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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 (퇴고)

  • 작성자 또끼풀
  • 작성일 2020-07-22
  • 조회수 173

  • 하얀 침대를 보았다

해가 지고
나는 노란 침대에 눕는다

기억은 노랗게 머무르고

고요히 지나는
너를 놓치지 않으려다
벗어날 때를 놓쳤다

떨어질 때를 놓친 은행잎처럼
초라하고 위태롭게
침대 끝에 매달려있다

감은 침대에서

해가 조용한
감은색 침대에서

감은 눈이,
때를 놓았다

쓸려가지 못해 홀로 말라가는 노랗던 잎처럼
대롱대롱

내 눈에만 지지 않는 태양에
타들어간다

또끼풀
또끼풀

추천 콘텐츠

핏줄

비가 온다 마치 파도가 치듯 자연스럽고 거세게 비가 내게로 온다 정수리부터 목선을 지나 투박한 손끝, 희멀건 배와 허벅지 그리고 굳은살 배긴 뒤꿈치까지 시나브로 스며든다 무서우리만큼 붉고 진득이는 혈액이 빗물로 희석되고 푸르고 투명한 핏줄이 되었는데도 그들이 비친다 젖어버려 무거워진 온몸을 휘감아 몰아치는 핏줄에는 빗물 반 담배냄새 밴 알코올 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쯤은 나일지 모를 그들이 비친다 비가 나린다 꽃잎 바람에 휘날리듯 자연스럽고 유하게 그들이 온몸을 휘감은 채 비로 나린다 그리고 나는 다시 빗길로 걷는다

  • 또끼풀
  • 2020-01-06
핏줄

비가 온다 마치 파도가 치듯 자연스럽고 거세게 비가 내게로 온다 정수리부터 목선을 지나 투박한 손끝, 희멀건 배와 허벅지 그리고 굳은살이 바긴 뒤꿈치까지 거대한 빗방울에 젖고 나면 스며들기 시작한다 무서우리만큼 붉고 진득이는 혈액이 빗물로 희석되고 푸르고 투명한 핏줄이 되어 나를 비친다 젖어버려 무거워진 온몸을 휘감아 몰아치는 핏줄에는 빗물 반 담배냄새 밴 알코올 반 비가 나린다 꽃잎 바람에 휘날리듯 자연스럽고 유하게 나를 먹어버린 비가 나린다 온몸을 휘감은 채 비로 나린다

  • 또끼풀
  • 2019-12-23
소고기

늘 해가 떨어지자마자 진이 빠져 퇴근하던 아빠가 오늘따라 밤이 깊어서야 들어왔다. 아빠는 월급을 받았다며 외식을 하러 나가자고 했고 나는 눈치를 보다가 이내 동생의 옷을 챙기며 서두르자 했다. 아빠의 옷에서는 땀 냄새가 나지 않았고 오늘은 월급날이 아니었다.   터벅이는 아빠의 발자국은 무거웠지만 그를 따라가는 나도 많이 무뎌져있었다. 엄마 없이 어렸던 나는 더 어린 동생이 있었기에 덤덤해져야 했다.   -오빠 생각이 났다. 이 집에 신물이 나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내게 소리를 치곤 집을 나간 오빠 생각이 났다.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면서도 아무 말 않았던 내게 뺨이라도 내리치며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름 밝은 목소리로 먹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는 아빠 쓸데없이 초롱한 눈을 휘며 소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하는 동생 내심 바라고 있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척하는 나   -아빠의 올라간 입꼬리, 내게 들켜버린 눈동자. 들킨 걸가 숨기고 싶지 않았던 걸까. 왜 나한테만 보여주는데?   우리는 2인분의 소고기를 시켰다. 아빠는 몇 절음 먹더니 느끼하다며 젓가락을 놓고는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숟가락질만 한다. 기름진 소고기가 텁텁하게 목구녕을 넘어간다. 그만 먹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 뒤집을 타이밍을 놓쳐 고기가 조금 타버렸다. 아까워라.   -그래 타이밍. 나는 이 집을 탈출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 분명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하고도 오빠에 대한 언급을 일체 하지 않았던 아빠였다. 서로 애정이라곤 없었던 오빠지만 내가 따라나섰다면 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망일까 탈출일까. 아니. 누구도 나를 쫓아오거나 이 천륜에 가두지 않았다.   그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내 취향이 아니라며 삼겹살을 시켜 달라고 했다. 동생은 큰 불판을 혼자 차지하고 앉았고 나는 아빠와 옆 테이블에 삼겹살을 구웠다. 아빠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삼겹살을 쌈장도 밥도 없이 그냥 먹었다.  

  • 또끼풀
  •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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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국

    안녕하세요, 또끼풀님. 시 잘 읽었습니다. 퇴고하면서 정보를 많이 첨가하였네요. 그런데도 여전히 관념적으로만 느껴집니다. “감은 침대”“감은색 침대”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화자에게 노란색은 어떻게 감각될까요. 저에게 노란색은 밝고 명랑한 색이에요.(지금도 제 옆에는 노란 우산이 하나 놓여 있어요.) 하지만 화자에게는 그렇지 않겠죠? 맥락 없이 놓인 노란 침대는 노랗던 잎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시가 전개되면서 말라버린 잎, 검게 바짝 말라버린 침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도피’하기 위해서 화자가 침대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았으면 해요. “고요히 지나는/ 너”도 시에서 한 번 쓰여 소비되기엔 좀 아까운 부분도 있고요. 너와 나의 관계를 침대라는 장소에서 어떻게 하면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2020-07-27 01:13:37
    이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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