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살 ★ 빛의 펀치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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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1
- 조회수 772
밤마다 검정이 엎질러진 지붕 위를 달리는 소녀들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진다는데* 과연
으깨진 딸기처럼 붉게도 빛난다 밝게도 빛난다
오늘밤에도 뭉개진 몸을 끌어안고 날리는 빛의 펀치
여름은 단단하게 말아쥔 주먹을 대각선으로 통과하는 중
품이 큰 교복 안으로 사랑을 쏟아넣고 조금씩
그림자의 모습으로 발목을 갉아먹는 어둠을 거둬낸다
소녀들 붉게 반짝이는 머리 보고서는
늙은 담임이 한 마디 김 학주 한 마디
도돌이표가 우리를 꾹 누르면 새어 나오는 무지개
자정에는 시계 대신 하트를 두 눈에 그려넣고 뛴다
저는요 빛의 전사예요 거부할 수 없는
분홍빛 일렁임을 남보다도 많이 품고 있는, 그러니
머리카락이 뱉는 빛깔로 하늘에 자수를 놓으며
나아갈 거예요 날아갈 거예요 종아리엔 날개가 돋고
건물 사이로 무더위 갈라지며 괴수가 나타날 때
필살기를 꺼내든다 우리에겐 무기는 필요 없어요 오직
두 손 가득 들어찬 꿈결처럼 들어찬 알록달록하고
말랑한 마음의 빛이면 되는 걸요
우리의 눈동자가 익어가요 초록에서 새빨간
얼굴을 가져가는 열매들처럼 꿈결같이
밟으면 밟을수록 빛이 나는 전사들 오늘도
손을 꽉 쥔 채로 흘러가는 웃음을 쥔 채로 달린다
밤과 괴수와 계절과 사랑을 밝히기 위한 질주
가로등 위에 앉아 어둑한 고개를 드는 것들에
필살 빛의 펀치를 한 방 날려준다
*김행숙, 「인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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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구부러지는 터널처럼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폭설의 연속 검은 눈발이 세상을 두드리듯 떨어졌고 나는 기다란 열차 속에 있었다 늙은 열차는 어둠의 가장자리를 걷지 않았다 두터운 산의 가슴팍을 곧장 온몸으로 밀고 나갈 뿐 우리보다 일찍 출발한 열차는 눈에 발이 묶였고 늦게 개통한 기종들 몇몇도 미끄러졌다 했지 멋대로 늦춰지고 당겨지는 운행에 대한 방송 깊게 파인 열차의 좌석에 앉아서 듣다가 무릎 위의 채송화 화분을 꼭 쥐었다 장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이름을 알 수 있는 붉은 꽃 그리고 옅게 금이 간 화분이었다 차창 너머 몸집을 부풀리는 추위의 얼굴은 내가 아는 모습이기도 때때로 처음 보는 모습이기도 했다 열차를 흔드는 비명 같은 바람 소리가 어디에서 들어본 것만 같기도 했는데 죄다 내 옷깃에 스몄다 그러니까 내게 채송화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나 화분을 선물해 준 사람이 나의 바깥으로 걸어 갔을 때 언젠가의 내가 엎드려 흘려둔 숨소리 마치 눈물 방울처럼 창백하게 적셔왔다 몸을 떨게 하는 추위처럼 나에게 달라붙어서 내 몸은 조금씩 무거워졌고 나는 웅크리거나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다 하지만 겹쳐 입은 옷과 딱딱하게 만져지는 빗장뼈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 건 차갑게 흘러드는 밤의 소리가 아니었다 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있어 결코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손 안의 화분처럼 내가 쥐고 있는 믿음 빨갛고 환한 채송화의 잎새처럼 웃으며 말해준 그 사람의 말 나의 가슴팍에도 뿌리를 내려 아주 깊숙한 곳까지 가로질렀다 겨울밤 폭설이 벌어진 상처처럼 멎지 앉아도 언젠가 가닿을 종점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었지 내가 몸을 맡긴 기차는 온몸으로 겨울밤을 밀고 지나갔다 그때 나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끝자락과 멀미처럼 새카맣게 일렁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종점에 닿으면 화훼 시장에 가야지 분갈이를 하자 겨우내 굵직해진 뿌리를 이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화분에게 속삭이면서 발아래로 어둠을 떨어뜨리고 나의 심장 박동처럼 가슴께를 가로지르는 작은 경적 소리를 들었다
- 모모코
- 2024-10-04
밤은 내려앉은 대문처럼 겨울의 손을 들여보냈다 나는 산장의 불을 켜두는 사람 어느 대도시의 자동차 전조등 대신 자그마한 알전구의 빛을 이마에 적시곤 했다 발길 닿지 않는 곳에 찾아오는 바람이 창틀의 나이테를 벗겨 먹는 소리를 들었다 영하의 온도를 지닌 손님들은 덜컹거리는 발걸음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골짜기에 걸터앉아 지냈다 침대 아래로 굴러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 않던 내 얼굴을 찾고 싶었으므로 말하자면 나의 아름다움 폭설처럼 들이닥치는 사람들의 말소리 사이 엉겨붙고 얼어버리던 모양새였다 좀처럼 뜨지 못하는 속눈썹인 듯 딱딱해져서 내 안에 굳어버리고 만 것들 나는 겹겹의 밤을 견디는 동안 배롱나무로 만든 기다란 식탁 하나를 만들었다 여섯 명도 둘러 앉을 탁자 위에 엎드리며 내 곁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다렸다 때때로 찾아오는 손님들은 밤을 적시며 문득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이불처럼 포개어지며 찾아오는 불안처럼 혹은 나처럼 산장 속으로 걸어와 나의 식탁에 앉았다 검은 모자를 쓴 것처럼 텁텁한 얼굴들 어째서 나의 손님으로 찾아오는 걸까 묻지도 않고 의자를 빼어 내어줄 때마다 창밖에서 쌓여가는 눈처럼 두터워지는 시간 우리는 작은 전등 아래서 서로를 마주하며 가장 숨겨두고 싶은 아름다움을 얼굴에 패인 주름 또는 상처 같은 흔적을 보았다 겨울밤은 나를 똑 닮은 손님을 들여 보냈고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깊이를 더하던 시간 어떤 손님이 문을 두드려도 열어줄 수 있도록 오랫동안 나는 내 산장에 불을 켜두고 있었다
- 모모코
- 2024-09-30
마지막 시 쓰기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미래의 쓰기라는 과제를 내주었고 제출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믿는 것으로 시를 쓰기 다시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쓰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받아들고서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며 나는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무수한 블록을 쏟아놓고 천천히 조립하는 아이처럼 두리번거리며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아주 어둠 뿐이었지만 저편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이마를 조용히 쓸고 지나갈 때 일찍이 땅바닥 보는 법을 알아버린 스킨답서스 그 곁에서 식물을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던 룸메이트의 옆모습이 흰빛처럼 쏟아져 내렸다 어떻게든 식물을 죽이지 않으려 했지만 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너는 화분 하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마치 쏟아야 하는 몫이 있다는 듯 매일 창가로 가서 바라보았으니까 반려식물이 시들 때마다 화훼 시장에 다녀오던 너에게 가끔 묻고 싶었다 아직이냐고 그러니까 사랑하고 싶을 뿐이냐고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기를 소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침이 오면 내 시끄러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서 화분을 돌보던 모습 눈을 뜨면 언제나 창문 옆에 꼿꼿하게 서 있던 너를 속눈썹에 붙은 잠기운을 털어내지도 못한 채 쳐다보았다 오래도록 남았던 잔상 하얀 빛처럼 넘실거리는 옆모습을 위해 썼던 시들 가방 속에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선생님이 누구를 집요하게 기억하는 중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어째서 대답하지 못했는지 사랑한다는 말의 범주는 손목에서 헐렁하게 흘러내리는 머리끈 같고 빛속에서 다시 오래된 끈으로 머리를 묶은 채 걸어나가는 밤 정류장은 아직 먼 곳에 있었지만 아직은 낱장으로 날아다니는 시들로 묵직한 가방 그 무게를 믿으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제출하기 어려운 말들만큼 깊숙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며 우선 계속해서 걸어보기로 했다
- 모모코
- 202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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