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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타임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09-03
  • 조회수 580

벨이 세 번 울리면 인사한다혀끝을 타고 오르는 저녁놀누군가 하늘 위로 화염병을 던졌다고딕 첨탑 아래에서 만난다우리는 뾰족한 모자를 쓰고 만난다아무도 모르는 틈새에서 만난다여름이 가을 위로 엎드리는 날비로소 팔월의 끝이 오고 있다땅거미를 타고 지저귀는 매미의 소리이 언덕 위에서 우는 일은 없어모두가 지저귈 뿐이지기다란 테이블의 끝에 앉은 오늘의 손님너는 밤에도 매미가 지저귀느냐고 묻는다.

제 목소리를 가져본 적 있으면 지저귀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입을 열면 지나온 여름이 흘러나온다손님을 불러놓고도 미안한 것은 오직 하나알록달록한 여름을 보여주지 못한다거나 너무 많은 여름이 흘러나오는 것보다는 아직도 음식이 준비되지 않은 것내 주머니를 탈탈 털었지걸어오는 동안 주운 모든 것들을 보여줄게테이블은 너무 길어서 너는 한낮처럼 내 건너편에 앉아 있다.

 

첫 번째 벨이 울리면 천을 뒤집어쓴다.*

지저귀는 모든 것들의 마음에는 계단이 있어계단이 휘어지며 나선형이 되는 시간기억이 녹슨 난간을 짚고 걸어 올라온다살찐 새 한 마리를 나누어 먹는다이 새는 너무 뚱뚱해서 날아갈 수도 없겠어언제부터 살이 오른 새였을지 가늠한다하늘 대신 입속에서 녹기 위해 군살이 붙은 새를 떠올린다우리에게도 그런 살이 있을 거야여름의 허리춤에 꾸덕하게 말라붙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언덕 대신 그늘에서 녹기 위해 슬픔을 붙인 채 몸집을 불려가는새도 계단을 타고 오른 적이 있을 테다너처럼또는 나처럼.

두 번째 벨이 울리면 수백 겹의 슬픔을 뒤집어쓴다피아노 다리처럼 구부러지는 식당식탁 위의 저녁이 해묵은 리듬을 연주하면 우리 사이에서 먼지가 쌓인 말들이 오간다언젠가 우리의 관자놀이에 박힌 적 있는 말들검은 피를 가진 년들우리는 푹신한 땅보다는 울퉁불퉁한 곳에서부터 더욱 단단하게 자란다평평한 언덕을 가져본 적 없는 건 우리를 동여매는데 중요한 일이야새의 심장을 동여맨 실을 끊으며 말한다누가 먼저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뭇잎이 익어가고 정원의 검은 약초들이 손톱처럼 길어지는 동안우리는 지난여름을 찻잔에 녹여 마셨다한 번 마시면 잠이 들지 못할 만큼의 맛이 녹아든다새들은 천천히 우리 곁으로 올라오고 있다리듬은 식탁을 어지르고식사가 끝나는 시점부터 갈라지는 무더위첨탑 위로 여러 갈래로마지막 더위가 한껏 지저귀며 찢어진다하얗게 지붕 위로 들어앉는다.

마침내 벨이 세 번 울리면 다시 인사한다놀이는 여기까지야.

 

너와 내가 마주 앉은 테이블이 짧아지고 있다서서히.




*서양의 요리 오르톨랑을 먹을 때는 잔인한 요리를 즐기는 자신들의 모습이 하느님에게 보여 하느님의 분노를 사지 않도록흰 천을 뒤집어쓰고 먹는다사실은 그냥 요리의 향을 깊이 음미하기 위해서이거나 뼈를 발라 뱉어내는 일을 가리기 위한 것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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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있어

밤은 구부러지는 터널처럼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폭설의 연속 검은 눈발이 세상을 두드리듯 떨어졌고 나는 기다란 열차 속에 있었다 늙은 열차는 어둠의 가장자리를 걷지 않았다 두터운 산의 가슴팍을 곧장 온몸으로 밀고 나갈 뿐 우리보다 일찍 출발한 열차는 눈에 발이 묶였고 늦게 개통한 기종들 몇몇도 미끄러졌다 했지 멋대로 늦춰지고 당겨지는 운행에 대한 방송 깊게 파인 열차의 좌석에 앉아서 듣다가 무릎 위의 채송화 화분을 꼭 쥐었다 장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이름을 알 수 있는 붉은 꽃 그리고 옅게 금이 간 화분이었다 차창 너머 몸집을 부풀리는 추위의 얼굴은 내가 아는 모습이기도 때때로 처음 보는 모습이기도 했다 열차를 흔드는 비명 같은 바람 소리가 어디에서 들어본 것만 같기도 했는데 죄다 내 옷깃에 스몄다 그러니까 내게 채송화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나 화분을 선물해 준 사람이 나의 바깥으로 걸어 갔을 때 언젠가의 내가 엎드려 흘려둔 숨소리 마치 눈물 방울처럼 창백하게 적셔왔다 몸을 떨게 하는 추위처럼 나에게 달라붙어서 내 몸은 조금씩 무거워졌고 나는 웅크리거나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다 하지만 겹쳐 입은 옷과 딱딱하게 만져지는 빗장뼈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 건 차갑게 흘러드는 밤의 소리가 아니었다 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있어 결코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손 안의 화분처럼 내가 쥐고 있는 믿음 빨갛고 환한 채송화의 잎새처럼 웃으며 말해준 그 사람의 말 나의 가슴팍에도 뿌리를 내려 아주 깊숙한 곳까지 가로질렀다 겨울밤 폭설이 벌어진 상처처럼 멎지 앉아도 언젠가 가닿을 종점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었지 내가 몸을 맡긴 기차는 온몸으로 겨울밤을 밀고 지나갔다 그때 나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끝자락과 멀미처럼 새카맣게 일렁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종점에 닿으면 화훼 시장에 가야지 분갈이를 하자 겨우내 굵직해진 뿌리를 이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화분에게 속삭이면서 발아래로 어둠을 떨어뜨리고 나의 심장 박동처럼 가슴께를 가로지르는 작은 경적 소리를 들었다

  • 모모코
  • 2024-10-04
둘러앉을 때 비로소 보이는

밤은 내려앉은 대문처럼 겨울의 손을 들여보냈다 나는 산장의 불을 켜두는 사람 어느 대도시의 자동차 전조등 대신 자그마한 알전구의 빛을 이마에 적시곤 했다 발길 닿지 않는 곳에 찾아오는 바람이 창틀의 나이테를 벗겨 먹는 소리를 들었다 영하의 온도를 지닌 손님들은 덜컹거리는 발걸음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골짜기에 걸터앉아 지냈다 침대 아래로 굴러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 않던 내 얼굴을 찾고 싶었으므로 말하자면 나의 아름다움 폭설처럼 들이닥치는 사람들의 말소리 사이 엉겨붙고 얼어버리던 모양새였다 좀처럼 뜨지 못하는 속눈썹인 듯 딱딱해져서 내 안에 굳어버리고 만 것들 나는 겹겹의 밤을 견디는 동안 배롱나무로 만든 기다란 식탁 하나를 만들었다 여섯 명도 둘러 앉을 탁자 위에 엎드리며 내 곁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다렸다 때때로 찾아오는 손님들은 밤을 적시며 문득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이불처럼 포개어지며 찾아오는 불안처럼 혹은 나처럼 산장 속으로 걸어와 나의 식탁에 앉았다 검은 모자를 쓴 것처럼 텁텁한 얼굴들 어째서 나의 손님으로 찾아오는 걸까 묻지도 않고 의자를 빼어 내어줄 때마다 창밖에서 쌓여가는 눈처럼 두터워지는 시간 우리는 작은 전등 아래서 서로를 마주하며 가장 숨겨두고 싶은 아름다움을 얼굴에 패인 주름 또는 상처 같은 흔적을 보았다 겨울밤은 나를 똑 닮은 손님을 들여 보냈고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깊이를 더하던 시간 어떤 손님이 문을 두드려도 열어줄 수 있도록 오랫동안 나는 내 산장에 불을 켜두고 있었다

  • 모모코
  • 20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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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 202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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