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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 작성자 쎄렌체
  • 작성일 2012-04-03
  • 조회수 186

 

포도

쎄렌체

 

포도는 거친 손길에 알알이 순결을 잃는다 어느새 나목이 되어버린 포도송이는 섧게 울어댈 것이었다 나목은 새로운 계절을 기다린다 꽃망울 살포시 가지에 맺고 저 먼 이국 바다에서 불어올 뜨끈한 바람을 그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간절히 예비한 꿈은 허나 찬찬히 부서지었고 봄은 길을 잃어버려 고향을 찾지 못한다 얼어버린 봄새만 잘못 나온 저를 탓하는 듯 애닯게 울어대고 벌거숭이 나목들은 어느새 고목이 되던 참이었다 포도는 해에 걸쳐 조심스레 품었던 순결을 잃어가며 죽어가는 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늙은 하늘이 굽어보는 고목은 늙수그레했다 찾아오지 않는 봄을 끝까지 기다리며 얼어버린 고목에서는 면도칼로 잰 듯 포도색으로 응어리져 뭉친 진들이 터져나왔다 고목의 상처 틈새로 진은 달짝지근히 방울지고 다시 방울진 진은 쌉사름하게 아리우며 접시로 떨어지고 다시 떨어진 진은 새로운 씨앗이 되어 포도 향기 어슴푸레 어린 접시에서 싹을 틔울 것이었다 고목이 하늘과 바람에 삭아 가루가루 부서져 흩날렸을 때 말라버린 고목을 갈맷빛으로 한껏 두르고 있는 것은 바로 싱그레한 포도덩굴


접시에 새겨진 달콤한 포도의 묘에는 어느새 새로운 덩굴싹들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쎄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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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쎄렌체
  • 20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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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포도는 지금 어디에 구체적으로 있나요.

    • 2012-04-11 11:38:4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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