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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 작성자 루극
  • 작성일 2011-11-21
  • 조회수 501

봉투

늦은 오후
공원 벤치에 거울처럼 앉아 있었다
얼굴에 날아든 햇빛을 발치로 반송하며
사람들의 무릎이 접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양팔로 저울질하며 뛰어다니다
내 그림자에 우표처럼 착지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콧구멍을 올려다 보는 아이의 하얀 얼굴은
밀봉된 봉투였다
볼을 씰룩거리고 이따금 팔다리를 접었다 폈다 했는데,
몸 속에 산 채로 잡아먹힌 개구리가 있는 것 같았다
어깨로, 배로, 무릎으로 솟구쳐 올랐다
어느 두 남녀가 한희의 숨을 불어넣는 모습과
뚱뚱한 우체통 속 캄캄한 열 달의 냄새를 상상했다
아이는 호주머니 속을 긁다가 불쑥
작은 비닐에 싸인 사탕을 건넸다
빛나는 초록 비닐을 손 안에 굴리다가
아이의 백지 같은 얼굴과는 전혀 상관 없이,
이 안에 독이 들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비닐을 풀어 냄새도 맡고, 햇빛에도 비춰보았지만
도무지 독이 있는지, 어떤 맛인지, 사탕이 맞긴 한 건 지 알 수 없었다
어디선가 아이의 조급한 한숨이 불어 왔다.
고개를 저으며 알약처럼 목구멍에 털어넣었다
사과맛 보석은 시큼하게 입 안을 굴러다녔다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드니 아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봉투처럼 뜯어진 그림자 옆구리로 상쾌한 바람이 드나들고 있었다

루극
루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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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극
  • 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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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극
  • 201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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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극
  • 201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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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아이가 봉투로 그려져야 하는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보세요.

    • 2011-11-28 20:09:1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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