무거운 몸
내장 같은 몽땅연필과 책, 벌린 입에서 쏟아진다
좀비처럼 일어나 그걸 다시 쪼아먹는 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건 쌍팔년도 옛말이구나  

루극
루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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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극
  • 20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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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극
  • 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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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극
  • 201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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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비둘기의 모습과 너와 나의 모습의 좀 더 구체적인 공통점을 찾아보세요.

    • 2011-08-23 17:42:1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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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b 시퍼런새

    딱 봐서는 뭔가 복잡한것 같은데 찬찬히 읽다보면 제 생각들이나 경험들하고 겹치면서 동감하게 되네요. 첫번째 연에 나오는 비둘기 모습은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인상깊어요. 빵 부스러기처럼 꼬이던 칭찬 조각이란 표현도 공감가고ㅎㅎ 같은 학생이라 그런걸까요 ^^

    • 2011-08-16 22:28:40
    y,b 시퍼런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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