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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들

  • 작성자 옥상정원
  • 작성일 2023-09-23
  • 조회수 429

나는 가끔 방향도 방황도 없이 걷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영혼들이자꾸만 어디론가 간다

갈 뿐이다

나는 어깨를 매만진다 우리의 검은 영혼은 이 밤을 망토처럼 덮는다 모두들

안달하며 서로를 모른 체 한다 서로의 망토를 잊은 뒤엔 안녕안녕,

그 순수한 악의가 때로는 서로의 영혼을 잠시 쉬게 한다

 

우리는 되돌아갈 곳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언젠가

다들 가야 할 곳을 가는 것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는

영혼이 쉴 수 있는 곳그 투명하고 솔직하기에 징그러운 곳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상처는 문드러져서 거리에 진득하게 들러붙는데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망토가 이리저리 흩날린다

상처받은 영혼이 되돌아갈 곳은 없다,

라고 생각하는 동안 저기 행인들은 술에 취한 채 넘어진다 어떻게든

영혼이 원하는 곳으로 우리는 옮겨지는 듯하다 나는 어깨를 다시 한번 매만지며 조금은

울적해졌다

 

이 거리의 행인은 부끄러움이 없고 반성 또한 없다

반성하는 자들의 흰 종이가 내 앞에 주석처럼 붙는다

물음표물음표발자국마다 망토가 밟힌다 나는

오랜 시간 떨었고 떨었던 만큼 내 망토는 주인을 잘 알아본다

그것은 나를 잘 안다는 명목으로 나를 삼킨다 어떠한 단념은

이런 식으로 허무하고 쓸쓸하다 나는 단념한 채로 망토를

덮는다이 추위는 금세 가시질 않고 내 비릿한 영혼은

단 한 번도 솔직하지 못했다

 

이번 겨울은 조금 더 추울 듯하다



*기형도, <가는 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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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상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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