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발표] 시 같지도 않은 시
- 작성자 사즈
- 작성일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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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2
- 조회수 502
몇 문장 쓰고 구석에 박아둔 문서들이 쌓이고 쌓여
기도에 달라붙어 숨 못 쉬게 만들었고
이제는 문서 하나를 찾으려 두세 번씩 스크롤을 내려야 한다니
불만스레 중얼거리는 사이에도
문서에 내려앉은 소복한 먼지는 엄청난 중압감을 안겨준다.
내 또래 친구들이 쓴 완벽한 글들은
씁쓸하고 파괴적인 열등감을 자아냈다.
내가 너무 한심해 한숨도 쉬다
뭔가를 쓰고는 싶어 키보드를 두드리고
끝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앓는다.
못해도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데 내 글에 대한 자신이 없어요.
고등학생이 되면 글 쓸 시간이 줄어들 텐데 시간 많은 지금
많이. 써. 놔야지.
글 나부랭이 쓴다고 붙잡고 있는 전자기기가
빙하 녹이는 데 일조만 하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이야.
그저 공부 하기 싫단 이유로 글쓰기를 도피처로 삼아온 거니?
글을 그렇게 우습게 알면 안 되지.
갑자기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아요 문장들이 사라져가요.
문장과 문장은 원수지간처럼 서로를 쏘아보기만 하네요
너네를 어떻게 하면 화해시킬 수 있겠니 푹 내쉬는 한숨
복잡하고 미묘한 것들을 칼로 석둑석둑 잘랐고
그 미묘한 것들의 단면이 서로 맞닿이고 얽혀서
지금 나의 가치관을 만들어 냈다.
그런 가치관이 잘못된 거면 어쩌지? 내 가치관을 담아 만든 글들은 폐기처분 해야 하나요
종량제 봉투에 넣고 꽉 묶어 버리는건가 근데 나 쓰레기 버릴 줄 모르는데.
하고 싶은 얘기는 많고 쓰고 싶은 얘기도 많은데
너무 부족해서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는
나의 부족한 능력은 그걸 좌절시키고
심지어 지금은 내가 뭘 쓰고 싶은지도 모르겠네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위로한답시고
사람들의 환부에 소금이나 뿌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꼴사납게 나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노력만 하면 못 하는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얼마나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모르니
다 때려치우고 엎어버리고 싶었고
잠 못 이루는 밤 머리는 복잡하고
쓰고는 싶은데 쓸 수가 없어서
하소연하는 시 같지도 않은 시나 쓰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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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유치원에서 선보였던 음악 공연마라카스 찰찰찰트라이앵글 땡땡땡탬버린을 착착착시간이 지나 열여덟이 된 어린이들은더는 리듬악기를 흔들지 않지만추운 겨울날이 되면핫팩을 찰찰찰 흔들며땡땡땡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지각비 천 원의 효용에 대해 논하는 한편하교 후 노래방 탬버린을 본격적으로 흔든다그렇게 다시,브레멘 어게인
- 사즈
- 2023-06-16
그런 때가 있(었)다흰 줄이 있는 자두맛 사탕을 녹여먹듯너의 이름을 소르륵 녹여먹다혀가 베어 쓰려올 때가야자 시간,너와 오래 있다 보면마음 한 구석이 시큰하니 아려올 때가잠은 죽음의 예행연습이라는데잠이 부족하다며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엎드리는 너를 보면심장이 뻐근하니저려올 때가이것이 과거시제임과 동시에 현재시제인 이유는여전히 일학년 모 교실을 가면서글픔을 쓴 약처럼 억지로 삼키던그때의 너와도리없이 그런 너를 바라만 보아야 했던그때의 내가다만 폭풍처럼 고요히+) 앞서 올라간 '솜털을 쥐는 마음'의 또 다른 버전입니다. '솜털을 쥐는 마음'은 선생님께서, '시간의 무덤'은 이 시의 모델이 되어준 친구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의견이 갈리길래 고민하다 둘 다 올려보았습니다.
- 사즈
- 2023-06-16
흰 줄이 있는 자두맛 사탕을 녹여먹듯너의 이름을 소르륵 녹여먹다혀가 베어 쓰려올 때가 있었다야자 시간, 너와 오래 있다보면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하니 아려올 때가 있었다잠은 죽음의 예행연습이라는데잠이 부족해 쉬는시간마다 책상에 엎드리는 너를 보면유독 심장이 뻐근하니저려올 때가 있었다-그런, 때가 있었다 아니, 있다 아마도, 지금도+) 박준 시인님의 시집 '우리가 장마를 함께 볼 수도 있겠습니다' 중 '능곡빌라'를 읽고 쓴 독후시이며, 첫 문단의 자두맛 사탕 비유는 손원평 작가님의 '아몬드' 중 41p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 사즈
- 2023-06-16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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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서지호님 안녕하세요. 저랑 처음 만나는 거지요? 반갑습니다. 시 잘 보았어요. 솔직한 시라 호감이 갔습니다. 일단 제목은 재고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목이 내용과 너무 일치해서 재미가 좀 떨어지고, 내용을 스포일러 하는 것 같거든요. 저 제목에 뭔가 새로운 내용이나 표현이 나왔으면 재미있겠지만, 사실 제목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진 못하거든요. 그 외엔 ‘시’란 단어가 너무 많이 나오니 그 부분들만 다시 살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정 고칠 수 없는 부분은 남기고 그 외 부분들은 고치거나 빼보세요. 예를 들어, 시란 단어가 없어도 ‘갑자기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아요 문장들이 사라져가요.’란 구절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좋거든요. 일단 시란 말을 조금 줄여보는 방식으로 퇴고해보세요. 그럼 퇴고시로 만날게요.
안녕하세요 서지호님! 글틴을 활동을 잘 안하고 있었더니 처음 뵙는 분 같네요. 글 잘 읽었어요! 서지호님의 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시네요. 저도 늘 글을 쓰는데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항상 마음대로 되지 않고 쓰면서도 이게 맞나 확신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서지호님이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가치관에 대한 정의를 내린 표현이나, 문장과 문장이 원수지간이라는 표현 등등 다양한 표현들이 재밌었거든요! 한 가지 제안이 있다면, 글에 대한 고민을 아주 잘 상세하게 풀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건 어떨까요? 글틴에 수필게시판도 마련되어있으니까요! 그럼 서지호님의 다음글 기대할게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