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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점프,내 인생의 점프는 언제?" - 테마 글쓰기 공모전

  • 작성일 2010-06-10
  • 조회수 45,833

점프와 문장이 함께하는 희망의 글쓰기 공모전, 인생에서 만났던 '점프의 시간'은 과연 언제였나요? 통쾌한 도약의 순간,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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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14건

  • 익명

    옛 친구의 한 통의 전화<br/><p style="margin: 0px" align="center"><font size="5">옛 친구의 한 통의 전화 </font></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br /></p><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고등학교 3학년. 쉬는 시간인데도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화장실에 가는 일이 아니면 특별히 쉬는 시간에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중에 가장 싫은 때는 점심 시간이다. 밥을 혼자 먹어야 하니까. 더 죽을 맛인 건 다른 아이들은 자리를 옮겨 다니며 친구들과 즐겁게 떠들며 먹는 다는 것이다. </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외톨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슬픈 건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 다는 것.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다는 것. 사랑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닐까. 가끔 뉴스에서 왕따를 당해 자살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겪은 암울했던 학창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현재 나는 직장인으로서 지난 5월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도 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의 내가 이처럼 평범하지만 사회에 적응하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큰 성공처럼 여겨진다. </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나는 왜 외톨이였을까? 당시 나는 친구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있었다. 나 혼자 잘난 맛에 공부만 죽어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고, 단순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재수 없는 놈’이었던 거다. </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문제는 주변 아이들이 친구 하나 없는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는 거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성적은 한없이 떨어졌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친구도 많고, 활달한 성격이었다. 어쩌다가 그 지경까지 가게 됐는지…. 소심한 성격도 한 몫한 것 같다. </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수능시험을 망치고 재수를 하기 위해 학원에 등록한 그날 새벽. 홀로 방에 앉아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에게 남은 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것 다 포기하고 공부해 성공한 것도 아니고, 평생 인생의 희로애락을 같이 할 친구를 만들지도 못했으니 얼마나 외롭고 비참한 기분이었겠는가. </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그렇게 울고 있는데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시 삐삐로 연락을 받았는지, 집으로 전화가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p><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야, 뭐하냐 시험도 끝났는데 같이 술 한잔하자.” </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고등학교 내내 같은 반이 되지 못하고, 공부만 하는 날 멀리하다 시험이 끝나면서 생각이 나 전화를 한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 친구를 만나면 가끔 그 당시 그 전화 한 통이 자살까지 생각했던 나를 살리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줬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앤드류 매튜스의 <친구는 돈보다 소중하다>란 책을 읽고,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꼈다. 학창 시절 내가 간과해 왔던 것이 무엇이고, 내 잘못과 앞으로 내가 살면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방향을 일러줬기 때문이다. </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지금 생각해 봤을 때 대인기피증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해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연예인들 중에 악성댓글로 인해 대인기피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고, 공격할 것 같고, 자신이 하는 일 모두가 잘못된 일인 것처럼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있어, 골방에서 숨 죽이고 있던 나를 밖으로 ‘점프’하게 해 준 건 ‘친구의 한 통의 전화’와 ‘한 권의 책’이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이 일이 큰 반전은 아니라고 판단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던 나에게 희망을 주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알게 해 줬다는 데 있어서, 현재 나를 사랑하는 것은 물론 가족을 위하고 친구와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애쓰고자 하는 나를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p><br /><p style="margin: 0px" class="HStyle0">혹시 주변에 외롭게 혼자 울고 있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가?  “같이 하자”고 한 마디 건네주길 바란다. 지금 당신이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그 사람에겐 인생이 180° 변할 수도 있는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 </p>

    • 2010-06-29 19:14:2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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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할 수 있겠어?<br/><p style="margin: 0px">고교시절 누구나 겪는 입시의 문턱에서 있었던 일입니다.</p><br /><p style="margin: 0px">중학교때부터 진학을 예술고로 할까 인문계로 할까하던 차에</p><br /><p style="margin: 0px">부모님의 큰 기대로 인해 인문계로 가게 됐죠...</p><p style="margin: 0px">예고는 예술대학만을 가기위한 코스이고...</p><p style="margin: 0px">인문계는 예술대나 일반대나 다 갈 수 있다는 정점아래</p><p style="margin: 0px">내가 공부를 잘해서 다른과를 선택할 수도 있으니 인문계를 지원하랬드랬습니다.</p><br /><p style="margin: 0px">3년동안을 학교 수업을 마치면 미술학원으로 가고...</p><p style="margin: 0px">남들 야간 자율을 하던 시간에 저는 미술학원으로...</p><p style="margin: 0px">3학년 말에는 새벽까지도 줄곧 연필을 그어 댓습니다.</p><br /><p style="margin: 0px">그렇게 3년이 흐르고, 입시에 임박할 당시,</p><p style="margin: 0px">그림에만 넘 치중하다 보니 성적이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었고,</p><p style="margin: 0px">몸과 맘이 너무 지쳐서 다 포기하고 싶던 그때...</p><p style="margin: 0px">담당샘은 저에게 '이래가꼬 할수 있겠나? 전문대로 아무때나 가자~'</p><p style="margin: 0px">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제 노력에 비하면 저는 홍대도 가야할 사람인데 말이죵</p><br /><p style="margin: 0px">그날부터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즉 점프의 기로겠죠...</p><p style="margin: 0px">점프를 할수 있는 기회...저는 모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p><p style="margin: 0px">실기라도 만점을 받으면 어느정도는 승산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p><br /><p style="margin: 0px">미리 학교를 정하고 시험을 쳐야해서 </p><p style="margin: 0px">교무실에 불려간 저는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p><p style="margin: 0px">4년대 3곳을 정했고 열심히 시험을 봤습니다.</p><br /><p style="margin: 0px">그리곤!!!점프!!!이때가 제 인생의 점프를 했을 때였군요^^</p><p style="margin: 0px">4년대 대학에 실기 만점으로 차석까지 하게 되었습니다.</p><p style="margin: 0px">지금 생각만해도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현명한 판단을...흠흠...</p><br /><p style="margin: 0px">이후 교무실로 불려간 저는 선생님들에게 행가리 받았습니다.</p><p style="margin: 0px">일거양득! 제대로 점프를 했드랩죠.</p><br /><p style="margin: 0px">지금도 생각하면 뿌듯한 인생의 점프!!!입니다.^^ </p>

    • 2010-06-29 21:43:4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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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나의 자리는 여기입니다<br/><p style="margin: 0px">전 결혼한지 6년 째되는 29살 주부입니다 </p><p style="margin: 0px">두 아이를 두고 남편과 함께 단란하게 사는 주부입니다 </p><p style="margin: 0px">어린 나이에 아이가 생겨서 결혼을 해서 남들한테 애기땜에 결혼했네 라는 핀잔을 듣기 싫어서 </p><p style="margin: 0px">정말 열심히 아이와 신랑을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p><p style="margin: 0px">하지만 결혼을 하기 까지 정말 마이 힘들었습니다 </p><p style="margin: 0px">전 친정에서 5명의 형제중에 네째로 태어나서 형제들 중에 두번째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p><p style="margin: 0px">물론 아이가 생겨서 급하게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p><p style="margin: 0px">집에 정말 너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린 나이에 아이땜에 결혼을 해야 하니까 물론 어른들껜</p><p style="margin: 0px">자랑 거리가 아니죠 </p><p style="margin: 0px">그렇지만 전 후회를 하지 않습니다 </p><p style="margin: 0px">결혼전에 직장이란걸 가져보지 못하고 신랑을 만나서 동거아닌 동거를 하면서 함께 있고 </p><p style="margin: 0px">신랑 부모님이랑도 함께 살아보고 그래서 그런지 시부모님도 정말 편하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결심하고 지금 이렇게 결혼을 해서 살고 있습니다 </p><p style="margin: 0px">그런데 결혼은 정말 현실인가 봅니다 </p><p style="margin: 0px">저와 신랑은 정말 아무것도 없이 시작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서 시부모님이랑 함께 매일 같이 눈을 뜨고 같이 밥을 먹고 그렇게 처음엔 잘 지낸다고 생각을 했지만</p><p style="margin: 0px">역시 시부모님은 저한텐 정말 어려운 분들이였습니다 </p><p style="margin: 0px">저의 아버님이랑 저랑은 성격이 달라서 그런지 물론 성격이 같은 사람들은 없겠지만 저의 아버님이랑 저랑은 정말 맞지 않았나봅니다 </p><p style="margin: 0px">매일 함께 있다 보니까 아버님의 나쁜 점들이 자꾸만 눈에 보이기 시작해서 미워 지기 시작했습니다</p><p style="margin: 0px">내색은 안했지만 사람이 한번 미워 지니까 정말 모든게 싫어지더라구요 </p><p style="margin: 0px">아이를 낳고 아이가 할아버지한테 가는거조차 너무 싫었습니다 </p><p style="margin: 0px">함께 살면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 나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하루 하루 지냈는데 </p><p style="margin: 0px">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p><p style="margin: 0px">제가 친정에 가 있는동안 시부모님이랑 저의 신랑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집에 왔을땐 시부모님이</p><p style="margin: 0px">집을 나가셨어요 </p><p style="margin: 0px">나중에 알고서야 제가 시부모님한테 너무 못해서 내 생각만 해서 나가셨다고 하네요 </p><p style="margin: 0px">너무 죄송스러웠어요 그 말이 생각이 나더라구요 </p><p style="margin: 0px">사람 한명땜에 집안이 망한다는말 그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눈물도 마이 흘렸어요 </p><p style="margin: 0px">나중엔 시누이한테 모진 소리두 많이 들었어요 괜히 나땜에 시부모님이 집을 나가셨다고 </p><p style="margin: 0px">그런말을 듣고 정말 속상하고 마음이 안 좋았어요 </p><p style="margin: 0px">물론 지금은 시부모님이랑 사이가 좋아요 아버님두 제가 가면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p><p style="margin: 0px">걸어서 10분도 안되는 거리에 계셔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시부모님집에 놀러 갑니다 </p><p style="margin: 0px">가면 맛난것도 해 주시고 ...</p><p style="margin: 0px">다만 제가 시부모님한테 힘이 못 되어 드려서 너무 죄송스럽니다 </p><p style="margin: 0px">시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드신데 아무런 도움을 못 드리고 짐만 더 만들어 드려서 정말 마음이 아프고 죄송할 따름이네요 </p><p style="margin: 0px">지금은 그냥 아프지나 마시고 건강만 하심 좋겠습니다 </p><p style="margin: 0px">나중에는 정말 저의가 좋은 날이 올거란 생각으로 나중엔 꼭 도와 드리고 싶어요 </p><p style="margin: 0px">아버님 정말 죄송합니다 </p><p style="margin: 0px">못난 며느리땜에 맘 고생 하시고......</p><p style="margin: 0px">지금은 비록 아무것도 못 해드리지만 나중에는 호강시켜 드릴께요 ^^</p><p style="margin: 0px">건강 하시고 어머님이랑 오래 오래 사세요 </p>

    • 2010-06-30 09:27:2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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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선생님,감사합니다<br/><p style="margin: 0px"> </p><br /><p style="margin: 0px">2주 전 나는 비로소 생일을 맞아 열여섯이 되었습니다. 글쎄, 인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잊을 수 없고, 앞으로 살아갈 날 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하나 있었답니다.</p><br /><p style="margin: 0px">정확히 열 두살 이 되던 해의 4월이었습니다. 저희 반 담임 선생님께서 아침독서 시간에 뒤늦게 생각이 났다는 듯이 '운문부를 모집한다' 며 관심있는 사람은 시를 써서 6반 담임 선생님께로 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렸을 때 글짓기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던 것을 계기로 (그 땐, 정말 하늘을 날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오기인데 제가 무슨 용기를 냈는지 흰 종이에 '날씨'에 관한 이상한 시를 써서 그림까지 정성스레 그려 며칠 뒤(아니, 한참 뒤) 하굣길에 선생님께로 찾아가 작품(?)을 냈습니다.</p><br /><p style="margin: 0px">선생님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시더니 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늦었다면서요.</p><p style="margin: 0px">씁쓸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뭐 어쩔 수 있나요? 늦었다는데. 그래도 에이, 조금만 더 일찍 낼 걸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p><br /><br /><p style="margin: 0px">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저는 결국 운문부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좀 아니 많이 어리둥절했습니다.하지만 기쁘게 공책과 연필을 준비하여 교실로 갔습니다.</p><br /><p style="margin: 0px">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선생님께서 이제 더 이상 작품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가 그림까지 그린 정성을 보아 주셔서 한마디로 턱걸이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p><br /><p style="margin: 0px">어쨌든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인데요, 매일 방과후에 남아서 시를 쓰고 쓰고 또 쓰는 일은 정말 고역 중에 고역이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마치 암흑 속을 눈까지 가리고 걸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p><br /><br /><p style="margin: 0px">차라리 여길 들어오겠다고 하지 말 걸, 하고 생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안 넣으려던 저를 일부러 넣어 주셨는데 그만두겠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관두기 시작하고 저와 6학년 언니들을 포함하여 열명 가까이 있었던 것 같네요.</p><br /><p style="margin: 0px">항상 칠판에 시제가 적혀 있습니다. 아, 다시 떠올리니 정말 아련한데, 녹색 스프링 노트에다가 그 시제 하면 떠오르는 경험들을 단어로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것들에 선생님의 지도를 더하여 '시'라는 것을 썼는데 처음엔 뭐가 뭔지 알 수 없고 , 솔직히 말하자면 읽었던 동시집들을 모방하기도 했습니다. </p><br /><p style="margin: 0px">깜깜한 암흑길을 걸어가는데 가끔씩 비추는 촛불빛 같은 선생님의 지도로는 처음에 방향을 잡기가 곤란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길을 잘못 들면 선생님의 혹평이 가차없었으니까 그 땐 매일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 방학 때마다 시 30편 써오기 정돈 기본이었어요.</p><br /><p style="margin: 0px">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운율이란 것과 비유법을 차츰 사용하게 되었고 시를 쓸 때마다 문체를 달리하기도 하며 시를 배워갔습니다. 길을 조금이나마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p><br /><p style="margin: 0px">그 때 대회를 하나 나가게 되었는데요, 저는 본선은 통과했지만 본선에서는 은상에 그쳤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저를 잘했다며 격려해 주셨지만 정작 제 자신은 만족하지 못했었던 것 같습니다.</p><br /><p style="margin: 0px">그 때 느낀 것으로는요, 사실 대상을 받은 아이와 저는 글감 자체가 똑같았습니다. </p><p style="margin: 0px">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경험을 묘사해 내어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나타낸 대상을 수상한 작품과는 달리 제 글은 그냥 경험 뿐이었습니다. 아무 감정도 들어있지 않은 제 글이 은상이라도 받은 것이 지금 생각하면 좀 용합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다짐을 했습니다.</p><br /><p style="margin: 0px">저는 그렇게 선생님의 지도를 졸업할 때까지 받았고, 대회를 나가면서 경험을 쌓아나가 제가 초등학교를 떠날 땐 저는 타칭 '글쟁이'가 되어 있었네요.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의 운문부 지도를 끝까지 받은 것은 저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수업 때의 느낌이란 ‥‥‥. 음, 선생님이 그 때 처음으로 칭찬을 해 주셨던 것으로 기억납니다.</p><br /><p style="margin: 0px">지금은 중학교에 들어와 잊고 지냈지만 제게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으로 도움닫기를 시작하여 지금은 뛰어 오르려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p><br /><p style="margin: 0px">나중에 제가 대학교를 들어가고, 문예 창작과를 졸업하고, 우리 나라에서 손꼽히는 문학 작가가 될 때 까지 저는 선생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p><br /><p style="margin: 0px">선생님, 감사합니다. 보고 싶습니다.</p><br /><br /><br /><br />

    • 2010-06-30 19:32:0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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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만족하는 것?<br/><p style="margin: 0px">1. 지금이 가장 행복핟거야?</p><p style="margin: 0px"> 그러고보니 나의 삶도 55년이 되었군! 정말 행운이고 행복이야? 오래전 초등학교 모임에 가보니 무엇이 그리도 바쁘고 힘이 들었는지 아니면 더 좋은 세상으로 가려는지 많은 친구들이 밥 숟가락을 놓고 없더군! 지지고 볶고 몸부림치는 것이 삶이라 하지만 그것이 삶의 의미이자 이유가 아닐가? 오늘도 지지고 볶고 또 몸부림치며 세상 돌아가는 모슴을 바라 볼 수 있어 행복하고 고맙고 감사하며 나에게도 이런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짐이 얼마나 행운이며 부끄러운 일인가? </p><p style="margin: 0px">2. 불행을 찾아서 가출하다.</p><p style="margin: 0px"> 고등학교 시험에 낙방을 하고 힘이들고 지겨운 농사일이 싫증도 나고 발절할 기미도 없어 야반도주하였다. 교복에 빡빡 머리로 무작정 집을 나가 출세하여 돌아오리라는 편지 한 장 남겨 놓고 대구에  내려가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이 급선무 인지라 철가방 신세가 되었다. 군대 영장이 나올 때까지 여기저기 방랑객처럼 헤집고 다녔다. 세상은 정말 만만하지도 그렇다고 호락호락 성공을 내게 주지 않았다. 급한 성격에 다듬어지지 않은 말투며 행동은 어느 직장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히 개달았다.</p><p style="margin: 0px">3. 부모님의 고마움을 알게한 군3년!</p><p style="margin: 0px"> 남아들의 세게인 군대에 입대하고 보니 철없던 시절의 후회와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이랄까 고마움이랄까 아무튼 휴가 때마다 돼지고기 2근과 막소주 대병 짜리 한 병을 들고 부모님을 찾는 것이 즐거움이었으니 인생의 맛을 조금은 알아간 것이라 자평 해본다. 제대 후 지닌날을 돌이켜 보니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고등학교에 들어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공부를 하여 전교 1등도 했고 4년제 대학에 입학하여 부모님께 인정받고 즐거움을 처음으로 드렸다. 그리고 2학년 때에 미스코리아 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착한 아내와 결혼을 하고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였다. 과대표도 하고 장학금도 타면서 더 큰 세계로 나가려는 욕망에 사범대인데 고시공부를 하였다.</p><p style="margin: 0px">4. 욕심은 인생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p><p style="margin: 0px"> 젊은 날에는 화려하고 웅장한 욕망과 포부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되 돌아보면 바람직하지만은 아닌 것 같다. 나의 능력에 맞는 꿂을 가져야지 무조간 큰 꿈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교육현장은 많은 과오를 남기게도 되기 때문에 본인은 찬성하고 싶지 않다.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시를 접고 취업을 하였다. 아이가 자라니 확실하지도 않는 공부에만 매달린다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욕심과 욕망이 누구보다도 큰지라 도 아니면 모라는 식으로 돈 아니면 출세를 위해 삶을 다 바바치라 생각하였다. 직장생활을 조금하다가 사업을 하다보니 잘 될 대는 방탕한 생활이 시작 되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술과 여자 도박 등등 나쁜 것을 즐기는 것이 어찌보면 인간 깊은 곳에 내재 해 있는 기본적인 본능인지도 모른다. 돈은 필요하고 꼭 있어야 하지만 때로는 인간을 패인으로 이끄는 마력이 있어 절재하지 못하면 돈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돌이킬 수도 없게 만드는 무기라 해도 욕할 자 없을 것이라 사려 된다.</p><p style="margin: 0px"> 그러나 사업이 인생이 어디 마음 먹은 대로 계회 된 대로 가나? I.M.F가 닥쳐 왔고 사업은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어려울 때에 성공한 사업가도 많으니까 미리 준비하고 대처 못한 안일함이 주는 교훈이 아닌가 자책 해 본다.아무튼 먹고 산다는 것 가장의 역화을 다 한다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들고 소중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었다. 생활고를 해결하지 못하면 매사에 짜증과 스트레스가 쌓여 잠도 이룰 수 없는 아주 초라한 신세가 되어 버린다.</p><p style="margin: 0px"> 그래서 다시 한 번 점프를 하려고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웠다.</p><p style="margin: 0px">5. 점프는 높고 멀리!</p><p style="margin: 0px"> 지닌날을 돌아보니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 온 것 같았는데 아무 알맹이도 없이 그저 잘먹고 잘살으려 한 것 같다. 누구나 다하는 일인 나와 처자식을 위해 전부를 다 바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그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이룬 것도 그렇다고 남긴 것도 없는데.........</p><p style="margin: 0px"> 그래서 좋아하는 술과 담배 그리고 바람까지 모조리 끊고 자성 내지는 희개의 시간과 출세와 부를 이루지 못할 지언정 아이들과 아내에게라도 인정 받는 아버지.남편이 되리라 다짐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을 하여 신학도 하고 복지학도 공부하면서 욕심을 버리는 삶 그리고 변화되는 삶을 위해서 매일매일 화내거나 분내지 않는 온화하고 침착한 변화 하는 삶을 살리라 다짐하고 다짐하니 세상이 달라보이고 사람들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p><p style="margin: 0px"> 점프는 높고 멀리 하는 것도 중요하고 의미가 있겠으나 욕심을 버리고 이웃을 돌아보는 작은 실천이 오히려 인생의 가장 큰 점프의 기회가 되어 행복하고 윤택한 삶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피력 해본다. 조그만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그날 그날 지금 이시간도 만나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충실하려는 노력이 있어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이 엮어지고 있다.그러니 두서 없고 미천한 글도 쓰는 행복감을 맛보니 모두가 감사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다.</p>

    • 2010-07-01 11:41:0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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