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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나란히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03-26
  • 조회수 1,310

우리는 타고나길 등지느러미가 없고 양볼이 부풀어 오른 존재들
물이 차오른 바닥에 배를 붙이고 자면서 꿈의 건너편으로 도망치는 일을 하는
자몽빛 스커트가 불어오면 저절로 망가질 수 있었다 애쓰지 않아도 먼저 깨지곤 했다
지난 밤에 빨아 먹었던 꿈은 무거웠어 잉어가 내 몸통 위에 올라온 것처럼
고요하게 산산조각나는 매트리스와 나와 너의 것이 아닌 드레스 그리고 낡은 어항
다시 창밖으로 빛이 저물면 우리는 몸에 새겨진 점의 개수를 세면서
우리를 길러낸 모든 발자국을 되돌아보며 바닥까지 잠수한다

난주 금붕어의 성격은 키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사람을 잘 따르는 종이라고 한다
너는 붉은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짚고서 도감을 읽다가 볼을 긁적인다
난주는 물 밖을 벗어날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말할 때
유리 어항에 맺힌 어둠이 우리의 이마에 옮겨붙고
그럼 우리 엄마는 얼마나 좋은 수조를 가지고 있었길래
우리는 이곳에 자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조를 거치거 왔길래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 달콤한 이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묻는 일은 하지 않는다

구제 옷에 붙어 있는 귀신보다 무서운 건 구정물이라고 했어
터질 것 같은 물방울을 건네며 하는 말에 잉어가 그려진 드레스를 가지고 싶다고 하는 네가
나를 끌어안는다 어항은 얕아서 금세 바닥에 닿을 수 있지 그러나
우리의 몸집에 비해 깊은 곳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가장 무거운 꿈을 끌어안으면 어느 순간 도착해 있는 이곳에서
비늘 사이에 끼어 있는 슬픔을 털어내기 위해 헤엄을 친다
팔뚝의 점을 이으면 나타나는 별자리는 물살을 타고 흩어지고
자꾸만 재생되는 깨지는 소리 벽지에 녹아든 비린내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빨간 피부가 부풀어 불독처럼 보이는 난주들 가지런히 누워서 시간의 모서리를 베어물고
배가 불러올 쯤에는 아침이 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입을 뻐금거리며
학교 다닐 때 있잖아 담임이 나보고 금붕어 같은 자식이라고 했지 자꾸만 중요한 걸 잊게 되어서
나는 그 선생님을 왜 좋아했을까 따위를 말할 때마다 속눈썹 사이로 엉겨붙는 찌꺼기
이젠 익숙해 지나온 날을 등진 방향으로 호흡하는 아가미에 익숙해지기
손톱 아래로 때처럼 끼어드는 마음을 털어낸 뒤에 유영하기
반지하 원룸 창문 조금 흔들리지만 아무도 망가뜨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망가지지 않을 유리를 보수하기

오래된 스커트를 겹쳐 입으면 그나마 드레스를 입어본 기분이 들어
수반에서 잠이 든 계절을 서로의 꼬리에 새겨본다 몸에 찍힌 점와 같이
겨울잠을 자고 일어나면 잉어가 될 수 있을 거라도 생각했지 우리는
뜨거워지며 자주 길을 잃는 난주의 눈동자를 잊지 않을 것이다
가끔은 너와 내가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는 말에 안심할 수 있고
투박한 비늘을 찢고서 내일 아침에는 거대한 관상용 물고기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
잠수는 끝나지 않는다 갈라져가는 입술과 구부러지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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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있어

밤은 구부러지는 터널처럼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폭설의 연속 검은 눈발이 세상을 두드리듯 떨어졌고 나는 기다란 열차 속에 있었다 늙은 열차는 어둠의 가장자리를 걷지 않았다 두터운 산의 가슴팍을 곧장 온몸으로 밀고 나갈 뿐 우리보다 일찍 출발한 열차는 눈에 발이 묶였고 늦게 개통한 기종들 몇몇도 미끄러졌다 했지 멋대로 늦춰지고 당겨지는 운행에 대한 방송 깊게 파인 열차의 좌석에 앉아서 듣다가 무릎 위의 채송화 화분을 꼭 쥐었다 장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이름을 알 수 있는 붉은 꽃 그리고 옅게 금이 간 화분이었다 차창 너머 몸집을 부풀리는 추위의 얼굴은 내가 아는 모습이기도 때때로 처음 보는 모습이기도 했다 열차를 흔드는 비명 같은 바람 소리가 어디에서 들어본 것만 같기도 했는데 죄다 내 옷깃에 스몄다 그러니까 내게 채송화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나 화분을 선물해 준 사람이 나의 바깥으로 걸어 갔을 때 언젠가의 내가 엎드려 흘려둔 숨소리 마치 눈물 방울처럼 창백하게 적셔왔다 몸을 떨게 하는 추위처럼 나에게 달라붙어서 내 몸은 조금씩 무거워졌고 나는 웅크리거나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다 하지만 겹쳐 입은 옷과 딱딱하게 만져지는 빗장뼈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 건 차갑게 흘러드는 밤의 소리가 아니었다 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있어 결코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손 안의 화분처럼 내가 쥐고 있는 믿음 빨갛고 환한 채송화의 잎새처럼 웃으며 말해준 그 사람의 말 나의 가슴팍에도 뿌리를 내려 아주 깊숙한 곳까지 가로질렀다 겨울밤 폭설이 벌어진 상처처럼 멎지 앉아도 언젠가 가닿을 종점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었지 내가 몸을 맡긴 기차는 온몸으로 겨울밤을 밀고 지나갔다 그때 나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끝자락과 멀미처럼 새카맣게 일렁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종점에 닿으면 화훼 시장에 가야지 분갈이를 하자 겨우내 굵직해진 뿌리를 이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화분에게 속삭이면서 발아래로 어둠을 떨어뜨리고 나의 심장 박동처럼 가슴께를 가로지르는 작은 경적 소리를 들었다

  • 모모코
  • 2024-10-04
둘러앉을 때 비로소 보이는

밤은 내려앉은 대문처럼 겨울의 손을 들여보냈다 나는 산장의 불을 켜두는 사람 어느 대도시의 자동차 전조등 대신 자그마한 알전구의 빛을 이마에 적시곤 했다 발길 닿지 않는 곳에 찾아오는 바람이 창틀의 나이테를 벗겨 먹는 소리를 들었다 영하의 온도를 지닌 손님들은 덜컹거리는 발걸음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골짜기에 걸터앉아 지냈다 침대 아래로 굴러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 않던 내 얼굴을 찾고 싶었으므로 말하자면 나의 아름다움 폭설처럼 들이닥치는 사람들의 말소리 사이 엉겨붙고 얼어버리던 모양새였다 좀처럼 뜨지 못하는 속눈썹인 듯 딱딱해져서 내 안에 굳어버리고 만 것들 나는 겹겹의 밤을 견디는 동안 배롱나무로 만든 기다란 식탁 하나를 만들었다 여섯 명도 둘러 앉을 탁자 위에 엎드리며 내 곁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다렸다 때때로 찾아오는 손님들은 밤을 적시며 문득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이불처럼 포개어지며 찾아오는 불안처럼 혹은 나처럼 산장 속으로 걸어와 나의 식탁에 앉았다 검은 모자를 쓴 것처럼 텁텁한 얼굴들 어째서 나의 손님으로 찾아오는 걸까 묻지도 않고 의자를 빼어 내어줄 때마다 창밖에서 쌓여가는 눈처럼 두터워지는 시간 우리는 작은 전등 아래서 서로를 마주하며 가장 숨겨두고 싶은 아름다움을 얼굴에 패인 주름 또는 상처 같은 흔적을 보았다 겨울밤은 나를 똑 닮은 손님을 들여 보냈고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깊이를 더하던 시간 어떤 손님이 문을 두드려도 열어줄 수 있도록 오랫동안 나는 내 산장에 불을 켜두고 있었다

  • 모모코
  • 2024-09-30
반려믿음

마지막 시 쓰기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미래의 쓰기라는 과제를 내주었고 제출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믿는 것으로 시를 쓰기 다시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쓰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받아들고서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며 나는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무수한 블록을 쏟아놓고 천천히 조립하는 아이처럼 두리번거리며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아주 어둠 뿐이었지만 저편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이마를 조용히 쓸고 지나갈 때 일찍이 땅바닥 보는 법을 알아버린 스킨답서스 그 곁에서 식물을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던 룸메이트의 옆모습이 흰빛처럼 쏟아져 내렸다 어떻게든 식물을 죽이지 않으려 했지만 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너는 화분 하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마치 쏟아야 하는 몫이 있다는 듯 매일 창가로 가서 바라보았으니까 반려식물이 시들 때마다 화훼 시장에 다녀오던 너에게 가끔 묻고 싶었다 아직이냐고 그러니까 사랑하고 싶을 뿐이냐고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기를 소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침이 오면 내 시끄러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서 화분을 돌보던 모습 눈을 뜨면 언제나 창문 옆에 꼿꼿하게 서 있던 너를 속눈썹에 붙은 잠기운을 털어내지도 못한 채 쳐다보았다 오래도록 남았던 잔상 하얀 빛처럼 넘실거리는 옆모습을 위해 썼던 시들 가방 속에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선생님이 누구를 집요하게 기억하는 중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어째서 대답하지 못했는지 사랑한다는 말의 범주는 손목에서 헐렁하게 흘러내리는 머리끈 같고 빛속에서 다시 오래된 끈으로 머리를 묶은 채 걸어나가는 밤 정류장은 아직 먼 곳에 있었지만 아직은 낱장으로 날아다니는 시들로 묵직한 가방 그 무게를 믿으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제출하기 어려운 말들만큼 깊숙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며 우선 계속해서 걸어보기로 했다

  • 모모코
  • 202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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