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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강대영 외)’ 239쪽 우측상단 사진 10-27

  • 작성자
  • 작성일 2018-02-19
  • 조회수 1,389

준아,

내가 아는 세상의

다른 모든 준에게는

또다시 세상에

한 사람의 준이 사라졌다고

차마 말해줄 수가 없어 오늘은

 

아아 그래 너의 부고는 아홉 사람을 거쳐 비로소 나에게로 전해졌구나 너에게 맞는 옷 또한 이 세상에는 부재하여 너는 존재하지 않는 몸을 공허로 감싼 채 매트리스 없는 침대 위에 뉘였다 그들의 카메라는 너의 부재를 촬영할 수 있었으나 이미 휘발하여 바람에 섞인 너의 언어는 차마 해독할 수 없었으므로 너의 육신은 기록되어지나 너의 정신은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젠가

머리가 반쯤 벗겨진 교수가 되어

연단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채

말하겠지-

 

사진의 사체에서는 전형적인 지상시체 손괴현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사망과 동시에 부패는 시작됩니다 부패한 사체에 모여든 파리는 코건 입이건 귀건 축축한 곳이라면 어디에나 알을 낳습니다 구더기는 자라 파리가 되고 파리가 되어 알을 낳고 알은 다시 자라 구더기가 되고 다시 파리가 되어 알을 낳고 그렇게 여러 세대에 걸쳐 구더기는 사체를 파먹어 이렇게 종내에는 뼈와 머리털을 빼곤 무엇도 남지 않습니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그런 것입니다

 

준아,

내가 아는 세상의

다른 모든 준은

또다시 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차마 너의 모습조차 알아볼 수 없어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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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흔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이별을 해두었습니다.   떠나지 못한 기억은 떠나온 기억만큼이나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찾은 겨울 산을 아직 기억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당신으로부터 열두 걸음 떨어져 걸었습니다. 정상에서 하류로 하류로 하염없이 몸을 내던지는 폭포수를 바라보면서 나에게 당신은 너도 이젠 어른이 되어야지 하고 말했습니다. 채 녹지 않은 살얼음이 떨어지는 물줄기를 잽싸게 파고들었습니다. 나는 늙지 않는 나라를 찾아 떠났다는 옛이야기 속 소년의 마음으로 영원히 아이이고 싶다고 대꾸했습니다. 당신이 무어라도 대답하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래도록 살았던 초인종이 고장 난 집에서 아직 나는 홀로 살았습니다. 나는 종종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곤 했고 대문 앞에 설 때는 오랜 버릇으로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리듬으로 문을 두드리곤 했습니다. 문 건너의 당신은 부재했으므로 나는 열쇠를 찾아 주머니 속을 헤메었습니다. 텅 빈 가정은 새벽 네 시의 버스 정류장보다도 고요했습니다. 언젠가 할머니, 나는 할머니가 없는 세상은 죽어버릴 꺼야 하고 말했던 어린 나를 아직 기억했습니다. 달은 적당히 무르익었고 밤은 적당히 깊었고 그럴 때에 적당히 뜨거운 물에 적당히 검붉어진 팔목을 담그어야 한다고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습니다.     덧) 방어흔과 주저흔은 자살과 타살의 여부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단서이다. 주저흔은 자살을 목적으로 스스로의 몸에 가했으나 치명상에 이르지 못한 자해의 흔적이다. 반면 방어흔은 타인에 의한 공격을 방어할 때에 생기는 상처이다. 이 둘은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의 흔적이라는 공통점을 지니나, 그 저항의 대상은 상이하다.  

  • 2018-02-02
폭포

  우리가 별도 달도 없는 이 밤을 걷는 건 저 검푸른 물에 모두 휩쓸려가 버렸기 때문일거야 나는 그대와 등을 맞대고 앉아 하염없이 하류로, 하류로, 몸을 내던지는 물줄기를 지켜보았던 것을 기억해.   속삭였어 있지 나는 자그마한 시냇물로 흐르고 싶었어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며 논둑 사이로 춤을 추듯이 그대는 퍽이나 나이가 든 것처럼 말했어 아냐 어른이 된다는 건 저 검푸른 물에 섞여 휩쓸려가는 거야 소리 없는 노래를 부르며 움직임 없는 춤을 추듯이.   그대가 풀 먹인 저고리처럼 웃으며 아득한 하류를 바라보았던 것을 기억해. 어릴 적 보물 상자에 숨겨두었던 새파란 수채 물감 따윈 이미 시간에 내주었는걸 통행료로. 그래 어른이 된다는 건 저 검푸른 물에 새하얀 거품이 되어   우리가 별도 달도 없는 이 밤을 걷는 건 저 검푸른 물에 우리가 섞여가고 있기 때문일 거야 나는 그대와 손을 포개고 앉아 하염없이 하류로, 하류로, 팔을 내뻗는 물줄기를 올려다보았던 것을 기억해.

  • 2017-05-18
셀프-포트리트 (self portrait)

악사는 소리 없는 음악을 연주하고 무용수는 동작 없는 춤을 춘다 나는 지피에스 없는 내비게이션 항해하네 돛 없이 이 새벽 거리를 언젠가 당신이 쥐여준 새하얀 유화물감일랑은 이미 오래전에 삶에다가 내어주었지 통행료로 .......서투르게 라면 물을 맞추던 어린 연인이여.   바람은 소리 없는 음악을 연주하고 가로등은 동작 없는 춤을 춘다 나는 아스팔트 바닥에 유리조각으로 뎃생을 하며 중얼거리네 이것은 이미 자화상이 아니다 언젠가 당신이 쥐여준 샛노란 수채물감일랑은 쓰지 않았으므로 셀프-포트리트지 이것은 .......냄비 뚜껑에 라면을 덜어 후후 불던 나의, 나의 어린 연인이여.  

  • 2017-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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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미

    안녕하세요 곧 님. 반갑습니다. 시를 열어보고 한동안 멈칫했습니다. 지난 번에 올려주신 시도 그렇고 이번 시도 그렇고, 시를 보면 산문을 주로 썼던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시에 대한 고민한 흔적이 보여서 반가웠습니다. 지난 번과 비슷한 지점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왔다. 스릴러의 한 영상을 보는 듯한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것이 굉장히 독자의 감각을 자극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법의학이라는 책이 있는지 저자가 강대영인지 찾아봤는데 있군요 이 책을 볼 수 없어서 239쪽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정말 책의 우측 상단에 있는 사진을 보고 쓰신 거겠죠? 다양한 죽음에 관한 책이라고 설명되어 있던데 이 책이 궁금해집니다. 자, 사소한 코멘트를 드리자면, 정확한 문장에 대한 겁니다. 3연에 "벗겨지는 머리의 교수로"라고 하셨는데 머리가 벗겨진 교수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면 문장이 약간 이상합니다. 머리가 벗겨진 채 강단에 서서 라고 표현해주세요. 시는 함축과 응축의 장르이므로 쉼표 하나에도 숨이 있습니다. 마침표 하나도 함부로 찍어선 안 됩니다.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띄어쓰기 조차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의 문장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정확하게 문장을 쓰고, 의도한 곳에 부호를 넣고, 띄어쓰는 것이 곧 님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1연은 다 좋았는데 조금 정리해줄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준아, 세상의 모든 준에게, 또 한 명의 준이 사라졌다고 까지만 써주는 게 어떨까요? (내가 아는) (차마 말해줄 수가 없어서 오늘은 나 혼자서 슬픈 하루였어)는 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감정의 노출이 크기 때문이지요. 감정의 절제를 통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또 한 명의 준이 사라졌다는 표현만으로도 벌써 무섭고, 슬퍼지거든요.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 보입니다. 그건 반복되는 마지막 연도 마찬가지겠네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곧 님 만의 독특한 시를 기대하겠습니다. ^^

    • 2018-03-04 13:08:40
    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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