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바닷물과도 같은 시간에 숫자들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두 연인이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같은 시간에 마주치기 위해 숫자가 필요하다지만 우리는 달과 별과 태양이 움직이는 곳마다 숫자를 번뜩이는 창을 던져 그들을 숨막히게 했다 할머니가 고작, 종이로 찍어낸 숫자들을 줍기 위해, 추운 겨울 수레를 끌고 폐지를 줍도록 했다 모든 것을 숫자로 박음질했다 때로는 숫자가 없는, 오직 시간만이 있는 자연에 기대어 온몸에 묻은 숫자들을 털고만 싶다.

• 오이O2
• 2012-11-03

  사마귀와 한 방에 있어 본 적이 있는가   그녀가 한 발짝 움직이면 나는 엉덩이를 질질 끌어 구석으로 빨려들어간다   같이 식사를 하기도 이젠 버겁다 그녀가 식사를 할 때 항상 칼을 쓴다는 것이 마냥 권태롭다   나는 그녀와 교접하여 낳은 나이 열아홉의 아들이 있지만 여태까지 그녀가 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침대에서 그녀가 날아올라 내 배 위에 엎드리면 나는 짝짓기를 하기 전 수컷 사마귀처럼 머릴 뜯기는 기분이다   나는 사마귀처럼 변해버린 아니, 원래 사마귀였는지도 모를 아내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중매 결혼을 한 탓일까.      

• 오이O2
• 2012-11-03

  짝사랑이 힘들어,     사랑하는 이를 잊게 해줄 마법의 물약을 바라고 있었다   혼자만 가슴 떨리고 혼자만 쩔쩔매는, 거울과 하는 사랑을                   사랑을 내 심장에서 파내 줄 마법의 물약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팔 개월이 지난 후에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심장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머릿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싹 쓸어버렸다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훌쩍 떠나면 그리운 부모처럼 짝사랑은 가슴 아렸다     홀가분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짝사랑으로 힘들 때가 더 나았다   지금은 내 맘속에 붙잡아 둘 사람이 내 구멍을 꽉 메워줄 사람이 없다

• 오이O2
• 2012-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