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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타 로카스*의 오후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06-15
  • 조회수 845


  네르하에 가기 전에 잠깐 들렸어 말라가, 조식이 없는 객실에 세워둔 분홍색 캐리어 모서리까지 긁혔는데 하트 무늬는 여전해서 다행이고 여기까지 오래 걸어왔어 그렇지만 네르하까지는 아직이야 말 안 통하는 호텔 직원한테 웃음 하나 빌려서 거꾸로 걸었지 붉은 구두 신고 바람을 걸어 밑창 아래로 흘러 들어오는 굽소리 속삭이지 넌 아직 어른 덜 되었지 네 언니들처럼 되려면 멀었지 


 벽돌 밟을 때마다 박음질 당하는 것 같고 민소매는 바늘같이 떨어지는 지나가는 시선으로부터 피하기는 부족해


 손아귀에서 맴돌다가 금세 희미해지는 단어들을 보지 늘 그랬듯 귓바퀴 타고 떨어지는 표정들 여긴 너무 더워, 하는데 광장 바닥에 눌어붙었다가 다시 동그랗게 몸을 말고 해가 분수대 위에 걸린 걸 봤어 태양이 한 무더기 싸질러 놓은 햇볕이 까슬거리며 입 안으로 떨어지지 하얀 원피스 자락의 끝이 향하는 곳에 서 있는 디저트 가게 거기는 토르타 로카스


 그게 그렇게 유명하다고 말하며 구두를 선물해준 언니들 얼굴은 헐렁거리고 자꾸 날아오를 것 같고

 

 페스츄리 커스타드 슈가 파우더 다시 페스츄리 커스타드 냉동 앵두 얹은 토르타 로카스 입꼬리에 구부러지는 언어를 매달고 줄줄 녹아가는 페스츄리 커스타드 슈가 파우더 녹는점이 낮은 주제에 쉽게 섞이지 않는 페스츄리 커스타드 냉동 앵두 언니들이 쌓아둔 말만 삼키고 배탈이 난 페스츄리 커스타드 슈가 파우더 위액과 함께 슬픔을 뱉어내는 페스츄리 커타드 냉동 앵두 얹은 토르타 로카스


 사실은 원피스 위로 겹겹이 껴입은 게 있지 진짜야 믿어줘 뒤뚱거리며 


 풍선보다 무겁고 폭죽보다 난폭해서 파티도 할 수 없어 아홉수와 함께 흐트러지는 바람을 걷고 걸었다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웃음을 반납하러 가야지 카드 키와 함께 아무도 몰래 두고 오는 것이 이방인의 일 배를 문지르며 진짜인 척하는 냉동 앵두도 앵두나무에서 열렸다는 걸 생각해 다만 얼어붙었을 뿐 붉은 앵두는 모두 한 나무에서 열렸는데 왜 한 녀석만 얼어 붙었을까 


 가늠했지


 햇볕이 덜 자란 팔 위로 수를 놓고 가는 오후를, 크림에 덜 익은 웃음을 올려놓고 파는 광장의 오후를, 오후 찢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떨어져서 천천히 녹아가는 나의 오후를 


-

* 스페인 남부 항구 도시 말라가의 디저트. 반죽을 겹치고 겹쳐서 만드는 디저트. 나는 막 으깨며 먹었던 디저트. 나보다는 더 새빨간 입술을 가지고 있는 언니들에게 어울리는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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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있어

밤은 구부러지는 터널처럼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폭설의 연속 검은 눈발이 세상을 두드리듯 떨어졌고 나는 기다란 열차 속에 있었다 늙은 열차는 어둠의 가장자리를 걷지 않았다 두터운 산의 가슴팍을 곧장 온몸으로 밀고 나갈 뿐 우리보다 일찍 출발한 열차는 눈에 발이 묶였고 늦게 개통한 기종들 몇몇도 미끄러졌다 했지 멋대로 늦춰지고 당겨지는 운행에 대한 방송 깊게 파인 열차의 좌석에 앉아서 듣다가 무릎 위의 채송화 화분을 꼭 쥐었다 장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이름을 알 수 있는 붉은 꽃 그리고 옅게 금이 간 화분이었다 차창 너머 몸집을 부풀리는 추위의 얼굴은 내가 아는 모습이기도 때때로 처음 보는 모습이기도 했다 열차를 흔드는 비명 같은 바람 소리가 어디에서 들어본 것만 같기도 했는데 죄다 내 옷깃에 스몄다 그러니까 내게 채송화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나 화분을 선물해 준 사람이 나의 바깥으로 걸어 갔을 때 언젠가의 내가 엎드려 흘려둔 숨소리 마치 눈물 방울처럼 창백하게 적셔왔다 몸을 떨게 하는 추위처럼 나에게 달라붙어서 내 몸은 조금씩 무거워졌고 나는 웅크리거나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다 하지만 겹쳐 입은 옷과 딱딱하게 만져지는 빗장뼈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 건 차갑게 흘러드는 밤의 소리가 아니었다 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있어 결코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손 안의 화분처럼 내가 쥐고 있는 믿음 빨갛고 환한 채송화의 잎새처럼 웃으며 말해준 그 사람의 말 나의 가슴팍에도 뿌리를 내려 아주 깊숙한 곳까지 가로질렀다 겨울밤 폭설이 벌어진 상처처럼 멎지 앉아도 언젠가 가닿을 종점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었지 내가 몸을 맡긴 기차는 온몸으로 겨울밤을 밀고 지나갔다 그때 나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끝자락과 멀미처럼 새카맣게 일렁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종점에 닿으면 화훼 시장에 가야지 분갈이를 하자 겨우내 굵직해진 뿌리를 이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화분에게 속삭이면서 발아래로 어둠을 떨어뜨리고 나의 심장 박동처럼 가슴께를 가로지르는 작은 경적 소리를 들었다

  • 모모코
  • 2024-10-04
둘러앉을 때 비로소 보이는

밤은 내려앉은 대문처럼 겨울의 손을 들여보냈다 나는 산장의 불을 켜두는 사람 어느 대도시의 자동차 전조등 대신 자그마한 알전구의 빛을 이마에 적시곤 했다 발길 닿지 않는 곳에 찾아오는 바람이 창틀의 나이테를 벗겨 먹는 소리를 들었다 영하의 온도를 지닌 손님들은 덜컹거리는 발걸음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골짜기에 걸터앉아 지냈다 침대 아래로 굴러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 않던 내 얼굴을 찾고 싶었으므로 말하자면 나의 아름다움 폭설처럼 들이닥치는 사람들의 말소리 사이 엉겨붙고 얼어버리던 모양새였다 좀처럼 뜨지 못하는 속눈썹인 듯 딱딱해져서 내 안에 굳어버리고 만 것들 나는 겹겹의 밤을 견디는 동안 배롱나무로 만든 기다란 식탁 하나를 만들었다 여섯 명도 둘러 앉을 탁자 위에 엎드리며 내 곁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다렸다 때때로 찾아오는 손님들은 밤을 적시며 문득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이불처럼 포개어지며 찾아오는 불안처럼 혹은 나처럼 산장 속으로 걸어와 나의 식탁에 앉았다 검은 모자를 쓴 것처럼 텁텁한 얼굴들 어째서 나의 손님으로 찾아오는 걸까 묻지도 않고 의자를 빼어 내어줄 때마다 창밖에서 쌓여가는 눈처럼 두터워지는 시간 우리는 작은 전등 아래서 서로를 마주하며 가장 숨겨두고 싶은 아름다움을 얼굴에 패인 주름 또는 상처 같은 흔적을 보았다 겨울밤은 나를 똑 닮은 손님을 들여 보냈고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깊이를 더하던 시간 어떤 손님이 문을 두드려도 열어줄 수 있도록 오랫동안 나는 내 산장에 불을 켜두고 있었다

  • 모모코
  • 2024-09-30
반려믿음

마지막 시 쓰기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미래의 쓰기라는 과제를 내주었고 제출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믿는 것으로 시를 쓰기 다시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쓰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받아들고서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며 나는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무수한 블록을 쏟아놓고 천천히 조립하는 아이처럼 두리번거리며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아주 어둠 뿐이었지만 저편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이마를 조용히 쓸고 지나갈 때 일찍이 땅바닥 보는 법을 알아버린 스킨답서스 그 곁에서 식물을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던 룸메이트의 옆모습이 흰빛처럼 쏟아져 내렸다 어떻게든 식물을 죽이지 않으려 했지만 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너는 화분 하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마치 쏟아야 하는 몫이 있다는 듯 매일 창가로 가서 바라보았으니까 반려식물이 시들 때마다 화훼 시장에 다녀오던 너에게 가끔 묻고 싶었다 아직이냐고 그러니까 사랑하고 싶을 뿐이냐고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기를 소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침이 오면 내 시끄러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서 화분을 돌보던 모습 눈을 뜨면 언제나 창문 옆에 꼿꼿하게 서 있던 너를 속눈썹에 붙은 잠기운을 털어내지도 못한 채 쳐다보았다 오래도록 남았던 잔상 하얀 빛처럼 넘실거리는 옆모습을 위해 썼던 시들 가방 속에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선생님이 누구를 집요하게 기억하는 중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어째서 대답하지 못했는지 사랑한다는 말의 범주는 손목에서 헐렁하게 흘러내리는 머리끈 같고 빛속에서 다시 오래된 끈으로 머리를 묶은 채 걸어나가는 밤 정류장은 아직 먼 곳에 있었지만 아직은 낱장으로 날아다니는 시들로 묵직한 가방 그 무게를 믿으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제출하기 어려운 말들만큼 깊숙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며 우선 계속해서 걸어보기로 했다

  • 모모코
  • 202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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