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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발표] 폭염

  • 작성자 참치좋아루나
  • 작성일 2016-10-12
  • 조회수 495

폭염

 

폭염의 더위에 그 기세를 한껏 부풀리던

공장의 뜨거운 매연냄새

짊어지던 무게와 함께 작아지던

바퀴처럼 굽은 아버지의 등

그의 목소리는 수증기가 되어 허공을 맴돌았다

허접한 몸은 이제 폐광이 되고

아버지는 들숨 날숨 목구멍으로 힘겹게 독을 뱉으며

단풍잎 같은 발걸음을 새벽의 요람으로 던진다

 

긴 시간 돌보지 않아 녹슬어버린

아버지의 뼈대는 너무 오랜 시간동안 톱니바퀴를 굴렸다

그는 괴상한 잡음과 함께 멈추어버리길 반복했고

나는 구불구불한 비탈길의 세월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던 얼굴, 그 주름 사이를

삽으로 깊게 파내곤 했다

 

나는 폭염이었다

내 몸을 부풀리며 주변의 것들을 잡아먹던

자신도 모르게 불에 뛰어든 불나방을 먹어치우던

먹구름 한 점 없어 유난히 서럽던 그 여름날,

나는 아버지께 찾아온 폭염이었다.

참치좋아루나
참치좋아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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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치좋아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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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치좋아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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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치좋아루나
  •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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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왕 잘 쓰셨다 제 기준 이번주 우수작 각입니다 물론 주제넘은 말이에요! 워후

    • 2016-10-17 01: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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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바람

    예전에 봤던 시에 비해 묘사가 구체화된 게 좋았어요. 말하고자하는 바가 잘 드러났군요. 아마도 ‘공장’과 ‘폐광’이라는 직접적인 공간이 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폐광은 화자가 바라본 아버지의 황폐한 모습을 비유한 시어겠죠. 그러나 공간을 하나로 통일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읽는이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긴장을 유지시켜주죠. 힘겨운 노동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버지(1연), 그 시간을 건너와 이제는 늙고 병든 아버지의 모습(2연), ‘나는 폭염이었다’는 분명 의미심장한 은유입니다. 화자도 폭염이 되어 아버지를 괴롭혔다는 자기 고백적인 3연까지 나름의 구조를 갖춘 작품이니까요.

    • 2016-10-14 18:03:28
    고래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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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삼

    맘이 아파요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 2016-10-13 00:21:42
    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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