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두드러기는 붉다.

  • 작성자 백석
  • 작성일 2023-12-13
  • 조회수 376


겨울 어느날 내 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붉고 간지러워 득득 긁게 되는 까다로운 녀석.  

난 득득 긁었다.  


더이상 가족 대신 기숙사여서 그런가. 

자유로워서 그런가

손을 멈추지 못했다.  


모던한 내 방대신 적갈색의 나무가 즐비한 기숙사 방.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붉어진 목, 그 위에 피어난 두드러기를 득득 긁어서


밖에서 비가 온다. 

겨울에 어울리지 않게. 흐믈 흐믈 축축해지고


두드러기가 고통스러워져 

그것의 기원을 찾는다.  


오래전 내가 집에 살 때.

아빠는 얼큰하게 취해 집에 들어 오셨다. 

비틀 비틀 현관을 넘어 다 튼 검정 소파에 앉아.  

나를 부르셨다.  술취한 목소리로., 짙은 담배 냄새로.  

세상의 더러운 냄새로.


그때였다. 


그의 얼굴에 붉은 열꽃이 핀다.  

그의 잘뜨지 못하는 눈, 인사불성의 모습에서.  

붉은 두드러기 꽃이 핀다. 

비가 오고 있었다.  

아빠는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도 사랑한다고 했다.  다만 나의 몸엔 자격이 없었다.  

그 몸에 삶의 흔적을 담은 두드러기가 내겐 없었다.  


그리고 겨울의 어느날.  

마침내 붉은 두드러기가 핀다.  

지독한 간지러움으로 


간지러움은 고통이 되겠고

고통은 그리움이 되며

고통은 그리고 사랑이 되어야만 한다


추천 콘텐츠

가을실종

화장실의 직사각형의 타일들그 위에 쪼그려 앉아울었다나는 왜 우나요바다의 짠내가 나던 여름의 바람흩날리는 담뱃재처럼 나는 날아간다장마를 잊은 채 하늘 위에서 춤을 추던나는 웃는다뜨거운 탱고이자열대야보다 뜨거운 밤날아갔다비가 떨어진다 화장실의 타일에 노크하듯천천히 적시다 마침내 쏟아낸다 날아가면 잡지 못하는데나는 날아간다내가 날아갔다어느새 여름의 바람에서 비린내가 난다썩을 듯한 악취가 난다어제먹은 갈치의 비린내와 같은참으로도 씁쓸한 맛이었다그래눈물과 때와 냄새들에락스를 뿌리자그 유독함이 여름의 짠내를 누르고더욱더 더욱더 하얘지도록 겨울이 되도록

  • 백석
  • 2024-09-10
추격자(나홍진)

옛날에 사람들은 못을 정이라고 했다한자로 정내 목에 못이 박혀있다아주 오래전 할머니와 같이 먹었던그 고등어의 가시와 같이그 못은 내 목에 불현듯 생겼다분명히 꼭꼭 씹어 삼켰는데못은 삼켜지지 않았다이빨 사이로 다 빗나갔나할머니가 보고싶다할머니는 내 목의 가시를 다 빼주었다. 목구멍으로 축느러진 손가락을 넣어하얀 가시를 빼냈다할머니는 이제 없다 내 목에 못이 박혀있다나는 그 못을 여러 이름으로 불렀다못, 정, 가시, 그리고 너사실 너라는 말을 제일 좋아했다못, 정, 가시보다 ‘너’에는 많은 것이 담겼다사랑, 증오, 허탈, 미련, 슬픔이내 목을 간질인다 재채기를 하게된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재채기를 한다알다시피 재채기를 하면 눈물이 핑돈다할머니가 보고싶다이제 내가 목에 손가락을 넣는다

  • 백석
  • 2024-09-07
욕조에 담긴 고래

푸른 욕조에 누워 참새를 생각하니여름이다땀에 젖은 와이셔츠와비에 젖은 검은 가방방 모퉁이에 추방한 물품들이참새라는 한마디에 출렁거린다참새오늘 아침 길을 걸으며나무 위의 참새를 보았다참새는 콘크리트 사이에 둥지를 틀고대개 유리창에 막혀 죽었다참새에게 공업용 알콜 냄새가 뱄다젖은 공기는 여우비좁쌀의 구름에서 낙하하는 비뜨거운 물이 쏟아진다 턱 막히는 습기와내 몸에 박힌 검은 때장님은 사라진 눈을 찾는다참새는 콘크리트 사이에 있었다나는 푸른 욕조에 누워 검은 때를 닦고보이는 참새의 굽은등참새는 거울 밑, 비누의 옆에 있었다콘크리트에서 참새의 뼈가 발견되며두피의 모서리까지 바른 탈색약나 대신 푸른 욕조가 색을 잃는다

  • 백석
  • 2024-08-3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