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
- 작성자 난바다
- 작성일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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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무릇, 무엇을 담고 있는 것인가
오늘 카페에 앉아 네가 땀 흘리며 적었을 소설 속 글자들을 읽었다. 내 옆에 너는 어느 새 잠들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난 고개를 들어 우리 앞에 놓인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무릇, 무엇을 담고 있는 것인가?
네가 쓴 글에 나는 몰래 물음표를 붙였다. 아직도 내게 풀리지 않는 의문, 바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적부터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그 이야기를 꺼냈다. 너는 당연하다는 듯, 바다는 무엇을 담고 있는지 물었고 나는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꺼낸 것에 반해 너는 ‘알 수 없음’이라고 답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바다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 네가 묻고 네가 답하는, 그 대화 형식 자체가.
이윽고 내가 코웃음을 쳤다. 너는 진지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바다는 무엇도 담을 수 있고, 무엇도 담을 수 없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 네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장만 해도 바다에서 그 수많은 물고기들이 사는데 물고기들은 너의 ‘무엇’에서 배제되는 이인가. 명백한 나의 비판에도 너는 네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런 너에게 호기심이 생겨 다가간 건 내 순전한 변덕 때문일 것이다.
바다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너는 오늘도 그 때처럼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미리 앉아 내게 물음을 던졌다. 너의 노트엔 그 글자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지금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너의 특별한 바다 사랑 때문일지, 아니면 바다가 정말 무엇을 담고 있는지 나 또한 몰라서인지는 알 수 없다.
바다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너와 마찬가지로 가지고 온 내 노트에 나는 너의 글자에 물음표를 더하여 썼다. 바다엔 낭만과 사랑과 슬픔과 비극, 희극. 모든 것이 들어있는데. 나는 그 물음에 특별히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면 나는 무엇을 내 입에 담아야 하나.
바다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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